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메이커 생태계의 중심인 서울 성수동에서 체인지메이커를 키우는 체인지메이커 루트임팩트와 아쇼카한국의 스태프들. 맨 앞이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왼쪽)와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이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체인지메이커 생태계의 중심인 서울 성수동에서 체인지메이커를 키우는 체인지메이커 루트임팩트와 아쇼카한국의 스태프들. 맨 앞이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왼쪽)와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이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전 세계 어린이·청년 중 2억6000만명은 글을 모르거나 기본적인 셈을 못 한다.(유네스코 2016년 조사, 전체 문맹자는 약 8억명) 유네스코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160만여명의 교사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만약 이들이 교사 없이도 스스로 글을 배우고 셈을 익힐 수 있는 학습도구가 있다면? 이런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세계 최대 비영리단체인 엑스프라이즈(XPRIZE)와 유네스코, 유엔세계식량계획이 뜻을 모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대회를 개최했다. 세계 아동문맹 퇴치를 내걸고 학습방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 현상공모에 나선 것이다. 이 대회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내놓은 상금 1500만달러가 걸려 있다.

3년 넘게 진행 중인 이 대회에는 전 세계 198개 팀이 도전, 준결승을 거쳐 최종 5개 팀이 결승전에 올라 있다. 최종 우승팀을 가리기 위해 아프리카 탄자니아 등에서 현장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결승에 오른 5개 팀의 제품 중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학습 애플리케이션 개발회사 ‘에누마(Enuma)’가 만든 ‘킷킷스쿨’이다. ‘킷킷스쿨’은 게임 방식으로 읽고 쓰며 기본적인 셈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테스트에서 아이들의 학습시간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우승팀의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 오픈소스로 공개된다. ‘킷킷스쿨’의 모델이 된 프로그램은 에누마가 2014년 개발한 ‘토도수학’. 이 프로그램은 이미 애플 앱스토어의 교육 카테고리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6년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빛낸 최고의 앱으로 선정됐다.

인류의 교육 문제 해결사로 떠오른 에누마는 한국인이 만든 회사이다. 게임디자이너 출신인 이수인 대표가 게임개발자인 남편 이건호 공동대표와 함께 2012년 미국에서 설립했다. 학습장애를 안고 태어난 첫아이를 위해 장애 아이들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것이 시작이었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이도, 부족한 아이도 함께 할 수 있는 ‘토도수학’은 미국 1200여개 초등학교에서 학습교재로 채택됐다. 부부는 자신들의 문제를 고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문제를 사회문제로 확장하고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들이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체인지메이커 생태계가 크고 있다

이들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라고 부른다. ‘체인지메이커’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이다. 단어의 뜻 그대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이 혁신을 외치던 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얼마든지 있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변화의 확산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5G 속도로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체인지메이커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나 체인지메이커가 될 수 있고, 모두가 체인지메이커가 돼야 하는 시대이다.

변화의 크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게임의 룰을 바꾸는 혁신가도 있지만 일이나 생활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누구나 체인지메이커이다. ‘윤리적인 소비’를 주장하는 인플루언서도, 환경을 걱정하며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에 동참한 사람도 체인지메이커이다. 한 명의 체인지메이커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것이 일상화된 나이지리아에서 평범한 경호원 출신 아이작 듀오자이예는 전국에 이동 공중화장실 2만2000여개를 보급, 화장실 혁명을 일으켰다. 영국 랭커셔주의 작은 마을 가스탱에서 브루스 크라우더 등 단 3명이 시작한 공정무역 운동은 지구촌에 ‘윤리적 소비’를 확산시켰다.

이처럼 변화의 에너지는 어떤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들기도 하고, 한 명의 체인지메이커가 수많은 체인지메이커를 낳기도 한다. 체인지메이커가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체인지메이커를 찾아내고 키우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생태계의 중심은 소셜벤처의 성지인 서울 성동구 성수동이다. 성수동에서도 체인지메이커들의 본부 같은 곳이 있다. 체인지메이커들의 공유사무실이자 커뮤니티 공간인 헤이그라운드이다.

