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한국교총이 마련한 교원평가 관련 토론회의 한 장면. 한국교총은 이때만 해도 ‘조건없는 교원평가제 수용’을 선언했지만 안양옥 회장 취임 이후 반대입장으로 돌아섰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해 9월 한국교총이 마련한 교원평가 관련 토론회의 한 장면. 한국교총은 이때만 해도 ‘조건없는 교원평가제 수용’을 선언했지만 안양옥 회장 취임 이후 반대입장으로 돌아섰다. photo 조선일보 DB

“저희 애 학교는 6월 초에 공개수업을 했어요. 하루 날 잡아 1교시부터 6교시까지 교실을 오픈했더라고요. 그렇게 잠깐 들어가서 본다고 어떻게 평가가 제대로 되겠어요. 의무 참석도 아닌데 괜히 갔다가 안 좋은 인상 남기면 어쩌나 껄끄러워하는 학부모도 꽤 있는 것 같고요.”

중학생 자녀를 둔 임은숙씨는 지난 6월 올해 첫 시행되는 교원능력개발평가제(이하 ‘교원평가제’)에 학부모 자격으로 참여했다. 평가는 크게 두 종류로 이뤄졌다. 6월 초 한 차례 이뤄진 공개수업, 그리고 6월 마지막 주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온라인 만족도조사였다.

교사 평가에 학부모 의견이 반영된다는 데 상당한 기대를 가졌던 그는 막상 평가를 마친 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매우 만족’ ‘만족’ ‘보통’ ‘미흡’ ‘매우 미흡’ 등 오지선다형 문항이었는데 박한 평가를 내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으레 ‘만족’이나 ‘매우 만족’을 선택하게 되더군요. 내 아이가 듣는 수업 진행방식을 볼 수 있어 좋았지만 학부모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통에 학생들의 주의가 산만해질까 봐 내심 신경도 쓰였어요.”

임씨가 평가에 참여한 학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 공립중학교. ‘교육 1번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오프라인 평가’에 해당하는 공개수업의 학부모 참여율은 50%를 밑돌았다. 수업공개일이 단 하루에 불과해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의 경우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아 특히 참여율이 저조했다. 임씨는 “학부모가 참여하는 형태의 교원평가는 반드시 필요하고 계속돼야 하지만 방법 면에선 여러 가지가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진보교육감 취임 후 본격 반대 움직임

올 3월부터 전면시행 중인 교원평가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요즘이 실제 평가시기이기 때문.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작성, 배포한 ‘2010학년도 교원능력개발평가 표준 매뉴얼’에 따르면 매년 1회 이상 하도록 돼 있는 평가 권장시기는 ‘학생·학부모는 학기 말, 동료 교원은 10월 말’이다. 실제로 본지 취재 결과, 대부분의 학교가 6월과 7월에 학생·학부모 평가를 끝냈거나 진행 중이었다. 일부 학교에선 10월 말로 돼 있는 동료교원 평가도 이 시기에 맞춰 완료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오랜 진통 끝에 법제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원평가제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 이런 움직임은 6·2 지방선거 결과 당선된 6개 시도의 소위 ‘진보 교육감’, 그리고 지난 6월 21일 당선된 안양옥 한국교총 신임회장 등이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진보교육감 중 한 명인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7월 1일 전북교육청 홈페이지 ‘알림마당’에 ‘전라북도교육청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시행에 관한 규칙 폐지규칙(안)’을 입법예고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의 시행을 지방교육청이 반대하고 나선 모양새다.

전북교육청은 교원평가제 시행에 관한 규칙 폐지 이유에 대해 △현행 교원평가제는 법적 근거가 없고 △교원이 사회적 존경과 높은 긍지,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수업과 학생지도 관찰이 어려운 학부모의 교사 평가 결과는 객관성·타당성·신뢰도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안양옥 회장 역시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교사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므로 현행 교원평가제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부에선 벌써부터 “전북교육청발(發) ‘교원평가제 폐지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학생·학부모·동료교원, 3가지 평가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쪽 논리의 저변엔 ‘현행대로라면 평가가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려면 실제 평가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들여다보는 게 우선이다. 주간조선은 익명의 소식통으로부터 서울시내 초·중·고교 네 곳(초등학교 1·중학교 2·고등학교 1)에서 시행됐거나 시행 중인 온라인 만족도조사지 양식을 확보, 분석했다. 초등학교 조사지의 경우, 평가결과 분석까지 끝난 형태여서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시도할 수 있었다.

