1. 커버스토리
[2491호] 2018.01.15

‘평창’을 만든 주역은 지금…

▲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 선정 후 눈물을 흘린 이건희 IOC 위원(현 명예위원). photo 로이터
2009년 12월 29일. 특별사면 및 복권이 단행됐다. 단 한 사람이 대상이었다. 법무부는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대한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은 2007년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사건’에 휘말려 배임 및 조세포탈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고 IOC 위원 직무가 정지된 상태였다.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이건희 IOC 위원이 현재 정지 중인 위원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범국민적 염원인 2018년 겨울올림픽의 평창 유치를 위한 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사면을 단행한 이명박 정부로서는 ‘부자사면’이란 반발에 당장 직면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과 2007년 두 번씩이나 연거푸 물을 먹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복기해 보자.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제115차 IOC 총회가 열렸다. 후보로 오른 세 도시는 한국의 평창과 캐나다 밴쿠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였다. 1차 투표에서 평창은 51표로 1위를 기록했다. 밴쿠버 40표, 잘츠부르크 16표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평창은 개최지 선정을 위한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다. 결국 1차 투표에서 꼴찌를 한 잘츠부르크를 제외하고 평창과 밴쿠버 간에 2차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결과는 밴쿠버 56표 대 평창 53표. 1차 투표 때와 달리 3표 차의 역전패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바쁜 일정을 이유로 프라하 IOC 총회에 불참하고 고건 총리를 대신 보냈다. 관료 출신으로 유치위원장을 맡은 공로명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3표 차의 낙선에 마지막 뒷심이 아쉬웠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7년 7월, 남미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제119차 IOC 총회. 재수에 도전한 평창은 4년 전 만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러시아의 소치와 맞붙었다. 4년 전 IOC 총회에 불참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과테말라로 직접 날아갔다. 하지만 과테말라에서 IOC 위원 자격으로 표밭을 닦고 있던 이건희 회장은 좌불안석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평생 사업을 하면서 대개 예측이 가능했는데 이번만큼은 정말 어렵다”는 말을 남겼다.
   
   1차 투표 결과 평창은 36표로 1위, 소치 34표, 잘츠부르크가 25표로 뒤를 이었다. 4년 전과 묘하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유치위원장도 역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관료 출신 한승수 전 장관이었다. 결국 2차 투표에서 평창은 47표를 받는 데 그쳐 51표를 얻은 소치에 역전패당했다. 무엇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과테말라까지 날아와 득표전을 지휘한 것이 뼈아팠다.
   
   그로부터 다시 4년 뒤.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123차 IOC 총회가 열렸다. 삼수에 도전한 평창은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와 맞붙었다. 뮌헨은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이 당시 부위원장 자격으로 표밭을 누비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공동유치위원장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대한체육회(KOC) 회장인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 IOC 선수위원인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선수 등이 총출동해 총력전을 펼쳤다. 2009년 사면복권된 이건희 회장도 IOC 위원 자격으로 참석해서 총회 당일 점심과 저녁을 거르며 IOC 위원들과 접촉했다. 결과는 1차 투표에서 단판에 갈렸다. 전체 95표 중 평창이 63표를 얻어 뮌헨 25표, 안시 7표를 압도적인 표 차로 누르고 압승했다. 자크 로케 IOC위원장은 영어로 ‘평창 2018’이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평창’이라고 호명했다.
   
   

   평창의 꿈을 위해 지구 5바퀴
   
   평창 유치를 위해 영어로 직접 프레젠테이션 무대에 나섰던 이명박 대통령(3번 연사), 조양호 유치위원장(2번 연사), 박용성 대한체육회장(7번 연사)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 사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건희 IOC 위원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2009년 12월, ‘원포인트 사면’이 단행된 직후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이듬해인 2010년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해 1년 반 동안 11차례 해외출장에 나섰다. 거리로는 21만㎞, 지구 5바퀴 거리였다. 2011년 당시 69세 고령의 나이에도 무려 170일을 해외에 머물며 IOC 위원들과 맨투맨 접촉을 이어갔다. 서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비정한 올림픽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평창의 승리는 사실상 여기서 판가름났다. 실제 평창이 얻은 63표는 IOC 총회 직전 자체 추산한 예상득표수 48~64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2009년 단행한 이건희 회장의 사면복권은 ‘신(神)의 한 수’였다. 이건희 회장은 평창 선정 직후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서 만든 겁니다. 저는 조그만 부분만 담당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 IOC 총회로부터 6년 반이 흐른 지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숨은 주역인 이건희 회장은 병석에 누워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3년 뒤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벌써 4년이 다 되어 간다. 지난해 12월 1일 삼성그룹 회장 취임 30주년을 맞이한 기념식은 그의 부재 속에 조촐히 치러졌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삼남인 이건희 회장은 1987년 큰형 이맹희, 작은형 이창희를 제치고 삼성그룹 총수에 올랐다. 그의 외아들이자 사실상의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스캔들’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고 있다.
   
