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TV토론은 대선후보 면접장이다. 상상해 보자. 당신은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관이다. 지원자는 저마다 자기 자랑을 떠벌린다. 서로 자기 리더십, 실천력, 포용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한다. 당신은 좋은 사원을 어떻게 골라낼 것인가?

당신은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먼저 꼼꼼히 살펴볼 것이다. 지원자의 약점을 찾아내 아픈 질문을 준비하고, 면접 중에 그것들을 물어볼 것이다. 이어 지원자의 말을 하나씩 곱씹으며 들을 것이다. 말의 논리는 정연한지, 진실성은 있는지, 겸손함과 배려심은 있는지, 그리고 지원자의 무심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다리를 떠는지, 눈은 침착해 보이는지, 손은 깨끗한지 살필 것이다. 지원자가 이력서에 슬쩍 숨긴 인생의 이면도 따져볼 것이다. 군대는 진짜로 다녀왔는지, 봉사활동은 횟수만 채운 것은 아닌지, 평생 부잣집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것은 아닌지. 당신은 면접 내내 꼼꼼히 따질 것이다. 그런 뒤 결정할 것이다. 누가 당신과 함께 일할 사람인지를.

메시지와 메신저를 함께 보자

대선 토론? 다르지 않다. 대선 토론은 대선후보 면접장이다. 일부 사람들은 대선 토론이 말장난이고 쓸모없다고들 하지만, 아니다. 면접에서 못난 사람이 뽑혔다고 면접을 없애거나 폄하할 수는 없다. 면접을 본 사람이 아닌, 면접관을 탓할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서류만 보고 뽑는 것보다, 전화로 뽑는 것보다, 얼굴 보고 하는 면접이 훨씬 우월하다. 대선 토론으로 좋은 대통령을 골라낼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다. 다만 면접관이 사람 보는 눈이 있고, 준비를 잘 했을 때만 그렇다. 잘 준비된 대선 토론이야말로 가장 우월한 대선후보 면접 방법이다.(적어도 길에서 확성기 틀고 떼로 춤추는 것보다 훨씬 우월하다.)

대선 토론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 우선 메시지(Message)와 메신저(Messenger)를 함께 보자. 봐야 할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비전’과 ‘정책’. 비전은 목표이고, 정책은 수단이다. 5년 후에 우리는 어떤 나라가 되어 있을까? 싱가포르? 호주? 일본? 그도 저도 아니면 도대체 어떤 모습의 나라? 그게 비전이다. 속지 말자. 비전은 슬로건이 아니다. ‘저녁 있는 삶’? 멋진 슬로건이지만 멋진 비전은 아닐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체계가 어디로부터, 어떻게(From-to) 바뀌면 그 ‘저녁 있는 삶’이 되는지 밝힐 수 있어야 비전이다. 그게 없으면 슬로건이고, 구호이고, 이데올로기일 뿐이다.(‘저녁 있는 삶’은 예시일 뿐이고 폄하의 의도는 없다.)

대선 토론에서 정수장학회, NLL(북방한계선) 발언 따지는 데 너무 시간 쓰지 마라. 그보다 비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너는 학급을 위해 뭘 할 거냐?” 물었는데, “옆의 친구는 껌 뱉었어요”라고 말하는 후보와 다를 바 없다. 그런 후보에게는 표 주지 말자.

정책은 비전 달성을 위한 방법이다. 정책에는 ‘무엇을’ ‘왜’ ‘어떻게’ ‘언제’ ‘얼마나 하겠다’는 것이 담겨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것이 주는 효과의 유형, 대상, 시기, 규모 및 성공의 정의 역시 담겨 있어야 한다. 정책의 대가를 말하는지도 보자. 한 방의 해결책은 세상에 없다. 다 해결하겠다고 하면 ‘거짓’이다. 자기만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 ‘오만’이다. 5년 안에 해결한다고 하면 ‘착각’이다. 자신의 정책으로 피해 볼 수도 있는 사람, 지역과 계층을 솔직하게 말하는지도 보자. 정책 성공의 책임을 말하는지 역시 보자. ‘니가 책임져라’ ‘다 책임지겠다’ ‘내가 책임지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책임지겠다’를 말하는 후보에게 한 표 주자.

