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이 뽑은 올해의 인물은 ‘20대’다. 돌이켜보면 연초부터 20대는 주간조선과 한국이 주목해온 세대였다. 1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는 ‘한반도기(旗)를 보는 2030의 분노’를 분석했고,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를 만든 ‘유튜브의 신인류들’을 집중 취재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학’을 분석하면서는 한국의 20대가 전 세계적으로 어떤 성취를 거두고 있는지 조망했다.

20대는 올 한 해 한국 사회 이슈의 전면에 내내 서 있었다. 연초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가상화폐 투기 열풍의 상당수는 20대였다. 여름에 접어들면서는 난민과 여성혐오 문제로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고, 가을을 앞두고는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률로 사회의 우려를 샀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12월에 들어서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사고를 통해 지금 20대가 처한 삶의 통증을 다시금 드러내 보였다.

20대는 한국의 사회문제를 상징적이고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세대인 동시에 그 어느 세대와도 다른 세대다. 지금까지 우리는 20대를 88만원 세대, N포 세대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청년 정도로만 봤다. 그래서 20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란과 사건들을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해석하거나 그때그때 시류에 맞게 분석하는 데에만 그치곤 했다. 그러나 20대는 새로운 세대다. IMF 외환위기를 경험하지 않고 태어나 2000년대 후반 본격적인 온라인 네트워킹 사회에서 처음 사회를 경험한 새로운 세대다. 2018년을 20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굵직한 이슈를 중심으로 20대의 2018년을 되돌아보자.

“우리에겐 기회조차 없는 걸까”

3월 고용세습 악화시키는 채용비리

8월 IMF 외환위기 이래 최악의 청년실업률

12월 고용 양극화가 부른 故 김용균씨 사망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정의’가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던 것이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그가 내한(來韓)했을 당시 암표를 주고라도 강연을 들으려 애썼던 대학생이 졸업하고 능숙한 사회인이 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에서 ‘정의’는 낡은 구호처럼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상향이 됐다.

‘정의’ 열풍을 체감하지 못한 지금의 20대에게 대한민국은 태생부터 불공정한 사회다. 연초부터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수저 계급론’을 확신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주간조선이 단독으로 보도한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 원장의 채용비리 사건이 대표적이다. 최 전 원장이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지인의 자녀를 채용하게 압력을 넣은 사건이었다. 금융권에서 시작된 ‘채용비리’ 조사는 사회 전방위적으로 확산됐다. 가장 공정할 것이라 신뢰했던 공공기관에서도 채용비리가 적발됐고, 사기업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작고 큰 단체에서 벌어진 소소한 채용비리는 언론이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져나왔다.

‘백’이 없는 20대는 최악의 취업난을 맞았다. 8월을 기준으로 15~29세 청년실업률은 10.0%로 1999년 이후 최고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청년들에게 고용시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만큼이나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가입국 기준으로 지난 8년간 청년실업률은 평균 10.6%에서 7.6%로 3.0%포인트 떨어졌다. 유독 한국만 청년실업률이 5.4%포인트 올랐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9.5%로 일본의 4.1%보다 두 배 넘게 높았다.

더 큰 문제는 고용의 양극화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5~29세 취업자 중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사람은 35.7%를 넘었다. 60대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치다. 심지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다른 연령대의 비정규직 비율에 비해 청년 세대의 비정규직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가 크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둘 사이 차별은 숫자상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이다.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청년이 근로자의 ‘인권’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직장 내 각종 폭력은 물론 불안전한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 지난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비정규직 20대 근로자 고(故) 김용균씨가 겪은 사고는 상징적이다.

2년 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를 당했던 19살 김모군의 사고와 김용균씨의 사고는 꼭 닮아 있다. 두 사람의 유품에서는 똑같이 컵라면이 발견됐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던 그들의 빠듯한 삶을 보여주는 물품이다.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안정적이지도 못한 삶을 이어가는 소외받는 20대의 모습은 올 한 해 내내 한국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연구센터장은 1997년 이후 창출된 비정규직 일자리가 노동시장을 완전히 왜곡시켰다는 점을 지적한다.

“비정규직 근로는 원래 청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근로 형태다. 이전에는 등록금에 보태거나 경험을 쌓는 차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지금은 아니다. 취업시장에 진입하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으로의 진출을 막는 방해물이다.”

문제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다. 경제학자 우석훈씨가 책 ‘88만원 세대’를 펴낸 것이 2007년의 일이다. 11년이나 지난 지금 여전히 20대를 ‘88만원 세대’로 부를 수 없다. 당시 1980년대에 태어났던 20대는 지금 30대가 되어 다른 세대보다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지금의 20대는 다르다.

