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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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영장류 신경생물학자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16년 한국에 돌아와 연구실을 꾸리는데, 한국에서는 연구용 영장류 동물을 구할 수 없어 중국 광둥성을 두 번 찾아갔다. 중국은 실험용 영장류를 대량 사육한다. 미국이 매년 해외에서 들여오는 실험용 영장류의 70% 이상이 중국산이다. 당시 들른 두 곳의 광둥성 영장류 농장에는 붉은털원숭이가 한 농장마다 족히 수천 마리는 있었다.

지난 8월 27일 서울대 생명과학부 연구실에서 만난 김형 교수는 “실험을 위한 영장류 동물모델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한 나라의 생명과학 수준과 연결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충북 청원군 오창과 전북 정읍에 영장류센터를 갖고 있는데 두 곳을 합해도 실험용 영장류 숫자가 1000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한국은 1000마리, 중국은 수만 마리

김 교수는 “중국이 영장류 연구의 신흥강국”이라고 했다. “중국은 영장류를 수만 마리나 갖고 있다. 중국이 실험용 영장류를 외국에 제공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연구자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중국이 영장류 반출을 금하면 외국 연구자는 중국에 가서 연구를 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영장류 동물모델은 더 귀하다. 영장류는 사람과 매우 비슷하기에 백신의 약효와 독성 등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김형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십수 년 전부터 영장류 연구를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쥐를 갖고 실험하는 신경생물학자에게도 영장류 실험을 같이 하라고 권유했다. 그 배경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로 일했던 중국인 푸무밍(Mu-ming Poo·蒲慕明) 박사가 있다고 얘기된다. 푸무밍은 1999년 상하이에 설립된 신경과학연구소(ION·중국과학원 산하기관) 소장으로 있는데 이 연구소는 2016년에는 자폐 원숭이를 만들었고, 2018년에는 게잡이원숭이(crab-eating macaque) 두 마리를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를 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의 앞선 뇌과학 연구를 빠르게 흡수하기 위해 미국의 세계적인 연구소를 자국에 유치하기도 했다. 미국 MIT에 있는 맥거번연구소 분원이 2011년부터 베이징사범대학,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세 곳에 설립되었다.

미국도 영장류 연구를 많이 하기는 한다. 특히 김 교수가 서울대에서 박사를 마치고 박사후연구원으로 7년간 일한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영장류 동물모델 연구를 많이 했다. 이곳에서 영장류를 연구했던 학자들은 생물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들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영장류 뇌를 직접 열어보지 않고 주로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뇌를 이해하려고 했다. 뇌를 블랙박스라고 생각하고 행동을 관찰하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거꾸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심리학 쪽의 연구를 전통적 의미의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라고 한다. 심리학자가 얼마 전부터 인지과학에 사용하는 도구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이다. 그래서 요즘 뇌 연구자들은 ‘인지과학’이라는 용어 대신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기도 한다.

생물학으로 영장류에 접근하는 중국

중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물학 연구로 영장류에 접근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뇌 활성뿐만 아니라 분자와 세포 수준에서 영장류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건 신경생물학(neurobiology)적 접근이다. 즉 영장류 신경생물학이다. 김형 교수가 연구하는 것도 바로 이 분야다. 한국에는 이런 연구자가 몇 없다.

김 교수는 연세대 생명공학과 98학번. 서울대 생명과학부 대학원에서 강봉균 교수의 지도를 받아 200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박사과정 때는 영장류가 아닌 ‘군소’라는 바다생물로 연구를 했다. 군소를 갖고 2006년 학술지 ‘뉴런’에 논문을 쓰기도 했다. ‘뉴런’은 신경생물학 분야의 좋은 학술지다. 김 교수는 “이 연구, 너무 재밌었다”라고 했다. 당시 ApLLP라는 장기기억에 필요한 분자를 연구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국립보건원(NIH)으로 갔다. NIH에는 27개의 산하 연구소와 센터가 있는데 그중 하나인 국립눈연구소(National Eye Institute·NEI)에 들어갔다. NEI 연구자인 히코사카 오키히데(1948년생) 박사 그룹에 합류했다. 히코사카 박사는 영장류를 갖고 연구하는데 뇌 중에서도 ‘기저핵’을 연구한다. 김형 교수 말을 계속 들어본다.

“시각정보가 눈으로 들어오면 뇌의 여러 곳을 거쳐 대뇌피질로 간다. 입력된 감각정보에 따라 몸이 필요하면 반응을 보여야 하고, 그러면 운동 명령이 팔다리로 내려간다. 명령은 대뇌피질에서 뇌섬유(신경세포들의 축삭)를 타고 팔다리로 가는데, 그 정보들은 기저핵을 거쳐간다. 대뇌피질이 1차 판단한 정보를 기저핵이 최종 판단하는 것이다. 기저핵은 처음에는 운동기능을 관장한다고 알려졌었다. 그다음에 의사결정에 중요하다는 게 알려졌고 이제는 학습과 기억까지도 얘기되고 있다. NIH의 히코사카 박사는 기저핵의 운동기능 연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운동기능을 팔다리로 하면 연구가 너무 어렵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모델이 필요한데 그게 눈 움직임이다. 눈 움직임을 연구했다.”

