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커리어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네트워크를 넓히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나로 살고 있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아지트가 생겼다. 단 남성은 출입금지.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인테리어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 감각적인 공간에는 넓은 라운지와 미팅룸, 팟캐스트룸, 요가실, 샤워실까지 갖추고 있다. 창밖으로는 선정릉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는 매일 밤 다양한 ‘작당모의’가 벌어진다. 2월 19일에는 ‘1인 미디어 만들기’ ‘365일, 책쓰기’가, 20일에는 ‘브랜드 경험 디자인’ ‘젠더 통합 리더십 배우기’ ‘강점, 커리어 A매치!’ 같은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부동산, 그 작은 시작’ ‘영업, 마케터로 살아남기’ ‘머신러닝 기술 동향, 함께 공부해요’ 같은 주제의 소모임도 끊이지 않는다. 어떤 날은 네트워킹 파티가 벌어지고 어떤 주말에는 강연이 열린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 ‘헤이조이스(Heyjoyce)’이다. 국내 최초 여성 전용 멤버십 클럽이다. ‘여성의 커리어를 인커리지(encourage·북돋우다)한다’는 미션을 내걸고 있다. 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에 가듯, 마음의 근육을 기르라는 것이다. 유료회원만 입장할 수 있다. 멤버십 비용은 3개월 45만원, 1년 150만원.

‘헤이조이스’에는 ‘파워 군단’이 있다. 각 분야에서 남다른 성장스토리를 써온 ‘인스파이러(inspirer·영감을 주는 사람)’들이다. 40여명의 인스파이러가 회원들의 롤모델이자 조언자 역할을 한다. 정혜신(정신과 의사), 문효은(전 다음 부사장), 제현주(옐로우독 대표), 곽정은(작가), 박지희(요기요 공동창업자) 등 내로라하는 ‘걸보스(girlboss)’들이 다 모였다. 헤이조이스 유료회원이 되면 인스파이러들과 만나고 그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여자들을 도발한 사람은 이나리 플래너리 대표다. 이 대표의 이력을 보면 게임의 룰을 바꿔 판을 만든 것도, 화려한 인스파이러들의 명단도 이해가 된다.

일하는 여성들의 아지트 ‘헤이조이스’의 라운지.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일하는 여성들의 아지트 ‘헤이조이스’의 라운지.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스타트업 생태계 개척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디캠프(D.CAMP)’ 초대 센터장, 제일기획 상무. 이 대표의 과거는 굵직한 세 줄로 요약된다. 그러나 그 이력들 사이에는 27년 동안 10번의 이직이 있었다. 언론사만 7곳을 옮겼으니 사표 쓰기를 특기로 내세워도 될 정도다. 그래서 이 대표는 자신을 “프로 퇴사러”라고 말한다. “모든 이직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성공적이었다. 이직을 거듭할수록 더 나다워졌고, 더 용감하며 더 유능한 사람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이 대표는 제일기획에서 신사업 개발 담당으로 3년 일하다 10번째 사표를 쓰고 헤이조이스를 창업했다. 지난해 9월 정식 오픈을 하고 6개월, 헤이조이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널뛰기하듯 필드를 옮겨 다닌 것 같지만 다 맥락이 있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말한 맥락을 따라가보자.

