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교원평가제 합리적 개선 관철, 수업공개 학교 자율 결정, 교장공모제 확대 저지, 지방교육자치법 무효화 운동 전개, 주5일제 수업 전면실시 법제화…. 지난 6월 21일 당선된 안양옥(53) 신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 회장의 선거 공약은 대부분 이명박 정권의 교육 정책에 칼끝을 겨누고 있다. 같은 교원 조직이면서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과 달리 정부의 교육 개혁을 사실상 지지해온 전임 이원희 회장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그렇잖아도 MB(이명박 대통령)교육은 정부 방침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있는 전교조에 서울·경기지역 진보교육감 당선까지 겹치며 표류 중이다. 벌써부터 일부에선 ‘안양옥호(號) 교총’ 출범이 MB교육의 새로운 암초가 될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취임 이틀째인 6월 23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 한국교총 회장실에서 만난 안 회장은 언동에 거침이 없었다. 기자회견(6월 21일) 이후 터져나온 몇몇 언론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확신에 찬 어조로 90분 내내 자신의 교육관을 말했다. “교사와 군인은 나라를 떠받드는 기둥이란 점에서 동급이다” “성직자까진 아니어도 교사를 판·검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으로 인정해야 한다”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팽창의 원인은 대학수학능력시험제도에 있다” 같은 폭탄 발언이 시종일관 이어졌다. 그는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때만 해도 교육이 정치에 동원되진 않았다. 교사를 홀대하는 요즘 풍토는 (군사정권이 끝난)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도 했다.

안 회장은 중·고교 교사와 대학교수를 두루 경험했고 대학(서울교대)에선 예비 초등교사를 가르쳐왔다. 때문에 유치원 교사부터 대학교수까지 아우르는 국내 최대(회원수 18만3000명)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 자신도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교육자이자 학자”라며 “교원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인정받는 한국교총이 되도록 몸을 던져 일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 도중 그는 자주 언론에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교육을 일회성 이벤트로 다루는 언론이 교육의 본질을 그르친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교육은 이해당사자 간 토론을 거쳐 장기적으로 정련해 나가야 할 문제”라며 “한국교총이 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취임한 지 이틀이 지났다. ‘한국교총 회장’으로 지낸 이틀은 어땠나. “내 평생 휴대폰 배터리가 30분 만에 나가보긴 처음이다. 끝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내게 주어진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했다. 서울교총 회장도 해봤지만 그땐 무투표 당선이어서 선거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이번엔 전국 16개 시도를 돌며 수많은 교사를 만났다. 솔직히 처음 출마할 땐 ‘교총 일을 제법 해봤으니 선거 한번 나가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다. 하지만 쏟아지는 격려전화에 힘이 난다. 선거란 행위가 주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교원평가제와 교장공모제 관련 발언을 놓고 말들이 많다. “원래 내 전공이 교사 교육이다. 교사 전문성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교원평가제나 교장공모제에 관해서라면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 기자회견 때 그 부분을 말한 건데 아직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교사는 단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일종의 트랜스포머(transformer·변용자)다. 지식을 머릿속에서 내재화해 지혜로 바꾸는 교사의 전문성, 그게 공교육의 핵심이다. 그 과정은 자연스럽고 구속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사 스스로 사색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완성된다. 현행 교원평가제나 교장공모제는 각종 압박을 통해 인위적으로 지혜를 만들어내라고 강요한다. 이건 아니다.”

평가 없는 직종은 없다. 교사도 예외일 순 없지 않은가. “군인과 교사는 국방과 교육을 책임진다는 면에서 나라를 떠받드는 기둥이다. 열정과 사기를 북돋워 신명나게 일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평가로) 자꾸 압박하면 교사는 교실로 피해간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이 입는다. 수업 공개만 해도 그렇다. 현재 학기당 4회 하게 돼 있는데 너무 잦다. 공개수업은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동반한다. 거기 매달리다 보면 나머지 수업은 대충 할 수밖에 없다. 평가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하려면 제대로, 신중하게 하자는 말이다. 자칫 아이를 씻기려다 목욕통 씻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현행 교원평가제를 보완할 구체적 대안이 있나. “교육엔 보이는 효과와 보이지 않는 효과가 있다. 교사가 가르친다고 학생이 다 받아들이나. 지식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합성해 전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고 그 노하우는 교사의 오랜 현장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 관점에서 교사의 능력을 보면 제일 중요한 건 자기평가다. 그런데 외부, 특히 언론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교사의 자정(自淨)능력을 무시하는 처사다. 교사는 특수직이다. 판·검사나 의사와 동급으로 봐야 한다. 판사의 판결 행위를 놓고 누가 이러쿵 저러쿵 평가하나. 우리 사회는 교사를 너무 일반직화(化)하고 있다. 스승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예전 성직(聖職)관까진 아니어도 일반직 취급은 곤란하다.”