지난 11월 개봉해 한국 영화로는 거의 처음으로 IMF 외환위기 사태 당시 정부의 모습을 다뤘던 영화 ‘국가부도의 날’ 관람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30대 관람객에게 이 영화는 아픈 기억을 들춘다. 1986년생으로 대기업 통신사에 근무하는 김보람씨는 IMF 당시 영화를 보고 나와 “우울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해서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생활이 완전히 변하고 부모님 관계가 엉망이 되어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는 일은 나의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1992년생으로 남들보다 일찍 취업해 지금은 대기업 계열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조인국씨는 “IMF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IMF라는 일이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다. 듣기로는 부모님도 IMF 때문에 고생하셨다는데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도 IMF 이후의 일이라 원래 그랬나 보다 하고 살았던 것 같다.”

‘IMF 외환위기 이후의 삶’이 당연한 20대에게 이전 사회의 패러다임은 감흥이 없다. 30대만 하더라도 다르다. 2003년 대학에 입학했던 1984년생 정지혁씨는 ‘신자유주의 철폐’ 구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2005년에 부산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가 열렸을 때 대학 동기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해 ‘부시 반대’ ‘APEC 반대’를 외쳤던 게 기억난다. 당시에는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 금세 우리 삶이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샌가 신자유주의 체제는 스며들었고 이제는 누구도 신자유주의를 반대하지 못한다.”

1996년생으로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유림씨는 사회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철폐’라는 구호가 낯설다.

“우리는 보다 구체적인 삶에 대해 공부한다. 어떻게 청년빈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사상에 대한 공부는 거의 하지 못한다. 당면한 문제만 해도 수없이 많다.”

지금 20대에게 ‘구호’는 없다. ‘구호 없는 세대’로서 20대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사회에 진입하는 것 자체다. 오재호 경기연구원 공존사회연구실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그간 청년 사회는 사회 성장을 견인하면서도 부조리에 저항하는 세대, 기성세대의 억압과 권력에 맞서 자유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는 세대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한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서 태어난 지금 청년들에게 역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사회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에 참여해 빈곤한 자신의 삶과 성장동력이 충분한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데 한몫을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20대에게는 경제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2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7년 기준 55.2%로 전체 평균 63.2%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러니까 지금 20대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다. 이들에게 닥친 어려움은 기존 세대의 문제로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성장환경이 다르고 보고 겪은 경험의 차원이 다르다. 같은 사회 현상이라도 20대의 시선으로 보면 다르게 보인다.

“마지막 희망마저…”

1월 가상화폐 투기 광풍

7월 ‘넘사벽’이 된 서울 집값

경남 창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1994년생 이건호씨는 지난 1월 모아둔 돈 1000만원을 모조리 가상화폐에 쏟아부었다.

“주변에서 가상화폐로 돈을 번 사람이 여럿 있었다. 월급만으로 부자가 될 수 없으니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투자한 직후 거품이 빠졌다. 원금의 90% 넘게 잃어버린 것 같다.”

이씨처럼 20대 상당수가 올해 초까지 가상화폐 시장을 불평등한 계급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조사해보니 가상화폐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중이 20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대의 22.7%가 가상화폐를 구매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 만큼 가상화폐 시세가 폭락한 후 실패의 결과는 20대에서 더 뼈아프게 드러났다. 지난 2월 시세 폭락에 비관한 20대 대학생이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고, 9월에도 20대 여성이 우울증을 앓다가 투신해 숨졌다. 20대에서 가상화폐 광풍이 더 거세게 불었던 이유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구조의 문제가 숨어 있다.

불평등한 20대의 현실을 만든 것은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1930~1940년대생 산업화 세대로부터 민주화 세대인 자식, 포스트 민주화 세대인 손주에 이르기까지 자산이 어떻게 이전되었는지를 연구했다. 그의 논문 ‘세대 간 자산 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의 증대’ ‘한국 복지국가의 사회경제적 기초’를 보면 그간 부동산 시장의 폭등과 폭락이 자산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그 자산이 자손 세대에 이어지면서 더 극심한 불평등을 발생시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연구를 통해 ‘U자형 불평등지수’를 그려냈다. 이에 따르면 20대의 자산은 부모·조부모 세대로부터 그대로 이전된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상위 자산계급이 자산을 처분하고 증여하는 계기를 제공해주는 시기이기도 했다.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귀속임대소득(월세평가액)이 많은 세대는 50대 후반~60대 초반이었지만 2010년대에 와서는 30~40대로 바뀌었다. 그간 자산 이전이 일어났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산업화 세대는 40~50세에 이르러서야 부동산시장의 폭발로 기회를 잡았다”며 “기회를 잡고 자산계급으로 부상한 세대의 자식·손주 세대는 스스로의 노동과 자산 획득 노력 없이 그대로 자산계급으로 편입됐다”고 설명했다.