헤이조이스 이전에도 이 대표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개척자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업 생태계 플랫폼인 ‘디캠프(D.CAMP)’는 그의 작품이다. 기자 시절 IT, 산업계 기자로 현장을 돌다 실리콘밸리로 연수를 가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세상이 모바일로 뒤집어지고 있었다. 창업 생태계와 기업가정신에 눈을 떴다. ‘한국 현실에 절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구나’, 도전 DNA가 살아났다. 연수에서 돌아와 보고 들은 것들을 부지런히 지면에 옮겼다. 2012년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5000억원을 출연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싶다면서 그에게 SOS를 쳤다. 몇 마디 거들겠다 했던 것이 코가 꿰어 기자 이력을 마감하고 발을 들여놓게 됐다. 처음으로 공유오피스 방식으로 디캠프를 만들고 ‘데모데이(투자설명회)’ ‘엑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 등의 용어를 창업 생태계에 이식했다. 당시만 해도 공유오피스를 만들겠다고 하니 “노숙자들 몰려오면 어떡하느냐” “대학생들 숙제하는 도서관 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들을 쏟아내던 때였다. 디캠프는 문을 열자마자 창업자, 투자자가 몰려들었다. 현재 아시아의 대표 스타트업 허브가 됐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디캠프가 안정되자 성장에 대한 갈증이 슬슬 올라왔다. 마침 디캠프 성공세를 타고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일의 난이도가 가장 높아 보이는 제일기획으로 옮겼다. “2년만 큰물에서 놀아보자”고 생각했다. 최종 목적지는 창업이었다. 들어가면서부터 ‘넥스트(next)’가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자신과의 약속대로 창업을 고민하던 시기, 자신을 검증받는 어떤 자리에서 하나의 질문을 받았다.

“여성으로 커리어를 쌓는 동안 힘들었던 일 하나만 이야기해봐라.”

평범한 이 질문이 불러온 파장은 컸다. 헤이조이스는 그 질문의 끝에서 탄생했다. 1년여 전의 일이다.

“왜 이런 질문을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힘든 일 없었다. 굳이 말하라면 술자리 정도…’ 이런 대답을 하고 돌아왔는데 며칠 동안 기분이 나빴어요. 내 기분이 왜 이럴까? 가만 생각해보니 사실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더라고요.”

일이라면 자정에 연락이 와도 튀어나갔다. 아들이 크면서 딱 세 번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마다 해외출장을 가야 했다. 아이 어르고 잠 설치고 출근한 날은 숱하게 많았다. 밀려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더 독하게 살았다. ‘이나리는 생긴 것만 여자지 남자야’. 그런 말이 칭찬인 줄 알았다. “남자만큼 인정받으려면 120프로를 해야 해” “더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150프로는 해야 해”. 후배들의 등을 떠밀며 “꼰대 짓”을 했다.

“남성 위주 시스템 속에서 애쓰면서 과잉적응하고 살았구나. 나를 속이고 살았구나. 스스로에게 미안했어요. 후배들에게도 내가 좋은 롤모델이 아니었던 거죠. 나의 말과 행동이 후배들에게 걸림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복잡한 마음을 적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때 올린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어떻게든 나로 살고 싶고, 이 사회에 작은 내 자리 하나쯤은 꼭 가지고 싶었다. 그러느라 내 아이, 내 가정을 희생했다. 나도 안다. 나는 못나고 욕심 많은 여자다. 그런 스스로를 감추고 변명하고파 나는 내 자신에게, 상사와 동료들과 세상을 향해 평생 거짓말을 해왔던 거다. 나는 여자라서 못 하는 건 없어. 아이 있다고 폐 끼치는 일 없어, 난 엄마, 아내, 맏며느리, 맏딸 역할 다 하면서 회사 일도 열심히 해. 아무도 날 비난할 수 없어!’

글 뒤에 격한 공감이 따랐다. 수천 개의 ‘좋아요’와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나리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들의 문제’였다. 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시간 되는 사람들 만나 차나 한잔 마시자’고 공지를 올렸는데 70명이 모였다. 아이가 있는 기혼여성뿐만 아니라 미혼여성도 많았다. 그들은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어려움’ ‘결혼·출산 후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고 그 과정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었다. ‘공유주거’ 사업을 구상 중이던 이 대표는 모임 후 창업 아이템을 바꿨다. 여성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죄다 맘카페만 있지 일하는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는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일하는 여성’의 카테고리가 아예 없습니다. 35세 이후 여성 사무직은 급격히 줄어들고, 40대 초반에 살아남은 한 줌이 중반 이후 사라집니다. 주니어들이 경력을 이어갈 수 있게 하려면 성공한 롤모델을 보여줘야 하는데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3%에 불과합니다. 한 조직에 여성이 30프로 정도가 되면 도드라지지 않고 평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하고 능력도 키워야 합니다. 여성은 당연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성립되면 많은 것이 바뀔 겁니다. 그런 날을 좀 앞당기는 데 역할을 해야겠다 생각했죠.”

