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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호] 2018.05.14

김정은의 딜레마 反美를 어쩌나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일러스트 허인회
북한의 신천박물관은 6·25전쟁 때 황해남도 신천군에서 미군이 주민들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고 북한이 주장하면서 각종 자료들을 전시해온 곳이다. 북한은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한 미군이 38선을 돌파한 후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52일 동안 신천군 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5383명을 학살했다고 선전해왔다. 북한은 1958년 3월 26일 김일성 주석의 현지 교시에 따라 1960년 6월 25일 미군이 6·25 당시 주둔했던 자리에 이 박물관을 건립했다. 북한은 그동안 이 박물관을 ‘반미(反美)’의 교육장으로 활용해왔다. 실제로 지난 60년간 이곳을 찾은 인원만 1800만여명이나 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2014년 11월 25일 이곳을 방문해 반미투쟁 교육을 강화하라면서 개·보수를 지시했다.
   
   
   800만이 찾은 반미의 성지 신천박물관
   
   김 위원장은 2015년 7월 26일 이곳을 다시 방문해 미국을 ‘미제 살인귀’ ‘식인종’ ‘침략의 원흉’ 등 원색적 표현으로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신천박물관은 미제의 야수적 만행을 낱낱이 발가벗겨 놓은 역사의 고발장”이라면서 “피는 피로써 갚아야 하며 미제와는 반드시 총대로 결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매년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까지를 ‘반미공동투쟁 월간’으로 지정하고, 신천박물관에서 대대적인 반미투쟁 대회를 가져왔다. 하지만 신천군 주민학살은 미군의 소행이 아니라 공산군이 후퇴하면서 당시 기독교 우파 세력과 공산 좌파 간의 알력으로 양 진영 간에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미군은 신천에 주둔하지도 않았고 소규모 부대가 지나간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군이 신천군 주민학살 사건의 주범이며 잔인한 범죄자라고 선동해왔다.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도 북한의 반미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23일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북한에 나포됐다. 당시 북한은 초계정 4척 및 미그기 2대를 동원해 50㎜ 기관포 2문만을 탑재해 사실상 비무장함정인 푸에블로호를 납치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 승무원 83명 중 1명이 총격으로 사망했고 나머지 82명은 북한에 억류됐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무모한 도발행위를 비난하고 푸에블로호와 승무원들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일전도 불사한다는 결연한 입장을 보이기 위해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제7함대의 구축함 2척을 동해로 출동시켰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학대·고문해 영해를 침범했음을 시인하도록 강요했다.
   
   북한은 미국이 영해 침범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자 사건 발생 후 11개월이 지난 1968년 12월 23일 승조원 82명과 유해 1구를 송환했지만 푸에블로호 함정은 반환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9년 1월 원산항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평양의 대동강 ‘충성의 다리’ 근처에 옮기도록 했다. 김정은은 한 술 더 떠 2013년 푸에블로호를 평양 보통강변 전승기념관의 ‘노획무기전시장’으로 옮기고 대형 전광판까지 설치하도록 했다. 북한은 푸에블로호 사건을 “6·25전쟁에서 패한 미국이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무장간첩선을 침투시킨 것”이라면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항복서’를 받아냈다”고 선전해왔다. 푸에블로호가 전시돼 있는 곳에선 반미구호를 외치는 청년 학생들과 주민들의 군중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푸에블로호를 참관한 북한 주민은 219만여명이나 된다.
   
   
▲ 북한의 한 유치원생이 미군이 그려진 표적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다. photo KCNA

