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8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469조6000억원 규모의 2019년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8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469조6000억원 규모의 2019년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더불어민주당(129석)과 자유한국당(112석)이 손잡고 통과시킨 새해 예산안에 국회의원 세비 인상안이 슬그머니 들어갔다. 경기 체감과 고용 한파로 국민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이 두 거대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세비 1.8%라는 셀프 인상을 감행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연봉은 올해보다 182만원 인상된 1억472만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여기에 활동비 등을 합하면 내년에 국회의원 한 사람이 받는 돈은 모두 1억5176만원이 된다.

여론이 들끓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세비 인상을 놓고 ‘세비 도둑 인상’이라는 조어까지 생겨났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철을 내걸고 예산안 통과에 불참했던 야 3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야합 세비 거부한다”며 세비 인상분 반납 움직임도 일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인상된 세비를 손에 쥐기까지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동의와 국회 규정 변경이라는 절차상 관문이 남아 있어 최종 결정을 지켜봐야 하지만 이미 국민들 마음속에 각인된 ‘세금 도둑’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지워버리기에는 너무 나가버렸다.

1인당 GDP 대비 한국 4.34배, 美 2.92배

국회의원의 셀프 세비 인상은 작년에도 있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동결됐던 세비를 2년 연속 인상시킨 것이다. 여기에 대한 국회사무처의 해명은 “의원 보수가 장관은 물론 차관급보다도 적다”는 것이다. 진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걸까.

실상은 정반대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독일이나 미국 의원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대접을 잘 받고 있는 편이다.

단적인 예로 미국 연방 상하원 의원 연봉과 비교해보자.(미국의 상하원 의원 연봉은 같다.) 미 의원 연봉은 올해 기준으로 국민 1인당 GDP(IMF 기준) 대비 2.92배 정도이다. 이에 반해 우리 국회의원 연봉은 국민 1인당 GDP 대비 4.34배(2017년 한국은행 기준에 금년 성장률 전망치 적용)에 이른다. 우리나라보다 경제력 규모가 비교도 안 되게 큰 미국이지만, 국회의원 연봉 수준은 우리보다 낮은 셈이다. 만약 우리나라 국회의원 연봉을 미국과 똑같이 1인당 GDP 2.92배로 맞춘다면, 올해 국회의원 연봉 약 1억5000만원(활동비 포함)은 오히려 9821만원 정도로 깎이는 게 정답이다. 가혹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차액만큼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세금 도둑질을 했다는 얘기도 가능하다. 그 차액으로는 이론상 의원 158명의 연봉 지급이 가능하다. 물론 의원 1인이 증가할 때마다 그에 따르는 보좌진과 각종 경비 등등이 따라붙기 때문에 아주 쉽지는 않지만 선진국처럼 보좌진과 기타 경비를 줄이면 실제로는 돈을 안 쓰고도 2배까지 국회의원 증원이 가능하다.

단순 연봉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연봉 외에 지원받는 항목도 외국보다 훨씬 많다. 각종 지원금이 국회의원 개인에게 집중돼 있는 구조다. 국회의원 수당에 관한 법률에 의해 사무실 경비와 입법활동비, 보좌진 월급까지 지원한다. 물론 의회경비만 따지면 우리나라가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국회의원 한 명이 담당하는 인구가 17만2000명인 우리나라의 의회경비(의회 세출)는 전체 예산 대비 0.142%인 반면 국회의원 한 명이 10만6000명 정도를 담당하는 독일은 0.273%다.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맡은 일(1인당 담당 인구수 기준)에 비해 적게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올해 기준 국회의원 한 명에게, 연봉을 합해 모두 약 7억3000여만원이 지원됐다.<표 참조> 이는 1인당 GDP 등을 고려하면 미국이나 독일, 그리고 일본에 비해 훨씬 많다. 의회경비 전체 규모는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지만 그 대부분을 의원들이 사용한다는 얘기다.

국회사무처가 세비 인상을 해명한 보도자료에서 주장한 ‘차관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도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일본과 비교해보자. 일본 의원들의 급여수준 역시 차관급에 미치지 못한다. 일본 의원들은 장관→부대신→장관정무관으로 이어지는 직급에서 장관정무관 정도로 대우받는다.

