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평창 전날 열병식 비수 뽑아든 北의 노림수
  • facebook twiter
  • 검색
  1. 커버스토리
[2494호] 2018.02.05

평창 전날 열병식 비수 뽑아든 北의 노림수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대응센터장 

▲ 지난해 4월 16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생일) 열병식 장면. photo 연합
독재자는 열병식을 좋아한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푸틴,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카리스마를 추구하는 독재자라면 응당 자신의 치적과 위력을 과시할 열병식은 기본이다.
   
   그러나 보통 독재자는 열병식을 한 번 보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수십 번을 반복하는데 막상 고생하는 것은 군대와 국민이다. 독재자들에게 열병식이란 군대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적국에 공포를 선사하는 강력한 정치적 수단이다.
   
   열병식(閱兵式)이란 무엇인가.
   
   열병식이란 정렬시켜놓은 부대를 지나면서 검열하는 의식을 말한다. 보통 열병식은 열병과 분열의 두 가지로 나뉜다. 열병이란 도열해 있는 부대를 지휘관이 움직이면서 검열하는 것이고, 분열이란 열병을 마친 부대가 대형을 갖추어 도보나 차량탑승으로 행진하며 임석 상관 앞에서 부대의 세력을 과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보통 열병식은 열병 후에 분열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열병식은 전통적으로 군대의 전투력과 군기 등 전쟁 수행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19세기까지 전쟁의 양상은 진형을 어떻게 유지하며 싸우느냐가 관건이었다. 전차나 비행기와 같은 기동수단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쟁은 얼마나 병력이 열(列)과 오(伍)를 유지하면서 조직적으로 버텨내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었다. 특히 적의 포화 속에서도 기동시에 대형을 유지하면서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은 부대의 분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즉 열병식에서 보여주는 절도와 군기는 그 나라 군대의 전투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한 열병식은 전쟁에 앞선 준비뿐만 아니라 전쟁의 끝을 의미하기도 했다. 열병식은 소위 개선행진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승자의 개선행진은 통치자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의식이 되어왔다. 특히 로마시대의 개선식(triumphus)은 그 화려함으로 유명했는데, 5000명 이상의 적군을 쓰러트린 지휘관에게만 베푸는 최고의 영예였다. 개선장군은 적국에서 노획한 전리품들을 시민에게 과시하고 그 이익을 나누기도 했고, 적군 수장을 포로로 잡아와 시민들에게 보여준 후 처형했다. 전쟁의 승리와 성과를 보여주는 정치적 의식이었다. 그래서 열병식은 단순히 군사적인 행사가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행사가 된다.
   
   
▲ 2차대전 직후 소련이 개최한 전승기념 열병식. 기병 출신인 주코프 장군이 하얀 종마를 타고 제병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 publicdomain

   국제정치 속의 열병식
   
   열병식을 대표적으로 메시지 전달의 수단으로 삼은 것은 소련이었다. 2차대전에 승리한 소련은 그에 걸맞은 정치적 의식을 원했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은 전쟁영웅 G.K. 주코프 장군을 사열관으로, M.K. 로코소프스키 장군을 제병지휘관으로 지명했다.
   
   원래는 스탈린이 직접 사열할 계획도 검토했으나 고령인 데다가 승마가 미숙한 스탈린이 혹시라도 낙상하는 날에는 전 세계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 주코프가 사열관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리하여 6월 24일 기병 출신인 주코프 장군이 직접 하얀 종마를 타고 제병부대를 사열하는 가운데 병사들은 전쟁 당시 독일군과 나치로부터 빼앗은 군기들을 레닌의 묘소 앞에 헌납했다. 소련이란 강대국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소련의 전승열병식은 한동안 잊혀졌다가 20주년을 맞은 1965년부터는 5월 9일부터 부활했다. 마침 흐루쇼프를 실각시킨 브레즈네프는 강한 소련의 이미지를 부각할 기회로 기존의 노동절이나 10월 혁명기념일에 ‘승리의 날’을 더했다. 이후 대독 승전기념 열병식은 1984년까지 계속되며 소련의 군사적 위용을 과시하는 국제적 행사 중의 하나로 활용되어 왔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서방기관의 정보기관들에 이런 열병식은 소련의 군사력을 분석하는 중요한 행사이기도 했었다.
   
