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부터 닷새간 미국 3개 주를 돌며 컬럼비아·예일·MIT·하버드 등 4개 대학을 방문했다. 신창호 고려대 입학사정관실장(교육학과 교수)이 이끄는 고려대 입학사정관팀과 함께였다. 고려대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시행 중인 대학입학사정관제 지원 사업의 선도대학 중 한 곳. 이번 일정은 고려대가 2008학년도부터 실시해오고 있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골격을 완성하고 해외 선진 대학과 지속적으로 업무를 교류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입학사정관제 도입 초기부터 고려대와 각별한 친분을 쌓아오고 있는 MIT는 이틀간 세미나를 갖고 사정관 업무 전반에 대해 고려대 측과 논의했다.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대학입시 전형이 시행 4년째에 접어들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수백억 국고를 쏟아부을 만큼 실효성을 확신할 수 있는 제도인가’란 비판에서부터 ‘미국에서 성공한 제도라는 이유로 무조건 수입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문제 제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혹자는 ‘사교육 배를 불려줄 또 하나의 유행에 불과하다’며 사정관제 취지 자체를 폄하하기도 한다. 주간조선은 지금 시점에서 다시 입학사정관의 모태인 미국 대학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취재 결과, 입학사정관제의 성공 요인은 다름아닌 ‘상호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란 사실을 깨달았다.

뉴욕에 위치한 컬럼비아대학 캠퍼스 전경.
뉴욕에 위치한 컬럼비아대학 캠퍼스 전경.

MIT 입학사정관 3인을 만나다

우수학생 목록 구입 ‘타깃 마케팅’

사정관 18명이 1만7000여개 서류 전부 읽고 토론하며 오류 줄여

MIT 입학사정관들과의 세미나는 지난 4월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MIT 입학사무국에서 진행됐다.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일행을 맞은 스튜어트 슈밀(Stuart Schmill) 입학처장은 “개괄적 사항은 공개해도 무방하지만 구체적 데이터 분석결과나 수치 등이 보도되는 건 삼갔으면 좋겠다”고 밝혀왔다. 수험생의 당락이 결정되는 입학처 업무의 특성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보의 외부 유출은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는 것.(우리나라 대학들 역시 같은 이유로 선발과정의 공개를 꺼리지만 그 때문에 일부 언론 등을 중심으로 강한 비난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슈밀 처장에 따르면 MIT 입학사무국(Admissions Office)은 처장을 포함, 총 33명의 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사정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인력은 18명. 나머지 14명은 이들의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18명의 입학사정관은 다시 직무 비중에 따라 3개의 직책으로 나뉜다. 분야별 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디렉터와 이들을 보좌하는 어시스턴트 디렉터, 그리고 분야별 상담 전문가인 카운슬러가 그것이다.<그래픽 참조> MIT 측은 디렉터급 사정관 6명 중 신입생 모집과 통계분석, 선발 등 3개 핵심 분야 책임자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디렉터 한 명당 짧게는 1시간30분, 길게는 2시간가량 이어진 세미나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매트 맥건 | 신입생 모집 담당 디렉터

150만여명 중 ‘MIT형’ 인재 3만여명 골라 집중 홍보

MIT 입학처에서 신입생 모집(recruit ment) 담당 디렉터로 근무하는 입학사정관 매트 맥건(Matt McGann)씨는 이 대학 00학번 출신이다. 삼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지만 입학 사정 경력은 올해로 8년째인 베테랑. 그는 “내가 다른 대학이 아닌 MIT를 소신에 따라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열심히 공부했듯이, 후배들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일을 시작했고 더없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 역할은 매년 쏟아지는 150만여명의 미국 고교 졸업생 중 MIT를 선택할 1000여명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정확하게 찾아 진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파이프라인(pipeline)입니다.” 그에 따르면 MIT의 ‘파이프라인 프로그램’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메일을 통한 교류, 둘째 웹 사이트를 활용한 홍보, 셋째 학교 방문 프로그램(On-Campus·학교 설명회와 캠퍼스 투어 등) 운영, 넷째 입학사정관의 외부 파견활동(Outreach) 프로그램이다.

