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모든 직위에서 해임된 리영호 전 인민국 총참모장(왼쪽)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광장의 군사퍼레이드 단상에서 김정은,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가운데)과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photo AP
지난 7월 15일 모든 직위에서 해임된 리영호 전 인민국 총참모장(왼쪽)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광장의 군사퍼레이드 단상에서 김정은,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가운데)과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photo AP

북한은 일요일이던 지난 7월 15일 당 정치국회의를 개최하고 북한군 총참모장 리영호(70)를 모든 직위에서 전격 해임한 데 이어, 16일에는 북한군 8군단장 출신인 현영철을 차수로 승진시키고 총참모장에 임명했다. 7월 17일에는 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공동 명의로 김정은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칭호’를 수여했다. 이어서 북한군 최고령자이자 최고 계급인 원수 이을설(91) 등을 비롯한 북한군 지휘부가 손자뻘 되는 나이 어린 김정은에게 줄줄이 충성 맹세를 하는 전대미문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리영호는 김정일이 김정은 위해 준비한 카드

생전에 김정일은 군(軍)이 수령유일독재정권의 핵심 보위세력이나 정권 방어 측면에서 보면 가장 두려운 집단인 점을 감안해 ‘군의 분권(分權)화’를 통해 통제하고 관리해왔다. 김정일은 일찍이 북한군을 인민무력부(군정권), 총참모부(군령권), 총정치국(조직지도·인사·선전사업), 후방총국(군수권), 간부국(간부사업), 보위사령부(호위 및 보위사업), 정찰총국(대남공작) 등으로 분권시켜 상호 감시체제를 강화하며 정권 공고화를 기한 바 있다. 특히 김정일은 나이 어린 김정은에게 권력을 안정적으로 이양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3남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하고 북한의 3대 권력 축인 당(조선노동당), 군(조선인민군), 정(내각·최고인민회의)에 대한 인적 정비를 완료했다.

당시 김정은을 위해 김정일이 준비한 첫째 카드는 김정은의 제1후견세력으로 핏줄인 여동생 김경희와 그 남편인 장성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현 김정은 정권하에서 장성택과 김경희의 영향력은 당·정·군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이라고 판단된다.

김정일이 준비한 둘째 카드가 바로 군 내부에서 김정은을 옹위할 인물로 발탁된 리영호다. 리영호는 1942년 강원도 통천 출신으로 1959년 북한군에 입대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 등을 거쳐 2003년 평양방어사령관이 된 후 2009년 북한군 대장으로 승진해 총참모장이 됐다.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북한군 차수 승진과 함께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위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당 중앙위 위원으로 임명되어 북한군의 최고 실세가 된 인물이다.

그러나 김정일 사후 김정은 통치 시대에 이르자 김정일이 준비해 놓은 카드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북한군부에 대한 통제책의 하나로 민간 당관료 출신의 최룡해가 올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국방위원, 북한군 차수 겸 총정치국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을 정치사상적으로 통제·감시하면서 리영호와 대립, 갈등이 깊어졌다. 50년 이상 군에서 뼈를 묻은 리영호 입장에서, 민간 출신의 북한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의 통제와 간섭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리영호가 사석에서 최룡해 주도의 총정치국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 최룡해, 장성택과 김경희를 거쳐 김정은에게 보고됐을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와 리영호의 싸움?

리영호의 전격 해임은 언뜻 보면 민간 출신의 당관료인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의 대립에서 최룡해가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리영호 참모장의 최룡해 등 총정치국에 대한 불만은 임명권자인 김정은에 대한 불만으로 간주되는 중대 사안인 것이다. 수령유일독재권력의 속성상, 아무리 나이가 29세밖에 안 되는 수령이지만 김정은을 제1선에서 후견하는 장성택과 김경희에겐 김정은 체제 공고화를 위해선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마도 리영호에 대한 그간의 의리 때문에 주저하는 김정은을 장성택과 김경희가 설득해 당 중앙위 정치국 결정 형식으로 해임해버린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리영호는 김정일에 의해 발탁되어 김정은을 가까운 거리에서 충실히 보필해왔고 장성택과도 외형상 원만한 관계였으나 ‘김정은 권력의 공고화’의 일환으로 숙청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리영호 전격 해임의 의미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군부강경파에 대한 개혁개방파의 승리, 선군정치에 대한 당의 승리 등이 아니다. 북한군 및 당관료들에게 수령(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고 허튼짓을 하면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는 명백한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 리영호 해임 직후인 7월 18일 김정은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에 올라 북한군 최고령자이자 최고 계급인 원수 이을설을 비롯한 북한군 지휘부가 김정은에게 공개적으로 충성 맹세를 하는 것이 이를 재입증해준다.

리영호 해임사태를 선군(先軍)노선하에서 비대해진 북한군부를 견재하고 상대적으로 약화된 당의 역할을 강화하는 ‘선군노선 약화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으나 동의하기 어렵다. 선군노선의 사상적 토대인 선군사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주체사상+총대 중시 사상’이다. 올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 때 북한은 당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 실현’을 명문화한 바 있는데, 여기서 김일성주의란 주체사상이며, 김정일주의란 바로 선군사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이 선군사상과 선군노선의 약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이른바 혁명전통과 선대 수령인 김정일의 유훈에 어긋나는 것으로 김씨 집단이 건재하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정은이 섣불리 이를 추진하다가는 혁명의 배신자로 몰려 조기 실각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최근 북한 노동신문 사설 등에서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와 ‘김정일 애국주의’의 강화를 주장하는 내용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향후에도 김정은은 일관되게 김정일주의(선군사상)에 기반한 선군노선을 통해 북한정권을 공고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성택·김경희의 역할

리영호 해임사태를 개혁개방을 반대하는 군부강경파와 개혁개방을 추진하려는 장성택, 최룡해의 권력투쟁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북한정권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북한에는 수령유일독재체제 속성상 강경파, 온건파가 존재할 수 없으며 오로지 수령파(김일성-김정일-김정은)만 존재한다. 수령의 지침하에서 약간 강경한 주장을 전개하는 그룹과 온건한 주장을 전개하는 그룹이 존재할 뿐이다. 또 북한에서 개혁개방의 추구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집단의 축출을 의미할 뿐이다. ‘혁명전통’이 건재한 북한 지휘부가 이러한 개혁개방을 수용할 리 없는 것이다.

리영호의 숙청으로 북한의 대남 정책이 온건해질 것이라는 견해 역시 아마추어적 사고다. 2012년 4월 행사 등에서 보듯이 북한 김정은 정권은 ‘조선혁명의 전통과 김일성-김정일 유훈관철’ 및 ‘강성대국의 실현’(적화통일의 완수) 기치를 명백히 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남 적화전략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향후 북한의 대남 전략은 더욱 공세화되고 전투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 12월 남한의 대선 공간에 대응해 ‘친북정권 창출투쟁’에 매진하며 ‘전쟁과 평화’ 공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새로운 한국 정부가 출범하면 일부 유화적 조치를 전개하면서 강경·유화 배합노선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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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안보대책실 선임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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