   소련이 경제적 침체기를 맞이하고 결국 1990년 해체되면서 승전 행사는 잠시 잊혀졌다. 그러나 1995년부터 다시 열병식이 시작되었다. 열병식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린 것은 푸틴이었다. 2000년 5월 7일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한 푸틴은 최초의 국제행사로서 5월 9일 승전기념 열병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2000년 열병식을 통해 푸틴은 냉전 직후의 무력한 모습이 아니라 강한 러시아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승전기념일 행사를 자신의 정치력과 러시아의 국력을 과시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았다. 이후 러시아의 열병식은 점차 그 위상이 높아져 2008년 열병식은 RT 방송사를 통하여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2017년 전승 70주년 열병식에서는 러시아가 심혈을 기울이는 차세대 최첨단 무기들을 대거 공개하면서, 크림사태 이후 러시아를 압박하는 서구 국가들에 강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최근 러시아만큼이나 열병식을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잘 활용하는 국가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특히 2015년 9월 3일 중국은 천안문광장에서 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개최하면서 마치 중국의 공산정부가 2차대전을 승전한 것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2차대전 당시 전승국으로서 일본과 맞섰던 것은 장제스가 이끌던 중화민국이었다. 중국은 이 열병식을 통하여 최첨단 무기뿐만 아니라 둥펑-26, 둥펑-31B 등 막강한 핵전력까지 보여주면서 군사굴기(屈起)를 과시했다. 특히 이 행사에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부분의 서방국가 지도자들이 참석을 하지 않은 가운데 여전히 북한과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의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지적이었다. 어쨌거나 중국으로서는 박 대통령의 참석만으로도 자신들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 이득인 셈이었다.
   
   
   북한에서의 열병식
   
   병영국가인 북한에 있어서 열병식의 의미는 남다르다. 북한군의 열병식은 1948년 인민군이 창설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36세의 김일성은 이 열병식을 통해 명실상부한 북한의 권력자임을 확인했다. 6·25 이후에도 북한은 열병식을 통해 국가적 자부심을 강조했지만, 막상 김일성 독재체제가 안정된 1960년대 이후에는 거의 실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가 되면서 선군(先軍)정치가 이슈가 되자 자연스럽게 열병식은 중요해졌다. 특히 1992년 4월 25일 북한군 창설 60주년 열병식은 냉전 종식 후 위기에 몰렸음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출사표와도 같았다. 또한 열병식을 통하여 새로운 무기체계를 선보이기도 하면서 꾸준히 군사력을 키우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김정은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최초로 드러낸 것도 1992년 열병식이었다. 2010년 10월 10일의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김정일 옆에 서면서 차기 지도자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열병식에 누가 참석했느냐, 누가 최고권력자의 옆에 서 있느냐 등은 북한의 권력구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우선 중국과의 관계도 열병식에서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2년 4월 15일, 그러니까 똑같은 날 있었던 열병식에서는 중국의 사절이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60주년 기념 열병식에는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을, 2015년 노동당 창당 70주년 열병식에는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보냈다. 하지만 지난해 김일성 탄생 105주년 열병식에는 중국 측 사절이 없었다. 북한 외교의 고립된 단면이 드러난다.
   
   한편 권력무상도 열병식에서 확인된다. 2013년 4월 25일 인민군 창건기념 열병식까지 김정은 옆을 지키던 장성택은 그해 말에 처형되었다. 핵심권력에 있던 김양건은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반면 숙청되었다고 알려졌던 인민보위상 김원홍은 2017년 열병식에서 대장 계급을 달고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북한 권력의 서열 변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열병식 단상이기도 하다. 그만큼 열병식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크다.
   
   열병식이 갖는 정치적 성격으로 인하여 심지어는 등장하는 무기들에서도 정치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과거 냉전시절 미국 정보당국은 소련의 전승절 기념 열병식 공개 장면을 보고 새로운 무기체계의 등장과 소련의 전략적 의도를 가늠해 보기도 했다. 철저히 감춰진 독재국가인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열병식에서 공개되는 무기들로 북한군의 능력과 의도를 추정해 보는 기회가 마련된다.
   
