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반월 산업단지 내 위치 국내 3757개 기업이 ‘가족회사’
산학협력 1번지 올 정규직 취업률 73.1%

가족회사 제품 전시장 마련 시화·반월산단 쇼룸 역할
제품 주문도 가능 외국 바이어 발길 이어져

연구개발센터인 ‘엔지니어링 하우스’ 오픈
가족회사·교수·학생 공동 프로젝트 가능하게
게임공학과 학생들이 게임 테스트베드에서 새 게임을 테스트해보고 있다.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게임공학과 학생들이 게임 테스트베드에서 새 게임을 테스트해보고 있다.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한국산업기술대(총장 최준영) 캠퍼스에 들어서자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송영승 홍보팀 과장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만 해도 냄새가 덜 났지만 지금은 좀 더 난다. 이 냄새는 산업과 돈이 돌고 있다는 증거”라며 웃었다. 한국산업기술대(Korea Polytechnic University)는 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국내 유일의 4년제 대학이다. 국가산업단지란 1만여개의 공장이 밀집한 시화·반월산업단지를 가리킨다. 한국산업기술대는 산업기술 관련 12개 학과를 운영 중이며 학부생 6000여명과 대학원생(석·박사) 600여명이 재학 중이다.

지난 11월 17일 지하철 4호선 정왕역에서 내려 차로 5분가량 떨어진 캠퍼스. 학교 한쪽에 자리잡은 지상 18층의 기술혁신파크(Techno Innovation Park)는 시화방조제와 시화호를 끼고 있는 시화·반월산업단지의 랜드마크다. 이곳 3층부터 5층까지 3개 층은 기업들이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하우스(EH)’란 공간으로 임대하고 있고 7층부터 17층까지는 기숙사가 들어있다.

기술혁신파크 2층에는 고성능 PC 54대를 비롯해서 각종 콘솔 게임기와 조이스틱이 비치된 ‘게임 테스트베드’가 있다. 24인치 대형모니터와 스피커를 장착한 PC 옆에는 위(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3(소니), 엑스박스(MS) 등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가족회사와 ‘프로젝트 실습’ 의무화

지난 11월 16일 이곳 게임 테스트베드에서는 게임업체 ‘엑토즈소프트’의 의뢰로 신작 게임 ‘오즈 페스티벌’ 평가회가 열렸다. 이 대학 게임공학과 학생 50여명은 두 시간에 걸쳐 신작 게임을 플레이하며 평가서를 작성했다. ‘오즈 페스티벌’ 게임 평가에 참가한 게임공학과 2학년 이헌규씨는 “여성용 게임을 표방했는데 정작 게임을 해보니 남성적 승부욕을 자극했다”면서 “이 같은 차이점을 엑토즈소프트 측에 지적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기술대는 2002년 국내 최초로 게임공학과를 개설했다. 게임공학과 학생들은 각종 게임 프로그래밍, 캐릭터와 스토리를 창작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교육받는다. 동네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과 3D 기반의 스크린골프 게임도 이 대학 게임공학과를 거쳐간다. 배환웅 게임공학과 학생회장은 “업체의 테스트 요청이 들어오면 설문지와 구두 건의를 통해 게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지적한다”고 말했다. 캠퍼스 내에 이 같은 ‘게임 테스트베드’가 있는 곳은 한국산업기술대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업체들은 한국산업기술대 학생들의 평가와 개선점을 적극 수렴해 게임을 수정·보완하고 출시한다.

산학협력 모습은 한국산업기술대 학생들에게 낯설지 않다. 한국산업기술대는 국내 4년제 대학 가운데 산학협력에 가장 적극적인 대학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지난 1997년 옛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는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와 핀란드의 울루 테크노폴리스를 벤치마킹해 한국산업기술대를 만들었다.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와 울루 테크노폴리스는 노키아와 에릭슨을 배출한 북유럽의 산학 클러스터다.

시화·반월산업단지 소재 기업을 비롯해 전국의 3700여개 기업들이 한국산업기술대와 ‘가족회사’란 이름으로 산학협력을 진행 중이다. ‘가족회사’란 개념은 한국산업기술대가 2000년 국내 최초로 창안한 산학협력 모델이다. 입주업체만 1만여개에 달하는 시화·반월산업단지를 배후기지로 둔 한국산업기술대는 개교 초부터 산학협력 모델을 발굴하는 데 고심을 거듭했다. 산업디자인공학과 2학년 권선진씨는 “다른 학교는 산업디자인을 가르칠 때 디자인이 중심이지만 우리 학교는 공학에 기반한 디자인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졸업 후 맡게 될 실무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가족회사로 등록된 중견·중소기업들은 대학으로부터 고가의 실험장비를 빌려 쓴다. 또 해당 분야 교수들로부터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각종 자문을 구하고 있다. 대신 학생들은 방학 동안 가족회사에서 실습을 한다. 올해 여름방학에만 1200여명의 학생들이 프로젝트 실습에 참여했다. 가족회사 또는 일반 중소기업 CEO들은 프로젝트 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의 학점을 직접 평가해 학점에 반영한다.

