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오전 11시30분 경기 의왕시 청계동에 위치한 덕장중학교 2층의 한 교실. 1학년 학생들의 국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단원명은 ‘공감하며 읽기’. 시·청각 장애를 딛고 성공한 미국의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1880~1968)의 자서전 읽기에 앞서 관련 동영상 자료 등을 시청하며 배경지식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독특했던 건 책상 배열 방식이었다. 대여섯 명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책상을 모둠 단위로 붙여놓았다. 책상들은 전체적으로 교탁을 향해 ‘ㄷ’자 모양을 이뤘다. 판서하기 쉽도록 칠판 쪽에 치우치게 마련인 여느 수업과 달리 교사가 모둠 사이를 파고들어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는 광경이 수시로 연출된 점도 인상적이었다. 모둠별 토론으로 진행된 수업 내내 학생들의 낮은 웅성거림이 교실을 채웠다.

바로 옆 교실엔 ‘수학 교과 교실’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풀이에 열중하는 학생 수가 언뜻 봐도 국어교실보다 훨씬 적었다. “수준별 이동수업이에요. 학업 성취도에 따라 상(上)반과 하(下)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하지요. 대개 한 반 정원의 3분의 2가 상반, 나머지가 하반으로 배치됩니다. 여기서 진행되는 수업은 상반 수업이고요.” 도움말을 준 우창훈 교감의 설명을 듣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경기도 교육청 지정 혁신학교 중 한 곳인 덕장중 1학년 학생들이 국어수업을 받고 있다. /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교육청 지정 혁신학교 중 한 곳인 덕장중 1학년 학생들이 국어수업을 받고 있다. /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토론하기 쉽게 책상 ‘ㄷ’자 배열

덕장중학교는 올 3월 첫 입학생을 받은 신설 학교다. 학생은 1학년 3개 학급 98명이 전부. 교사 수는 교장·교감을 포함해 12명에 불과하다. 규모가 작다는 것 말고도 이 학교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개교와 동시에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일명 ‘혁신학교’로 지정된 것. 2010년 6월 현재 경기도 내 초·중·고교 중 덕장중을 포함, 총 33개교가 혁신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혁신학교란 ‘교육 내용을 다양화하고 창의성과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향상시켜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는 목표 아래 탄생한 새로운 학교 형태다. 학급당 학생 수를 제한, 수업 집중도를 높여 학교 수업만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요구하는 수준까지 학업 성취도를 달성하겠다는 게 기본 목표. 혁신학교 설립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지난해 5월 당선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승화 덕장중 교장은 “혁신학교 모델 도입의 성과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면서도 “이제 출발해 시스템을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선 다른 학교보다 우리 학교가 다소 유리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덕장초등)가 인접해 있고 재학생 대다수가 덕장초등 졸업생인 만큼 학부모의 협조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원활한 것도 덕장중의 혁신학교 실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 교장에 따르면 같은 혁신학교라도 저마다 강조하는 ‘포인트’가 따로 있다. 덕장중의 ‘포인트’는 다채로운 교육 과정이다. “학생 중심의 교육 과정을 완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5개 교과의 교과 교실제 도입이나 원어민 강사 도입을 통한 영어 팀티칭(team-teaching) 수업, 수학 수준별 이동수업이 그 예지요.”

공개수업에 학부모 50% 이상 참석

다양해진 교육과정의 성패를 가늠하는 두 축은 공개수업과 교원연수다. 최 교장은 “아직 1년차밖에 안 된 학교인 만큼 공개수업과 교원연수를 여러 차례 실시하고 거기서 나온 반응을 다음 번 수업에 반영하며 혁신학교의 기반을 갖춰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맥락에서 학기집중이수제나 제2외국어(중국어·일본어) 선택이수제 등 새로운 제도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육의 성과를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으로만 가늠한다면 덕장중의 혁신학교 실험은 일단 성공적이다. 김은정(42) 덕장중 학교운영위원회장은 “아직 피부로 와닿는 구체적 성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획일적 교육을 떠나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학교 측 방침은 학부모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공개를 비롯해 각종 의사결정 과정에서 학부모를 참여시키려는 시도 역시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

실제로 지난 6월 5일 개최된 학부모 공개수업 현장의 학부모 출석률은 50%를 넘어섰다. 최승화 교장은 “토요일이라 어느 정도 호응은 예상했지만 과반 이상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와 깜짝 놀랐다”고 했다. 김은정 위원장은 “처음엔 아이가 검증 안 된 신설교로 배정 받은 게 불안했지만 요즘은 일반 중학교에 자녀를 보낸 지인들이 하나같이 ‘거기 어떠냐’며 관심을 보이더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신현솔양은 “처음엔 집 가까운 데 있어 별 생각 없이 입학했는데 지금은 혁신학교에 다니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제일 좋은 건 토론 위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거예요. 일반 중학교보다 수업 분위기도 덜 엄격하고 재미있죠. 양파 껍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친구들과 생물 표피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김진광군의 생각도 비슷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꿈이라는 김군은 “선생님이 하는 얘길 수동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아니라 친구들과 마음껏 의사소통할 수 있는 토론식 수업이 굉장히 흥미롭다”며 “머리 길이를 비롯, 규제가 심하지 않아 일반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특히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과목은 국어와 과학. 둘 다 토론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물론 새로운 제도 시행엔 ‘돈’이 든다. 특히 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최 교장은 “영어 원어민교사와 수준별 이동수업에 투입되는 수학 시간강사의 인건비는 의왕시에서 지원받고 있다”고 밝혔다. 교사 잡무 경감을 위해 채용된 행정 보조인력(1명)과 지난 5월 25일 개관한 도서관 사서(1명)의 인건비 역시 도교육청에서 내려온 혁신학교 지원용 예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교사들의 업무 부담도 상당하다. 국어과를 담당하는 양선미(50) 교무부장은 “연차와 관계없이 모든 커리큘럼을 학생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교사의 고유 영역으로 인식돼온 수업 현장을 시시때때로 공개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덕장중의 경우 동료 교사는 물론, 학부모에게까지 평균 월 2회가량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교사들 업무 부담 늘어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지난 3개월간 덕장중의 ‘혁신학교 실험’은 비교적 성공적이란 평가를 얻고 있다. 우창훈 교감은 “무엇보다 학생과 학부모가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학부모의 호응은 향후 학교 업무 진행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게 학교 측 판단이다. 양선미 교무부장 역시 “강의식 수업보다 아이들의 집중도가 한결 높아져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할 때마다 신이 난다”고 했다.

혁신학교 1차연도를 성공적으로 보내고 있는 최 교장은 요즘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시범학교인 만큼 우리의 시도가 하나의 모델이 돼 ‘혁신학교란 이런 것!’을 보여줄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무사히 그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밀려오는 파도에 잘 올라타느냐, 아니면 흐름을 잘못 타 물속으로 빠지느냐의 기로인 거지요. 그런 점에서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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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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