▲ 김정은 후계구도가 확인된 2010년 10월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박수를 치고 있다. photo AP

   일례로 2017년의 열병식에는 20종의 무기가 선보였다. 보통 30여종이 넘는 무기체계가 선보였던 이전의 열병식과는 다른 모습이다. 특히 이들 무기 가운데 개조되었거나 새롭게 만들어져 2017년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되는 무기가 무려 10종에 이르렀다. 또한 공개된 무기 가운데 원거리를 타격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이자 전략무기에 해당하는 것들이 무려 7종이었다.
   
   특히 2017년 열병식에서 전략군의 무기들은 모두 새롭게 공개되는 것들이었다. 우선 궤도형 발사차에 장착된 스커드 개량형 미사일은 정밀한 타격이 가능한 유도 미사일이다. 또한 KN-15(북극성2형) 미사일을 발사하는 궤도차량은 지난 2월 12일 발사 장면이 공개된 바 있으나, 무려 6대가 등장함으로써 이미 양산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화성12형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도 바로 작년의 열병식이 처음이었다. 특히 북한은 2017년 열병식에서는 신형 ICBM 발사차량 2종을 공개하면서 ICBM 완성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조직 변화도 열병식에서 공개된다. 2017년 열병식에서 북한은 전략군 이외에 특수작전군이라는 새로운 병종(兵種)이 존재함을 과시했다. 군복도 무기체계도 다른 부대와 차별을 둠으로써 육·해·공군 이외의 새로운 군대로서 특수부대가 만들어졌음을 공개한 셈이다. 특수부대 전력이 무려 20만명에 이르고 있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전략군도 특수작전군처럼 별도의 군복을 입음으로써 독립된 병종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북한은 여태까지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일’로 지정해왔다. 그런데 애초에 북한군이 만들어진 것은 1948년 2월 8일이다. 김일성은 북한정권이 수립하기도 전인 2월 8일에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군사력으로 북한을 장악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1978년부터 건군일자가 바뀌게 되었다.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중국 안투(安圖)현 소사하 등판에서 항일유격대를 만들었으니, 이제 4월 25일을 창군일자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78년 이후부터는 4월 25일이 건군절이 되어 열병식이 치러졌다.
   
   이렇게 갑자기 건군절을 바꾼 것은 정치적 셈법에 의한 것이었다.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 김일성 빨치산 동료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빨치산 창설일인 4월 25일을 건군일로 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1978년 이후로부터 2월 8일은 더 이상 아무 날도 아니게 되었다. 이후 북한에서 제작하는 달력에서도 인민군 창건일은 4월 25일이었다.
   
▲ 평창 동계올림픽 전날 열릴 북한의 열병식에는 방사포나 전차 등 재래식 무기체계 중에서도 신형이 공개될 전망이다. photo AP

   그런데 2015년 2월 김정은은 돌연 2월 8일을 명절로 선포했다. 조선인민군을 만든 날을 이제는 정규군 창건일자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나선 것이다. 이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김일성 따라하기를 반복해온 김정은이 김정일 시대와는 달리 2월 8일을 다시 국가명절로 바꾸면서, 자신의 스타일로 인민군을 장악하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여전히 2월 8일에 대대적인 열병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올해 2월 8일 대대적인 열병식이 열릴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바로 평창올림픽 개막식 하루 전날이다.
   
   북한의 열병식 움직임을 포착한 것은 위성사진이었다. 북한은 원래 열병식을 앞두고서는 대대적으로 미림비행장에 열병부대를 모아놓고 최소한 2~3개월 이전부터 철저하게 열병식을 준비한다. 어느 때보다 추운 올해 겨울에도 북한은 최소한 12월부터 열병식을 준비했다는 말이 된다.
   
   이번 열병식은 어느 때보다도 위협적일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를 통하여 2017년에 국가핵무력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와 탄도로켓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겠다”고 공언했다. 바로 그러한 모습을 이번 열병식을 통해서 과시할 가능성이 높다. 12월 말의 예행연습에서는 병력 1만2000여명과 장비 50여대가 식별됐는데, 1월 중순이 되자 병력은 1000여명이 늘어나고 장비는 150여대나 증가했다. 행사준비에 동원된 인원만 해도 5만여명으로 급증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것은 바로 북한의 ICBM 전력이다. 북한은 작년 한 해에만도 15회에 걸쳐 20여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중에는 신형 미사일만 해도 무려 6종이 넘는다. 특히 준ICBM급인 화성12형은 물론이고, 북한 최초의 ICBM인 화성14형, 그리고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형 등 강력한 신형 미사일들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미사일 전력들을 모두 모아서 공개할 것이 자명한 상황이다.
   
