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력 격차 좁혀지면서 과거에 너그러워져
“원수도 죽으면 용서한다” 한국적 정서 발휘
지난 3월 15일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생존자 수색작업 중인 한국 119구조대원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5일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생존자 수색작업 중인 한국 119구조대원들. ⓒphoto 뉴시스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당한 일본을 돕기 위한 한국의 열기에 전세계가 놀라고 있다.

한국은 지난 3월 11일 도호쿠(東北)지방과 간토(關東)지방 등 동일본에 리히터 규모 9의 대지진이 발생하자 가장 기민하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지진 및 쓰나미 발생 다음날 119구조대 선발대를 일본에 급파한 데 이어 14일에는 대규모 추가 인원을 보냈다. 총 106명. 한국의 해외 구조 사례 중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 119구조대는 질적인 면에서도 압권이었다. 한국 구조대원들은 현지인들이 감동할 만큼 헌신적으로 인명구조 활동을 펼쳤고, 다른 나라 구조대원들이 철수한 후에도 남아있다가 지난 3월 23일 가장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한국 언론은 일본 대참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문은 며칠 동안 10개 면이 넘는 지면을 할애했고 방송은 저녁 메인 뉴스 대부분을 일본 뉴스로 도배해 도대체 한국 언론인지 일본 언론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한국 국민은 쓰나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자동차가 개미처럼 휩쓸려가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일본을 돕자는 여론이 높아졌다.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한국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는데도 아직도 사죄하지 않고 있는 일본을 우리가 왜 도와야 하느냐는 반대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세는 ‘이웃나라 일본을 돕자’는 방향으로 잡혔다. 논란에 쐐기를 박은 것은 뜻밖에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었다. 일제 식민지배의 가장 큰 피해자인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은 매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연다. 그러나 지난 3월 16일에는 지진 피해를 애도하면서 침묵시위를 벌였고, 3월 23일에는 일본 지진 피해자를 위한 성금 모금에 나섰다.

워런 버핏도 격찬한 한국인의 온정

이후 전개된 한국인의 온정은 모두의 상상을 초월했다. 한류스타 배용준이 10억원을 쾌척하는 등 일본 돕기에 앞장섰고 정부, 기업, 언론, 시민단체, 일반국민 할 것 없이 한국 전체가 ‘일본 돕기 열풍’에 휩싸였다. 며칠 전 정부의 공식 집계만 봐도 일본의 대지진 피해복구와 이재민을 돕기 위한 우리 국민 성금이 무려 600억원에 육박했다. 지난 3월 22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국내 민간단체 및 기업 등으로부터 답지한 성금이 총 581억여원으로 집계됐다. 민간 부문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80억원, 엔씨소프트 73억원, 대한적십자사가 68억원 등 모두 580억원에 달했다.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모집한 성금은 한국수출입은행 3000만원, 여성가족부 186만원 등 모두 1억4000만원이다.

이런 현상이 나오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두가 놀라는 분위기다. 해외 언론은 “일본으로부터 참혹한 식민지배를 당하고 아직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한 한국이 일본 돕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휴머니즘의 발로”라고 찬사를 보냈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 돕기에는 숙연한 모습마저 보였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한국의 일본 돕기를 격찬했다. 해외의 반응이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중국 같은 경우 일부 누리꾼들은 “한국의 일본 돕기가 이해가 안 된다”며 “뭐든지 금방 잊고 냄비근성이 강한 한국인들은 벌써 그 끔찍했던 식민지배 시절을 잊어버렸나보군” 하면서 냉소를 짓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우리 스스로도 놀라는 분위기다. 너나 할 것 없이 “과연 한국이 전세계에서 반일감정이 가장 강한 나라가 맞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한국은 정말 알 수 없는 나라”라며 헷갈려하는 상황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악마’를 보고 그 열정에 전세계가 경탄하고 집단성에 전율을 느꼈지만 한국 내에서도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경이롭게 여겼던 것을 방불케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일본 대지진 사태 이후 한국과 한국인이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과 일본의 국력 격차가 좁혀지면서 한국인이 자신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GDP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1990년 한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는 약 11.3배였으나 19년이 지난 2009년에는 약 6.1배였다. 격차도 중요하지만 추세는 더 중요하다. 한국이 상승추세라면 일본은 하향추세다. 특히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경제위기 후 한국이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한 반면, 일본은 여전히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혼자서 올린 이익규모가 일본의 모든 전자업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아 일본에 충격을 안긴 것도 글로벌 경제위기 후의 일이다. 이 때문에 최근 서로를 대하는 한·일 양 국민의 태도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자신감 대 주눅’이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전문가 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와 지한파(知韓派)인 데라모토 마코토(寺本誠) 한국마루베니 사장은 지난 3월 23일 이 주제를 둘러싸고 토론을 벌인 끝에 “한·일 간 국력 격차가 좁혀진 것이 한국인이 일본 대지진에 동정적 태도를 보이는 근본적 원인”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한·일관계 새 전기

개인 차원에서도 파워가 세지면서 자신감이 생기면 과거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게 마련이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사회의 대(對)일본 기류 변화는 경술국치 100주년이던 지난해 이미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연초만 해도 관련 특집과 행사가 전국적인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됐으나 막상 전개 양상은 전혀 달랐다. 주요 일간지와 방송은 이렇다 할 특집을 마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사들은 6·25전쟁 60주년 특집을 둘러싸고 경쟁 양상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참사를 겪자 한국인의 측은지심이 별다른 저지를 받지 않고 대두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인이 정이 많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꽤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할 때 당시 엄청난 인파가 거리로 나와 ‘이 박사’에게 동정을 표했던 것은 한국인의 정을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로,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원수도 죽으면 용서한다”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다. 이것이 한민족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원형사관(原型史觀)으로 유명한 수학자이자 일본전문가인 김용운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이 같은 한국인의 원형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일제 패망으로부터 6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인구분포상 참혹한 일제 식민지배를 직접 경험한 세대가 이제 얼마 안된다는 것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누그러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기성세대와 달리 물질적 풍요 속에 자란 신세대들에게 일본은 더 이상 특별한 외국이 아니다. 한국에서 일본 소설과 노래, 드라마 등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이런 의식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대지진은 한·일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이 어려움에 처한 일본을 돕는다”는 극적인 일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직 언론인이자 친한파인 오쓰보 시게타카(大坪重隆)씨는 “한·일관계는 앞으로도 독도문제, 교과서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적지 않겠지만 이번 지진 사태가 향후 한·일 양국이 대등한 관계로 접어드는 것을 상징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박영철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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