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 6·2 지방선거 결과로 뽑힌 16개 시도교육감 중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교육감(6명)의 비율이다. 과반에 미치지 못했고 그중 절반은 민주당 텃밭으로 불리는 곳(전남·전북·광주)에서 당선됐지만 의미는 상당하다. 특히 서울과 경기에서 거둔 승리는 상징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서울시교육감이 집행한 예산은 6조8900억원, 경기도교육감이 집행한 예산은 8조969억원이었다. 웬만한 광역시 한 해 살림보다 더 큰돈을 주무르는 자리다. ‘수도(권)’ 프리미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선거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자를 탄생시킨 일등공신 중 하나가 바로 무상급식이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자는 일찌감치 무상급식을 공약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공약집에서 현재 관내 농·어촌 초등생으로 한정된 무상급식 적용대상을 2012년 초등생 전원, 2014년 중학생 전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김 당선자가 밝힌 총 소요예산은 6613억원(2014년 기준). 그는 “교육청 예산에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투자를 유치해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참여연대·전국교수노조 등 진보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가 출범식을 가졌다. / 조선일보
지난 3월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참여연대·전국교수노조 등 진보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가 출범식을 가졌다. / 조선일보

진보 진영 단일화 후보였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도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확대’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관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2011년부터, 고등학교는 2012년부터 무상급식을 전면 도입하겠다는 게 골자다. 곽 당선자의 공약 중엔 △지역교육청 산하에 급식교육지원센터를 설치하고 △현재 중학교 33%, 고등학교 15%에 불과해 전국 꼴찌인 직영급식 전환율을 임기 2년 이내에 10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무상급식은 성향과 관계없이 이번 선거의 인기 슬로건이기도 했다. 수년 전부터 무상급식을 실시해오고 있는 경상남도에선 교육감 후보로 나선 6명 전원이 무상급식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무상급식 도입은 지자체장 선거 예비후보자 사이에서도 자주 거론됐다.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던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3월 14일 기자간담회를 자청, “무상급식을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건 시대착오적 이념병 증세”라며 한나라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강성호 대구 서구청장 후보(한나라당)도 5월 28일 “서구를 무상급식 시범지역으로 추진해 초·중·고교에 전면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김상곤 당선자 ‘무상급식’ 선도

무상급식이 처음부터 6·2 지방선거의 핵심의제였던 건 아니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무상급식이었지만 그동안은 다른 이슈에 가려 큰 빛을 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경남·전남·과천 등 일부 시도에선 몇 년 전부터 이미 무상급식이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무상급식이란 용어 자체도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자칫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뻔한 이 화두를 다시 끌어올린 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자였다.

지난해 5월 18일 열린 제199회 경기도교육위원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당시 도교육감이었던 김 당선자는 혁신학교·무상급식 확대·고교평준화 확대 등 3대 핵심정책 추진의사를 밝히고 무상급식 3단계 추진방안 등 구체적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조돈창 위원을 포함한 교육위원들은 “도교육청이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급식예산에 사용할 예산을 전용할 우려가 있다”며 일제히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후보 때부터 무상급식을 핵심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김 당선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당장 그해 6월 23일 도서벽지와 농·산·어촌 초등생, 300명 이하 소규모 학교 학생의 무상급식 예산 171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이 예산은 도교육위원회에서 50% 삭감된 데 이어 7월 도의회 본회의에서 전액 삭감됐다. 12월엔 진종설 경기도의회 의장(한나라당)이 도내 초등 5~6년생 30만여명의 무상급식 예산 394억원을 삭감하는 내용의 ‘2010 경기도교육청 수정 예산안’을 상정했다. 이 안은 찬성 64표·반대 1표로 가결됐다.

이런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여론은 들끓었다. 예산 삭감에 앞장선 교육위원 7명은 ‘7적(敵)’으로 불리며 인터넷에서 명단이 빠르게 ‘펌질’됐고 인터넷 포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선 ‘경기도 교육위원회 각성 촉구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삭감에 반대했던 이재삼·최창의 교육위원은 6월 24일부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 내 학부모게시판은 교육위원을 성토하는 글들로 급속히 채워졌다. 반면 김 교육감에겐 ‘용기 있다’ ‘존경스럽다’ ‘지지한다’는 평이 잇따랐다.

‘모든 학생에게 공짜로 점심식사를 제공한다’는 무상급식의 논의 자체는 이념과 무관하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진보 진영 단일화 후보로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무상급식 정책 추진과정에서 반대에 부딪히고, 그 행동이 뜻밖에 여론의 지지를 얻으면서 무상급식은 지방선거를 앞둔 야당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호재(好材)’로 작용했다. 한나라당이 진보 진영 교육감·교육의원 선거를 ‘반(反)전교조’ 코드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무상급식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좇을 수 있는 대안이기도 했다.

정치 구호로 확산된 무상급식 논란

야권은 즉각 행동 개시에 나섰다. 지난 3월 2일 국회의원회관에선 ‘무상급식 입법화와 예산 확보를 위한 3자 정책협의회’가 열렸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이종걸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민주당)이 주최한 자리였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3월 12일 “호화청사와 4대강 공사를 줄이는 대신 무상급식을 확대하자”고 한나라당에 제안했다. 4월 12일엔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5개 야당 대표가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 △영·유아 보육시설과 고등학교 무상급식 단계적 실시 등의 내용이 담긴 친환경무상급식 정책 협약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무상급식 전면 도입을 외치는 이들의 논리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상급식은 복지가 아니라 교육이란 입장이 첫 번째다. △급식과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교육의 일환이고 △헌법 31조 3항에서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으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이들 학교의 급식 역시 무상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22조원 규모의 4대강 사업만 포기하면 10년은 너끈히 무상급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무상급식 도입 반대논리로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제기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얘기다.