   
▲ 지난해 11월 발사에 성공한 북한 최대의 ICBM인 화성15형. photo AP

   북한의 치밀한 정치플레이
   
   북한은 그간 열병식을 주요한 군사적 압박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자신들이 과시하고자 하는 신무기들은 반드시 열병식을 통하여 보여주면서 한·미·일 등 관련국들을 압박했다. 예를 들어 2007년 4월 25일의 인민군 창건일 열병식에서는 ‘무수단’(북한명 화성10호) 탄도미사일을 보여주면서 본격적인 중단거리 타격능력이 있음을 과시했다.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무수단이 2006년경부터 실전배치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무수단의 시험발사를 실시한 것은 2016년 4월부터였다. 그것도 6월 22일의 제6차 발사에 이르러서야 성공했다. 게다가 발사한 미사일은 그간 열병식에서 공개했던 모델과는 달리 그리드핀을 장착하는 등 개량을 거쳤다. 한마디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미사일로 한·미 당국을 농락한 셈이다.
   
   유사한 일은 2012년에도 반복되었다.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0주년 열병식에서 북한은 KN-08(북한명 화성13형)이라는 ICBM을 공개했다. 그것도 중국제 신형 미사일발사차량에 실어서 완성된 듯한 형태로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북한이 드디어 ICBM을 조만간 발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아졌다. 그러나 막상 KN-08의 엔진연소실험이 목격된 것은 이듬해인 2013년 2월부터였다. 2013년 7월 27일 전승 60주년 열병식에서도 KN-08이 공개됐지만 여전히 발사는 없었다. 2015년 10월 10일에는 KN-08과 함께 유사한 크기의 KN-14라는 미사일도 공개되었다. 역시 ICBM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었지만 이후에도 이들 미사일은 발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북한이 허풍만 떤 것은 아니다. 2017년 4월 15일의 열병식에서 공개되었던 KN-17(북한명 화성12형)은 5월 14일에 발사에 성공했고, 역시 같은 날 공개되었던 KN-18(북한명 미상)도 5월 29일 발사에 성공했다. 2017년 후반기에는 오히려 열병식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미사일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KN-17을 2단 분리형으로 만들어 사거리를 1만㎞까지 늘린 KN-20(북한명 화성14형)이 7월 4일과 7월 28일에 성공리에 발사되었다. 기존의 KN-17이나 KN-20과는 달리 더욱 강력한 쌍발엔진을 장착한 KN-22(북한명 화성15형)는 11월 29일 발사에 성공했다. KN-22는 KN-20보다 사거리와 발사중량이 증가하여 대형중량핵탄두를 미국 본토 전역에 투하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더하여 아직 발사는 안 했지만 신형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북극성3형이 존재하는 듯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러한 신무기들이 이번 열병식에는 여과 없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WMD(대량살상무기) 이외에도 신형 방사포나 전차 등 새로운 재래식 무기들의 등장도 예고된다. 우리가 ‘평창=평화’를 외치고 대화에 목을 매도 북한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행사가 이번 열병식이 될 것이 자명하다.
   
   결국 북한은 왼손으로는 평창올림픽 참가라는 유화카드를 던지면서도 오른손에는 사상 최대의 열병식이라는 비수를 쥐고 있는 셈이다. 특히 평창올림픽 참가로 한·미연합훈련의 연기라는 성과를 얻어낸 속에서도 핵무기까지 동원한 열병식을 보란 듯이 거행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대대적인 정치적 승리를 의미한다. 북한의 핵무기 앞에 ‘미제’가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하여 올림픽이 끝나고 연기되었던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되더라도, 이미 전 세계인의 뇌리에는 북한의 핵무기가 평창올림픽보다 더욱 강하게 각인될 것이다. 북핵으로 체제경쟁 시즌2를 다시 시작한 북한에는 의미 있는 1승이지만, 평화와 유화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 정부에는 체제 경쟁의 패배가 될까 우려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