2017년 6월 문을 연 헤이그라운드에는 소셜벤처, 비영리단체, NGO 등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체인지메이커들이 모여 있다. ‘두손컴퍼니’(박찬재 대표)는 ‘일자리를 통한 빈곤 퇴치’를 미션으로 노숙인을 채용해 세상에 없던 물류서비스를 성공시켰다. ‘존귀한 디자인’을 외치는 ‘마리몬드’(윤홍조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상품으로 유명해졌다. 아이돌봄 서비스 ‘째깍악어’(김희정 대표)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육아의 벽에 부딪혀 회사를 그만둔 자신의 경험을 살려 몇 시간 아이 맡길 곳이 필요한 학부모에게 대학생 등 돌봄교사를 매칭해주는 플랫폼으로 화제를 모았다. 대학생 식습관 개선을 제안하는 위허들링(배상기 대표)은 대학생과 밥집이 상생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대학가 건강 상권 혁신에 나서고 있다. 수제화 만드는 ‘레프트라이트(Left-Right)’는 신발로 장애의 벽을 허물고 있다. 국가대표 장애인 수영선수 출신인 김지은씨는 ‘왜 장애인들이 신는 신발은 투박하고 안 예쁠까’라는 의문을 품고 장애인이 신어도 섹시한 신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왼쪽과 오른쪽이 모두 함께 가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이 밖에도 수공예로 세상을 연결하겠다고 나선 ‘크래프트링크’, 히어로 교육으로 청소년의 가능성을 찾아주는 ‘어썸교육’ 등 70여개사 540여명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을 한데 불러 모은 이들은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의 허재형(37) 대표와 ‘별종’ 재벌 3세로 주목받고 있는 현대가(家)의 정경선(33)씨다. 루트임팩트의 CIO(최고상상책임자)를 맡고 있는 정경선씨는 최근 20명의 체인지메이커들을 인터뷰한 ‘당신은 체인지메이커입니까?’(김영사)라는 책을 펴내고 우리 사회에 ‘체인지메이커’라는 화두를 던졌다.

루트임팩트의 목표는 체인지메이커 생태계 구축이다. 생태계의 마당 역할을 하는 곳이 헤이그라운드이다. 체인지메이커들을 위한 대지(ground)가 되겠다는 뜻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 땅을 딛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비즈니스로도 성공 모델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는 체인지메이커가 성장하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활동과 지원이 이뤄진다. 같은 방향을 향해 뛰고 있다는 연대의식, 입주사 간 네트워크도 큰 힘이다. 투자자들과의 연결을 도와주기도 한다. 정경선씨는 루트임팩트 외에 임팩트 투자사인 HGI 대표를 맡고 있다. 헤이그라운드 주변에는 HGI 외에도 소풍(sopoong), 옐로우독, 씨프로그램 등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임팩트 투자사들이 포진해 있다.

누구나 체인지메이커가 될 수 있다

루트임팩트가 정의하는 체인지메이커는 어떤 사람들일까.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허재형 대표는 “사회혁신가처럼 사명감을 가지고 거창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삶 속에서 불편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루트임팩트는 이를 알기 쉽게 16가지 타입으로 분류하고 있다. 분류에 따르면 소셜벤처 창업가, 임팩트 투자자, 벤처 기부자, 소셜섹터 직원 등 사회문제 해결에 직접 뛰어들거나 지원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소셜섹터로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 공익을 위한 법률, 회계 자문 등 프로보노(pro bono)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포함된다. 친환경세제를 쓴다든가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계란을 구입하는 등 가치소비자도 체인지메이커이다.

루트임팩트는 미래의 체인지메이커들도 키우고 있다. 청년들이 체인지메이커로서의 꿈을 키우도록 도와주는 ‘임팩트 베이스캠프’는 현재 10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12주 과정으로 한 기수당 20~30명이 팀을 이뤄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을 위한 모델을 만들어보는 과정을 통해 체인지메이커로서의 역량을 키운다. 오는 8월이면 만 4년 동안 250여명이 배출된다. ‘임팩트 베이스캠프’ 졸업생들을 죽 지켜봐온 허 대표의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바뀔 수 있고 세상에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공감능력과 문제해결능력도 길러진다. 21세기에 가장 필요하지만 우리 고등교육이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스킬이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이곳에서의 경험이 싹이 잘 터서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는 상상을 한다.”