자기평가만으로 교원평가제를 대체할 순 없다. “교사가 평가 결과를 신뢰할 수 있도록 평가 도구와 기법, 비중이 조정돼야 한다. 예컨대 대학에선 평가자인 학생과 피평가자인 교수가 둘 다 성인이다. 학생 평가 비중을 높여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생은 다르다. 실제로 ‘빵 안 사주면 점수 잘 안 주겠다’고 선생님을 협박한 초등생도 있었다. ‘우리 애한테 잘하는 교사’만 좋아하는 학부모 평가점수 반영비중을 30%씩 배정하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잘못하면 제도의 도입 취지는 사라지고 ‘평가’란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1만2000개나 되는 학교 교사를 평가하는 일이다. 광범위하고 신중한 현장조사가 필요하다.”

현행 교원평가제도 상당 기간 시범운영 과정을 거쳤다. “선진국도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평가하는 제도가 있는지 의문이다. 모르긴 해도 없는 곳이 많을 것이다. 그런 나라의 교육 질이 낮아졌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 없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교원평가제는 너무 급진적이다. 제발 교사를 평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전문가인 만큼 알아서 열심히 해보라’며 믿어달라. 혼낼 땐 혼내더라도 달랠 건 달래가면서 가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교사들을 전부 계약직으로 채용해 몰아붙여야 하는데, 그러면 매사 학생과 학부모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는 교사만 나올 것이다. 이래선 교육이 바로 설 수 없다. 나는 공교육 옹호론자다. 사교육 한번 안 받고 맨땅에 헤딩하며 여기까지 왔고, 그래서 공교육의 존엄성과 가치를 믿는다. 공교육이 회복되려면 ‘자율과 경쟁’이란 수레바퀴 외에 ‘자발과 능동’이란 수레바퀴도 필요하다.”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엔 ‘사교육에 밀리는 공교육’에 대한 문제 인식이 깔려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본질이 다르다. 공교육은 사교육처럼 ‘결과 만능’일 수 없다. 교수(敎授)환경도 다르다. 1 대 10으로 가르치는 사교육과 1 대 40으로 가르치는 공교육을 왜 같은 잣대로 평가하나.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데 50미터 앞에서 뛴 사람더러 잘했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언론은 사교육 편만 든다. 사교육은 엄청난 효과를 거두는데 공교육은 아무것도 안 한다는 식이다. 정부도 문제다. 학교 환경 개선 노력은 안하면서 정권 바뀔 때마다 교육을 정치에 동원해왔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때만 해도 교직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이후엔 정권 창출 때마다 교사들의 문제점만 끌어내 공격하기 바쁘다.”

그래도 학부모와 학생이 학교보다 학원에 의존하는 세태는 비정상적이다. “사교육이 팽배한 건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문이다. 수능시험은 교과통합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 학교 교육 과정은 다 분과(分科)형이다. 과목별로 쪼개어지는 수업으론 시험 대비가 불가능한 구조다. 게다가 시험 문제는 대학교수들이 낸다. 이론에 의존하다 보니 현장과는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거기서부터 교사들의 혼란이 생긴다. 지금처럼 효율성과 성과, 경쟁만 강조하는 과도한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은 교육을 망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교육 문제를 지나치게 교사 입장으로만 접근하는 것 아닌가. “한국교육은 언제부턴가 세계,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실용주의 교육의 실험장이 돼버렸다. 수능시험제 역시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 통합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대전제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통합교과형 문제로 시험을 본다고 해서 통합적 사고가 형성되느냐 하는 건 다른 문제다. 통합적 사고는 단기간에 훌륭한 교사 한 명 만나 배운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유아기에서 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며 전 생애에 걸쳐 서서히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교원단체 대표이기 때문에 교육문제를 교사 입장에서 먼저 바라본다. 그 자체를 부인하진 않겠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황새걸음으로 앞서가는 교육과정을 교사가 뱁새걸음으로 따라가는 모양새여선 결코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전교조와의 관계는 어떻게 갖고 갈 생각인가. “행정부와 입법부, 교원단체 대표가 정례적으로 토론회를 갖고 교육이슈를 공개논의하자는 게 내 입장이다. 방송 등을 통해 토론과정을 생중계하면 학부모나 국민이 갖는 오해도 줄일 수 있다. 민주적 토론과정을 거치다 보면 사안에 따라선 전교조와 교총이 극적 합의를 도출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처럼 겉으로만 상생과 화합을 외치는 이들과는 함께 갈 수 없다. 자문그룹 태스크포스(TF)를 전교조 출신으로만 구성한 것만 해도 그렇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서울교총과 의논해 동수의 TF 인원도 준비해놨는데 (곽 당선자는) 대화엔 안 나서면서 언론플레이만 하더라. 나는 언제든지, 누구와도 대화하고 토론할 용의가 있다.”

