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1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총재 한광수)은 제1회 해외 보건의료 우수사례 공모전 대상에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해외의료지원단이 몽골 울란바토르에 설립한 상설 무료진료소 ‘성 메리 클리닉(St. Mary’s Clinic)’을 선정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 4주기 추모전의 일환으로 주최된 이번 공모전에서는 개발도상국에서 보건의료 관련 분야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비정부기구(NGO), 종교·시민단체, 기업 및 병원 소속 단체 중 사업의 체계성, 지속가능성, 효율성 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11곳이 선발되었다. 지난 5월 25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내 메트로미술관에서 열린 고 이종욱 박사 추모전에 참석한 가톨릭대 해외의료지원단원들과 만나 성 메리 클리닉의 그간 활동과 해외 의료지원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톨릭대 해외의료지원단 단장 이재돈 신부, 구매팀장 여서경씨, 의공기사 조원형씨, 홍승연씨(왼쪽부터). photo 이경민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가톨릭대 해외의료지원단 단장 이재돈 신부, 구매팀장 여서경씨, 의공기사 조원형씨, 홍승연씨(왼쪽부터). photo 이경민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매년 여름 유수 대학병원, 종교·시민단체 등에서 파견하는 수많은 의료봉사단이 각종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한가득 짊어지고 의료수준이 낙후된 개발도상국에 가서 1주일 남짓한 기간 수백 명의 환자들을 진료하고 돌아온다. 몽골은 한국발(發) 의료봉사단이 가장 많이 찾는 목적지 중 하나다. 날씨가 좋은 6·7·8월 석 달간 수도 울란바토르 공항에는 의료봉사차 몽골에 온 한국인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성스럽고 푸른 몽골의 여름은 짧다. 석탄 연료로 인한 스모그가 공기를 가득 메우고 수은주가 영하 30도를 밑도는 기나긴 겨울철, 몽골을 찾는 한국 의료진은 많지 않다. 오죽하면 몽골에는 ‘1년 중 한국 의료진들이 몰리는 여름에만 건강해진다’는 말이 돈다고 한다. 이처럼 일부 단체들의 의료봉사가 일시적이며 이벤트성 강한 사업으로 진행돼 정작 현지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온 현실에서 1년 내내 빈민층에 무료 진료를 제공하는 상설 진료소인 성 메리 클리닉의 수상은 의의가 크다.

김중호 신부 열정으로 만든 진료소

성 메리 클리닉은 20년 넘게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의사 사제 김중호(71) 신부의 열정과 국내 8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가톨릭대의 인프라가 만나 시작됐다. 1970년대부터 한국의 무의촌과 남미·아프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을 오가며 의료봉사에 종사해왔던 김 신부가 1997년부터 몽골 토브 아이막(Tov Aimag) 지역과 인연을 맺은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2년 전 김 신부가 현역에서 물러나며 이재돈(53) 신부가 제2대 단장에 취임했으며, 가톨릭학원 법인사무국 홍승연(25)씨가 현지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김 신부의 은퇴 후 단원 중 의사는 없지만 사제와 행정직원, 엔지니어들이 현지 몽골 의사들을 도우며 진료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재돈 신부는 창립자 김 신부를 가리켜 “정신적 지주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라고 말했다. “좀 특별한 분입니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신부이기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현재 몽골에서 운영하고 있는 의료지원 사업은 그분이 열정을 가지고 처음부터 맨손으로 일궈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톨릭대 지원단도 처음에는 1년에 한두 차례 다녀오는 단기 의료봉사로 시작했지만, 매년 같은 곳에서 진료를 하면서 곧 단기 봉사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들이 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는 몽골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을 시작해 사회 전반적으로 급격한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도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으나 직업을 구하지 못해 의료보험료도 내지 못하는 빈민층이 생겨났다. 이들에게 보다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늘 고민해온 지원단은 여름 한철 ‘반짝’하는 단기 의료봉사로는 일시적인 도움밖에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대신 돈벌이를 찾아 도시로 왔다가 빈민층으로 전락해버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설 무료진료소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몽골 빈민 연 1만3000여명 혜택

지원단은 2000년부터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몽골 정부의 복잡하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심사를 거쳐야 했지만 마침내 2004년 3월, 몽골 가톨릭 주교관이 내어준 울란바토르 성당 한편에 ‘성 메리 클리닉’이 개원했다. 한 달에 1000여명, 매년 1만3000여명의 환자들에게 내과·소아과·산부인과·물리치료를 포함한 1차 진료를 제공하며, 사회복지사를 고용해서 환자들의 생활을 파악해 가정에서의 질병 관리 및 예방을 돕고 있다.