이 같은 ‘프로젝트 실습 학점제’는 재학생들의 산업 현장 적응력을 키워주기 위해 2000년부터 도입한 정규 교육과정이다. 학교 측에서는 최대 18학점까지 인정해 주고 있으며 재학 중 4학점을 취득하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다. 실습 참여 업체 CEO로부터 우수한 평가를 받은 학생들을 선발해 일본, 중국 등 해외 산업현장 견학 기회를 제공한다.

프로젝트 실습 효과는 취업률로 증명된다. 한국산업기술대는 올해 73.1%의 정규직 취업률을 기록해 졸업생 1000명 이상 2000명 이하의 전국 4년제 대학 중 1위에 올랐다. 기계설계공학과 3학년 강자연씨는 “우리 대학은 기업과 바로 연계되어 있어 ‘내가 바로 현장에 필요한 인재’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또 나노·광공학과 2학년 이영은씨는 “취직하는 선배들을 보며 자신감을 갖게 되고 우리 대학이 소수정예가 모인 곳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가족회사’ 제품 수출도 지원

한국산업기술대 ‘가족회사’제품 전시장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산업기술대 ‘가족회사’제품 전시장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기술혁신파크 1층에는 ‘가족회사’가 생산한 제품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 전시장은 시화·반월산업단지의 쇼룸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관에는 가족회사가 제조한 로보체인, 공기청정기, 피부 트러블 방지 화장품 등 각종 제품이 진열돼 있었다. 전시 물품에는 제조사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가 적혀있어 시화·반월산업단지를 찾은 외국인 바이어들은 언제든지 업체와 연락해 제품을 주문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특히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에서 오는 바이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기술혁신파크 18층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바이어들이 투숙도 할 수 있다. 그동안 시화·반월산업단지를 찾는 외국인 바이어들은 국산 제품을 한자리에서 볼 기회가 사실상 없었다. 지방에서는 모텔 외에 마땅한 숙박시설을 찾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산업기술대가 그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해준 셈이다.

바이어와의 수출입 상담에 필요한 통역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마침 전시장에는 이 대학 정보통신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살도르(Sardor)씨가 통역 겸 도우미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살도르씨는 “러시아 같은 추운 지방에서 오는 바이어들은 한국의 라디에이터와 바닥 난방 제품에 관심이 많다”면서 “관심을 보인 뒤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제품을 주문해 가기도 한다”고 유창한 한국어로 설명했다.

가족회사의 장점이 입소문을 통해 퍼지자 그 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출범 당시 273개에 그쳤던 가족회사는 현재 3757개에 달한다. 출범 10년 만에 13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서울반도체, 대덕전자, 슈프리마 등 유명기업들이 가족회사로 등록돼 있다. 전자공학과 3학년 서병찬씨는 “대입을 준비할 때 입시소책자에서 가족회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특성화된 전문교육을 하는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기업 프로젝트 참여했다 취업되기도

대학 내 ‘엔지니어링 하우스’
대학 내 ‘엔지니어링 하우스’

일부 가족회사들은 아예 한국산업기술대 내에 연구개발센터를 두고 있다. 한국산업기술대는 기술혁신파크의 3층부터 5층까지 3개 층을 기업들이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하우스(EH)’란 공간으로 임대하고 있다. 저렴한 임대료로 기업, 교수진, 학생들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이다. 엔지니어링 하우스 입점 업체들은 전담 교수와 학생이 각종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취재진은 엔지니어링 하우스 4층 409호에 있는 ‘차세대 정밀모터 시스템 엔지니어링 하우스’를 찾았다. 경기도 부천에 본사를 둔 티에스에이(TSA)는 이곳 엔지니어링 하우스에서 차세대 모터 개발을 진행 중이다. 황상연 티에스에이 연구소장은 “의료기에 들어가거나 자동차 시트 조작에 사용되는 각종 모터를 연구한다”며 “기술 개발을 하면서 메카트로닉스 공학과 교수 두 분으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티에스에이의 기술자문은 메카트로닉스공학과 김영중 교수와 정명진 교수가 맡고 있다. 정명진 교수는 “담당 교수들은 기업에 가장 적합한 학생들을 선발해주고 연구과제를 도와준다”며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이 신통치 않으면 학교 측에서 협력성과를 평가해 퇴출조치를 내린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50개 엔지니어링 하우스 중 2개 엔지니어링 하우스가 퇴출됐다고 한다.

