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없는세상을위한대구시민행동’ 회원들이 지난 6월 5일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광장무대에서 ‘라돈 침대’ 사태에 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관련부처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핵없는세상을위한대구시민행동’ 회원들이 지난 6월 5일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광장무대에서 ‘라돈 침대’ 사태에 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관련부처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결국 종착역은 경주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충청도를 덮친 ‘라돈 침대’ 얘기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라돈이 검출된 대진침대의 매트리스를 최종적으로 방사성 폐기물에 준하는 방법으로 처리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고 전해졌다. 국회 관계자의 말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천과 모나자이트를 드럼통에 넣는다더라. 현실적으론 경주 방폐장으로 가져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사실 여부를 확인하자, 원안위는 부인했다. “폐기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라돈 침대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경주 방폐장으로 가야 할 방사성 폐기물은 아니다.”

매트리스 처리 과정은 구체적으론 이렇다. 매트리스의 천과 스펀지를 스프링과 분리한다. 천과 스펀지 중에서도 모나자이트가 안 묻은 부분은 태우고 방사능에 오염된 부분과 모나자이트는 드럼통에 넣어 폐기물로 처리한다. 철로 된 스프링 부분은 재활용한다. 문제의 핵심인 모나자이트(Monazite)는 고농도 방사능을 함유한 희토류 광물로, 여기에 섞여 있는 토륨과 우라늄이 붕괴하면서 라돈을 발생시킨다. 이 모나자이트를 음이온 발생 효과가 있다면서 매트리스 제조 과정에 이용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원안위가 정한 것으로 알려진 위의 매트리스 처리 방식에 대해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법에 따라 원자력환경공단이 제대로 나서야 한다. 완벽한 집진시설을 갖춘 임시 작업장을 설치해서 수거한 모나자이트를 원전의 저준위폐기물과 같은 방식으로 처분을 해야 한다. 방호복을 갖춘 요원이 해체 처리를 해야 한다. 스프링 부분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모나자이트를 폐기물로 처리하려면 200L 용량 드럼통 10개면 될 거다.”

라돈 침대는 더 이상 단순 생활폐기물이 아니다.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의 방출이 확인된 이상 원자력안전법 제2조 18항에서 규정한 ‘방사성 폐기물’로 취급되어야 한다. 현재 라돈 침대의 방사능 오염도는 원전에서 배출되는 저준위 폐기물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덕환 교수는 “원전 작업자의 장갑과 보호장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전 저준위 폐기물에서는 방사선이 방출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라돈 침대에서는 인체에 유해한 알파선(헬륨 양이온)·베타선(전자)·감마선(전자기파)이 방출된다”고 지적했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은 방사성 폐기물의 운반·저장·처리 및 처분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전담하도록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원안위는 사태 초기 제조사가 라돈 침대를 자체 수거해서 쌓아두도록 했고, 다시 정부는 우정사업본부가 라돈 침대를 수거해서 당진항에 쌓아두도록 지시했다. 원자력안전법과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을 무시한 ‘불법적 조처’다.

라돈 침대 사태는 지난 5월 3일 SBS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그동안의 처리 과정을 보면 거의 재앙 수준이다.

미·북 회담 이슈에 가려져 잘 안 보였지만, 실제 정부의 대응은 한심했다. 최초에 라돈 침대 문제가 소비자들과 언론에 의해 제기되자 원안위는 “조사 결과 문제없다”고 발표했다. 5월 10일이었다. 닷새 후 말을 바꿨다. “안전기준에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장에 팔린 라돈 침대 중 문제 있는 모델은 약 9만개. 정부가 공식적으로 ‘쓰지 말라’ 확인해준 셈이지만, 침대를 어떻게 하라는 대응 지침은 없었다. 여론이 들끓었다. 6일 후인 5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사과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방사성 폐기물 관리법을 지켜라

문제는 이후에도 정부 대응에 별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원안위는 대진침대 측에 직접 수거하라고 떠밀었지만 과정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수거 신청을 해도 언제 가져갈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6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다. 우정사업본부 등 가능한 수단을 모두 활용하라는 주문이었다. 결국 우정사업본부 직원들이 수거하기로 했다. 6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매트리스 총 2만2627개가 수거됐다. 우정사업본부 직원 1만2810명과 3563대의 차량이 동원됐다. 수거 비용은 대진침대가 낸다. 차량운송비, 방진마스크, 장갑, 세차 비용 등이다. 보전 금액은 매트리스 개당 3만8500원, 총 8억7000여만원이다. 수거 과정에서 피폭됐을지 모른다는 우체국 직원들의 두려움은 보전될 수 없다. 인터넷 게시판엔 우체국 직원 가족들의 걱정 글이 올라와 있다. ‘힘 없는 우체부는 피폭돼도 된다는 거냐?’