   반미가 북한의 국시
   
   북한은 전 세계에서 반미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말 그대로 반미가 국시(國是)라고 볼 수 있다. 반미가 북한의 국가 정체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반미 정서를 고취시키기 위해 세뇌작업을 끊임없이 해왔다. 실제로 북한 어린이들은 걷기 시작할 나이가 되면 미국을 적으로 보는 교육을 받는다. 유치원생들은 장난감 총으로 미군 모형을 내리치는 놀이를 하는가 하면 미국과 싸워 이기거나 미국을 비판하는 그림을 그린다. 게다가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부터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는 반드시 반미를 충동질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탈북자 이현서의 저서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를 보면 북한 교사들은 미국이 사악하다면서 미제를 타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미국을 ‘승냥이’에 비유한다. 승냥이는 개과의 포유동물로 잔인하고 성격이 난폭하다. 소학교에서 배우는 산수 문제도 ‘내가 미제 승냥이 한 명을 죽이고 인민군 동료가 미제 놈 두 명을 죽였다면 미제 놈은 모두 몇 명이 죽었나’라는 내용으로 돼 있다. 김일성은 1963년 2월 “승냥이의 야수적 본성이 변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미제의 침략적 본성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며 “미제를 미워하는 사상으로 군인들과 주민들을 철저히 교양해야 한다”는 교시를 내리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은 각종 집회나 회의에서 항상 반미 구호를 외치면서 미국을 비난한다. 평양을 비롯해 북한 방방곡곡에는 반미를 부추기는 포스터 등이 붙어 있다. TV와 영화를 봐도 반미가 주요 내용인 작품들이 많다. 주민들이 미국 영화를 보다가 적발되면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북한 정권이 반미를 이처럼 앞세워온 이유는 무엇보다 ‘체제 생존’을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은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원인이 미국에 있다고 선전해왔다. 북한 정권은 모든 문제의 출발점을 미국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선악의 개념으로 미국을 보고 있다. 북한 정권은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는 미국을 ‘불구대천의 원수이자 백년 숙적’이라고 부른다. 북한 주민들은 이런 선전·선동 때문에 미국을 타도해야 할 사악한 제국주의 국가로 간주해왔다. 심지어 북한 정권은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도 미국과 한국의 음모에 따라 발생한 것이라면서 주민들에게 거짓 선전을 해왔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핵 개발은 미제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한 자위 수단이고 이에 따른 경제적 고통도 인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 주민들은 과거 김일성이 위대한 영도력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6·25전쟁 때 한반도 북반부에서 미제를 쫓아낸 것처럼 김정은이 핵무기로 미국의 한반도 점령 야욕을 분쇄하고 주체적으로 조국통일을 이뤄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특히 북한 정권은 반미를 3대 세습의 약점을 감추고 폭압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북한 정권은 미제의 침략에 맞서 자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미명 아래 주체사상과 수령 독재체제를 구축해왔다.
   