현행 교원평가제는 학생평가와 학부모평가, 동료교원평가 등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부장교사 이하 일반교원은 학습지도와 생활지도에 관해, 교장·교감은 학교경영에 관해 각각 평가받게 돼 있다. 학부모의 경우 담임교사와 교장·교감 평가는 필수이고 교과 담당 교사는 일부에 한해 자율적으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각각의 평가영역에 따른 지표는 교과부가 지정하고(학습지도 12개·생활지도 6개·학교경영 8개) 지표당 최소 2개에서 최대 5개까지 포함시킬 수 있는 평가문항은 개별 학교가 재량껏 선택,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평가는 5점 척도를 활용한 절대평가와 서술형 응답을 병행해 완성해야 한다.

A초등에서 입수한 만족도조사지는 △학부모 만족도 조사(담임교사) △학생 만족도 조사(담임교사) △동료교원 평가(교사) 등 3종이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동료교원 평가 문항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었다. 학습지도와 생활지도를 함께 질문해야 하는 데다 각 지표당 평균 서너 개씩의 문항이 따라붙는 탓이었다. 이 학교의 경우 총 평가문항 수는 무려 51개. 문항 간 차별성이 모호해 평가자가 구분해 답변하기도 쉽지 않았다. 예컨대 ‘교육과정의 이해 및 교수·학습방법 개선노력’이란 지표 관련 문항엔 ‘교과 특성에 맞는 수업을 설계하는가’ ‘교과에 적합한 교수학습모형 적용을 위해 노력하는가’ ‘교수학습방법 개선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가’ 등 엇비슷한 내용이 포함됐다.

학부모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자녀의 말을 전해 듣고 공개수업을 한두 차례 참관한 것만으론 알기 힘든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칭찬과 격려 등을 통하여 학습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을 길러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질문은 공개수업 시나리오만 잘 구성하면 단 한 번 수업 시연으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항목이었다. 생활지도 비중이 훨씬 높은 담임교사의 특성을 딱히 배려한 질문지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조사지표(‘개인문제의 파악 및 창의·인성지도’)와 조사문항(‘담임선생님은 자녀가 혹시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관심을 기울인다고 생각하십니까?’)이 적절히 연계되지 않은 문항도 있었다.

항목당 5점 만점… 변별력 없어

B중학교의 동료교원 평가지에선 교육과정 분석 등 해당 교과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정확한 평가가 불가능한 문항이 상당수 발견됐다. 초등학교와 달리 교과교육 체제로 운영되는 중학교의 특성상 동일 교과 교사끼리 평가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데이터를 얻을 수 없는 구조다. 이 경우 비중이 적은 교과는 객관적인 평가결과를 얻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교실환경에서 동료교원의 생활지도 면면까지 ‘평가’할 정도로 파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절대평가 항목은 수십 개인 반면, 서술형 응답용 공란은 단 두 줄에 불과한 것도 부자연스러웠다.

C중학교의 동료교원 평가항목은 교과부가 ‘2010학년도 교원능력개발평가 표준 매뉴얼’에서 제시한 ‘동료평가 및 만족도 조사문항 예시(안)’의 축소판이었다. 36개 문항 중 1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예시안의 문항과 토씨 하나까지 똑같았다. 평가문항에서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부여한 교과부의 당초 취지가 무색하게 정부가 제시한 ‘샘플’을 그대로 베껴 사용한 것이다. 나머지 한 문항도 원안(‘학생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하여 창의·인성이 조화롭게 갖추도록 지도를 행하는가?’)을 살짝 줄인(‘학생의 창의·인성 함양 지도를 행하는가?’) 데 불과했다. 이 부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학교도 대동소이했다.

D고교의 경우는 좀 달랐다. 2008년 개교한 이 학교는 초창기부터 교원평가제 시범운영학교로 지정, 다른 학교에 비해 교원평가제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안착돼 있는 편이었다. 실제로 D고교에서 교원능력개발평가관리위원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한 학부모는 “평가문항을 작성하기 전 학교 차원에서 수차례 회의를 거쳐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 가장 독특했던 건 학생 만족도조사에 앞서 진행되는 ‘나의 학교생활 점검하기’란 제목의 자기평가였다. 문항은 ‘나는 준비물을 잘 챙겨옵니다’ ‘나는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발표합니다’ 등 모두 10개. 학교 측은 자기평가를 마쳐야 본격적인 교사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 학생 참여율을 높였다.