수거된 매트리스가 옮겨진 당진항 주민들도 야단이다. 왜 주민들 앞마당에 방사능 매트리스를 방치해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주민들 입장에선 당연하다. 사용자들에게 안전하지 않아 수거했다면, 당진군민들에게도 안전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매트리스는 최소한의 차폐 장치도 없이 쌓여 있었다. 지난 주말 비가 내린 탓에 더 무거워졌을 터다. ‘천안 본사로 매트리스를 옮기겠다.’ 6월 22일 대진침대와 당진시가 합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천안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다. 대진침대 천안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드나드는 차량을 감시하기까지 했다. 기사를 쓰는 지금도 반발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라돈 침대 문제가 처음 알려진 이후 60여일 동안 정부는 시민들을 전혀 안심시키지 못했다. 원안위 탓만 할 수는 없다. 원안위는 본래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주 업무로 하는 기관이다. 조직 안에 작게 들어 있는 생활방사선안전과에서 라돈 침대 같은 모든 일상용품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해당 부서 직원들은 전화 받는 한 명 빼고는 모두 현장에 나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취재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인원 다섯 명의 한 부서가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낙연 총리는 마치 국무총리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듯 얘기했지만 아직까지 우정사업본부 동원 외엔 별 역할이 없었다. 초기에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이유다.

‘라돈 침대’ 사태가 다행히 잘 마무리된다고 해도 뇌관이 또 있다. ‘라텍스’다.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사오는 라텍스 제품들이 또 문제다. 패키지 여행 중 구입한 라텍스 제품에서 높은 방사능이 측정된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사용자가 직접 라돈 측정기나 방사능 측정기로 잰 결과다. 외국에서 사온 거라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분명치도 않다. 패키지 여행 상품을 팔았던 국내 여행사에 얘기하면 현지 가이드와 라텍스 제품을 판 상점을 연결해주는 식이다. 급기야 소비자들은 직접 현지 판매사에 문의하고 있다. 본사는 주로 태국에 있다. 업체들은 ‘이상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태국원자력기술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첨부해오는 식이다. ‘내용이 틀림없다’며 현지 한국 영사관의 도장까지 날인했다. 136바트, 즉 4000원 정도만 내면 해주는 공증이다. 주태국 한국대사관에 공증 경위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서류가 가짜가 아니라는 뜻에서 도장을 찍어줬다. 서류에 태국 외교부의 도장이 찍혀 있어서다.”

태국 라텍스 업체가 한국 소비자에게 보낸 라텍스 방사능 측정 증명서.
태국 라텍스 업체가 한국 소비자에게 보낸 라텍스 방사능 측정 증명서.

정부는 어디 있나

업체는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사용자들은 여전히 불안해한다. 유의미한 관계가 있는진 분명하지 않지만, 해당 제품을 사용한 후 갑상선 질환과 기관지 관련 질환을 겪었다는 증언이 많다. 같은 시기에 구입한 같은 브랜드 제품이라도 방사능 수치는 제각각이다. 만약 방사성 물질을 라텍스 제품에 넣었다면 라텍스 자체가 아닌 커버에 도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제품마다 고르지 않게 도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라텍스 사용자들은 마치 자경단처럼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서로 위로하며 격려 중이다. 원안위의 입장은 이렇다.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은 국내업체가 생산하거나 수입한 제품에만 적용한다. 개인이 해외에서 사온 상품은 법 외에 있다.”

정부는 모나자이트를 취급하는 업체가 현재 국내에 한 군데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일반 개인이라도 방사능을 뿜는 가루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알리바바(ALIBABA)에 들어가 ‘음이온 가루(Negative Ion Powder)’를 검색하면 판매자 목록이 길게 뜬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1㎏에 3~50달러다. 많이 주문하면 단가가 내려간단 얘기다. 주로 중국산이다. 모나자이트라고 대놓고 쓰진 않았다. 희토류에 속해 중국 정부가 관리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실제 주문해 받아봤다는 블로그 후기도 있다. 물론 한국인이 쓴 거다. 직접 사서 방사능 수치를 재보니 상당히 높은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미국 뉴욕시에서도 모나자이트 오염 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다. 뉴욕 경찰을 비롯해 환경, 건강을 다루는 뉴욕시 기관들과 미국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이 합동으로 대처에 나섰다. 주민들의 피폭량을 측정하고 오염지역을 통제했다. 이미 반세기 전 얘기다.

방사능 의심 생활용품 발견하면 이렇게 하세요

▲ 대진침대 중 수거 대상 모델 : 02-538-2800, 041-587-3500로 연락해 수거 요청

▲ 대진침대이고 수거 대상은 아니지만 의심되는 모델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홈페이지(www.kins.re.kr)에서 모델명 확인 후 수거 요청

▲ 침대뿐 아니라 일상 생활용품 중 우려되는 제품을 발견하면 : 시민방사능감시센터(02-735-7067)로 연락해 방사능 수치 검사 신청 후 직접 사무실로 들고 가면 됨. 일부 단체들은 집을 방문해 재준다면서 특정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있으니 유의해야 함

▲ 침대 등 방사선에 의한 건강 영향이 우려되면 :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1522-2300)로 연락해 상담 후 방문. 비용을 내면 염색체 검사를 통해 피폭 여부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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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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