8명의 의료진은 모두 현지인이며, 서울의 운영진이 1년에 수차례 몽골을 방문해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고 발전 방향을 이끌어낸다. 기증받은 억대의 의료기기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엔지니어가 1년에 수차례 방문해 수리와 관리 교육을 한다. 현지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홍씨는 1년에 대여섯 차례 몽골을 방문한다고 한다. “현지인들과 자주 부딪치면서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습관을 키우게 됐죠.”

설립 이후 지금까지의 6년은 기초를 다지는 시기였다고 이 신부는 말한다. “초창기의 성 메리 클리닉은 김중호 신부님의 열정과 카리스마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김 신부님은 몽골에서 명예국민·명예의사 표창을 받을 정도로 몽골에 헌신하셨던 분이죠. 하지만 김 신부님이 은퇴하신 이후로도 클리닉 운영이 지속될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성 메리 클리닉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된 이후, 경영을 위한 기금 조성은 서울 지원단의 주 업무가 되었다. 성 메리 클리닉의 운영에는 연간 10만달러, 약 1억5000만원의 재정이 들어간다. 가톨릭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매년 4만달러를 지원해주지만, 나머지 6만달러는 매년 일일이 조달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김 신부님께서 직접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필요한 기금을 모아오셨죠. 김 신부님이 물러나신 지금, 기존의 후원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2009년 3월 김 신부에게 단장 직위를 물려받은 뒤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한 이 신부는 “울란바토르에 도착한 순간 ‘내가 정말 큰일을 맡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아직 성 메리 클리닉은 재정을 우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보내지 못하면 이곳은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테니까요.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지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만,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 신부는 지원단의 사업을 “무한(無限) 책임”이라 부른다. “현재 국내 최고 수준의 가톨릭 중앙의료원도 60~70년 전 해외 의료지원 덕분에 시작한 진료소가 아니었습니까. 성 메리 클리닉도 마찬가지로 진료소에서 병원으로, 궁극적으로는 의과대학까지 아우르는 몽골의 중추적 의료기관으로 발전할 때까지 지원하고 싶습니다.”

해외 의료봉사 실태 설문조사

캄보디아·몽골 많이 찾아…

1회 평균 환자 685명

성 메리 클리닉에서 진료하던 당시의 김중호 신부. photo 가톨릭학원 법인사무국
성 메리 클리닉에서 진료하던 당시의 김중호 신부. photo 가톨릭학원 법인사무국

지난 5월 24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2007~ 2009년 3년간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수행해온 국내 62개 민간단체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주간조선에 제공했다.

그간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원조단체협의회,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등에서 회원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추산한 통계는 있었지만, 민간 부문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해외 의료지원의 전반적 실태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자료는 이번이 처음이다. 설문을 주관한 정경희 홍보팀장은 “140여곳의 시민단체, 각 종교 소속 의료선교단체, 대학 및 기업, 의료기관 사회공헌팀의 리스트를 작성했으며, 이 중 62개 단체가 설문에 응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응답 단체의 연간 예산은 1억원에서 5억원 사이가 24%로 가장 많았다. 500만원 미만인 단체도 21%나 됐고 10억원에서 100억원의 예산을 운영하는 대형 단체도 14%로 조사됐다.

활동 내역을 보면 95%의 응답 단체들이 무료 진료를 실시하고 있으며, 57%가 보건위생교육, 52%가 진료소 건립 및 의료시설 지원, 43%가 현지 의료진 교육 활동을 실시하고 있었다.

파견 지역은 동남아시아(71%), 극동아시아(47%), 서남아시아(45%), 아프리카(27%), 구 소련 연방국가(25%), 중남미(9%) 순으로 나타났으며, 개별 국가로는 캄보디아(39%), 몽골(36%), 베트남(32%) 순으로 많이 찾았다. 1회 의료봉사단들의 평균 체류 기간은 19.8일. 그러나 실제 의료활동을 실시하는 기간은 10일 미만이라는 응답이 95%나 됐다. 1회 의료봉사 시 평균 진료환자 수는 685명이었다.

진료 과목은 내과가 79%로 가장 많았고, 안과(66%), 치과(64%), 외과(63%), 소아청소년과(59%)의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 단체들은 활동 중 현지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재정확보 및 경비부족(50%)과 해당국가 허가과정(43%), 현지시설 및 약품 부족(38%) 등을 꼽았다.

심혜기 인턴기자·미 브라운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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