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란삐아띠’ 김병희 사장 / photo 정복남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그란삐아띠’ 김병희 사장 / photo 정복남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던 5월 셋째 주, 유독 취재가 잡힌 11일 오후에만 비가 왔다.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에 도착했지만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골목 안쪽의 목적지,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란삐아띠(Gran Piatti)’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사진을 통해 외관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 뻔한, 반지하에 위치한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스무 명이나 들어갈까, 말린 야채 장식이 매달린 낮은 천장과 검은 나무의 앤틱 탁자가 놓여있는 실내는 좁지만 아늑했다. 색색의 타일이 바닥을 수놓고 있었고, 거칠게 쓱쓱 바른 듯한 흰색 벽은 아기자기한 접시와 천사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호화롭지는 않아도 사람 사는 느낌이 가득한, 영락없는 가정집 분위기였다.

주방에서 흰 옷의 셰프가 걸어나왔다. 오너셰프인 김병희(44) 사장이 무뚝뚝하게 인사했다. 악수를 건네는 그의 손이 놀랄 만큼 두툼했고, 신경 써서 손질한 듯한 뾰족한 턱수염과 오렌지색 에비에이터 선글라스가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 중북부 가정식(김 사장 말을 빌리면 “거기서 만날 해먹던 거”) 전문점 ‘그란삐아띠’는 한 시간 반 동안 김 사장이 들려준 18년간의 이탈리아 생활 그 자체라 해도 좋았다.

1989년 12월 24일 약관의 부산 사나이 김병희는 의상디자이너의 꿈을 품고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좌충우돌 끝에 마르케 주 앙코나시의 패션디자인학교에 입학했다. 여름이면 해바라기가 피는 농가의 2층에 살았다. 저녁이면 아랫집 가난한 음악가들과 함께 테이블을 길게 붙여 음식을 해먹고 와인을 즐겼다. 그새 이탈리아어 실력은 피렌체의 폴리모다 의상학교 교수를 구워삶아 입학을 따낼 만큼 늘었다. 피렌체에서 지금의 아내 장성숙(37)씨를 만났다. 둘 다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매일 둘이 달빛 아래에서 고기와 와인을 즐겼다. 둘 다 만난 지 두 달 만에 살이 10㎏이나 쪘다고 한다. (김 사장은 “이게 그때의 잔재”라며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한쪽 벽에는 이탈리아어로 쓰인 김 사장의 소믈리에 자격증이 붙어 있다. 이탈리아 요리도 와인과의 궁합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살던 피렌체가 있는 중부 토스카나주를 가리켜 “그 유명한 키안티(chianti) 와인의 생산지”라며 자랑스러워했다.

2007년 4월 서래마을에 입성한 ‘그란삐아띠’의 인테리어는 김 사장이 석 달 넘게 직접 작업한 것이다. 메뉴에 장식된 금색 인장(印章)부터 바닥의 타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직접 사온 것이다. 메뉴는 아내와 함께 구상했지만 요리는 김 사장이 하고, 아내는 홀에서 서빙을 맡고 있다. 단골이 오면 잠시 주방에서 나와 담소를 나누고, 와인을 추천하기도 한다. 가장 인기 있는 파스타는 토마토 소스의 스콜리오(scoglio)로, 신선한 해산물과 이탈리아 향신료 맛이 일품이다. 가격은 부가세를 포함해 2만3000원. 도합 24가지의 파스타와 리조또를 포함한 다양한 메뉴를 자랑한다. 김 사장은 “직접 해보니까 요리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며 “내가 맛을 직접 책임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한 “부부가 직접 하니까 인건비가 적은 것도 불경기에도 버틸 수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란삐아띠’는 이탈리아어로 큰 접시라는 뜻이다. 이곳의 파스타는 김 사장 부부가 이탈리아에서 수집해온 큰 접시에 담겨 나온다. 큰 그릇처럼 포용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위치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105-2. 서래마을 파리크라상 골목 진입 후 75m 앞 왼쪽에 있다. 입구에 빛 바랜 빨간색과 흰색 스트라이프의 차양과 크리스마스 조명, 금주의 와인 리스트가 적힌 작은 칠판이 맞아준다. 월요일은 쉰다. 낮 12시에 오픈해 밤 늦게까지 와인바로 영업한다. “이탈리아를 느끼고 싶다면(Per sentire Italia)” 찾아야 할 곳이다. (02) 595-5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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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기 인턴기자·미 브라운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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