동료교사 평가 하나마나

지난 7월 1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취임식에서 지지자들이 ‘교원평가 반대’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7월 1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취임식에서 지지자들이 ‘교원평가 반대’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평가결과가 기재된 A초등 조사지에선 교원평가제의 근본 문제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가장 심각한 건 동료교원 평가 부문. 이 학교 모 교사에 대한 동료교원 항목별 평가 결과를 5점 척도로 환산, 기재한 이 결과지에 따르면 51개 항목 중 32개 항목(약 62.7%)이 5점 만점이었다. 나머지 19개 항목 점수는 모두 4.86점. 당연히 이 교사는 전 항목에서 ‘매우 우수’ 평점을 받았다. 학부모나 학생 평가는 동료교원 평가에 비해 점수가 다소 낮았다. 그러나 그 정도가 미미해 전체 평점에선 큰 차이가 없었다. 학생 만족도조사 17개 항목, 학부모 만족도조사 14개 항목을 통틀어 ‘매우 우수’를 받지 못한 항목은 단 1개(3.96점)에 불과했다. 변별력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3월 12일 김이경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가 박영아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책 토론회 ‘바람직한 교원평가제 방향은?’에서 발표한 내용이 단적인 예다. 김 교수는 이 자리에서 2009년 교원평가 선도학교로 지정된 3121개교의 운영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동료 교원에 의한 교사평가에서 ‘(매우) 우수’라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94.1%(수업지도 부문)와 93.1%(학생지도 부문)였다. 학생 수업만족도 조사(60.1%)나 학부모에 의한 자녀의 학교생활 만족도조사(58.2%)의 ‘우수’ 이상 응답 비율보다 1.5~1.6배나 높은 수치다.

중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이기도 한 허미화(51) 호원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지난 7월 7일 학부모평가를 하기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결국 그냥 나왔다. “교장·교감 선생님을 묶어서 평가하게 돼 있더라고요. 교장 선생님은 학기 초에 잠깐 뵈었지만 교감 선생님은 한번도 뵌 적이 없거든요. 정확한 평가가 될 수 없죠. 그리고 이런 식이면 평가결과가 나빠도 책임감 느끼는 분이 아무도 없지 않을까요? 서로한테 미루면 되니까요.” 그는 “미술·수학·보건교사를 ‘필수 평가대상’으로 지정해놓았는데 이름만 겨우 아는 분들을 무슨 수로 평가할 수 있겠느냐”며 “여러 교사를 평가하기보다는 제일 잘 아는 담임교사 한 분만이라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다면 기꺼이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업참관 평가에 실명 요구도

교원평가를 위한 공개수업에 참여한 학부모 중 일부는 일명 ‘수업참관록’ 작성을 요구받기도 했다. 본지가 입수한 A4 복사용지 1매짜리 모 고교 수업참관록엔 ‘교수·학습지도계획이 잘 수립되었는가?’ ‘질문에 대해 친절하고 상세하게 답하고 있는가?’ ‘적절한 형성평가를 실시하였는가?’ 등 15개 문항에 대해 1점부터 5점까지 평점을 매기게 돼 있었다. ‘○○○ 학생의 보호자 △△△’ 형태로 이름도 기재해야 했다. 학교 측은 공개수업 전 학부모에게 참관록을 나눠주고 교실을 나갈 때 이를 수업한 교사에게 제출토록 했다. 한 학부모는 “학교에선 ‘교육청 지시사항이고 다른 학교에서도 이렇게 한다’고 말하더라”며 “애 이름과 내 이름을 다 적고 그 자리에서 점수 매긴 종이를 학교에 내야 하는데 어떻게 솔직한 평가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최혜정 학부모신문 편집인은 “초기 단계여서 시행착오가 있고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만 자칫 이런 흐름이 ‘교원평가제 무용(無用)론’으로 번지진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을 고취시키고 교사집단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교원평가제가 유일한 대안이에요. 그 전제까지 흔들리면 안 됩니다. 다만 너무 복잡한 평가항목은 간소하게 정리될 필요가 있어요. 평가자가 담임교사나 학교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평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고요. 무엇보다 학부모 참여율을 높여 보다 실질적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논의 10년, 시범운영 5년 끝에 겨우 정착한 교원평가제가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수 있도록 교육당국이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키워드

#교육
최혜원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