김형 교수는 “7년간 NIH에서 되게 열심히 했다”라고 말했다. 과학자는 결국 논문으로 말한다. 그는 NIH에 있으면서 2013년 학술지 ‘뉴런’에, 2015년에는 학술지 ‘셀(Cell)’에 논문을 발표했다. ‘셀’은 생명과학 분야의 최상위 학술지다.

김 교수 연구의 주제는 ‘습관행동기억(habitual behavior)’이다. 우리는 습관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 매순간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 힘들 것이다. 때문에 생각 없이 하는 기계적인 행동도 해야 한다. 김 교수는 △습관적인 행동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습관기억이 뇌의 어떤 부위에 어떤 식으로 저장되는지, △습관기억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행동에 문제가 있고 생존에 불이익이 있는지를 영장류를 갖고 연구한다. 이를 위해 들여다보는 뇌 부위가 뇌 한복판에 있는 ‘기저핵(Basal Ganglia)’이다.

뇌의 기저핵으로 습관적 행동 연구

2013년 학술지 ‘뉴런’에 발표한 논문 내용은 ‘가치기억의 병렬회로’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기저핵은 크게 보면 미상핵, 조가비핵, 흑질, 창백핵, 시상하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붉은털원숭이의 기저핵 크기는 2~3㎝ 길이다. 미상핵은 C 자를 좌우로 반전시켜 놓은 모양이다. 머리(head) 부분이 크고 꼬리(tail) 부분은 가늘다. 김 교수 설명을 들어본다.

“어떤 물건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가치 판단을 우리는 한다. 이때 사용하는 기억을 가치기억이라고 한다. 가령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 사과를 보면 ‘좋다’라고 습관적으로 판단한다. 이게 장기기억이다. 그런데 ‘가치’는 때로 변한다. 썩은 사과도 있기 때문이다. 썩은 사과는 먹으면 안 된다. ‘썩은 사과는 나쁘다’라는 새로운 기억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시각습관기억을 업데이트하게 된다. 이걸 업데이트 기억이라고 하자. 2013년 ‘뉴런’ 연구에서 나는 기저핵의 꼬리 부분과 머리 부분이 가치기억에서 하는 일이 다르다는 걸 밝혔다. 기저핵 꼬리 부분은 과거 경험에 바탕해서 기억이 변하지 않았다. 반면 기저핵의 머리 부분은 가치기억을 빨리 업데이트하는 걸로 확인됐다. 병렬회로가 있기에 ‘내가 원래 사과를 좋아한다’는 과거 가치와, 하지만 ‘지금 갖고 있는 사과는 썩어서 좋지 않다’는 현재 가치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그는 영장류 실험을 통해 기저핵 머리 부분에 있는 신경세포가 활성화되지 못하게 억제하면 ‘썩은 사과는 나쁘다’라는 정보를 업데이트하지 못하는 걸 확인했다. 반면 기저핵 꼬리 부분의 신경세포를 활성화하지 못하게 하자 영장류는 장기기억을 잘 인출하지 못하는 걸로 나왔다. ‘사과는 맛있다’라는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로 나온 것이다. ‘시각습관기억’이 손상됐다고 할 수 있다.

영장류 실험에 사용한 약물은 무시몰(Muscimol)이었다. 무시몰을 기저핵의 머리와 꼬리에 집어넣으면 신경세포 세포막에 있는 특정 이온 통로가 열리고 염소 음이온(Cl-)들이 세포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신경세포가 전기(action potential·활동전위)를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 2~3시간 동안 신경세포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무시몰을 영장류 기저핵에 있는 신경세포 비활성화에 쓸 수 있다는 걸 1980년대 처음 알아낸 사람이 바로 히코사카 선생님이다. 히코사카 선생님은 영장류 기저핵 연구의 산역사”라고 말했다.

2015년 학술지 ‘셀’에 보고한 논문은 ‘도파민 신경세포(뉴런)’ 연구다. 신경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인 도파민 뉴런이 기저핵에 부족하면 파킨슨병에 걸릴 수 있다. 도파민 뉴런의 보상학습 기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인 울프람 슐츠(Wolfram Schultz·1944년생)다. 김 교수는 “울프람 슐츠는 노벨상을 받아야 할 분”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영장류에게 물체 학습을 시킨다. 영장류가 두 물체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그 물체가 주스와 연합된(associated) 가치 있는 물체였다면 3초 뒤 영장류에게 주스를 준다. 잘 골랐다고 보상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도파민 뉴런이 주스에 반응한다. 계속 실험을 반복하면 영장류는 주스가 아니라 주스와 연합된 물체를 봐도 도파민 뉴런이 반응한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이다. 자, 이제는 실험이 달라진다. 울프람 슐츠가 발견한 ‘보상예측실수(Reward Prediction Error·RPE)’ 실험이다. 주스가 보상으로 나오던 물체를 영장류가 선택했으나, 어라, 주스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영장류는 조건이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영장류 뇌에서 도파민 뉴런 반응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도파민 뉴런의 반응이 억제되는데 이를 통해 울프람 슐츠는 보상학습 이론의 생물학적인 근거를 발견했다. ‘보상예측실수’는 강화학습의 근간 이론이 되었으며, 인공지능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학습과 관련해서는 도파민 뉴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그랬다.”

