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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호] 2018.04.30

북핵 25년 풀어야 정전 65년 끝낼 수 있다

김대현  기자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함으로써 65년간 이어져온 남북 간 정전체제 종식과 25년간 한반도를 짓눌러온 북핵 문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됐다.
   
   하지만 이번 3차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여는 서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 회담에 이어 실시될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해법을 수용해야만 종전(終戰)과 평화체제 구축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게 안보 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우리의 우방인 동시에 한국전쟁 휴전협상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전이나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휴전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중국이 최종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협정 당시 한국 정부는 협상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았다. 때문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우방인 미국의 지지와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가 바라는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지 못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국내 보수진영도 “핵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이 전제되지 않는 한 북한과 관계 개선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25년간 되풀이되어온 북핵 위기가 해결되어야만 65년간 이어져온 정전체제를 끝낼 수 있다는 의미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남북이 대화를 하는 건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면서도 “최종적으로 핵을 가진 북한과 우리가 공존하게 되는 정말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6자 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던 그는 “비핵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북한과의 협상은 예측불허의 상황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3차 정상회담이 1·2차와 다른 점
   
   북핵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진 이번 3차 남북 정상회담은 과거 1·2차 정상회담 때보다 합의문 도출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선언’에 합의하고 5가지 합의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합의문에는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조항과 함께 △남측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로의 통일 지향 △이산가족 상봉 △경제협력과 문화교류 △남북 간 후속대화 등이 담겼다. 1차 회담은 합의 내용도 중요했지만 남북 분단 이후 양측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통일과 남북화해를 논의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부여됐다. 그러나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 후 1차 남북 정상회담 관련 4000억원대 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불거져 그 의미가 퇴색되기도 했다.
   
   2차 정상회담의 주역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2007년 10월 평양에서 만나 1차 회담보다 진전된 ‘10·4 남북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이 선언문에는 6·15공동선언을 실천하는 것을 기본 의제로 하고, 남북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 앞선 회담보다 진전된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앞에서는 평화를 얘기하면서도 뒤로는 체제보장을 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1년 전인 2006년 10월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서 첫 번째 핵실험을 감행한 바 있다. 당시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핵사찰 등을 추진했으나 북한은 2차 남북 정상회담 뒤인 2008년 영변원자로 냉각탑을 폭발하는 ‘쇼’를 보여준 뒤 다시 핵무장을 밀어붙였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은 뒤로는 핵무기 개발에 나선 북한의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외형적 평화에만 집착했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번 3차 남북 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이끌어낼 ‘운전자’를 자임하며 추진한 회담이라는 점에서 과거 1·2차 때와 달리 핵 문제가 핵심의제로 대두됐다. 문 대통령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는 믿음을 토대로 미국과 중국 등을 다자대화의 틀로 끌어들여 김정은의 비핵화 실천을 조율해왔다.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 문제의 밑그림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으나 비핵화가 진전되면 우리는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 등에서 경제적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핵폐기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담보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북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북한이 선언적 비핵화를 넘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를 받아들일지 여부에 달려 있다. 우선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트럼프 정부도 6월 초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4일(현지시각) 프랑스 에마누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워싱턴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한껏 치켜세우며 미·북 정상회담의 기대치를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은 매우 열려 있으며 우리가 본 모든 것에 비춰볼 때 매우 존중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수년간 많은 약속을 해왔지만 이런 입장을 보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내비친 대목을 평가하는 동시에 실천을 압박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의 목표와 관련 “단순한 합의를 하고 승리를 주장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런 일은 원치 않는다. 그들이 핵무기를 제거하기 바란다. 최대 압박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 남북 정상회담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4월 18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 집 모습. photo 뉴시스

   “트럼프는 비핵화 구체적 합의 받아낼 것”
   
   국내 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구체적 비핵화 실천방안을 받아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김열수 안보전략실장은 이렇게 전망했다. “남북 간 선언적 비핵화와 달리 미국은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과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폐기 등 구체적 합의를 받아내려 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지 여부는 단정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본다. 현재는 상대의 진정성을 믿고 옵션별로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최상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적극적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 4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를 비밀리에 평양에 보내 김정은을 직접 만나게 한 게 대표적 사례다. 한국 정부를 통해 김정은의 심중을 전해 듣는 것을 넘어 직접 접촉하며 비핵화 협상 가능성을 타진한 것은 미국 내에서조차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미·북의 적극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달리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즉흥적 성격 탓에 철저한 사전합의를 기본으로 하는 통상적인 정상회담과 달리 미·북 간 감정대립이나 말싸움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북 정상회담이 초읽기에 돌입하면 양측의 긴장감과 기싸움도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1년 이상 공석으로 비워놨던 주한 미국대사에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을 지명하며 미·북 정상회담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해리스 사령관은 앞서 주(駐)호주 미국대사로 지명된 바 있으나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호주 정부의 양해를 구해 주한 미국대사로 재지명했다고 미국 내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로써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주요 창구는 폼페이오-볼턴(백악관 안보보좌관)-해리스로 이어지는 강경노선이 장악하게 됐다. 미국이 비핵화 등 회담 주요의제에 있어서 원칙론을 고수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배경이다.
   
   이 같은 미국 내 기류는 최근 방한한 수전 손턴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대행의 발언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손턴 대행은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핵실험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선언은 긍정적이지만 말만으로는 비핵화의 진정성을 확인하기에 충분치 않다. 우리는 불필요한 시간 끌기를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20일 북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6개월 만에 열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미사일 발사 실험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국내 정치에 대한 고려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다.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가급적 선거에 근접한 시기에 미·북 정상회담을 개최해 극적인 성과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4월 초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0%로 나타났다. 취임 초와 비슷한 수준까지 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11월 중간선거에서 자신의 소속 정당인 공화당이 민주당에 패배할 경우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다시 탄핵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사찰 수용, NPT 재가입 땐 미·북 수교”
   
   문재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 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양국 간 긴밀한 공조를 재확인할 계획이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는 “날짜는 미정이지만 5월 중순 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이른바 ‘운전자론’을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결국 순차적 비핵화 해법을 중재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미국과 공유함으로써 미·북 회담이 성과를 낼 수 있는 틀을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대중 정부의 실세로 통했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과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작성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의원이 예상하는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는 이랬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김정은 위원장도 경제제재가 더 지속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됐다. 트럼프의 결단, 김정은의 실천, 문재인의 안전운전 등 3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비핵화는 처음 핵 동결부터 완전한 핵 제거까지 적어도 3단계 정도가 필요하다. 만약 북한이 IAEA 사찰을 수용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재가입하는 수순으로 간다면 미국과의 수교도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의 대북통으로 불리는 사카이 다카시 전 공안조사청 2부장도 최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많다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분석한 바 있다.
   
   미·북 정상회담이 극적인 성과를 거둔다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다시 회동을 갖고 종전협정 및 남북 평화구축을 위한 후속 회담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NN 등 일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미·북 정상회담 직후 평양 방문을 예고해둔 상태다.
   
   김정은은 지난 3월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 시진핑 주석을 만나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과의 회담에서 협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에 대한 답방 차원으로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미국 견제심리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시동을 건 북한 비핵화 문제가 최종 결렬되거나 난관에 봉착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개의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미·북 회담에서 양측이 실질적 합의문을 만들지 못하면 과거처럼 CVID는 요원해지고 한반도 긴장이 다시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4·27 남북 정상회담은 미·북 회담을 위한 멍석을 까는 데 집중한 측면이 있다. 주변국과 사전 조율되지 않은 사안이 돌출되면 판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운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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