▲ 집회에서 반미 구호를 외치고 있는 북한의 젊은이들. photo KCNA

   
   김씨 3대의 미국 ‘짝사랑’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김일성과 김정일은 ‘불구대천의 원수’인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해왔다. 김일성은 1981년 4월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과의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에 적극 협조할 것을 부탁하면서 미국이 남·북 연방제에 동의만 해준다면 통일 이후 진해만을 미국에 할양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정일도 자신의 아버지처럼 이중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정일은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주한 미군이 (동북아 질서에서) 안정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를 기대했다. 김정은은 부친이나 조부보다 미국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실제로 김정은의 집무실엔 애플 컴퓨터가 놓여 있고, 즐겨 타는 차량은 미국산 SUV라고 한다. 미국의 프로농구인 NBA 게임을 즐겨 보는 김정은의 유일한 외국인 친구는 NBA 스타였던 데니스 로드먼이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장례식 운구차로 미국 포드사의 링컨컨티넨탈 리무진을 사용하도록 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2012년 모란봉악단 공연에서는 미키마우스 등 미국 디즈니 캐릭터들이 나와 화제가 됐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씨 3대는 주민들에게 반미 세뇌교육을 철저하게 시키고 자신들은 미국을 ‘짝사랑’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동의하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이어 수교까지 한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중동의 위성방송인 알자지라가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분위기를 보도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인터뷰에 응한 북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반미투쟁을 강조했다. 한 의대생은 “나는 미국 제국주의를 싫어한다”면서 “모든 조선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을 증오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조선 민족 전체를 위협한 트럼프는 승냥이”라고 비난했다. 이처럼 반미정신이 투철한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과 트럼프가 악수하는 모습을 TV나 사진으로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김일성은 항일투쟁 이력을 주된 정체성으로 내세워 경쟁자들을 숙청했고 끝내 북한의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일본 제국주의는 미국 제국주의로 대체됐고 이것이 제도로까지 굳어지면서 북한 전체가 ‘반미’를 국가정체성으로 만들었다. 사회과학 용어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용어는 ‘행위자는 제도를 창출하지만 제도는 행위를 제약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선 ‘반미’의 경로가 어떤 이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제도적으로 공고화됐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변화를 원해도 제도의 속박에 갇힐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는 상황에서도 김정은은 오로지 ‘미제의 위협’을 핑계로 핵 개발에 전념해왔다. 정권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는 데 외부의 적만큼 좋은 도구는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우리에게 핵무기라는 ‘보검’만 있다면 승냥이 같은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공화국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악수하고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과 수교까지 한다면 지난 70년간 반미만을 외쳐왔던 북한 주민들은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평양의 한 소식통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중앙당의 한 간부가 지금껏 선대 수령들과 원수님(김정은)은 외세를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해 핵을 개발해왔는데 오늘에 와서 힘들게 구축해놓은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 체제를 포기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냐고 반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게다가 김정은은 더 이상 반미를 이용해 체제 수호를 위한 선전·선동 활동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신천박물관을 폐쇄하고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반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정은과 집권 엘리트들은 체제 보장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겠지만 북한 주민들은 이들이 내세워온 반미나 주체사상이 허구라는 점을 깨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정권이 남북 정상회담 직후 노동당 간부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상적으로 해이해지지 말라면서 대대적으로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북한의 반미 포스터들.

   
   반미국가 쿠바의 교훈
   
   쿠바도 북한처럼 반미를 앞세우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미국의 턱밑에서 공산주의 깃발을 고수해온 쿠바를 통치해온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반미투쟁을 기치로 내세워왔다. 이 때문에 김일성은 생전에 피델과 돈독한 친분 관계를 맺어왔고, 북한과 쿠바는 1960년 수교 이래 두 반미주의자의 유대를 토대로 이른바 ‘형제국가’라는 점을 과시해왔다. 피델은 1986년 방북 때 김일성으로부터 소총 10만정과 2000만달러 상당의 탄약과 탄약공장 건설 비용을 지원받은 것을 감사해하기도 했다. 그런 쿠바가 그동안 적대관계였던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자 북한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2015년 7월 피델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1961년 단교했던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복원시켰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88년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이 가장 눈여겨본 것은 미국과 수교로 쿠바 체제가 붕괴하느냐 여부였다.
   
   라울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선 이유는 반미 강경노선이 쿠바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라울의 이런 노선 변경으로 쿠바 체제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피델과 라울은 반미를 체제 유지 수단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델과 라울은 김일성·김정일과는 달리 반미투쟁을 해온 자신들을 우상화하지 않았다. 쿠바 국민들은 무조건 반미 세뇌 교육을 받아온 북한 주민들과는 달리 반미 정서가 강하지 않고 오히려 호의적이다. 쿠바 국민들 중 상당수는 미국으로 망명해 살고 있다. 이들은 쿠바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등 교류를 해왔다. 쿠바를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200만여명이 쿠바 친척에게 보내는 송금액이 연 20억달러로 쿠바 외화 소득의 1위를 차지한다. 피델처럼 미국에 대한 적대정책을 고수할 경우 경제제재로 고통만 가중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라울은 미국 관광객들이라도 유치하기 위해 관계개선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라울의 뒤를 이어 지난 4월 권좌에 오른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 의장은 로큰롤 음악을 좋아하고 청바지를 즐겨 입는 실용주의자이다. 디아스카넬이 쿠바의 탈공산화를 주도할 가능성은 낮지만 반미를 앞세워 체제 수호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은이 미국과 화해에 나서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체제를 유지해온 버팀목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유일한 해법은 지난 70년간 반미만 외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온 북한 주민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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