엔지니어링 하우스는 24시간 연구체제를 갖추고 있다. 기술혁신파크 7층부터 17층까지에는 학생들과 연구원들이 사용하는 기숙사가 있다. 이들은 낮에는 엔지니어링 하우스에서 연구하고 밤에는 2인1실·4인1실로 이루어진 기숙사에서 휴식을 취한다. 최웅세 한국산업기술대 학생처장은 “기술혁신파크 내에는 은행, 서점, 푸드코드, 헬스클럽, 호프집, 세탁실, 미용실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외부로 나가지 않고 24시간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링 하우스에는 티에스에이 같은 참여기업 178개가 입주해 있다. 반대급부로 엔지니어링 하우스 입주업체들은 한국산업기술대 학생들을 즉석에서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지난 7월 티에스에이 연구원으로 선발된 김유리씨가 대표적 사례다. 이 대학 메카트로닉스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유리씨는 엔지니어링 하우스에서 일하던 중 성실성을 인정받아 인턴 2개월 만에 정직원으로 발탁됐다.

시화복합비즈니스센터도 들어설 예정

2012년에는 교내에 ‘시화복합비즈니스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시화복합비즈니스센터는 시화산업단지에 있는 지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경영기법과 기술지원 등을 제공하는 핵심지원시설이다. 지난 10월 말 기공식을 갖고 공사에 들어갔다. 총 267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가며 연면적 1만5837㎡에 지하 1층, 지상 13층 규모로 지어진다.

대학교 교정 안에 국가산업단지의 핵심 지원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국내 최초라고 한다. 최준영 총장은 “시화복합비즈니스센터는 한국산업기술대의 산학협력 배후단지인 시화·반월산업단지를 문화와 복지, 교육환경이 어우러진 선진국형 기업밸리로 조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QWL(Quality of Working Life) 밸리 조성사업의 하나”라며 “시화복합비즈니스센터는 QWL 밸리 조성사업의 신호탄이란 상징성이 있다”고 했다.

한국산업기술대는 2007년 개교 10주년을 맞아 수립한 ‘KPU Global Vision 2020’에 따라 △교육 △학생 △연구·산학협력 △행정·재정 등 4개 분야에 걸친 글로벌 혁신역량 강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또 국가의 신성장 동력과 직결된 녹색성장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에너지·전기공학과’를 신설하고 올해 첫 신입생을 선발했다.

한국산업기술대는 시화호 인근 시화멀티테크노밸리(MTV)에 제2캠퍼스 조성도 추진 중이다. 시화멀티테크노밸리는 시화호 인근에 조성 중인 첨단 벤처밸리다. 한국산업기술대 측은 시화멀티테크노밸리에 33만㎡규모로 연구개발과 생산시설이 융합된 제2 캠퍼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한국산업기술대 김용재 홍보실장은 “산업단지를 타깃으로 특성화 캠퍼스를 조성하는 사례는 한국산업기술대가 유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산업기술대 최웅세 학생처장

“취업한 졸업생도 무료수강 가능” e러닝시스템 구축

최웅세(55) 한국산업기술대 학생처장은 “2002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9년 연속 전국 최상위권의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공학과 교수인 그는 KPU아트센터장도 맡고 있다.

- 한국산업기술대 학생처의 취업지원 활동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졸업생 사후관리(A/S) 강화로 학생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인식을 기업에 심어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졸업생들이 급변하는 기술수요에 맞춰 신기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공학 분야 e러닝시스템을 구축해 졸업생을 채용해준 기업의 교육비 부담을 대학이 덜어주려고 합니다. 현재 졸업생들이 현업에서 겪고 있는 기술 애로 수요를 반영한 맞춤 콘텐츠를 제작해서 무료수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월 평균 75개 강좌에 800여명이 수강합니다.”

- 구인·구직 간 미스매칭 문제 해결을 위한 취업시스템도 구축했다고 들었습니다.

“기업이 적기에 필요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고, 대학은 이를 통해 취업률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기업과 맞춤형 취업네트워크를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부설기관으로 인력개발센터를 두고 가족회사와 연계해 취업캠프, 취업특강, 채용설명회, 인·적성검사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 그중에서도 역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취업지원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모의 취업 경진대회를 실시합니다. 채용공고부터 모의면접까지 실제 취업활동과 동일한 8단계 과정을 사전에 진행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서비스함으로써 취업 역량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고용노동부 취업전산망(Job-young)과 전문취업포털회사의 전산망을 교내 취업전산망과 연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취업전문가의 알선활동을 통해 구인 기업과 구직학생을 매칭시킬 수 있도록 취업정보 활용을 극대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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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호 차장대우 /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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