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젠트리피케이션 1번지 압구정동의 부활
  • facebook twiter
  • 검색
  1. 커버스토리
[2516호] 2018.07.16

젠트리피케이션 1번지 압구정동의 부활

반값 임대료 공멸에서 상생으로 “거리가 살아야 나도 산다”

김효정  기자 

▲ 지난 7월 9일, 비 오는 월요일 저녁 압구정로데오 거리. 1년 전까지만 해도 텅텅 비어 있던 거리에 새 가게들이 채워지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7월 9일 월요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 메인거리 바로 옆 골목에서 김현성씨 부부는 이른 시간부터 박스를 옮기고 바닥을 쓸면서 매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김씨의 카페 ‘에브리띵(everything)’은 7월 둘째 주에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흰 벽에 하늘색 로고, 핑크색 타일이 얽힌 인테리어가 새것처럼 보이는 이 ‘신상’ 카페의 주인 김현성씨는 사실 카페 운영만 6년 차인 베테랑이다.
   
   “이전에는 가로수길에서 5년 동안 카페를 운영했어요. 가로수길을 떠나야 해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이곳, 압구정로데오 거리로 왔습니다.”
   
   주된 이유는 임대료 문제 때문이었다. 이미 대기업이 장악한 가로수길에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김씨가 설 곳이 없었다.
   
   “한동안 가로수길이 침체에 빠지고 많은 임차인들이 가로수길에서 떠나니 건물주들도 임대료 올리는 일을 망설이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글로벌 대기업이 가로수길에 엄청난 돈을 주고 건물을 장기임대했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다시 임대료가 들썩이기 시작했어요.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고민하다가 정든 자리를 옮기기로 했어요.”
   
   지난해 초 가로수길에 애플이 애플스토어를 열면서 한바탕 바람이 불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임대료가 오르면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이미 일어나고 있던 가로수길에 애플이 20년간 매달 2억원이 넘는 임대료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한 달 2억원은 1억원 남짓이던 당시 가로수길 메인거리 임대료 시세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다른 건물주들의 마음에도 ‘아직 가로수길이 죽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자신감 아닌 자신감이 생겼다. 실제로 가로수길 인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공인중개사에서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다시 임대료가 10~15% 올랐다고 설명했다.
   
   “굳이 소상공인을 잡을 것 없이 가로수길 이름값을 원하는 대기업 하나를 잡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건물주들이 ‘시세’에 맞게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지금 비어 있는 곳들이 다 그렇게 임대료 올려서 나간 곳이에요. 가로수길을 찾는 사람은 줄어들고 가게 매출액은 해마다 반토막씩 나는데 임대료는 오르니 상인들이 버틸 수 있나요.”
   
   압구정로데오는 벌써 10년 전에 이런 일을 겪었다. 요즘 서울 가로수길, 용산구 경리단길에서도 빈 건물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중이지만 이 현상을 대표하는 지역은 다름 아닌 압구정로데오 거리였다.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압구정로데오 메인거리에 임차인을 찾는 임대 깃발이 휘날렸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휑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불과 1년 사이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압구정로데오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말 저녁 시간이 되면 가게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골목골목 외제차가 쉴 새 없이 오고 간다. 지난 10년간 바람에 낡아가던 간판들이 사라지고 요즘 유행하는 색채와 디자인으로 장식된 가게들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압구정로데오는 ‘힙(hip)’해졌다.
   
   
   압구정로데오가 변했다
   
   카페 ‘에브리띵’은 요즘 압구정로데오가 어떤 가게들로 채워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밝고 경쾌한 인테리어에 최고급 원두를 사용한 커피, 시럽을 넣지 않은 생과일 주스, 글루텐 없는 비건 케이크를 파는 모습을 보자면 서울 마포구 연남동이나 망원동에서 만날 만한 카페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3000원인 이 카페에는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돼 있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들 만한 카페다. 카페 주인 김현성씨는 압구정로데오 거리로 이주를 결심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다고 설명했다.
   