이 중 눈에 띄는 건 MIT의 메일 발송 시스템이다. MIT는 매년 미국 대입정보 사이트 칼리지보드(collegeboard.com)가 판매하는 고3 수험생 리스트를 구입해 그들의 성적과 선호 과목, 가정 환경 등을 파악한다. 칼리지보드는 미국의 수능시험 격인 SAT나 PSAT(예비 SAT)를 주관하는 기관. 같은 학교 홍보 메일을 보내더라도 무작위로 보내 도달률을 낮추기보다는 ‘수학과 과학을 잘하고 엔지니어링·건축·경제에 관심이 많은’ MIT형 인재에게 노출되는 비중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그는 “실제로 이 작업을 거치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수험생 그룹이 150만명에서 10만명으로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이 중 반응을 보이는 3만여명을 대상으로 MIT의 장점을 집중 홍보한다.

그의 사무실 벽면엔 MIT 홍보용 팸플릿 한 부가 부착돼 있었다. 전년도 입학생 7명의 사연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 내용이었는데 그중 4명은 여학생이었다. 여기에도 학교 측의 정교한 셈법이 작용한다. “MIT는 공대라서 남학생 비중이 높습니다. 남학생 유치엔 특별한 홍보가 필요 없지만 여학생은 그렇지 않죠. 모집 단계에서 ‘수학·과학에 강한 여학생’을 타깃으로 정해 공략하면 이들을 우리 대학으로 유치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팸플릿 등장 학생 중 (MIT가 원래 강세를 보이는) 컴퓨터공학 전공생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이 대학 웹사이트(mit.edu) 내의 한 코너로 운영 중인 블로그도 MIT가 자랑하는 홍보수단이다. 5년 전 재학생 몇몇을 고용해 시작한 이 소규모 블로그는 학교 측이 운영비를 다 들이면서도 게시물을 일절 검열하지 않아 입소문을 타며 솔직한 학교 정보의 유통 경로로 인기를 끌었다. 현재 이 블로그는 학교 홈페이지 정중앙에 배치돼 있으며 학생과 교직원 등 운영 인원은 18명에 이른다. MIT 블로그에 얽힌 뒷얘기는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잉그리드 바거스 | 선임 조사 분석관

신입생 정보·학교 적응 여부 데이터베이스화

MIT 입학사무국에서 통계분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잉그리드 바거스(Ingrid Vargas)씨는 약 9개월 전 MIT에 합류했다. 여러 명의 보조 인력을 거느린 다른 사정관과는 달리 그는 1인 체제로 움직인다. 슈밀 처장은 그런 그를 가리켜 “굉장히 유능하며 언제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는 인재”라고 극찬했다.

바거스의 업무는 MIT의 중앙데이터수집센터에 보관된 방대한 정보 중 입학생 관련 데이터를 뽑아내 여러 조합을 거쳐 유의미한 분석 결과를 내놓는 일이다. 여기엔 MIT가 추진 중인 입학정책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작업과 사정관제 전형을 거쳐 입학한 학생이 학교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는지 살피는 추수(追隨) 지도 분야까지 포함된다.

예컨대 SAT 점수가 MIT 합격 여부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그는 MIT 지원자 중 SAT 만점자 정보를 추출한다. “MIT 지원자 1만7000여명 중 약 25%는 SAT 만점을 받습니다. SAT 성적이 합격의 절대적 기준이라면 만점자만으로도 합격생이 충원되는 거죠. 그러나 실제 사정 과정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통계 분석을 하다 보면 여러 전형 요소 중 어떤 것의 비중을 얼마로 정해야 할지 결정하는 작업도 병행하게 됩니다.”

바거스에 따르면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추수 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반영되는 요소는 1학년 성적이다. “MIT 신입생의 75%는 학사경고를 받습니다. 고교 때 아무리 잘하던 학생들도 까다로운 커리큘럼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되는 거죠. 저는 이들의 입학 성적과 1학년 성적 간 상관관계를 분석해 유의미한 연결고리를 찾아냅니다. 고3 때 물리를 선택과목으로 한 학생과 생물을 선택과목으로 한 학생 간 학업 성취도를 비교해 한쪽이 유난히 탁월하다면 다음 번 입시에 그 결과를 반영하는 식이에요.”