봄과 여름에 걸쳐 열풍처럼 불었던 서울 부동산 투자 바람은 20대에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한 번 더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1989년생 동갑내기 이주환·김슬기 커플은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지만 집값 문제 때문에 좀처럼 결혼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시중 4대 은행 중 한 군데에 다니는 이주환씨는 “부동산 열풍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모두 10년 차 이상 30~40대 선배들”이라며 “우리 같은 막내 사원들에게는 그저 먼 나라 얘기였다”고 말했다.

“집 때문에 결혼을 망설인다고 말하면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빚을 내려 해도 기본적인 자산은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게 없다. 이제 와서는 대출 규제로 빚도 못 내게 됐는데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요원할 거 같아서 막막하다.”

이철승 교수는 이를 ‘기회’의 문제로 봤다. 이번 부동산 폭등기에서 두드러진 것은 20대와 30대 사이에서도 기회가 불균등하게 주어진다는 점이다. “취업 기회조차 못 잡고 있는 20대와 이미 상층 노동시장에 진입해서 대출을 통해 자산 형성이 가능한 30대 간에 지위 차이가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20대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세대다. 20대에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30대마저도 기성세대로 보인다. 주거환경도 차이가 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20대의 월세 거주 비율은 지금만큼 높지 않았다.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전체 20대 가구주의 27.3%가 월세로 거주했다. 그러나 2015년 불과 10년 사이 월세 비중은 급증했다. 15~29세 가구주 중 월세로 거주하는 사람은 전체의 60.9%나 된다.

고용환경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마케팅 업무에 2년째 지원 중인 취업준비생 박지윤씨는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5년만 일찍 태어났었으면’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기업 리쿠르팅(채용) 행사에 가보면 막내 사원들이 ‘우리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려운 것 같다’며 위로하는 얘기를 항상 한다. 주변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해도 ‘우리 때보다 더 치열하고 심각한 것 같다’는 격려를 더 많이 듣는 상황이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연구센터장은 한국 사회가 ‘연령 분절적 사회’라는 점에 동의한다. 우려하는 만큼 “세대 갈등이 심각한 것은 아니다”는 전제를 두면서도 “일자리 문제나 주거와 같은 쟁점은 세대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개는 20대와 노인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이들 계층은 경제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매우 많다. 오히려 세대 갈등은 20대와 바로 윗세대 간에서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자면 비교적 자산을 쉽게 형성할 수 있고 이미 형성한 30~50대와 자산을 형성하기조차 힘든 20대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의견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철승 교수는 부동산 폭등과 폭락이 반복되면서 자산을 비교적 쉽게 형성한 세대는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려는 욕구가 비교적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에게는 사회적 ‘보험’이 딱히 필요가 없다. 대신 이 세대가 간과하는 안전망에 대한 반작용은 막상 ‘보험’이 필요한 20대에로 향한다. 구의역 사고와 고 김용균씨 사고는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 누구인지를 잘 증명하는 사례다.

“혐오사회에서 우리가 설 곳은…”

6월 제주도 ‘예멘 난민’ 인정 문제

7월 불법촬영 편파수사가 부른 갈등

취약계층이 문제를 조용히 수용하고 감내하며 살아갈 리 없다. 역사적으로도 20대는 원래 사회 변혁의 중심에 서서 변화를 이끌어냈던 것이 사실이다. 통계적으로도 20대의 정치 참여 의지는 다른 세대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지금 20대에서는 전통적인 역할만큼이나 새로운 모습이 눈에 띈다. 김기헌 센터장이 ‘개인화된 분노’라고 이름 붙인 형태다. 그는 “청년들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함께 풀어가기보다 개인적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제주도의 ‘예멘 난민’ 신청자들과 관련해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지난 1월부터 5월 사이에만 제주도에 무비자로 입국한 예멘 난민의 수가 552명에 달했다. 급증한 예멘 난민을 두고 ‘난민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이할 만한 점은 보통 인권문제에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20대에서 ‘반(反)난민’ 정서가 짙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따르면 제주도 예멘 난민을 수용하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전체의 49.1%였는데 유독 20대에서 반대 여론이 높게 나왔다. 20대의 64.4%가 예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반대했다. 이들은 2013년 제정된 난민법 개정을 요구하며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강진구 중앙대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는 이 문제를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난민 수용에 드는 사회적 비용, 예를 들어서 고용불안이나 치안에 대한 잠재적 위협 같은 문제를 장기적으로 떠맡는 것은 젊은 세대다. 그런데 이에 대한 충분한 합의 없이 만들어진 난민법은 20대에 기성세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놓은 기성세대를 위한 제도로 보일 수도 있다.”