여성들이 원하는 일을 원하는 방식으로 지속할 수 있게 다리나 쿠션 역할을 하자! 법인을 세우고 바로 투자를 받아 만든 것이 헤이조이스였다. 친목모임에 그쳤던 여성 커뮤니티를 비즈니스로 확장한 것이다. 처음에 계획했던 ‘공유주거’ 사업보다 돈은 더 안 되겠지만 창업 키워드로 생각하고 있던 ‘콘텐츠, 공간, 커뮤니티’에 더해 확실한 이유가 생겼다. 이 대표는 “연봉은 75분의 1로 줄었지만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연결·발견·성장!

헤이조이스의 회원은 지난 1월 말 기준 250명이다. 그중 연회원은 160여명이다. 구성비는 다양하다. 창업자, 유통, IT 등 스타트업 계통이 많고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50%에 이른다. 한의사, 변호사, 기자 등 전문직종도 있다. 앉아서 각계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셈이다. 연령대는 직장생활 9년 차 이하가 60%, 10년 차 이상이 40%이다. 20년 차 이상 된 사람도 40여명에 이른다. 주니어들은 살아남은 시니어들을 보면서 ‘나도 결혼하고 출산해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갖고, 시니어들은 주니어들에게 요즘 시대의 호흡을 배운다. ‘언니’ ‘동생’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예의를 갖추고 ‘우아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이곳에서는 나이, 직급 불문 모두 ‘님’으로 부른다. 차관도, 사장도, 띠동갑도 예외 없다. 이 대표도 이곳에서는 ‘나리 님’이다.

“회원들의 성장 욕구가 강합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특히 더합니다. 워라밸만 좇는 줄 알지만 얼마나 나은 사람, 영리한 사람이 되는가에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

헤이조이스의 키워드는 ‘연결, 발견, 성장’이다. 그중에서 ‘발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회원이 들어오면 어떤 프로젝트 팀을 만들고 싶은지 계속 질문한다. 이곳의 프로젝트는 회원이 주제를 정하고 멤버를 모집하고 운영하게 돼 있다. 나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팀을 이끌면서 자신의 숨은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으로 리더가 되고 연사가 되는 경험을 한다. “어떻게 제가…” 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자신에 스스로도 놀란다. 그들의 잠재력을 함께 찾고 무대에 올려주는 것이 헤이조이스의 역할이다.

“인맥 만들기는 그동안 남성 중심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오히려 인맥 쌓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학연·지연 중심으로 묶이지만 미국 등 해외서는 만나서 어떤 시너지가 일어날까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일과 사람은 네트워크를 타고 온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벌써 회원들 안에서 이직과 협업이 이뤄진다. 마케팅, 법무, 경영전략 등 서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인스파이러들의 한마디는 누군가의 가능성이 된다. 분노나 간증을 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후배들에게 120%, 150%를 강요했던 이 대표는 이제 “100%로 인정받아라”고 말한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고 포기해도 괜찮아. 선택의 기준을 세우고 기준에 따라 가차 없이 행동하는 것이 용기다”라고 말한다. 그는 ‘연봉’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다움’을 찾는 것이 자기주도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7년이 걸렸다. 이 대표는 ‘나다움’을 찾으려면 자신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헤이조이스의 비전도 ‘영원히, 나답게’다. 이 대표에게 ‘나다움’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창업을 고민하면서 나는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결론으로 얻은 것은 나는 체인지메이커형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이나리가 어떤 섹터에 들어갔더니 변화가 있었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였다는 인정,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난 변화를 내가 어떤 것보다 큰 보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헤이조이스를 통해 그는 어떤 보상을 기대할까. 그는 헤이조이스의 비전과 미션이 실현된다면 한국에서 ‘여성은 일하는 사람’이라는 등식으로 통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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