허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정경선 CIO를 만나 의기투합해 루트임팩트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진정성에 대한 오해를 많이 받았다. 요즘에는 시선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낀다. 체인지메이커들의 활동이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임팩트를 지향하는 자본들이 더 많이 들어와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에 투자하라

‘체인지메이커’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글로벌 비영리조직 ‘아쇼카’이다. 아쇼카는 소셜 앙터프리너(Social Entrepreneur·사회혁신기업가)라는 개념을 만들고 확산시킨 빌 드레이튼이 사회혁신기업가들을 돕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40년 전 ‘체인지메이커’라는 용어를 처음 들고나온 아쇼카의 목표는 ‘모두가 체인지메이커가 되는 세상(Everyone a changemaker)’이다. 아쇼카가 정의한 체인지메이커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관행과 시스템을 바꾼 사람들이다. 새로움, 혁신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급격한 속도로 사회가 변하고 있는 전환기에 낡은 방식으로는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쇼카는 이런 체인지메이커를 전 세계적으로 발굴, ‘아쇼카 펠로’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솔루션은 사람에게 있다고 믿고 사람에게 투자한다. 1982년 인도에서 1호가 나온 이후 90여개국에서 3600명의 아쇼카 펠로가 탄생했다. 매년 120명꼴로 체인지메이커를 찾아낸 셈이다. 펠로 중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3명 배출했다. 아동노동 철폐운동으로 201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도의 카일라시 사티아티는 1994년 펠로에 선정됐다. 아쇼카는 펠로로 선정된 경우 펠로가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펠로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지원을 한다.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펠로의 경우 아무 조건 없이 3년간 생활비를 지원해준다. 펠로들 간 협업이나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할 기회가 주어지고 투자로 연결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2013년부터 11명이 탄생했다. 길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재발견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청소년 범죄 문제 해결에 나선 명성진 ‘세품아(세상을품은아이들)’ 대표, 교실 바꾸기에 나선 정찬필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 등이다. 앞에서 소개한 에누마 이수인 대표도 2017년 ‘아쇼카 펠로’이다.

‘아쇼카 펠로’는 아쇼카 지부가 있는 나라에서만 선정할 수 있다. “혁신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호흡하며 꽃피기 때문이다. 그 나라만의 혁신적인 것을 찾는다.”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의 설명이다. 아쇼카한국은 2013년 설립됐다. 펠로 선정은 오랜 검증 과정을 거친다. 이 대표는 “몰래 찾아가서 보기도 하고 2~3년씩 추적 관찰하는 경우도 있다.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각국 지부에서 이렇게 찾은 후보를 추천하면 글로벌 아쇼카의 베테랑 스태프가 와서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 시간은 보통 5~6시간 이어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DNA가 있는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윤리적 소양이 있는지,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인지’ 등 앙터프리너로서의 자질을 집요하게 검증한다. 다음은 국내 혁신가 3명의 심사위원이 일대일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 결과를 가지고 각각 점수를 매긴 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 여기서 만일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펠로가 될 수 없다.

이 대표는 “아쇼카 펠로는 인류 공통의 자산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체인지메이커로서 잠재력이 있다. 그걸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창구와 도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내가 가진 힘을 확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시대가 왔다”면서 덧붙였다. “세상에 문제가 없었던 적은 없다. 문제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아쇼카 펠로 선정 후 이들이 사회에 끼친 임팩트를 조사해 보니 해당 분야의 시스템을 바꾼 펠로가 93%에 달했다. 이들처럼 나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만들고,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세상의 변화가 시작된다. 체인지메이커들을 보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보인다. 주간조선은 우리 시대의 체인지메이커들을 찾아내 소개하는 연중기획 ‘나는 체인지메이커이다’를 격주로 연재한다.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순간, 당신도 체인지메이커 생태계에 한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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