후보와 조직을 보자

누가 할 거냐도 중요하다. 즉 후보와 조직의 문제다. 똑같은 일도 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결국엔 사람이다. 후보와 조직을 보자. 질문에 답하지 않는 후보, 표 주지 말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말하는 후보. 사실관계에 대한 ‘진실’을 물었는데, 사실관계에 대한 ‘입장’을 말하는 후보. ‘미래의 방향’을 물었는데 ‘과거의 실정(失政)’을 말하는 후보, ‘해결의 방법과 내용’을 물었는데 자신이 가진 ‘해결의 경험과 업적’을 말하는 후보. 이 모두가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이다. 표 주지 말자. 후보자의 말, 행동, 인생 그 모두가 숨겨진 정답이다.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표를 주자. 이면의 사람 됨됨이를 보자. 대선 토론 찰나에 드러난 후보자의 언행에서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찾아내자.

후보자에게 주변 인물과 조직은 자산이고 빚이다. 이승만 정권의 곽영주 경호실장, 박정희 시대의 차지철 경호실장,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안전기획부장,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의원,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 김대중 정권의 권노갑 의원과 김홍업, 노무현 시대의 노건평, 이명박 대통령의 박영준과 최시중 위원장. 하나같이 권력을 휘두르다 기소되거나 감옥에 갔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경우도 있다. 안타깝게도, 대통령 뽑을 때 우리는 그런 주변 인물들이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근데 뽑아 놓았더니 사고가 났다. 그렇다면, 이번에 박근혜에게, 문재인에게, 안철수에게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누군지 추궁하자. 캐물어서 알아보자. 그 사람들 죄다 대선 토론장에 불러내서 약속받자. 정치 개입 안 하겠다고, 나쁜 짓 안 하겠다고.

아는 만큼 보인다, 공부하자

대선 토론을 어떻게 봐야 할까? 꼼꼼하게, 뜨겁게, 그러나 재미있게 보자. 온라인 쇼핑도 가격 비교하고 사면 더 잘 산다. 선거와 쇼핑의 공통점은 하나다. 노력한 만큼 알고, 아는 만큼 좋은 선택을 하게 돼 있다. 대선 토론도 미리 예습하고, 꼼꼼히 보고, 듣고, 끝나고 복습하자. 후보별 정책, 장단점, 경력, 주변 인물을 A4 용지 두 장으로 미리 정리해 놓자. 어떤 의구심이 해소되면 저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도 적어놓자. 끝나면 발언의 사실관계도 확인하자. 뻥쳤는지 확인하자. 그 정도 노력도 안 하면, 우리 역시 정치판의 정치꾼들을 나무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유권자다.

미운 며느리 발뒤꿈치 예쁘게 보기도 중요하다. 나와 반대쪽 진영, 다른 후보 지지자들과 함께 보자.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도 밉다. 그러면 안 된다. 부부싸움 할 때, 난 ‘네가 싫다’고 하면 해답이 이혼밖에 없다. 난 ‘네 이런 행동이 싫다’고 하면 고칠 여지가 있다. 존재를 부정받으면 투쟁밖에 남는 게 없다. 싫든 좋든 국민의 절반은 진보고 절반은 보수다. 3분의 1은 박근혜이고, 3분의 1은 문재인이고, 3분의 1은 안철수 지지자다. 반대쪽이 무조건 싫으면 결국 나라를 쪼개자는 거다. 그러니 싫은 이유는 부분이어야 하고, 좋은 점도 있어야 하고, 싫으면 개선의 대안도 줘야 한다. 함께 봐야 대화를 한다. 대화를 해야 이해를 한다. 이해를 해야 해결이 된다. 이번 대선 토론은 반대쪽 지지자들과 꼭 같이 보자.

대선 토론을 월드컵처럼 즐기자. 월드컵처럼 재미있게 보자. 2002년 우리는 모두 다 코치고, 선수였다. 다들 한마디씩 하고, 마음은 그라운드를 달렸다. 경기 전에는 팀의 전략을 살피고, 경기 중에는 소리를 지르고, 경기 후에는 ‘치맥’을 먹으며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는지 맹렬히 따졌다. 대선 토론도 그렇게 보자. 대선 토론 전 다 같이 모여서 미리 후보별 관전 포인트를 이야기해보자. 토론을 보면서 좋은 대답에는 힘껏 박수를 쳐주고, 형편없는 대답에는 ‘우~’ 하고 한껏 야유를 보내자. 그리고 대선 토론이 끝난 후 우리의 대통령을 골라내자. 그리고 그 사람을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돕고, 감시하고, 만들자. 대선 토론, 다 같이 봐야 제맛이고, 국민이 토론할 때 대선토론은 토론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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