▲ 가로수길에서 5년 동안 카페를 운영하다 압구정로데오로 이전한 김현성씨와 카페 ‘에브리띵’.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임대료가 저렴했어요. 가로수길에 비해 한참 저렴한 임대료라서 깜짝 놀랐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건물주와 중개해주는 부동산업자가 저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점이었어요. 사실 이 자리는 원래 압구정로데오에 많이 있는 잡화점이 있던 곳이었거든요. 수도 배관도 연결되지 않은 곳이었어요. 제가 계약하기 전에 이미 다른 잡화점 하시는 분이 저보다 높은 임대료를 제안하면서 여기 들어오겠다고 하셨대요. 그런데 건물주와 부동산업자 말이 ‘이 골목에 필요한 업종을 고려해볼 때 잡화점보다는 카페가 필요하다’ ‘분위기 좋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카페라면 임대료를 좀 덜 내도 여기서 장사하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압구정로데오 메인거리에서도 가장 목 좋은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파스타집 ‘쿠쿠치나’의 오너셰프 구기범씨는 미국 뉴욕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 있는 실력파 셰프다. 28살로 젊은 그가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곳이 압구정로데오 거리다.
   
   “강남역 같은 유동인구 많은 곳도 돌아다녀 보면서 어디서 창업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압구정에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와봤는데, 와서 놀랐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요리 공부를 하러 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압구정로데오는 임대료 높은 곳으로 유명했는데 다른 곳에 비해서도 저렴해졌더군요.”
   
   구씨가 ‘쿠쿠치나’를 연 자리는 원래 사주카페가 있던 곳이었다. 다소 낡은 소파가 있던 자리는 회색빛과 금색이 적절히 섞인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했다. 생면을 쓰는 쿠쿠치나의 메뉴판에는 낯선 파스타 메뉴도 많이 보인다. 디저트도 그의 부인 이승화 셰프가 직접 만든다. 문을 연 지 반년 정도 지났는데 평일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젊은 여성들이 좌석을 채우고 있을 만큼 자리를 잡았다.
   
   김현성씨와 구기범씨가 압구정로데오에 자리 잡게 된 계기는 거의 똑같았다. 임대료와 임대인의 자세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압구정로데오 건물주들은 지난해 초 ‘압구정로데오 상권 활성화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만들었다. 20년 전부터 압구정에 자리 잡기 시작한 터줏대감 건물주들이 모여 추진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실질적으로 시행하는 ‘사단법인 압구정로데오’도 만들어졌다. 이 단체 송성원 이사장을 만나 무엇이 어떻게 변한 것인지 얘기를 들어봤다.
   
   “여기 압구정로데오의 건물주들은 대개 토박이거나 여기 오래 계신 분들입니다. 압구정로데오가 한창 붐볐을 때가 벌써 15년, 20년 전이니까요. 지난 10년간 공실이 생기고 오가는 사람이 줄어들어도 별 위기의식 없이 ‘누군가는 오겠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압구정로데오 메인거리에 있는 17곳 건물 모두 1층 매장에 ‘임대’ 현수막을 내거는 일까지 발생했다. 메인거리만 따졌을 때 건물이 100여동 되니 6채 중 한 채에 공실이 생긴 셈이다. 메인거리 뒤편 골목은 아예 하나가 통째로 비기도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도심 속의 슬럼처럼 조용해진 압구정로데오에는 더 이상 빛이 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라면 압구정로데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질 거라는 위기의식이 들었습니다. 경리단길이며 연남동에 젊은이가 모인다는데 압구정로데오 거리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건물을 가지고 있는 건물 주인이 아니라 이 거리에 20년간 터를 두고 있던 사람으로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송성원 이사장이 설명했듯이 압구정로데오 거리의 임대인들은 당장 조그마한 이익을 더 얻으려다가 거리 전체가 몰락하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건물 주인들에게 거리는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공간에 불과했다. 거리 전체의 상권을 고려할 이유가 딱히 없이, 각자의 이익에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거리가 망하면 건물도 망한다는 사실을 압구정로데오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았다. 송성원 이사장은 “건물주들은 압구정로데오에 공실이 늘어나는 일이 길어지자 단지 ‘돈이 안 된다’는 차원을 넘어서 ‘거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위기의식은 어떻게 하면 거리를 살려낼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답은 두 가지. 임대료를 낮추자, 거리의 특성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착한 임대료’의 등장
   