박사후연구원 시절 김형 교수는 10년 넘은 이 이론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 기억하는 장기기억(stable value)과, 계속 업데이트해야 하는 기억(flexible value) 두 가지에 근거해 습관적인 행동이 나오는데, 김형 박사후연구원은 두 가지 기억을 만들 때 모두 각각의 다른 도파민 뉴런이 필요할 거라고 보았다.

두 가지 기억을 만드는 각기 다른 도파민

기저핵 안에 있는 미상핵의 꼬리와 머리 부분은 각각 장기기억과 계속 업데이트해야 하는 기억을 저장한다. 도파민 뉴런은 이 두 곳에 각각 도파민을 공급한다. 도파민 뉴런이 있는 곳은 기저핵 안이 아니라 떨어진 흑질치밀부(SNPC)라는 곳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확인하기 위해 뇌 회로(axon·축삭돌기)를 볼 수 있는 화학물질(Retrograde tracer)을 썼다. 이 화학물질을 넣으면, 도파민 뉴런의 축삭돌기 끝에서 도파민 뉴런의 몸통(세포체)으로 화학물질이 올라간다. 미상핵 머리와 꼬리에 서로 다른 색깔(파란색·빨간색)의 화학물질을 주입했더니 미상핵 머리와 꼬리에 있는 도파민 뉴런 축삭돌기에서 흑질치밀부에 있는 도파민 뉴런의 몸통(세포체)으로 각각 화학물질이 올라갔다. 촬영을 해보니, 흑질치밀부가 파란색과 빨간색 구역으로 구분돼 염색이 되었다. 김형 교수는 “이건 좀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때까지는 도파민 뉴런 회로가 완전히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두 가지 뉴런의 기능이 무엇이냐를 파고들었다. 그가 발견한 건 미상핵 꼬리로 가는 도파민 뉴런은 안정적인 장기기억 저장에 필요하며 정보를 업데이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울프람 슐츠가 보인 게 미상핵 머리로 연결된 ‘업데이트 타입의 도파민 뉴런’이라면, 그가 발견한 건 새로운 타입으로, 업데이트되지 않는 도파민 뉴런이었다.

그는 2016년 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가 되어 귀국했고, 3년 뒤 서울대로 왔다. 성균관대 시절에는 붉은털원숭이 실험을 하기 위한 시설을 갖추는 데 연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교수가 된 후에 김형 교수는 어떤 연구를 하고 있을까?

김형 교수(오른쪽)와 히코사카 박사(왼쪽). 가운데는 히코사카 박사 연구실에 있는 이현찬 박사. ⓒphoto 김형 교수
김형 교수(오른쪽)와 히코사카 박사(왼쪽). 가운데는 히코사카 박사 연구실에 있는 이현찬 박사. ⓒphoto 김형 교수

영장류 뇌에서 장기기억 회로 들여다본다

김 교수는 “장기기억이 만들어질 때 (신경세포 내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간의 시냅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하는) 분자적인 메커니즘 연구가 쥐까지는 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에서 막혀 있다. 영장류 연구를 못 하고 있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기기억은 사람의 정체성 유지에 필요하다. 기억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기기억이 있기에 습관행동도 할 수 있다. 나는 영장류를 갖고 그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싶다. 신경세포, 신경회로, 회로의 전체 시스템, 인간 행동까지 이해하고 싶다. 다행히 관련 기술이 전보다 발전하고 있다. 샘플이 조금만 있어도 실험이 가능해졌다. 가령 과거에 쥐를 수십 마리 희생시켜야 했던 연구를 요즘은 한 마리로 가능하다. 중국이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

습관행동(habitual behavior)과 통제된 행동(controlled behavior)이 각각 저장되는 기억의 메커니즘이 분자 차원에서는 어떻게 될까 하는 게 내가 가진 과학적인 질문이다. 기억이 저장되려면 분자의 구성이 바뀌어야 한다. 그걸 위해 영장류 기저핵의 장기기억 회로를 보고 있다.”

올해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보고한 연구는 기저핵의 부분을 이루는 복측선조체(Ventral striatum)를 들여다본 것이었다. 복측선조체는 쾌락이나 중독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복측선조체가 ‘습관기억’과 관련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실험을 했고,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결과를 내놓았다. 즉 복측선조체도 앞에서 본 미상핵과 마찬가지로 통으로 하나의 기능을 할 거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김 교수는 그게 아니라 앞뒤 구역에 따라 습관기억과 관련해 기능이 구분되어 있다는 걸 밝혔다. 이 연구는 영장류 동물모델과 사람을 대상으로 동시에 수행했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인지신경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장류 연구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특히 중국이 신경생물학의 신흥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건 머리에 꽂혔다. 과학 연구의 변화 물결에 한국이 잘 올라타야 할 텐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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