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왼쪽)와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야권연대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합의서를 보여주고 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지난 3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왼쪽)와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야권연대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합의서를 보여주고 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지난 3월 10일 한명숙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밤12시부터 오전 4시까지 새벽 회동을 통해 4·11 총선 야권(野圈) 연대 협상을 타결했다. 전국 단위 선거로는 사상 최초로 야권이 모든 지역구에서 단일 후보를 내세워 새누리당과 1 대 1 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적게는 수백 표 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초박빙 양상의 수도권 선거에서 야권연대는 총선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더불어 지난해 12월 ‘원내교섭단체 20석’을 목표로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인 ‘새진보 통합연대’가 모여 만든 통합진보당의 총선 성적이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정희·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는 지난해 초 합당 논의를 시작할 때부터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지상 과제로 설정하며 1년을 별러왔다. 군소 정당으로서의 설움을 씻고 민주당과 함께 국회 과반 의석을 만들어 ‘진보적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목표다.

지역구에서만 15석 목표

양당은 야권연대 협상을 통해 전국 246개 선거구 중 16곳의 지역구를 민주당이 순수하게 통합진보당에 양보하기로 했다. 경기 3곳, 부산·울산·경북·충청 각 2곳, 대구·인천·대전·광주·경남 각 1곳이다.

또 전국 76개 지역에서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후보가 1 대 1로 여론조사 경선을 벌여 야권 단일 후보를 결정하기로 했다. 서울 21곳, 경기 23곳, 경남 15곳, 인천 5곳, 울산·강원 3곳, 부산·제주 2곳, 대구·충북 1곳이다.

여기에는 서울 관악을의 이정희 공동대표와 노원병의 노회찬 대변인, 은평을의 천호선 대변인, 경기 고양·덕양갑의 심상정 공동대표 등 이른바 ‘빅4’의 경선 지역도 포함돼 있다. 양당은 3월 18~19일 각 지역구에서 1400명을 대상으로 “야권 단일 후보로 가장 적합한 후보는 누구인가”를 묻는 적합도 방식의 조사를 실시해 20일 후보를 결정한다.

사실상 민주당이 여당 역할을 하는 호남의 경우에는 민주당이 야권연대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양보한 광주 서을 지역구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통합진보당 후보가 본선까지 완주하기로 했다.

심상정 공동대표는 15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경쟁 지역이 76군데인데 우리가 15군데 이상은 (민주당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통합진보당 후보가 단일 후보인 16곳을 포함해) 30여군데 이상이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설 텐데 최소한 50% 이상 승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당과의 단일 후보 경선을 넘어 새누리당과의 본선에서 최소한 지역구 15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야권 연대 협상으로 민주당으로의 단일화 후보 지역구가 67곳, 통합진보당 후보로의 단일화가 16곳, 경선지역이 76곳으로 결정됐다. 전체적으로 야권연대 차원에서 민주당은 9명, 통합진보당은 58명의 지역구 후보들을 주저앉혔다고 한다.

비례대표 12번 유시민까지 당선?

지역구 의석에 더해 통합진보당은 정당 투표율로 이루어지는 비례대표 의석에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민노당이 창당 4년 만에 원내 10석을 이루는 데는 13.8%의 정당 득표율 덕이 컸다. 당시 권영길·조승수 의원만 지역구에서 당선되고 8석을 비례대표로 얻었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인물 경쟁력을 보고 당시 열린우리당을 찍은 야권 지지자 중에서도 진보정책을 지지하고 진보 정당을 살린다는 차원에서 민노당을 찍은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통합진보당은 이번 비례대표에 유시민 공동대표를 12번에 배치하며 배수진을 쳤다. 마지노선을 12번으로 보고 당 대표까지 비례대표로 당선시킨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탄핵 열풍 속에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의 3당 구도로 정당 투표가 이루어져 민노당이 반사이익을 본 측면이 컸던 17대 선거와 달리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단일 후보를 낸 상황에서 통합진보당만 진보정책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합진보당이 많아야 5~6석 정도 비례대표를 얻지 않겠느냐”면서 “유시민 대표야 대권 행보를 꿈꾸고 있는 상황에서 한시적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에서 얼마나 얻느냐가 20석 판가름

통합진보당은 76곳 민주당과의 경선 지역 중에서 수도권의 간판 스타인 노회찬(서울 노원병)·천호선(은평을) 대변인, 심상정(경기 고양·덕양갑) 공동대표를 비롯해 전통적 강세 지역인 울산·경남 지역에서 조승수(울산 남갑) 의원, 김창현(울산 북구) 전 민노당 사무총장, 문성현(경남 창원갑) 전 민노당 대표, 강기갑(경남 사천·남해) 의원의 경우 민주당과의 경선은 물론 새누리당과의 본선에서도 당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지역 중에서는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인 성남 중원, 의정부을 등의 지역구에서 통합진보당 후보의 선전이 예상된다.

