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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1호]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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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김일성이 이끌던 조선인 단독 부대는 없었다”

‘김일성 이력서’ 발굴한 러시아인 학자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김일성 이력서’를 발굴해 주간조선에 제보한 사람은 러시아인 학자 표도르 째르치즈스키(31·한국명 이휘성)다.
   
   1988년 러시아 모스크바 출생인 그는 아버지 콘스탄틴 째르치즈스키(54)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중국역사학과 교수와 함께 러시아 당국에 이 문건의 기밀해제를 요청했고,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문건이 공개됐다. 최근 그는 “김일성이 만주를 탈출해 1941년 소련 측으로부터 검증을 받은 기록을 찾았다”며 이 문건을 주간조선에 제보해왔다.
   
   지난 3월 23일과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주간조선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8년 전 한국에 왔다는 그는 한국어가 유창했다.
   
   그는 모국어인 러시아어 외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해 ‘김일성 이전의 북한’(한울)이라는 제목의 한글 연구서를 내기도 했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국민대 유라시아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그는 이번에 발굴한 ‘김일성 이력서’를 바탕으로 쓴 논문을 올 6월 계명대 영문 학술지 ‘Acta Koreana’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 문건을 어떻게 발견했나.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우연히 찾아냈다. 1945년까지 김일성은 중국식 발음인 ‘진지첸’으로 불렸다. 그래서 진지첸이라는 이름을 키릴문자로 검색했는데, 김일성에 대한 기록문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모스크바에 계신 아버지에게 부탁을 했고, 아버지가 기록원을 방문해 직접 복사를 했다. 키릴문자로 중국 이름 진지첸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기존 연구자들이 잘 몰라서 밝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이력서의 글씨가 김일성 자필인가. “김일성이 직접 썼다고 100%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김일성이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 느낌으로는 김일성 자필일 가능성이 무척 높다. 중국어로 된 문과 답의 글씨체가 서로 다른 것이 보이지 않나. 공산당 간부가 중국어로 물어보고, 김일성이 답을 한 것이다.(원문에는 문답이 서로 다른 색깔의 필기구로 쓰여 있다.)”
   
   - 김일성을 조사한 조사반원이 답변을 대신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만일 소련 간부가 썼으면 처음부터 중국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로 썼을 것이다. 김일성 자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이 문건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김일성은 소련의 ‘붉은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검증을 받았다. 신원확인 절차라고 볼 수도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에 관해 지나치게 왜곡해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소련도, 북한도 왜곡하지 않은 아주 객관적으로 쓰인 자료다. 이 자료를 보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 이 자료가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것인지 확신하나. “절대 공개되지 않은 자료다. 이것은 아버지와 내가 보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요청으로 기밀해제된 자료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소련이 임명한 사람이고 스탈린이 뽑은 사람이다. 이 자료를 보면 어떻게 소련이 김일성을 자신들의 사람으로 선발했는지 알 수 있다.”
   
   - 이력서가 작성된 1941년 1월이면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시기다. “맞다. 당시는 소련이 아직 나치 독일의 공격을 받지 않았을 때다. 하지만 만주에서 항일운동은 점점 어려워지던 시기였고, 김일성은 소련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은 소련 영토에서 이 검증을 받았고 신분이 확인된 뒤 붉은군대 장교가 됐다. 그는 전시특별임관 형식으로 대위로 임관했다. 그 뒤 소련군 장교로 귀국해 북한 수령이 됐고 그때부터 김일성 시대가 개막됐다.”
   
▲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의 아버지인 콘스탄틴 째르치즈스키 모스크바국립대 중국역사학과 교수.

   - 이 자료를 통해 밝혀진 새로운 사실은 무엇인가. “우선 재미있는 점은 김일성이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국제공산당 서기장의 직속 중간 간부 네 명으로부터 검증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 간부들은 고위급 간부는 아니고 중급 간부라고 볼 수 있지만 서기장 직속의 간부들이다. 나는 불가리아어로 작성된 디미트로프의 일기를 찾아서 이 간부들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 일기에는 만주 빨치산에 관한 언급도 일부 있다. 디미트로프는 일기에서 만주 빨치산을 지휘하는 간부들의 상태를 ‘극히 나쁘다’고 평가했다.”
   
   - 다른 새로운 사실이 뭐가 있나. “김일성이 중국공산당에 입당할 때 추천을 한 ‘이청산’의 존재가 눈에 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열심히 찾았지만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재미있는 건 김일성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에 ‘이청산이라는 노(老)혁명가와 만났다’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이청산의 추천을 받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는 말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세기와 더불어’는 영어,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됐는데 거기서 이청산 한자 발음을 보면 중국식으로 번역하지 않고 한국식으로 ‘이청산’이라고 번역했다. 이로 미루어보면 이청산은 조선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다른 자료들을 통해 당시 이청산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변학규’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변학규가 이 이청산과 동일 인물인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 김일성의 빨치산 이력과 관련해 또 다른 흥미로운 대목이 있나. “김일성이 왕덕림(王德林)의 구국군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구국군은 당시에 중국공산당이 아니라 국민당과 더 가까웠다. 그래서 김일성은 나중에 이 사실을 숨기고 싶어서 자신이 구국군에서 활동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문건에서는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당시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은 복잡한 관계였다. 적대적이긴 했지만 같은 중국인이라서 나중에 항일투쟁을 같이 했다. 만주국 설립 이후에는 통일전선을 만들기도 한, 약간 복잡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1929년부터 1932년까지 김일성의 행적이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 이 문건으로 상당히 풀린다.”
   
   - 김일성 공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와 배치되는 대목들도 있나. “‘세기와 더불어’에는 김일성을 위인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사실과 다르게 기술한 점이 너무 많다. 회고록은 김일성을 ‘단독으로 행동하는 사령관’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가 이끄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조선인 단독 부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문건에 따르면 김일성은 맨 처음 중국공산당 동만주 특별위원회의 명령에 따라서 왕덕림의 구국군에 갔다. 김일성은 특별위 밑에 있었던 ‘보통 사람’이었다. 당시 두각을 나타낸 건 맞지만 북한에서 말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훌륭한 군 지휘자는 아니었다.”
   
   - 다른 주목할 만한 점은 어떤 것인가. “김일성이 문건에 자신을 ‘조선인’이라고 쓰지 않고 ‘고려인’이라고 썼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나중에 그가 한국에 고려연방공화국 통일 제안을 한 적도 있지 않은가. 29세이던 이때부터 이미 고려라는 국명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 이력서 작성 당시 중국공산당 당원인 김정숙과 결혼을 한 상태였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국민당군에 체포돼 감옥살이를 5개월간 했다는 사실도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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