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설명회(Information Session)와 캠퍼스 투어가 학교 선정에 도움이 됐나요?” “물론입니다. 제겐 꽤 유용했어요. 예일이 어떤 대학인지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었거든요. 평소 궁금했던 걸 선배들이나 입학처 관계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어 특히 좋았습니다.”

지난 4월 20일 오전 11시 입학 설명회와 캠퍼스 투어가 한창이던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소재 예일대 캠퍼스에서 한 남학생을 만났다. ‘애덤(Adam)’이라는 이 학생은 키프로스 출신 부모를 둔 이민2세대로 워싱턴 D.C.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지난해 예일대에 진학했다. 아이비리그를 포함해 그가 참여한 대학방문 프로그램은 총 4개. “여러 대학을 둘러본 결과 인문학을 좋아하는 나와 예일의 학풍이 잘 맞는 것 같아서” 예일대를 선택했다고 했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여러 대입 전형의 하나에 불과한 우리와 달리 미국 대학입시는 100%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운영된다. 입학 설명회와 캠퍼스 투어 등의 학교방문 프로그램 역시, 숙련된 입학사정관에 의해 전체 입시 일정과 긴밀하게 연동돼 움직인다. 입학사정관제 전형과 무관하게 ‘단순 대학 홍보수단’으로 채택되고 있는 국내 대학의 입학설명회나 캠퍼스 투어와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번 일정에서 고려대 입학사정관들과 컬럼비아·예일·MIT·하버드 등 미국 4대 명문 사학의 학교 방문 프로그램을 참관하기로 한 건 그 때문이었다.

관찰자 입장에서 4개 대학의 학교 방문 프로그램을 참관한 결과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1 컬럼비아대 캠퍼스투어 신청자들이 강사(오른쪽 선글라스 쓴 사람)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다. 2 MIT에선 입간판을 활용, 학교방문 프로그램의 장소와 일시를 안내했다. 3 하버드대 방문객들이 인포메이션 세션 직후 캠퍼스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1 컬럼비아대 캠퍼스투어 신청자들이 강사(오른쪽 선글라스 쓴 사람)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다. 2 MIT에선 입간판을 활용, 학교방문 프로그램의 장소와 일시를 안내했다. 3 하버드대 방문객들이 인포메이션 세션 직후 캠퍼스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우선 프로그램 제공 횟수가 많아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했다. 일례로 예일대는 토·일요일을 제외한 1년 내내 ‘입학 설명회(오전 9시)-캠퍼스 투어(오전 10시30분)’ 서비스를 운영한다. 여기에 2~4월과 6~8월엔 동일한 서비스가 오후에 한 차례 더 진행된다. 9~11월엔 토요일 프로그램도 추가된다. MIT의 경우 매년 2~5월 하루 두 차례씩 ‘입학 설명회+캠퍼스 투어’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수요자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 해당 대학을 찾아가 필요한 정보를 취할 수 있는 구조다.

둘째, 획일적 형태가 아닌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학교 방문객을 만족시켰다. 컬럼비아대는 사정상 학교를 찾을 수 없는 수험생과 학부모를 위해 ‘캠퍼스 투어 팟캐스트(podcast)’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캠퍼스 내 주요 시설을 25개로 나눠 각각 오디오 파일로 만든 후 무료로 내려받게 해 학교에 오지 않아도 아이팟·아이폰을 통해 학교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다. 하버드대는 4월 23일 오전에 열린 입학 설명회에 입학처 직원 외에 재학생 2명을 등장시켰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 특성상 입학처 직원도 잘 모르는 생생한 ‘캠퍼스 라이프’ 얘길 들려주고자 한 학교 측 배려였다.

셋째, 당락 여부에 관련된 내용 대신 해당 대학의 특성과 철학, 인재상을 알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됐다. 예일대 입학 설명회에선 △여러 수업을 두루 수강한 후 본인의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학부 시스템 △예일대 특징 중 하나인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s·신입생 전원이 12곳의 칼리지 중 한곳에 배정돼 졸업할 때까지 거주하는 일종의 기숙사 제도)’ △수험생의 경제 여건에 관계없이 합격 여부를 결정하고 합격생의 학자금 부족분은 학교가 지원하는 ‘니드 블라인드(Need-blind)’ 정책이 소개됐다. 이날 진행을 맡은 레베카 버고인(여·4년)씨는 예일대의 다양한 특별활동을 소개하며 “미술사 전공이고 의과대학원을 준비 중인 내가 고교생 땐 전혀 할 줄 몰랐던 조정 선수로 활동 중”이란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넷째, 공급자(입학사정관)는 전문성을 갖췄고 수요자(수험생 및 학부모)의 태도는 성숙했다. 4개 대학 입학 설명회와 캠퍼스 투어는 적게는 50여명, 많게는 150여명 규모로 진행됐다. 10명 미만의 개인 참가자는 별도 예약 없이 당일 강연장에 모이기만 하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행사장에 소위 ‘간부급(級)’은 등장하지 않았다. 입학처장이 모습을 드러낸 학교도 없었다. 강연 수단은 오로지 강사의 육성. 마이크를 사용한 대학조차 한두 개에 불과해 참가자들은 강사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팸플릿도, 기념품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어떤 질문이든 1초 내로 정확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는 강연자는 말 그대로 전문가였다.

“미국 고교생은 대개 10~12개의 학교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지원 대학을 결정합니다. 특히 지원생 대비 입학률이 10%를 밑도는 아이비리그 대학일수록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어요. 좋은 대학일수록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학교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도움이 되지요. 저도 아들이 학교를 쉬는 날을 골라 일부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버드대 캠퍼스 투어에서 만난 김성은(45)씨는 뉴욕주 올바니에서 아들 김유신군과 함께 보스턴을 찾았다. 수학 실력이 뛰어난 아들에게 수학 전공 관련 미국 대학 순위에서 1~2위를 다투는 MIT와 하버드대를 보여주려는 게 이번 방문의 목적. 김군은 “학교 방문 전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익했다”며 “오늘 메모한 내용을 잘 기억해 뒀다가 신중하게 판단해 대학을 선택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예일대에서 만난 멕시코시티 출신 예밀라(Yemile·여)씨는 무려 22개의 학교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대학을 결정했다. “영문학을 좋아하는 제게 꼭 맞는 대학을 찾고 싶었어요. 선택 직전에도 애머스트대학(Amherst College)과 예일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죠. 예일로 최종 결정한 이유가 바로 학교방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프랭크 버네트 미국 대학입학상담전국연합회장(비영리기관 에듀케이션 나우 대표)은 “학교 방문 없이 대학에 지원하는 건 시험 운행도 안 해보고 차를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한국 학부모와 수험생은 대학 선택을 운(運)에 맡긴다. 캠퍼스 한번 찾지 않고 대충 점수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다. 미국에서 만난 고교생과 대학생들은 전혀 달랐다. 이들과 한국 학생의 10년 후, 20년 후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누구라도 어렵잖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의 절반은 전문성으로 무장한 입시제도를 갖춘 대학에, 나머지 절반은 현명한 판단과 소신으로 자녀의 입시를 지원하는 학부모에게 있다.

최혜원 기자 / 심혜기 인턴기자·미국 브라운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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