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1일 청와대에서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하기 위해 오찬장에 들어서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왼쪽)을 쳐다보고 있다. 문 대통령 뒤에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1일 청와대에서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하기 위해 오찬장에 들어서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왼쪽)을 쳐다보고 있다. 문 대통령 뒤에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박근혜 정부의 몰락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전 정권 청와대에서 일했던 직원들이나 출입했던 기자들은 대체로 2014년 연말을 꼽는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으로 불리는 청와대 내부 문건을 보도했다. 사건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 내용의 진위보다 문건 유출 과정을 문제 삼으며 ‘국기문란’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가 유출경로를 찾는 것에 맞춰졌다. 이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청와대 내부 권력 투쟁이 외부에 표출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초 민정수석실 내에서 민정비서관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간 힘겨루기가 있었다는 것이 당시 일했던 직원들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정권 초부터 민정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 사이의 힘겨루기가 있었고 이것은 문고리 3인방을 내세운 정윤회씨와 공직기강비서관을 내세운 박지만씨와의 대리전 성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문건이 겨냥했던 것은 정윤회씨였고, 이 문건을 작성한 인물은 공직기강비서관에서 일했던 경찰 출신 박관천 전 경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내부 문제가 발단이 되어서 정권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문건 보도 이후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사정 권력이 쏠리면서 사실상 측근 비리 통제가 어려워졌고 이것이 정권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참여정부도 비슷했다. 참여정부 초기 민정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대통령 친인척 비리 파문 등으로 1년 만에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첫 민정수석도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되풀이되는 잔혹사

이번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직원의 비위 행위 파장이 커지는 것은 ‘민정수석실 잔혹사’가 매 정권마다 되풀이되어 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을 둘러싼 잡음을 해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민정수석실은 사정(司正)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민정수석실 직원들은 공무원이나 준공무원들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6급 검찰 직원이 부처 장관을 독대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직은 청와대 내 어느 조직보다 독특하게 운영된다. 이곳에서는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 인사들이 한데 섞여 일한다. 비서관이나 팀장급은 주로 검사들이 맡지만 원 소속기관이 다르다 보니 일사불란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선 캠프나 당 출신들이 많은 다른 수석실 산하 조직과는 분위기나 목표가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권의 성패보다는 개인의 승진과 같은 목표가 우선순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처음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온 후 자신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나 TK 출신 인사들을 주로 뽑은 이유도 이들이 정권에 대한 ‘로열티’가 강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로열티를 중시해야 할 만큼 민정수석실 구성원들을 믿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정기관에서 파견 나간 직원들은 원 소속기관에서 ‘날고 긴다’는 평가를 받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관직에 대한 욕심도 많다. 일례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한 총경은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하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 우연치 않게 들어갔다. 그는 이명박 정부 청와대까지 한 차례도 거르지 않으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승진했다.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복귀하면 반드시 승진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총리실 소속 문모 사무관도 검찰 수사관이었다가 6급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검찰직에서 청와대 소속 사무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승진했다. 이런 전례들이 있기 때문에 민정수석실에 오는 직원들은 저마다 ‘업그레이드’를 꿈꾼다.

민정수석실은 ‘욕망의 멜팅포트’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위치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photo 연합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위치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photo 연합

한마디로 민정수석실은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의 ‘욕망의 멜팅포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칼을 잘 다루면 공직사회 기강 확립에 도움이 되지만 잘못 다루면 휘두르는 쪽이 다친다. 심할 경우 정권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이번 특감반 직원의 비위 사건은 사안의 엄중함으로 따지면 김종천 전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건보다 약하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의전비서관이 청와대 앞마당에서 음주운전을 했다는 것은 청와대 내부 기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특감반 관련 사건의 파장이 더 큰 것은 사건이 일어난 곳이 바로 민정수석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은 음주운전처럼 똑 떨어지는 비위 행위가 아니다. 하나의 사건이지만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건이 될 수 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지상파 방송 보도의 골자는 이렇다. ‘청와대 특감반에 파견된 검찰 직원 김모씨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찾아가 당시 특수수사과가 수사하고 있던 국토교통부 공무원 뇌물사건의 진행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너무 자세한 내용을 물어 이상하다 싶어 청와대에 문의했더니 이 사건을 청와대에서 따로 감찰하는 것이 없었고, 공무원에게 뇌물을 줬던 업자가 해당 특감반원 지인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일단 검찰에 원대 복귀시켰다.’