이 같은 반발은 주로 온라인을 통해 표출된다. 지금 20대는 처음부터 온라인 소통을 시작한 최초의 세대다. 1980년대생인 30대만 하더라도 PC통신이나 스마트폰이 아닌 피처폰에 대한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다. 1990년대생인 20대는 좀 다르다. 1991년생인 대학원생 이원준씨는 논문을 쓰기 위해 20대들의 통신 경험에 대해 조사한 바 있었다.

“20대는 처음부터 실시간 소통에 익숙한 세대다. 문자를 통해 친구와 곧바로 연락이 닿고 버디버디나 하두리 같은 온라인 채팅 서비스를 거치며 오프라인 소통보다 온라인 소통이 더 익숙한 거의 첫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최초의 세대’라는 말은 20대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단어 중 하나다. 올해 들어 더욱 심각해진 젠더 갈등은 ‘최초의 세대’ 20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계숙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젠더 갈등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업난 같은 불안정한 삶에 대한 분노를 외부로 돌린다는 해석은 비교적 맞는 얘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금 20대가 처음으로 양성평등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라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들어 설립된 여성가족부와 양성평등 교육에 대한 지침은 20대의 젠더 형성에 큰 영향을 줬다. 20대 남성들이 ‘역차별’ 문제에 민감한 데는 이유가 있다.

“20대 남성은 여학생이 1등을 독차지하고 더 좋은 대학에 더 많이 진출하는 걸 목격하며 자랐다. 양성평등에 대한 교육은 늘 받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양성평등은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쓴 양성평등이지 20대의 세대 경험에 맞는 양성평등이 아니었다.”

양성평등 교육을 시작한 ‘최초의 세대’로서 20대는 성별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며 컸다. 양성평등 의식이 충분히 형성된 여성들은 여전히 성차별적인 사회에 자연스럽게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남성들은 다르다. 성차별을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양성평등을 당위적인 것으로 교육받고 자란 남성들은 불공정한 상황이 오면 성차별의 패러다임으로 문제를 해석하려고 한다. 징병 문제나 취업 문제를 성 대결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그렇다.

유계숙 교수가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젠더 문제에 민감한 남성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 여성혐오 커뮤니티에 동조하는 것이다. 취업난, 불안정한 고용상태, 해소되지 않는 빈곤 같은 스트레스로 인해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사람은 사회적 약자에게 생존에 대한 불안을 투사(投射)한다. 젠더 문제에서는 여성이고, 이주자 문제에서는 난민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 같은 생각을 증폭시킨다. 동조하는 사람이 모여 소통하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반대 의견이 어우러져 건설적인 비판이 드러나기 어렵다. 온라인 소통이 더욱 익숙한 20대로서는 기존의 생각을 강화시키는 과정을 거듭하게 된다.

온라인 소통이 활발하다는 지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실제로 20대 중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대해 활발히 언급하고 생각을 나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만 하루 2~3시간을 쓰는 취업준비생 박윤하씨(1994년생)는 정보성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 외에 친구들 앞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어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지만 알아도 그 친구가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있다. 친구들과 성향 문제로 싸우기 싫어서 말하지 않는 편이다. 온라인에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는 다른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니 온라인에서 갈등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중 하나가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둘러싼 논란이다. 불법촬영 수사가 편파적이었는지에 대한 문제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불법촬영을 용인하고 소비하는 남성에 대한 분노와 그걸 표현하는 여성에 대한 비난이 뒤섞여 젠더 갈등의 원형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간 여성혐오와 반발, 재반발로 이어진 첨예한 젠더 갈등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양성평등 교육을 받고 자라 기존 사회에 충분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20대 여성과 대척점에 서 있는 20대 남성의 갈등이 온·오프라인에서 지속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보면 20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주변 환경과 물리적 조건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삶이 힘드니까’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로’ 20대를 해석하려 한다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단순해질 위험이 있다.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20대를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다. 20대는 그저 88만원 세대의 끝자락에 선 세대가 아니다.

“그래도 우리의 세상은 넓다”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의 컬링 신화

5월 방탄소년단 미국 빌보드200 1위

6월 축구팀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20대의 세대 문화에는 우울하고 비관적이며 공격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물리적 환경이 20대만이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성취를 만들어냈다. 올 한 해에 한국 사회 모두가 즐거움을 느꼈던 일을 떠올려보자. 2월 평창올림픽에서 컬링 국가대표팀 은메달 획득과 6월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이어진 9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은 전 국민적 경사(慶事)였다.