미국은 10년째 동결, 우리는 2년째 인상

미국이나 독일 등의 국회의원 보수는 단순하다. 급여와 수당을 합쳐서 그냥 보수로 통칭한다. 우리처럼 의원 수당과 활동비, 그리고 각종 지원금이 따로 있는 구조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보자. 미국 국회의원 보수(Congressional Salaries and Allowances)는 연방헌법 제1조 제⑥항 및 윤리개혁법(1989년)을 근거로 하여 상하원 의사규칙(CRS)에 따라 3종을 지급한다. 의원직봉급(the members’ salaries)과 수당(benefits), 그리고 법적으로 허용되는 외부수입(allowed outside income) 등이다. 의원직봉급은 상하원 공통 17만4000달러이며 2009년부터 10년째 단 한 푼도 인상되지 않고 있다. 1987년 이후를 따져봐도 30년 이상 단 2배밖에 오르지 않은 짜디짠 왕소금이다.

수당은 상하원이 각각 계정이 다르다. 하원은 MRA(the Member’s Representational Allowance), 상원은 SOPOEA(the Senators’ Official Personnel and Office Expense Account)라고 부른다. 이 수당으로 보좌진 인건비, 우편요금, 지역구-워싱턴의사당 간 출장비, 임대료, 공과금, 각종 재료비 및 기타 서비스경비 등을 충당한다. 외부수입은 하원만 의원직봉급의 15% 이내에서 허용되며, 상원은 해당사항이 없다.

보좌진 대우와 연봉 수준으로만 봐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세계 톱클래스이다. 국회가 찬밥 대우를 받던 3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선 별정직 공무원보좌진 8명과 인턴 1명 등을 지원해주는 인구 5000만명 이상인 선진국이 없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의회 선진국들은 의원 자율로 민간인 신분의 보좌진을 채용한다. 일본만 우리처럼 공무원 신분의 보좌진을 둘 수 있는데 그 숫자가 3명에 불과하다.

보좌진 급여도 우리나라가 최고다. 과거에는 미국이 최고였다. 미국 하원의원은 보좌진을 최대 22명(풀타임 18명+파트타임 4명)까지 둘 수 있다. 지난해 하원 보좌진 수당은 1인당 평균 93만4541달러(약 10억568만원)였다. 미국의 의원 숫자가 인구 대비 우리보다 3분의 1이 적은 점을 감안하면 사실 이 비용도 그리 많은 건 아니다. 미 하원의원 1명이 작년에 22명의 보좌진을 다 썼다고 가정했을 경우, 보좌진 1인에게 지급한 연봉은 평균 4804만원으로 1인당 GDP에도 미달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국회보좌진(인턴 포함 9인)은 올해 1인당 평균연봉이 5594만원(가족수당·자녀학비보조수당 제외)이나 된다. 이는 1인당 GDP의 1.62배에 해당한다. 일본을 제외하면 신분도 주요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공무원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특권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그들이 대접을 못 받는다는 말은 진짜 엉터리다.

지난 12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혁 촉구’를 위한 원내외 7개 정당·정치개혁공동행동 시국회의.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혁 촉구’를 위한 원내외 7개 정당·정치개혁공동행동 시국회의. ⓒphoto 뉴시스

