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진보 시민단체들이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학업성취도평가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photo 허재성 영상미디어 기자
7월 12일 진보 시민단체들이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학업성취도평가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photo 허재성 영상미디어 기자

“오로지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고 좌절을 주는 일제고사를 더이상 학교에 발붙이게 해선 안됩니다. 지방선거 이후에 국민이 가장 먼저 바란 것은 일제고사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교과부가 마치 계엄령을 선포하듯 강압적으로 일제고사 공문을 시달했지만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전북과 강원에선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고자 (시험 보지 않는 학생을 위한) 대체 프로그램이 시행된다고 합니다. 투쟁과 저항만이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변성호 전교조 서울지부장)

7월 12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7·13 일제고사 강행 규탄 및 실천계획 발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시민모임 등 19개 단체가 공동주최한 행사였다. 청사 내에 교육과학기술부가 위치한 탓에 교육 관련 집회가 수시로 열리는 이곳엔 이날도 같은 시각 3개의 집회가 맞물려 있었다. 첫 순서를 얻어낸 ‘일제고사’팀 20여명은 ‘일제고사 폐지! 선택권 부여! 체험·대체학습 인정!’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회견에 나섰다.

줄 세우기 vs 교육환경 개선

이튿날인 7월 13일 오후 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선 ‘평가를 평가한다’란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진보교육연구소·전교조 서울지부·대안교육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와 성열관(경희대)·조상식(동국대)·강수돌(고려대) 등 대학교수들이 토론자로 나섰다. 사회를 맡은 진영효 전국교과모임연합 의장은 “오늘 아이를 (시험 치는) 학교 대신 대체 프로그램 현장에 데려다주고 여기 오느라 바빴다”고 했다. 많지 않은 참석자 중 상당수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이하 ‘학업성취도평가’)가 끝났다. 전국 초등 6년생과 중3, 고2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학업성취도평가는 법적 근거(초중등교육법 제9조·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0조)를 바탕으로 국가가 시행하는 평가다. 그러나 평가를 전후한 7월 셋째 주 내내 국민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학업성취도평가를 ‘일제(一齊)고사’로 바꿔 부르며 시험 자체를 거부한 일부의 움직임이 거셌기 때문이다.

특히 6·2 지방선거 결과 탄생한 6개 시도의 ‘진보 교육감’은 노골적으로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었다. 전북도교육청은 “미응시자를 위한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이를 수업으로 인정하라”는 공문을, 강원도교육청은 “응시 여부를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할 수 있게 하라”는 공문을 관내 학교에 각각 내려보냈다. 이는 “학교에서 대체 프로그램을 준비해 평가를 회피하거나 평가 불참을 유도하는 건 위법이며, 설득에도 평가 응시를 거부한 학생은 결과(缺課)처리하라”는 교과부 방침과 전면 배치되는 것이다.

평가 이틀째인 7월 14일엔 반 전체가 시험을 거부하는 등 결시자가 50여명에 달했는데도 이를 허위보고한 서울 영등포고 사태가 터졌다. 서울 대영중에서도 32명이 평가를 거부한 사실이 이날 밝혀졌다. 당초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진보 성향이면서도 학업성취도평가를 거부하지 않겠다고 밝혀 진보 진영의 빈축을 샀다. 실제로 평가 첫날 전북과 강원지역 미응시 학생이 각각 172명과 140명이었던 데 반해 서울지역 미응시자는 27명에 그쳤다. 그러나 영등포고·대영중 사태로 전세는 하루 만에 역전됐다.

교과부가 밝힌 학업성취도평가 미응시 학생은 13일 433명, 14일 333명이다. 13일과 14일 전체 응시생이 193만9000명, 129만3000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미응시 비율은 0.022%, 0.026%에 불과하다. 1만명 중 2명꼴이다. 서울지역의 경우 일제고사공동행동시민모임은 성산동(성미산학교)과 상계동(학교밖청소년자립교육센터 ‘틔움’), 동교동(공간 민들레) 등 세 곳에서 시험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참가신청 저조로 동교동 프로그램은 취소됐다. 나머지도 참가자가 당초 예상인원을 크게 밑돌았다.