최대 관심사인 이정희 대표의 관악을 지역구는 여론조사 경선이 실시되기 하루 전날인 16일까지도 초박빙 양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조직력에서 앞서는 김희철 민주당 의원이 다소 앞선다는 평가다. 이정희 대표는 선거 유인물과 명함에 한명숙 대표와 같이 찍은 사진을 게재해 김 의원 측과 민주당으로부터 “민주당 한명숙 대표가 마치 이정희 대표를 지지하는 것처럼 유권자를 현혹시켰다”며 비판받기도 했다.

실제 수도권 경선 지역 중 민주당이 최근 영입해 온 인사들을 전략공천으로 투입한 지역이 팽팽한 혼전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이 정치 신인들인 데다 지역에서 후보로 뛰고 있던 기존의 민주당 후보들을 주저앉힌 터라 당원들과 후보 간 ‘화학적 결합’이 부족한 곳이 많다. 우상호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은 야권연대 타결 직후 “신규 인사를 영입해서 지역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경우 경선에서의 승리를 안심할 수 없어 당 차원의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지난 3월 13일 경기 군포(이학영 전 YMCA 사무총장), 과천·의왕(송호창 변호사) 지역구를 지지 방문한 데 이어 15일에는 안산 단원갑(백혜련 전 검사), 이천(김도식 전 경기지방경찰청장), 양평·가평·여주(조민행 변호사) 지역구를 찾아가 당원들을 격려했다. 이 지역 모두 통합진보당과의 경선을 앞둔 곳이다. 민주당 핵심 의원은 “통합진보당이 인천과 서울 등 수도권에서 민주당과의 후보 경선에서 이겨 10여명 정도의 단일 후보를 낼 수 있다면 야권 바람을 타고 20석을 아슬아슬하게 달성할 수도 있다”고 했다.

원내교섭단체 되면 국회 파행 우려도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최근 당 홈페이지에서 ‘원내교섭단체 기원 약속놀이’를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한번도 파마를 해본 적이 없다는 이정희 공동대표는 통합진보당이 20석을 얻게 되면 ‘뽀글이 파마’를 하겠다고 공약했고 유시민 공동대표는 “의석수에 해당하는 날수 동안 보라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겠다”고 했다. 심상정 공동대표는 “지지자와 살사댄스를 추겠다”고 했다.

노회찬 대변인은 머리에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국회에 등원하기로 공언했고 지난 2월 네 번째 공동대표로 선임된 조준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원내교섭단체가 되면 국민께 여성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당선자 수만큼 큰 절을 드리겠다”고 했다. 당원들은 “20석을 얻으면 이명박과 일당을 구속시키겠다” “이정희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겠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당 관계자는 “그만큼 당 대표와 당원들의 원내교섭단체 20석 염원이 크다는 뜻”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7석밖에 되지 않는 통합진보당이 과거 민노당 시절부터 민주당을 흔들며 ‘공중부양 강기갑’ ‘최루탄 김선동’ 등의 ‘활약’을 보인 것에 빗대 이들이 원내교섭단체가 되면 국회 일정이 상시적으로 파행을 빚을 것이라며 ‘왜그 더 도그(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 현상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 양당은 야권연대 협상을 타결하면서 4월 총선 공약 및 2012년 대선 승리 후 국정 운영의 토대로 사용할 공동 정책 합의문도 같이 발표했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권이 체결한 한·미 FTA 시행 반대’ ‘제주 강정마을 군항 공사의 중단과 재검토 추진’ 같은 현 정권의 정책을 뒤집겠다는 공약이 대부분이다.

이에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오히려 민주당 입장에서는 활동 여지가 늘어나는 측면이 있다”며 “새누리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서 정책 노선을 조정하며 민주당이 국회 균형을 잡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국희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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