무상급식을 도입하면 배식요원 등 고용 창출과 안정적 판로 확보를 통한 농가 수익 개선 등 부수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자주 등장한다. 현재와 같은 선별적 무상급식제도는 대상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학생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닌 학생이 무상급식 대상자가 되려면 각종 증빙서류를 제출하거나 담임교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지난해 서울의 경우 무상급식 대상 초·중·고교생 12만4203명 중 12%에 해당하는 1만4940명이 이런 절차를 거쳐 급식비를 면제 받았다.

무상 급식 경남, 수능성적은 하위권

그러나 반대논리도 만만찮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건 우선순위 문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4월 한 인터뷰에서 “무상급식을 하면 학생 한 명당 한 달 평균 5만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지만 월수입 100만원도 안 되는 집 사교육비가 6만원인 세상”이라며 “무상급식 안 받아도 되는 고소득층에 쓸 돈이 있다면 차라리 방과후학교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장 성공적인 무상급식 모델 도입지역으로 꼽히는 경상남도의 최근 5년간 수능성적은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무상급식과 4대강 사업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것 대신 저것’ 식으로 판단하는 시각에 대한 비판도 있다. 최혜정 학부모신문 편집인은 “4대강 사업은 혈세 낭비일 뿐이라면서 그 돈으로 무상급식 10년 할 수 있다는 계산은 어불성설”이라며 “수십조원의 ‘막 써도 되는 돈’이 있다는 전제로 따지면 다른 듯 보이는 두 주장도 실은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소외계층을 위한 공부방 지원사업도 ‘밥’이 아닌 ‘지적 허기’를 달래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하물며 학교현장의 문제가 어떻게 밥으로 해결되겠느냐”며 “진짜 중요한 건 사교육보다 경쟁력 있는 공교육인데 그걸 지적하기 시작하면 교사들이 고달파지니 그 얘긴 안 하고 ‘공짜 밥’으로 해결하려는 안일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무상급식 도입을 주장하는 정치인 대부분이 뚜렷한 재원(財源) 확보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번 선거에서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 중 ‘돈은 이렇게 마련하겠다’까지 밝힌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있다 해도 ‘지자체 도움을 받겠다’ ‘국민 후원을 받겠다’ 등의 뜬구름 잡는 얘기뿐이었다. 한 구청장 후보는 “관내 학생 2만7000여명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80여억원의 추가예산은 당과 중앙정부에 요청해 무상급식 시범지역으로 지정하는 방법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시범지역 지정이 안 되면 공약 자체가 물거품이 되는, ‘실현 가능성 희박한’ 계획이었다.

부수효과 부분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상급식 도입 찬성론자들은 “무상급식을 도입한 지역에선 관내 노인들을 배식요원 등으로 활용해 일자리 창출의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학교와 농가 간 직거래 시스템을 통해 농가 수익도 안정적으로 보전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보 진영이 그토록 비난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5월 말 현재 공정률이 13%대이지만 시공·감리·노무인력 등의 임금소득을 비롯, 일자리 창출로 인한 가계 지급 비용이 월 200억원을 넘어섰다. 부수효과 운운하는 주장은 ‘무상급식은 교육’이란 이들의 당초 입장과도 어긋난다. 그때그때 판단의 잣대가 달라지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만 무상급식을 제공하면 대상자가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전직 중학교 가정교사 손미영(가명·34)씨는 “대다수 교사들이 급식비 업무를 꺼려해 행정실이 일괄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연락수단으론 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이용돼 교실에서 급식비와 관련해 학생들이 곤란을 겪을 일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양인자 전 서울 시흥중 교장은 “무상급식 대상자 여부는 담임교사만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교사가 따로 발설하지 않는 한 학생들은 누가 공짜 점심을 먹는지 알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학교급식법 개정법률안 ‘발등의 불’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섰다가 중도 포기한 이경복 전 서울고 교장은 예비후보 시절 공약에서 무상급식 대신 ‘무상 행복점심’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급식(給食)이란 용어 자체가 군대나 수용소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던 식사를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대상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가 주장했던 무상 행복점심 역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건 아니었다. “교육현장에선 무상급식보다 시급한 이슈가 너무 많습니다. 영·유아 의무교육이나 무상보육은 맞벌이부부 증가, 저출산 문제 등과 맞물리며 날로 중요해지고 있지요. 5.8%에 머물고 있는 사서(司書)교사 보급률 확대 문제는 또 어떻고요. 무상급식 대상자의 심리적 위축감을 없애고 잠재적 대상자를 조금씩 늘려나가는 건 찬성이지만 모두에게 공짜 점심을 줘야 한다는 논리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무상급식 전면 도입을 강하게 주장해온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당선으로 무상급식 관련 정책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당장 지난해 권영일 민주노동당 의원과 김춘진 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하고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회부된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 처리 문제가 도마에 오를 예정이다. 이들 법률안은 각각 의무교육 대상자인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무상급식 전면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난 3월 16일 발족한 시민연대기구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의 활동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급식·환경·여성·농민·종교 등 전국 2100여개 단체가 참여한 이 기구는 발족식에서 “초·중학교 무상급식 의무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지금 단계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무상급식 관련 논의의 ‘핵심’을 읽고 정책 입안자와 집행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제대로 감시할 줄 아는 시민들의 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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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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