당선 이튿날 이주호 교과부 차관과 통화했다고 들었다. “주문도 많이 받고 내 목소리도 많이 냈다. 차관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어 기조 자체를 바꿀 순 없다’고 했고, 나는 ‘원론적 반대가 없지 않지만 현장 충격을 최소화해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차관에게 ‘현장 방문 많이 하고 교사들 여러 명 만나도 진짜 솔직한 얘긴 못 들었을 거다, 나는 바닥 민심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 내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했다. 일방적이지 않고 상대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상당히 대화가 통했다.”

향후 구체적 활동계획은. “이제까지의 교총은 교사의 전문성 개발보다 이미 수립된 교육정책의 득실을 따져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데 치중해왔다. 나는 교총을 교과 연구회 중심으로 꾸려가고 싶다. 회원 스스로 자신의 교과 특성화를 위해 연구조직을 만들면 교총은 거기에 힘을 실어주는 구조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의 질적 변화를 위해선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또 교육정책과 관련해서도 자체 전문가들로 별도 팀을 만들 생각이다. 정부가 만들어놓은 정책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고민한 정책을 먼저 제안해 반영될 수 있도록 교총의 체질을 바꾸고 싶다.”

임기 3년을 앞둔 각오가 있다면. “올해로 교직생활 30년이 됐다. 솔개는 30년을 산 후 제 부리와 발톱을 빼버리고 산 정상에 올라가 새로운 삶을 산다고 하더라. 나는 기간제 교사부터 시작해 정식 교사, 대학 조교, 시간강사, 고교 이사장, 대학교수 등 안 해본 것 없이 다했다. 초등교사를 못해봤지만 23년간 대학에서 초등교과교육에 매진해왔다. 사실 어제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학생들이 축하인사를 건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임기를 마치면 교수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다신 가르치는 일을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 역시 교사인 아내의 반대까지 뿌리치고 올라온 만큼 몸을 던져 일하겠다.”

안양옥 | 전남 보성 출생으로 서울 효제초등학교, 서울 동성중·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학위. 서울 서초중·동작중·수도여고 교사, 서울대·서울교대에서 조교. 1988년부터 10년간 서울대·단국대·용인대·한국체대 등의 강사를 거쳐 한국교원대 교환교수(1998), 서울교대 교수(1989~2010). 전국교대 교수협의회 회장(2001~2003), 한국체육학회 부회장(2006~2008)을 역임했고 현 교과부 학교체육진흥위원회 위원장과 한국체육정책학회 회장. 한국교총에선 서울교총 서초구연합회장(2003~ 2006), 서울교총 부회장(2005~2007), 서울교총 회장(2007~2008), 한국교총 고등교육정책 특별위원회 위원장(2008~현재) 역임. 부인 주희경씨와의 사이에 1남을 두고 있다.

한국교총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대학까지 아우르는 국내 최대 교원단체. 회원수만 18만3000명에 이른다. 1947년 11월 23일 창립된 조선교육연합회가 전신이다. 1952년 세계교직단체총연합에 가입했으며 이듬해인 1953년 중앙교육연구소를 창립하고 교육공무원법 제정을 실현했다. 현재 명칭으로 전환한 건 1989년 11월이다. 16개 시·도교원단체총연합회로 구성된 지역조직과 초등교사회·중등교사회·초등교장(감)회·중등교장(감)회·대학교수회로 구성된 직능조직, 학교급별·직위별·설립별·성별·전공별 25개 산하단체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교육정책연구소와 한국교육신문사 등도 소유하고 있다. 전회원 직선제로 임기 3년의 회장단을 선출하며 회장단은 회장 1명과 부회장 5명(유·초등학교 2명, 중등학교 2명, 대학교 1명)으로 구성된다.

키워드

#인터뷰
최혜원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