   삼성은 올림픽 최고등급 스폰서인 ‘월드와이드 파트너’ 13개 글로벌 기업 가운데 속하는 유일한 한국 기업이다. 이 중에는 일본 기업 3곳(도요타·파나소닉·브리지스톤), 중국 기업 1곳(알리바바)이 속해 있다. KT·대한항공·현대기아차·SK·LG·롯데·포스코·한국전력 등 8개 기업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만 국한되는 로컬파트너에 그친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한국이 2020년 차기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 2022년 차차기 올림픽 개최국인 중국 사이에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할 수 있는 것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삼성 덕분이다.
   
   사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기반을 닦은 것도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덕분에 가능했다. 동계올림픽 설상 종목인 스노보드와 프리스타일스키가 열리는 평창군 봉평면 태기산의 휘닉스파크. 휘닉스파크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보광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장인인 홍진기 회장이 세운 친족회사다. 1995년 강원도 평창에 스키장과 콘도미니엄을 갖춘 겨울 레저시설인 휘닉스파크를 조성할 당시만 해도 보광은 엄연한 삼성그룹 계열이었다. 이후 보광이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것은 1999년이다. 이후에도 이건희 회장은 휘닉스파크를 찾아 스키강습을 받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2005년에는 삼성그룹 사장단과 함께 휘닉스파크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같은해, 프랑스 동부 쿠쉐빌의 ‘트루아발레’ 스키장 슬로프 3개를 통째로 전세 내 스키를 타기도 했다. 당시 ‘황제스키’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건희 효과’ 덕분에 국내 스키인구가 대폭 늘면서 겨울스포츠의 저변이 확대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 2011년 더반 IOC 총회 직전 당시 이명박 대통령, 자크 로게 IOC 위원장과 회동을 주선한 이건희 IOC 위원. photo AP

   IOC 명예위원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
   
   이건희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사장도 2011년 3월부터 2016년까지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김재열 사장은 2016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집행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빙상경기연맹 회장을 김상항 전 삼성생명 사장에게 넘겨줬다.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때 이건희 회장을 바로 옆에서 보좌했던 김재열 ISU 집행위원은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 국제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재열 ISU 집행위원과 김상항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필두로 한 8명의 부위원장 중 한 명이다. 거기에 제일기획 마스터 출신으로 조직위 기획홍보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주호 KPR 콜라보K 대표까지 합하면 삼성 출신이 3명이나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이 없으면 사실상 올림픽 개최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8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IOC 위원직을 사임했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7월 미국 애틀랜타 하계올림픽 기간 중 열린 제105차 IOC 총회에서 개인 자격으로 IOC 위원으로 선출된 후 21여년간 IOC 위원 자격을 보유해왔다. 이로써 2018년 현재 99명의 IOC 위원 가운데 한국인은 2016년 8월 리우올림픽 기간 중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위원 한 명만 남았다. 최전성기인 2000년대 초반 한국의 IOC위원은 한때 3명(김운용·이건희·박용성)에 달했다.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위상이 그만큼 추락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 의 IOC 위원은 각각 3명(위자이칭·리링웨이·양양)과 1명(다케다 쓰네카즈)이다. 중국의 경우 중국의 일원으로 인정되는 ‘중화타이베이(대만)’의 우징궈(吳經國)까지 합하면 모두 4명에 달한다.
   
   그나마 IOC는 지난해 9월 이건희 회장의 그간 공로를 인정해 만장일치로 ‘IOC 명예위원’으로 추대했다. 42명의 IOC 명예위원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이다. 이건희 회장은 지금도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6명 고문 중 한 명으로 등재돼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월 9일, 삼성서울병원 20층 VIP병실에서 76회 생일을 맞았다. 병석에서 맞는 4번째 생일이다. 마침 이날은 삼성전자가 지난해 매출 239조6000억원, 영업이익 53조6000억원의 잠정실적을 발표한 날이다. 영업이익 50조원 돌파는 사상 최초로, 미국 애플(65조5600억원)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의 영업이익이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은 의식은 있으나 아직 거동은 못 하는 상태”라며 “가족들을 알아보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는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IOC 명예위원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서 지켜보는 장면을 우리는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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