하지만 주간조선이 청와대와 검찰, 특감반원 지인 등을 통해 취재한 바를 종합하면 해당 보도에는 누락된 내용들이 있다. 일단 전 특감반원 김씨와 건설업자 최모씨는 오랜 지인이었다. 하지만 최씨는 스폰서가 아닌 김씨의 오랜 정보원이었다. 김씨는 검찰 수사관으로 일하며 오랜 기관 정보 업무를 했다.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 1과와 2과를 오갔고, 서울중앙지검 범죄정보과에서도 일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도 근무했고, 법무부 법무인력과에도 몸을 담을 정도로 실력만큼은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검찰 정보 업무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정보원과 스폰서의 관계 차이가 결국은 ‘자기 관리’를 얼마나 잘하느냐의 차이라고 말한다.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에 오래 있던 한 수사관은 “범죄 정보라는 것이 결국 그 바닥 생리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서 생산될 수밖에 없는데, 이들과 적정한 선을 유지하면 정보원이 되는 것이고 선을 넘으면 스폰서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오랜 기간 최씨를 통해 건설업과 관련된 범죄 정보를 입수해왔고, 문재인 정부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김씨가 작성한 공무원 감찰 사건이 실제 경찰 수사로 이어지는 건수도 많았다. 이번에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김씨가 검찰 승진 인사를 앞두고 발생했다. 김씨는 자신이 생산한 정보를 바탕으로 진행 중인 사건이 어떻게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찰청에 갔다. 자신의 특별승진 공적조서에 넣을 내용이 필요했다는 것이 김씨 측 주장이다. 나중에 김씨가 공직기강비서관실 조사를 받을 때도 이같이 소명했다. 문제는 최씨가 피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질문 자체가 부적절하게 보일 여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청와대도 김씨가 자신의 돈으로 골프를 친 것을 확인했고, 이런 소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검찰로 복귀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에서도 한 달 가까이 따로 그를 감찰하지 않았다. 검찰도 김씨 소명이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씨는 서울중앙지검으로 복귀한 후 특별승진을 위한 공적조서까지 예정대로 제출했다.

내부 갈등 표출로 비위사실 폭로?

김씨가 공적조서 작성을 위해 경찰청에 찾아갔는지, 아니면 최씨 관련 내용을 물어보기 위해 찾아갔는지는 검찰의 추가 감찰로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검찰이 1차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고, 조국 수석이 대검 감찰 결과 조사 후 추가 징계를 논의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런 자신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한쪽 차원으로만 확대재생산되는 것은 결국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부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비위 사건과 관련해 특징적인 점은 청와대 내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감찰 내용들이 실시간 중계되어 외부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몇몇 언론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감반 일부 직원들의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김씨가 감찰 과정에서 “다른 특감반 직원들도 평일과 휴일에 골프를 쳤다”고 진술하자 실명이 거론된 특감반원들의 휴대전화를 청와대 감찰팀에서 제출받으려 했는데 직원들이 이에 반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첫 보도는 이를 ‘항명’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했던 특감반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서만 소명하면 되는데 휴대전화까지 가져가는 것은 향후 정보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에 반대했다. 다만 이들은 영장에 의한 정식적 절차를 밟는다면 응하겠다는 전제조건도 달았다. 그러자 조국 민정수석은 특감반원 전체 교체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특감반원들은 문재인 캠프 출신 공직기강 비서관실 직원이 수사관들의 전반적인 정보 출처를 파악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내부 미묘한 다툼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 민정수석실은 민정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실, 반부패비서관실 등 총 세 개로 구성되어 있다. 민정비서관실은 대통령 친인척관리,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내부 직원들 감찰 업무, 반부패비서관실은 공직사회 감찰 업무를 주로 한다. 이 중 특별감찰반은 민정비서관과 반부패비서관 산하에 각각 있다. 반부패비서관실은 주로 사정기관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민정비서관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에는 캠프 출신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정기관 출신 등 다양한 출신 인사들이 있다. 업무가 분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하나의 수석실 아래 있고,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 수사처 등 다양한 현안 등으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어 갈등의 소지는 항상 내재되어 있었다.

정권 초부터 민정수석실 산하 실세는 열린우리당 전 의원이자 친노 핵심으로 불렸던 백원우 민정비서관이란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권력투쟁의 시각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둔 검찰과 경찰의 권력투쟁으로 보거나, 사법개혁을 주도하는 조 수석을 쳐내려는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청와대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한 특감반 직원의 일탈 행동으로 단순화하고 싶겠지만, 이 문제가 청와대발로 언론에 생중계되듯 보도되면서 사건은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됐다.

조국 수석 정치권 표적 떠올라

상황이 커지면서 조국 민정수석은 또 한 번 정치권의 표적이 됐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부에서도 조 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당에서 그의 사퇴를 처음 주장한 것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그는 지난 12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산하 비서실 구성원들의 잇따른 사회적 물의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신속하게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번 사건은 조 수석이 책임질 성격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더 이상의 발언은 삼가고 있지만, 그의 발언이 주는 무게감은 전혀 가볍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조 의원은 박근혜 정부 첫 공직기강비서관을 맡았던 인물이다. 정권 초반 청와대 내부 민정수석실과 공직사회 분위기가 어떤지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다. 정권이 초반에서 중반부로 넘어가는 시기에 내부 잡음을 차단하지 못하면 정권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본능적으로 알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후 대구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 짚을 것은 짚고 가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며 “앞으로 또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직언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 수석의 유임을 결정하긴 했지만, 그만큼 현 정권의 정치적 부담은 배가 됐다. 만약 검찰의 추가 감찰 결과 김씨의 새로운 혐의가 드러날 경우 그 파장은 대통령과 조 수석이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리고 대표적 검찰개혁론자인 조 수석은 자신의 거취를 검찰의 감찰 결과에 맡겨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몰렸다. 특히나 현 검찰 수뇌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민정수석실 잔혹사가 이 정권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 청와대 안팎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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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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