   추진위는 지난해 1월 처음 생겨났다. 초창기에는 모인 사람이 10명 남짓 했지만 점차 늘어났다. 건물 주인은 물론 공인중개사, 지역주민, 상인들까지 40명 넘게 모였다. 추진위가 공식 출범한 4월까지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던 사람들은 ‘착한 임대료’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추진위에서 제안한 ‘착한 임대료’는 압구정로데오 거리 임대료가 가장 높을 시기에 비해 반값으로 임대를 낮추는 일이다. 실제로 이 지역 공인중개사의 말에 따르면 현재 임대료는 기존의 60~70%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압구정로데오 메인거리의 한 건물은 1층 임대료가 한 달 2500만원에 달했지만 임대인의 ‘착한 임대료’ 정책으로 1300만원까지 떨어졌다.
   
   한두 사람이 값을 떨어트린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추진위에서는 ‘착한 임대료’ 정책을 홍보하는 데 노력을 다했다. 추진위에 속해 있지 않은 임대인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홍보 행사를 열면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압구정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새로 계약하려는 사람이 오면 임대인과 공인중개사는 물론 추진위에서도 사람이 나가 임대인에게 임대료를 저렴하게 받을 것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송성원 이사장은 이걸 ‘자율적인 조정’이라고 해설했다.
   
   “이미 바닥을 경험한 임대인과 부동산에서는 그저 임대료 몇 푼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막상 사람들이 줄어들어 폐허처럼 돼버린 거리를 보면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죠. 완전히 비어버린 거리를 보고 우리 스스로 ‘거리를 살려야 나도 산다’는 상생(相生)의 정신을 깨달았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갖가지 대책을 내어놓는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임대료 인상률과 임대 기간 등을 조율할 수 있는 상생협약을 맺는 방안도 본격화됐다. 실제로 각 지자체에서는 앞다투어 상생협약을 몇 건 체결했다는 보도자료를 쏟아내고 있지만 막상 임차인들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6월 4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 영동시장에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소상공인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소상공인은 “임차인이 직접 임대인에게 가서 상생협약서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다가는 다음 계약을 못 하게 될 판”이라면서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올해 1월부터는 임대료를 1년에 5% 이상 올릴 수 없게 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임대차보호법)이 시행 중이지만 강제성이 없어 별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 중인 한일종(가명)씨의 말이다.
   
   “얼마 전 성수동에서도 여러 건물주와 임차인이 상생협약을 맺었다는 언론 기사를 읽었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협약은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 쇼일 뿐 결국 건물주들은 주변 건물주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임대료를 올리더군요. ‘협약을 어겼다’고 말하면 ‘나가라’고 할까봐 항의도 못 할 겁니다. 정부와 언론에서 한창 고삐를 쥘 때만 잠시 눈치를 봤다가 결국은 원상태로 돌아가는데, 마땅한 대안이 있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복잡한 임대료 관습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권리금 제도가 그중 하나인데 시설권리금, 영업권리금, 바닥권리금 같은 관습에 이르면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임대료를 몇 퍼센트 올리느냐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안은 당사자가 직접 자발적으로 움직일 때 일어난다. 압구정로데오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몇몇 임대인의 움직임에 그쳤지만 서로 간의 설득을 통해 모두가 임대료를 내리고 거리를 살리자는 데 합심했다. 권리금을 받지 않는 상가도 늘었다. 골목부터 가게가 들어차고 메인거리의 공실도 거의 다 메워졌지만 임대인들은 여전히 추진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예 임대차보호법과 상관없이 임대료 상승률을 한정하자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송성원 이사장은 “지금 들어오는 임차인이 재계약할 시점이 되면 다시 압구정로데오 거리 전체에 적정한 상승률을 정해 스스로 규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진위 구성원 중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추진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자발적인 변화가 이끌어낸 상생
   
