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중의 교도소’로 악명 높은 청송교도소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법무부가 최근 청송교도소 개소 27년 만에 ‘청송’이라는 지명을 빼고 교도소 명칭을 ‘경북북부교도소’로 변경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법무부 측은 “행정안전부 등과 협의해 이르면 5월부터 청송지역 4개 교정시설을 경북북부 1·2·3교도소, 경북직업훈련교도소 등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4월 7일 군수 집무실에서 만난 한동수(韓東洙·61) 청송군수는 “이제 떳떳이 고개들고 ‘청송에서 왔다’고 말하면서 다닐 수 있게 됐다”며 “2만7000여군민과 시민사회단체, 6만여명의 출향 인사들 모두가 힘을 합쳐 일궈낸 결과여서 더욱 뿌듯하다”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 군수는 기자에게 집무실 창문의 커튼을 열어젖히며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보라”고 했다. 푸른 산봉우리들 사이에 포근하게 안긴 읍내가 눈에 들어왔다.

특산물·관광지 홍보 애먹어

“전국에서 유일하게 굴뚝 공장 하나 없고, 얼마 전까지 전기 없는 마을이 있었던 그야말로 청정지역이죠. 크고 거창하지는 않지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교도소라는 이미지에 눌려 수십 년 동안 그 빛을 잃어 온 겁니다.”

지난 3월 이귀남 법무장관이 “청송교도소에 사형시설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직후 청송군 주민들이 거리에 내건 현수막. 주민들은 “사형장 신설 방침을 철회하라”고 반발했다. ⓒphoto 청송군
지난 3월 이귀남 법무장관이 “청송교도소에 사형시설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직후 청송군 주민들이 거리에 내건 현수막. 주민들은 “사형장 신설 방침을 철회하라”고 반발했다. ⓒphoto 청송군

청송(靑松)군은 이름처럼 푸른 소나무와 맑은 물,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고장이다. 주왕산 국립공원, 달기약수, 절골 계곡, 월매 계곡, 얼음골, 송소 고택 등 곳곳에 관광자원이 흩어져 있다. 특히 100년 이상된 왕버들 20여그루가 물 속에서 솟아 있는 주산지(注山池)는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전체 면적의 83%에 이르는 임야를 활용해 MTB, 패러글라이딩, 산악마라톤 등 각종 산악레저스포츠 관광사업에 주력하고 있고, 달고 아삭한 청송사과와 고추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특산품이다.

교도소의 담장은 높았다. 한 군수는 “청송사과와 관광자원 홍보를 위해 서울 등 각지를 다녀보면 타 지역 사람 10명 중 9명은 청송을 ‘교도소가 있는 곳’으로 인식한다”면서 “예산과 정성을 들여 애써 이미지를 높여 놓으면, 탈옥수 신창원 등 흉악범들이 청송교도소에 있다는 소식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순간 그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사형집행장 신설 추진에 주민들 ‘폭발’

청송교도소는 1981년 재범 가능성이 높은 흉악범을 사회에서 격리하기 위해 세워진 보호감호소로 출발했다. 현재는 청송 제1·2·3교도소, 청송직업훈련교도소 등 4개의 수용시설이 들어서 있고, 이곳엔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을 포함해 2300여명이 수용돼 있다.

1990년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청송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이후 탈옥수 신창원, 조폭두목 조양은·김태촌이 거쳐가면서 악명은 더욱 높아졌다. 한 군수는 “가끔은 출소한 재소자들이 부녀자 성추행이나 면사무소 직원들에게 돈을 뜯어가는 사건도 있어 교도소 인근 주민들은 항상 불안해 하고 있다”면서 “때문에 진보면에서는 주민들 스스로 청소년선도위원회를 꾸려 방범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고 했다.

한동수 청송군수 ⓒphoto 청송군
한동수 청송군수 ⓒphoto 청송군

2007년 재선거로 당선된 한 군수는 취임 이후 줄곧 ‘교도소 이름바꾸기’에 올인했다. 수차례에 걸쳐 교정본부장, 법무부 장관 면담을 신청하고, 서면 등으로 교도소 명칭 변경을 요구했다. 그해 4월 청송군 주민들은 “교도소 때문에 고향도 밝히기 어렵다”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최근엔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의 범인 김길태 검거 이후 이귀남(李貴男) 법무부 장관이 청송교도소를 들러 “사형집행장을 신설해 사형수 등 흉악범들을 집중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뜨거운 논란까지 불거졌다.

“70여개의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주민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죠. 사실 주민들은 ‘나라가 하는 일이니 이해하자’는 생각으로 참아만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못 참겠다’며 불만이 폭발한 셈이죠.”

직원용 아파트 짓고 ‘감방 체험’ 기획

한 군수는 지난 4월 5일 이광호 청송군의회 의장 등 군의원 6명과 함께 법무부 장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 군수는 “청송은 다른 지역과 달리 유명한 건축물이나 상징적인 시설물이 없어 지역명이 붙은 교도소가 이미지를 모두 삼켜버린다”면서 “농사를 제외하고는 관광과 레저형스포츠 등으로 먹고살 수밖에 없는 청송으로서는 이미지 제고를 통한 다른 지역 사람들의 유입만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말했고, 이 장관은 “명칭 변경과 함께 주민들을 위해 교도소 직원들의 아파트(150가구)를 진보면 시내에 짓고, 연간 43억원에 이르는 교도소 부식재료를 최대한 현지에서 사서 쓰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30여년 만에 ‘청송’이 다시 태어나는 기분입니다. 인구 2만7000명의 작은 청송으로서는 1200여명의 교정인력과 2300여명의 재소자가 있는 교도소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죠. 이제부터라도 교도소를 ‘청송군 최대의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교도소 내 꽃밭 조성, 진입도로 가로등 정비 등 각종 봉사 활동과 교도관 가족과의 정기적인 체육대회 등 교류를 통해 교도소를 떠나는 이들에게 청송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자는 게 한 군수의 생각이다.

감방체험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교도소 측과 협의해 교도소 내 사용하지 않는 빈 건물을 활용하여 감옥탐방, 감옥 내 식사, 1일 감옥생활 체험 등의 ‘감방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것. 청소년은 물론 청송을 찾는 관광객에게 이색적인 체험을 통한 법질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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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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