7월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선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등이 주최한 ‘교원평가·학업성취도평가·학생인권조례: 3대 교육쟁점 진단’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성숙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학업성취도기획분석실장은 학업성취도평가에 대해 “학생 및 학교를 비교하거나 서열화하려는 게 아니라 학생·학교·지역특성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효과적 교육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보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적 순으로 학생 줄세우기’가 목적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학부모의 자녀 학력 알권리 vs 선택권

학업성취도평가는 1998년 당시 교육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방안 연구’를 완성하며 틀이 갖춰졌다. 본격적 평가가 시작된 건 2001년. 이후 2008년까지 학년별 ‘샘플’을 추출, 평가하는 표집방식으로 평가가 진행돼왔다. 2008년 평가방식이 전수(全數)평가로 바뀐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학생 개개인의 성취수준을 파악해 그에 맞는 처치를 하기 위한 게 하나, 학교단위의 학업성취 수준을 비교, 평가하기 위한 게 다른 하나였다.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는 ‘등수’가 아닌 ‘단계’로 통지된다. 학생은 과목별로 ‘우수학력’ ‘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4단계, 학교는 과목별로 ‘보통학력 이상’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3단계다. 학생의 경우 시도교육청에서 학교를 거쳐 학생 본인에게 결과가 통지되며 학교는 ‘학교 알리미(www.schoolinfo. go.kr)’에 공시하도록 돼 있다. 김성숙 실장은 “결과 공개는 정보 활용 측면에서 획기적 전환점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김정수 좋은학교만들기학부모모임 운영위원장 역시 “내 자녀의 학력수준이 궁금한 학부모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학교별·지역별 학력수준에 맞는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학업성취도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교사가 학업성취도평가를 거부해 내 자녀가 시험을 보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게 될 경우 교사에게 책임을 물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험을 안 보게 할) 학부모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진보 측 논리와 완전히 다른 주장이다.

전문가의 의견은 엇갈린다. 7월 13일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성열관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는 “OMR 카드에 응답해야 하는 시험은 복잡한 수행과제 이행 여부를 측정하는 참 평가(authentic assessment)와 호응되지 않는다”며 선다형 평가로 구성된 현행 학업성취도평가 방식을 비판했다. 덧붙여 그는 학업성취도평가 문제가 단지 교육학적 이슈에 그치지 않고 문화정치학적 연구대상이란 점을 강조했다. 학부모의 교육열과 평가 위주의 신자유주의 교육 흐름 등을 이해해야만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논리다.

‘평가 준거 자체 마련’ 해법 제시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조금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학업성취도평가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과제는 ‘자녀의 학업성취도 향상과 입시성공에 목을 매는 학부모의 이중적 욕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 조 교수는 “대학평가는 노동(취업)시장과 연계돼 시대적 흐름이 됐지만 초·중등교육은 상대적으로 이런 공격에서 자유롭지 않느냐”며 “평가의 준거를 자체적으로 마련, 바꿔나간다면 평가를 마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평가 결과 공개로 인한) 서열화를 이유로 학업성취도평가를 거부하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논리”라고 일축했다. 공교육 발전을 위해선 학교교육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분석이 필요하며, 평가가 없어진다고 학교 간 격차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시험을 거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란 것이다. 그는 “반대자들의 주장대로 경쟁이 비교육적이라면 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학교의 평가는 전부 거부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학업성취도평가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당장 오는 12월 21일 또 한 차례의 학업성취도평가가 예정돼 있다. 전국 중 1·2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5개 과목(국어·사회·수학·과학·영어) 전국연합 학업성취도평가가 그것. 김진성 교육선진화운동 상임대표는 “이번에 (학업성취도평가란) 국가 위임업무를 거부한 일부 진보 교육감에 대한 확실한 법적 제재가 이뤄지지 않으면 5개월 후 학생과 학부모는 지금과 똑같은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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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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