   임대료를 낮추고 나서 압구정로데오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압구정로데오 거리가 살아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 토박이 공인중개사도 여기에 동참했다. 추진위에서도 활동해온 정국진 한양부동산 대표는 “이 지역 부동산은 웬만하면 10년, 20년 일을 한 지역주민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에서도 새로 가게를 열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디가 더 좋은 자리인지 알려주고 임대인과 협상하는 일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임대인에게도 임대료를 조금 낮추더라도 오래 장사할 사람, 거리 분위기에 맞는 사람과 계약하라는 식의 조언도 여러 번 해줬습니다. 임대인들도 기꺼이 이런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원래 압구정로데오 거리에는 옷가게, 잡화점이 많았다. 길거리에서만 옷을 살 수 있었던 20여년 전에는 그게 거리를 채우는 ‘핫’한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옷을 산다. 스트리트 브랜드는 매니아가 존재하는 몇몇 상점을 빼고는 매출액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압구정로데오는 변화를 선택했다. 30~45㎡(10~15평) 좁은 자리에 자신만의 특색을 가진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제각각의 가게들이 힙스터(hipster)가 모이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이나 연남동처럼 불을 밝혔다. 송성원 이사장은 “망하고 나서 깨달은 것은 결국 거리도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PC와 스마트폰으로 쇼핑하는데 건물 1층에 옷집만을 고집하면 압구정로데오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임대인과 지역주민 역시 사회와 소비자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거리 풍경을 조정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10년 전 압구정로데오는 낮에는 패션 전문점, 밤에는 술 마시는 바와 고깃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압구정로데오에는 태국 음식점, 면 요리 전문점, 브런치 전문점, 수제버거 전문점부터 일본 향토요리, 수제맥주 전문점이 고루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압구정로데오는 낮에도 밤에도 식사를 위해서든 쇼핑을 위해서든 찾아올 수 있는 거리로 변해가고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압구정로데오 거리가 서울 다른 지역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으로 선택받고 있다는 점이다. 가로수길을 떠나 압구정으로 온 카페 ‘에브리띵’을 비롯해 경리단길에서 운영하던 브런치 전문점 ‘리틀넥’도 압구정로데오 뒷길에 자리 잡았다. 유명세를 얻고 있는 셰프들은 압구정로데오를 새로운 실험장으로 쓰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일본식 선술집 ‘이노시시’의 창립 멤버 홍석진씨가 문을 연 ‘로만테이’가 그렇다. 서울 여러 이름값 높은 동네에서 유명해진 음식점이 압구정로데오에 분점을 내기 시작했다. 요즘 가장 사람들이 몰리는 동네 중 하나인 서울 종로구 익선동과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수제버거로 유명한 ‘양키스버거’는 이미 압구정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인근 신사동에서 줄을 서 기다려 식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튀김덮밥집 ‘우마텐’도 압구정로데오에 분점을 냈다.
   
   부동산 투자에 민감한 연예인들도 압구정로데오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개그맨 정준하씨는 압구정로데오 메인거리의 코너 가장 목 좋은 건물 1, 2층에 ‘마법갈비 요술꼬치’라는 고기 전문점을 열었다. 중국계 캐나다인으로 한국에서 유명해진 가수 헨리는 ‘샤오짠’이라는 중국 음식 전문점을 열었다. 한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압구정로데오 거리 초입 부근 건물 지하에는 유명 가수가 규모가 큰 바를 열기 위해 부동산 계약을 맺었다.
   
   압구정로데오의 부활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압구정로데오 거리는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젠트리피케이션 1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압구정에서 가로수길로, 가로수길에서 경리단길, 연남동으로 이어진 젠트리피케이션의 연쇄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압구정로데오라는 점은 의미가 있다.
   
   “서울 시내 한 바퀴 다 돌고 다시 압구정부터 부활하기 시작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던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만약 압구정이 부활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대안으로 선택받지 못했겠죠. 결국은 젠트리피케이션이 공멸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때에야 젠트리피케이션을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그 어떤 규제보다, 동네에 대한 애정이 생긴 지역주민의 마음이 더 효과적일 겁니다.” ‘압구정로데오 상권 활성화 추진위원회’ 한 구성원의 말이다.
   