스포츠 경기에서 20대는 늘 주역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때나 4년에 한 번 있는 국가대항 행사를 치르고 나면 늘 ‘요즘 20대란 이렇게 진취적이다’란 해석이 쏟아지곤 했다. 그러나 올해의 20대가 이뤄낸 성취를 보면 기존과 조금 다른 지점이 보인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취 이후에 따라오는 수식어에도 국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뉘앙스가 적다.

방탄소년단이 글로벌 대중문화 시장에서 이뤄낸 성과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순수 한국 국적의,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20대 남성들이 한국말로 이뤄진 한국적인 리듬의 음반을 들고 한국에서의 모습 그대로 성공하리라곤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모두를 놀라게 한 승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전의 문법처럼 ‘약한 우리가 강한 상대방을 이겼다’거나 ‘더 큰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식으로만 받아들이면 그저 한순간의 성공담에 그칠 뿐이다. 이 성과를 이뤄낸 20대들에게는 공통적인 문화와 가치관이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20대 중 해외로 아예 터전을 옮길 의사가 있는 사람은 36.8%나 됐다. 취업이 어렵다거나 주거환경이 불안정해서가 아니다. 이유를 취업이나 집값에서 찾은 사람은 각각 5.5%, 2.1%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 ‘새로운 사회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이주하고 싶다고 밝혔다.

20대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보면 이 결과의 의미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자료에서 20대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응답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것은 ‘재산·경제력’이다. ‘화목한 가정’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두 번째로 많았지만 그 비율은 다른 세대와 비교해봤을 때 확연히 적은 편이었다. 대신 20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자아성취’였다. 11.8%의 20대가 ‘자아성취’가 중요하다고 답했는데 이는 10대나 30대에 비해서도 두드러지게 높은 수치다.

일보다 여가를, 이상보다 현실을 유독 더욱 강조하는 20대의 특성은 여러 신조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같은 신조어는 그저 트렌드에 맞추기 위한 용어가 아니다. 여기에서는 20대의 개인적이고 현실적이지만 경계가 없는 삶의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그저 마냥 진취적이고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학을 한 번 자퇴하고 독일로 이주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1990년생 이태섭씨는 20대의 ‘진취성’에 의문을 표한다.

“명절에 친척 어른들을 만나면 항상 ‘너는 어쩜 그렇게 두려움이 없느냐’는 질문을 듣는다. 그건 우리가 그렇게 자라서다. 처음부터 한국이라는 틀에 갇혀 있지 않고 너른 세계로 나갈 것을 주입받았다. 사람마다 다양한 삶을 산다고 배웠다. 배운 대로 사는 것인데 마치 나 자신이 굉장히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특별한 사람이라서 경계 없이 돌아다닌다고 오해받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이씨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 20대의 경계는 기성세대의 경계와 다르다. 20대에게는 처음부터 ‘온 세계가 나의 무대’였고 누구나 소통 가능한 세상이었다. 기성세대는 정해진 틀 안에서 삶의 전환점을 찾으려 했지만 20대에게 그 틀은 희미하다. 전 세계를 누비고 생각지 못한 목표를 세우는 20대의 모습은 진취적이라기보다 삶의 전환점을 찾아 발버둥 치는 모습의 다른 표현방식이다.

20대의 현세 중심적인 삶의 태도는 그만큼 미래에 대한 확신이 덜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삶에 대한 불안이 닥칠 때는 예전처럼 집단적인 저항을 하지 않는다. 대신 개인적이고 상징적인 저항을 통해서 돌파구를 마련한다.

어쩌면 20대는 집단적이고 체제전복적인 저항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비관론자일 수도 있다. “나는 선거나 캠페인 참여 등을 통해 정치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에 동의하지 않는 20대는 전체의 23.8%다. 노인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비관론 23.6%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다.

서로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던 2018년의 사건들은 20대를 이해하고 보면 하나로 묶인다. 불안정한 삶의 환경, 불평등한 기회가 만들어낸 20대 내·외부의 갈등과 상대적 박탈감은 갖가지 사건을 통해 미뤄볼 수 있다. 2018년의 ‘기쁜 일’들 또한 20대의 눈으로 보면 20대의 환경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성취로 읽힌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는 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사회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고군분투하는 20대를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지금처럼 흘려보낸다면 2019년 벌어질 수많은 일들 또한 분절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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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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