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지난 6월 4일 오후 서울 공진중학교(강서구 가양동)를 방문했다. 신임 교육감으로서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이 학교는 곽 당선자가 교육감 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서울형 혁신학교’의 후보지 중 한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혁신학교 모델을 통해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공교육 혁신방안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공약대로라면 내년 50개를 시작으로 2014년까지 총 300개의 혁신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다.

이보다 하루 앞선 6월 3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자는 당선 후 처음으로 도교육청 직원조회를 주재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공교육 정상화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 받았던 혁신학교를 발전시켜 혁신교육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고 학력에 대한 혁신을 이룰 것”이라고 역설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올 2월 1일 발표한 ‘혁신학교 5개년 추진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13개교가 시범운영됐던 혁신학교는 올해 50개교, 2011~2012년 100개교, 2013년 200개교로 각각 확대된다. 2014년엔 경기도 내 전체 학교에 혁신학교 모델이 적용될 전망이다.

후보자 시절부터 혁신학교 설립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왼쪽)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자. / photo 뉴시스
후보자 시절부터 혁신학교 설립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왼쪽)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당선자. / photo 뉴시스

경기, 2014년까지 전 학교로 확대 계획

진보 성향의 곽노현·김상곤 후보가 각각 서울시교육감과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되면서 그들의 핵심 공약이었던 이른바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혁신학교 이슈 자체는 지난해 이미 경기도교육청이 들고나왔던 것이어서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김상곤 교육감은 지난해만 해도 한나라당 출신 도교육위원회 위원들의 견제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보수 교육감’을 자임한 공정택 당시 서울시교육감과의 공조는 아예 기대할 수 없었다.

올해는 판세가 역전됐다. 당장 민주당의 6·2 지방선거 약진으로 여론 자체가 김 당선자에게 우호적이다. 여기에 그와 노선을 함께하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까지 혁신학교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경기도 교육위원회도 이번 선거 결과 전체 위원 7명 중 3명이 진보진영 인사들로 채워짐으로써 지난번보다 훨씬 숨통이 트였다.(서울시 교육위원회의 경우 전체 위원 8명 중 3명이 진보진영 인사) 여러모로 혁신학교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두 당선자가 표방하는 혁신학교의 개념은 상당 부분 겹친다. 지난해 6월 4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내부 토론회에서 혁신학교는 각각 “자발성·지역성·창의성·공공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학교”(김성천 좋은교사운동 정책실장),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와 달리 소외계층 지역과 학생이 중심이 돼 교육기회뿐 아니라 교육결과의 평등까지 지향하는 학교”(이성대 안산공대 교수)로 정의됐다. 곽노현 당선자는 서울형 혁신학교에 대해 “낙후된 지역 학교에 창의력·인성·적성·진로 요소를 구현해 최고 학교를 따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 학교가 최고 수준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수 학생을 ‘잘 뽑는’ 학교가 아니라 평범한 학생을 ‘잘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점에서 두 모델은 일맥상통한다. 교사 업무 경감,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도 중복되는 부분이다.

혁신학교에 대한 세간의 반응을 점치려면 지난해 2학기부터 혁신학교를 지정, 운영해오고 있는 경기도교육청의 사례를 들여다봐야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혁신학교 중 몇 곳은 이미 주변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입소문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 9월 개교와 동시에 혁신학교로 지정된 성남 보평초등학교(분당구 삼평동)는 서술형 평가·80분 수업·미니스쿨(학교 내에 서로 다른 교육과정을 적용하는 ‘작은 학교’를 두는 제도) 등 독특한 학사운영방식이 알려지며 전입생이 몰리기 시작해 인근 전셋값 폭등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학교 측은 “공립학교여서 전입생을 가려 받을 수 없는데 현재로선 추가로 학생을 수용할 환경이 안 된다”고 밝혔다. 김경철 보평초등 교감은 “학교가 더 이상 외부에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취재 요청을 고사하기도 했다.

인근 주택 값 상승도

사실 혁신학교의 기본 골격은 새로운 게 아니다. 개념도, 명칭도 비슷한 일명 ‘공영형 혁신학교’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 의해 처음 등장한 바 있다. 최재성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 ‘공영형 혁신학교 새로운 대안인가?’에 따르면 공영형 혁신학교는 혁신의지가 강한 운영주체에게 학교운영권을 위탁하고 대폭적 자율권과 책무성을 부여함으로써 교육과정 운영과 교수·학습방법 등을 혁신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다. 공영형 혁신학교는 김진표 당시 교육부총리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혁신’은 노무현 정권이 내세운 대표적 슬로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공영형 혁신학교는 논의단계에서부터 ‘정권과 코드 맞추기’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노무현 정권에서 시범운영에 그쳤던 공영형 혁신학교 구상과 현재 운영되고 있는 경기도교육청 지정 혁신학교와는 학교운영권 위탁 유무의 측면에선 다소 차이가 있지만 유사한 점이 많다. 특히 △교육과정의 다양화·특성화 △무학년제 운영 △교원연수 프로그램 개발 △소규모 학급 편성 △교장 공모제 및 교사 초빙제 도입 등은 표현이 다를 뿐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표 참조>

흥미로운 것은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는 공영형 혁신학교가 진보진영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었다는 점. 2006년 토론회 당시 발표자로 나섰던 전교조 출신의 이철호 범국민연대 정책실장(현 진보전략회의 회원)은 공영형 혁신학교에 대해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면 자사고 시범운영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확대 재생산될 것”이라고 전면 비판했다. 또 다른 발표자였던 윤지희 교육과시민사회 공동대표(현 사교육없는세상 공동대표)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교육과정 운영 속에서 무학년제를 실시하면 선수학습을 부추길 우려가 있고 결국 사교육 유발과 성적 중심 교육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전교조와 성향을 함께하는 학부모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 회장 출신이다. 전교조나 참교육학부모회는 김상곤·곽노현식 혁신학교 모델을 지지하는 대표적 단체다. 동일한 소프트웨어가 상황에 따라 정반대로 평가되는 것이다.

보다 시급한 사안에 처리돼야 할 예산이 혁신학교 운영에 쏠리는 문제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교육위원회는 지난해 6월 23일 열린 임시회 추경예산안 심의과정에서 도교육청이 올린 혁신학교 운영비 28억27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에 따라 도시 슬럼지역의 도시형 학교·농촌지역의 소규모 전원형 학교·신도시 지역의 신설 학교 등 3개 유형으로 추진될 예정이던 혁신학교 사업은 사실상 무산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학부모와 학생의 호평이 이어지자 이듬해 2월 학교당 2억원 내외의 운영비 지원계획이 확정됐다. 교육은 ‘내 아이’가 걸려 있는 이상 이기적 속성을 띨 수밖에 없다. 혁신학교 정책이 일부 교육수요자의 호응을 등에 업고 자칫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념적 잣대에 따라 달리 평가

오성삼 건국대 교육공학과 교수는 “미래사회의 교육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새 교육감 당선자들의 혁신학교 공약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면서도 “교육정책을 실행할 땐 면밀한 수요조사를 거쳐 우선순위를 파악한 후 그에 따라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데 각자의 이념적 성향을 교육에 주입하려다 보면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입시 위주 경쟁을 탈피하고 학습자의 잠재력을 부각시키겠다는 두 교육감 당선자의 취지는 동의하지만 현재의 혁신학교 계획엔 구체적인 ‘알맹이’가 빠져 있다”며 “좀 더 가시화된 실천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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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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