   그 애정은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압구정로데오 거리만 하더라도 맨 처음 ‘착한 임대료’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서 추진위 구성원들은 갖은 노력을 다했다. 정책을 홍보할 만한 행사도 열고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사정에 맞게 거리에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고 그 결과 상당수 압구정로데오 거리가 활기를 찾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압구정로데오가 완전히 부활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임대료 갈등을 빚고 있는 건물도 있고 좀처럼 의견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부활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대안이 없어 보이던 젠트리피케이션에 한 줄기 실마리를 가져다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답은, 임대인에게 있었다.
   
   

   임대료에 우는 서울 상인들
   
   홍대·가로수길·경리단길… 젠트리피케이션 주기 점점 빨라져
   
   서울 관악구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 샤로수길에 3년 전 자신의 가게를 낸 강민석(가명)씨는 임대료 문제로 건물 주인과 실랑이 중이다. 강씨가 처음 이 골목에 들어왔을 때 계약한 임대료는 100만원 남짓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200만원을 넘었고, 올해 여름이 지나면 10만~15만원 정도 더 올릴 것이라는 게 건물주의 말이었다.
   
“가게에서 낼 수 있는 매출액은 한정돼 있는데 월세는 점점 더 오르니 차라리 제일 처음 가게 문을 열었던 때에 가장 이익이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샤로수길 얘기만 나오면 겁이 덜컥 나요. 사람들이 몰리면 월세가 또 오를까봐요.”
   
   통계를 하나 보자. 소상공인진흥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자영업자의 매출액은 지난 2016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2016년 하반기에 평균 매출액이 월 평균 3870만원이었는데 올 1분기 평균 매출액은 월 3372만원으로 떨어졌다. 찾아오는 손님은 줄어드는데 드는 비용은 늘어나기만 한다. 임대료만 봐도 그렇다.
   
한국감정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년간 서울 주요 상권의 임대료는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2년간 서울 전 지역의 임대료는 1.7% 정도 오른 데 반해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은 10.2% 가까이 올랐다. 최근 들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는 성동구 성수동 지역의 임대료도 2년간 6.45% 올랐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미 상당수 진행된 가로수길마저도 2% 넘게 올랐다.
   
   임대료 상승은 자영업자의 폐업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남윤미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지난해 내놓은 ‘국내 자영업의 폐업률 결정요인 분석’ 보고서를 보면 임대료가 한 단위 상승할 때마다 폐업위험도는 1.5% 늘어난다. 소상공인 상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하반기 이태원역 인근 가게의 폐업률은 5.0%에 달해 전국 평균 2.5%의 두 배에 달했다. 이 시기 임대료가 5% 넘게 오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임대료 상승이 이끌어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점점 더 빠르게 진행되는 모양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 중 하나인 압구정로데오 거리는 몇 년에 걸쳐 비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홍대와 가로수길, 경리단길은 그보다 빨리 뜨거워졌다가 식어버렸다.
   
   빠르게 진행되는 악순환의 고리 끝에는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부동산 투자로 얻는 이익에 대한 막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가 격언처럼 통용되는 사회에서 거리는 투자의 공간에 불과하다. 실제로 경리단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될 동안 거리의 주요 건물들 중 상당수가 소유권이 이전됐다. 거기다 건물주가 경리단길이 있는 용산구에 거주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 대다수 투자 목적을 위해 경리단길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리단길에서 이익을 올린 자본은 다시 서울 전체로 뻗어나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같이 최근 2~3년간 사람들이 몰린 동네가 그 대상이다. 나지막한 한옥 정취가 옛 서울 모습을 떠올리게 하던 익선동의 임대료는 최근 2~3년 사이 두 배 넘게 올랐다. 3.3㎡(1평)당 5만~7만원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평당 10만원 넘게 주고도 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원래 있던 임차인들도 임대료 상승을 견디다 못해 떠나기 시작했다. 익선동에는 오늘도 공사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건의 글이 있습니다.
    ( 2018-07-14 )    수정   삭제
압구정 살리려면 우선 고루한 관행인 권리금부터 없애버려라! 그러면 살아날 것이다!

주간조선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