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 일본이 난리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보기 힘든 대재앙 앞에 전세계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수천 년 인류가 피땀 흘려 쌓아온 문명의 진보가 그저 초라할 뿐이다. 그러나 그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와중에서도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절제와 질서의식은 인류정신의 진화가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신비감을 안겨주고 있다.

“한반도에서 태어나서 좋았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일본 덕분에 우리는 안전하다는 ‘일본열도 병풍론’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지리도 못난 나라에서 태어나 고생한다는 푸념과 한탄이 바로 엊그제 일이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그 얄팍한 계산에 앞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그 어떠한 급변사태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가? 하늘이 꺼지고 땅이 솟구치는 경천동지(驚天動地) 속에서도 일본인들과 같은 침착함과 질서정연함을 보여줄 수 있는가?

일본이 병풍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지진과 쓰나미 같은 ‘지리적 급변사태’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일본열도에 없는 ‘정치·군사적 급변사태’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는 3월 26일은 천안함 폭침 1년이 되는 날이다. 46명의 꽃다운 청춘이 3대 세습 북한정권의 만행으로 산화한 지 벌써 1년이 됐다. 이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 북한군의 소행임을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정부가 증거조작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나라, “1번 찍으면 전쟁난다”는 삐라가 대량으로 뿌려지고 이러한 공갈협박에 동요하는 사회가 우리의 자화상이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작년 11월의 연평도 포격이 없었다면, 천안함은 거짓과 위선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천안함을 ‘광우병의 저주’에서 구해낸 것이 연평도였다. 꼭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러야지만 정신을 차릴 수 있는 풍토가 안타까울 뿐이다.

김정일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자기 아버지보다 훨씬 불리한 여건에서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은 자신의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군사적 모험주의로 치달릴 가능성이 무척 높다. 제2, 제3의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상존하는 위협에 대처하는 능력이다. 그 능력의 첫 번째 요건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인가 하는 자세다. 이 자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단호함과 결연함이다. 단호함과 결연함이 없으면, 군사기술은 무용지물이 된다. 대응방안을 둘러싼 우리 사회 내 갈등과 분열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 세습정권의 군사적 모험주의가 극성을 부린다는 것은 그만큼 통일의 순간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 중 김정일이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사후의 북한은 크게 보아 김정은 체제의 지속, 친중(親中) 괴뢰정권의 등장에 의한 중국의 속국화, 대한민국과의 통일이라는 세 가지 방향 중 어느 한 곳을 택할 것이다.

이 세 가지 시나리오 중 대한민국과의 통일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이 시대 애국애족의 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에 그러한 대업(大業)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충만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통일의지가 결핍돼 있다. 북한 세습정권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뚫고 통일을 쟁취하겠다는 의지도, 문제의식도, 전략도 결핍돼 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표방하면서 통일정책이란 말을 포기했다. 흡수통일을 획책하지 않겠다는 햇볕정책의 대원칙을 실천한다는 차원에서 화해와 협력의 대북정책이란 말만 고집했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햇볕정책은 폐기되었지만, 통일정책은 온전히 부활되지 않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 시 군사적 대응방안인 5027이 개념계획에서 작전계획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은 분명한 진전이지만, 그렇다고 통일전략이 뚜렷이 제시된 것은 아니다.

통일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없으면, 당면한 군사적 위협에 단호하게 대처하기 힘들다. 김정일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가면서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평화구걸행위가 득세를 하게 된다. 햇볕정책 10년은 이러한 시도가 매우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결과로 입증해 주었다.

이제 우리는 ‘분단체제하의 불안정한 평화’가 아니라 ‘통일 이후의 항구적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 추구라는 헌법정신에 투철해져야 한다. 햇볕정책이 그토록 갈망했던 북한 특수도 통일이 되어야 가능하다. ‘한강의 기적’을 본뜬 ‘대동강의 기적’이 이루어지면, 인구 7000만의 통일한국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견주는 세계 7대 강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일본열도의 ‘지리적 급변사태’는 예측불가능하고 불가항력적이지만,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급변사태’는 예측가능하고 고로 대응가능하다. 그 사태를 두려워하지 말자. 당장의 편안함 때문에 영구분단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치밀하게 마음의 준비를 해 들어가야 한다.

천안함 피격사건 때 숨진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는 작년 6월 아들의 사망보상금 1억원을 국가에 다시 내놓았다. “천안함 사건과 같은 일이 또다시 없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느냐”며 “적은 돈이지만 무기 구입에 사용해 우리 영토·영해에 한 발짝이라도 침범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데 사용해 달라”는 소망에서였다. 얼마 뒤 윤씨의 사연을 들은 익명의 중소기업 임직원들이 898만8000원의 성금을 보내줬다. 윤씨는 “고귀한 돈을 하루도 집에 둘 수 없다”며 다음날 이 돈마저 해군에 기탁했다.

이러한 거룩한 마음이 담긴 1억898만8000원이 마침내 서해 바다를 지키는 초계함의 기관총이 돼 돌아온다고 한다. 해군은 윤씨가 기탁한 돈으로 K-6 중기관총 18정을 구입해 서해 2함대 소속 초계함에 장착키로 했다. 이 기관총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한 날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3·26 기관총’으로 이름 지어졌다. 이 총을 ‘통일 기관총’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조국을 위해 산화한 46명 용사의 영혼을 진정으로 위무하는 길일 것이다.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늙은 군인의 노래’가 부르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신지호

한나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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