보좌진 연봉도 세계 최고 수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세금 도둑만이 아니다. 표까지 도둑질한다. 지금 야3당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거부하는 두 거대정당의 가장 중요한 논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국민 감정이 용납할 리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국회의원에게 지원되는 돈을 선진국 수준으로만 줄여도 돈을 안 쓰고도 국회의원 숫자를 늘릴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정당이 기존 질서에 안주하면서 세금뿐 아니라 유권자의 표까지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1인2표 정당투표가 도입된 17대 총선 이후 민주당의 최저의석은 81석, 한국당은 121석이었다. 두 거대 양당은 민심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결코 3당으로 추락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마법이 발휘되는 이유는 바로 병립형(竝立形·소선거구+비례대표제)이라는 선거제도 때문이다. 17대부터 1·2당이 지역구에서 획득한 득표율 합계는 79.9%(17대)→72.4%(18대)→81.2%(19대)→75.3%(20대) 등 평균 77.4%이다. 하지만 의석 점유율은 무려 88.6%로 민의를 평균 10% 이상 도둑질해갔다. 유권자들은 4년마다 한 번씩 자신이 선택한 27~28석을 허공에 날려온 셈이다. 이는 원내교섭단체 하나를 너끈하게 꾸리고도 남는 규모다. 열린우리당(17대)과 한나라당(18대), 그리고 새누리당(19대)이 차지한 원내과반수는 바로 이러한 변칙 선거룰 탓이 가장 크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골격은 일본식이다. 하지만 비례대표의석 비율이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어서 1·2당 의석독점은 오히려 일본보다 더 두드러진다. 재작년 제20대 총선 당시 의석 기준 1당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역구 득표율에서는 37%로 2위에 머물렀으나 110석을 획득했다. 한국당은 민주당보다 1.3% 많은 득표율을 올렸지만 105석에 그쳤다. 그래도 민주당과 한국당이 득표율보다 더 얻은 초과의석이 각각 16석과 8석이나 됐다. 제3신당 돌풍을 일으킨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은 득표율 14.9%를 기록했지만 의석점유비중은 9.9%에 그침으로써 무려 13석이나 손해를 보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해 이해찬 대표와 민주당이 말을 바꾸고 있지만 그 본심은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사표를 줄이고 1인1표 원칙에 맞는 민주적 선거방식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민심에 역행할 뿐이다. 우리의 원조 격인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48회 일본 중의원 총선은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의석 465석 가운데 자민당이 확보한 의석은 284석으로 단독 60%가 넘는다. 하지만 자민당의 대승은 유권자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 역시 선거제도 때문이다. 자민당은 민심 그대로 의석에 반영하는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33.3%의 득표율로 의석은 37.5%(66석)를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소선거구 지역구투표에서는 엄청난 초과의석을 챙겼다. 과반에도 미치지 못한 득표율(47.8%)로 의석은 무려 75.4%(218석)를 휩쓸었다. 엉터리 선거제도 때문에 덤으로 얻은 초과의석은 무려 80석이다. 만약 이를 민심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라고 가정한다면 자민당은 204석에 그치게 된다.

표까지 도둑질하는 선거제도

아베 신조 총리를 내세우며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한 2012년 중의원 총선 역시 선거제도가 부린 마술에 불과하다. 당시 자민당의 지역구투표 득표율은 43%에 그쳤으나, 의석은 무려 79%를 점유했다. 이는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가장 많은 초과의석이 발생한 선거로 기록된다. 자민당이 역사적인 대참패를 기록하며 50여년 만에 정권을 내어준 2009년 총선 때는 그 반대현상이 나타났다. 민주당은 지역구투표에서 50% 미만의 득표율로 의석을 4분의 3 가까이 가져갔다. 이것이 일본식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1996년 총선 때부터 시행하고 있는 ‘소선거구+병립형 비례대표제’의 가장 큰 폐단이다. 1인1표가 되는 게 아니라 1인2표 혹은 1인3표가 되기도 한다. 죽은 표가 남발되는 게 바로 일본식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최근 세 차례의 총선 투표율을 보면 59.3%, 52.7%, 53.6% 등으로 유권자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우리나라 역시 2008년 이후 60% 이상 투표율을 한 번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득표율대로 의석을 얻게 되기 때문에 여소야대를 구조화하며 정국불안정을 일상화한다는 비판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는 다른 억지 주장이다. 13~16대 전반기 국회는 원내교섭단체가 3개 또는 4개로 출발했으며 여소야대 내지는 여당이 간신히 과반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 역사상 가장 생산성이 높은 국회로 기록되고 있다. 오히려 3당 합당 이후인 13대 후반, 통일국민당이 사라진 1993년 이후 14대 국회, 자민련이 교섭단체지위를 상실한 2001년 이후 16대 국회(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등), 양당체제의 17~19대 국회는 육탄전과 장외투쟁 등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양당제 국가인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20년 사이 연방정부 셧다운이 세 번 발생했는데 이때 의회 환경을 보면 여소야대가 아닌 여대야소 구조도 있었다. 소선거구-여대야소가 늘 정국안정을 가져온다는 얘기는 결코 진실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세금도, 표도 도둑질하고 있는 지금의 국회의원 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정의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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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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