“학교 측 선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있어요. 매년 있죠. 하지만 한번 내린 결정은 절대로 바꾸지 않습니다. 모든 사정관이 오랜 시간 합의를 거쳐 나온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발표 전 단계에서 다소 의아한 결과가 나왔을 때, 예를 들어 특정 고교 1등이 떨어지고 3등이 붙었다면 그 이유가 뭔지 내부적으로 한번 더 검토합니다. 그 과정에서 당락 여부가 바뀔 순 있겠죠. 물론 발표 전에요. 이의 제기 빈도를 낮추려는 노력을 그만큼 많이 한다는 뜻입니다.”

맥그레거 크롤리 | 선발 담당 디렉터

부모 이혼 여부까지 파악… 합격자 정보 외우다시피

창조성·열정·긍정성·모험정신·회복탄력성…. MIT 입학사무국에서 선발 담당 디렉터를 맡고 있는 맥그레거 크롤리(McGreggor Crowley)씨가 나눠준 한 장짜리 종이엔 이런 용어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입학사정관이 수험생이 제출한 자료에 근거해 점수를 매겨야 하는 항목들이었다. 언뜻 봐도 서류에 적힌 내용 몇 가지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이 같은 평가가 가능한 이유를 ‘입학사정관 전원이 전체 지원자의 서류를 검토하는 시스템’에 있다고 설명했다. “MIT의 선발 전형은 수시 전형(Early Action)과 정시 전형(Regular Action)으로 나뉩니다. 전자는 매년 11월 1일부터, 후자는 매년 1월 1일부터 시작되죠. 전형 기간이 되면 자기 분야에서 일하던 사정관들이 일제히 ‘리딩 앤 셀렉션(reading & selection)’으로 불리는 사정 업무에 착수합니다. 수십 명의 평가가 합산돼 반영되기 때문에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연륜 있는 사정관과 초보 사정관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그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사정 작업을 하는 방식은 대개 토론입니다. 신입 사정관은 대부분의 서류에 후한 점수를 주게 마련이에요. 이를 다른 사정관이 지적하고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오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은 신입 사정관 교육에도 큰 도움을 주죠.”

현재 MIT에 지원하려는 수험생 관련 정보는 커버 시트(cover sheet)와 파트1, 파트2로 구성된다. 커버 시트엔 지원자 성명 등의 기본 정보가, 파트1엔 기타 인적사항이, 파트2엔 성적·교외활동 등 보다 실질적 정보가 각각 담긴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수록 정보의 양과 질이었다. 지원자 본인에 관한 데이터는 물론, 부모의 출신 지역과 대학, 현재 직업과 연수입, 심지어 부모의 이혼 여부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게 해놓았다.

크롤리는 그 이유를 ‘맥락(context)의 중요성’으로 설명했다. 수록된 정보 자체보다 여러 정보들이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맥락을 관찰하기 위해서란 것이다.

그가 밝힌 ‘추천서 옥석 가리는 법’은 다음과 같았다. “좋은 추천서는 반복해 읽다 보면 분명히 드러납니다. 추상적 어휘로 찬사를 늘어놓은 글, 구체적 상황이나 사례 없이 모호한 묘사에 그친 글, 피추천자와의 연결고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 글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죠. 한번은 어떤 교수가 추천서에 ‘토이 스토리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게임을 개발했고 LED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며 그 근거가 되는 경험담을 빼곡하게 써놓았더군요. 그런 추천서를 읽고도 지원자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을 사정관은 아마 없을 겁니다.”

베트남 농부의 아들로 국제 물리올림피아드를 휩쓴 천재소년 A, 학업 성적은 다소 낮았지만 원만한 인간관계와 친화력, 연구에 대한 강한 열정을 인정 받아 MIT에 입성한 애리조나주 출신 소녀 B, 전남 순천 태생으로 뛰어난 학업성적 외에 록밴드 리더 등 왕성한 대외활동 경력이 돋보인 C…. 세미나 내내 크롤리의 입에선 올해 MIT 신입생의 이력이 쏟아져 나왔다. “지원 서류를 하도 많이 검토하다 보니 기억이 나네요. 특히 슈밀 처장과 제가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국제 전형 합격자 100여명의 정보는 대부분 외우다시피합니다. 한국 대학의 사정관도 그렇지 않나요?”

최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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