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던 18대 대선이 막판에 또다시 ‘안철수 변수’로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는 지난해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설이 나온 이후 대선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박근혜 대세론’을 허물었고, 올해 9월 말 대선 출마 선언 직후에도 지지율 선두에 오르며 판세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지난 11월 23일 대선후보직을 일방적으로 사퇴한 바 있다. 안씨는 사퇴일로부터 13일 만인 12월 6일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원하기로 전격 선언, 대선 정국은 막판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안씨가 사퇴하기 이전에는 “문 후보와 안 전 후보의 단일화가 잡음 없이 이뤄질 경우 대선 막판에 박 후보의 열세가 확연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던 전문가들이 많다. 이른바 경선에서 이긴 후보에게 꽃가루 세례가 쏟아지면서 지지율이 치솟는 ‘꽃가루 효과’가 야권 단일후보에게 영향을 줄 것이란 예측이었다. 그런 전망에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8일 전 갤럽조사에서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42.3% 대 38.3%로 앞섰다가 단일화 다음 날 조사에서 37.0% 대 43.5%로 뒤집힌 기억도 영향을 줬다. 하지만 안씨의 일방적 사퇴로 만들어진 후보 단일화는 10년 전 노·정 단일화와는 전혀 다른 판세를 만들었다. ‘안씨의 사퇴는 단일화의 실패’란 인식이 야권 지지층 사이에 확산되면서 ‘단일화 효과’가 반감(半減)됐기 때문이다.

신부동층 文 쪽으로?

안씨의 사퇴 다음 날인 11월 24일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지지율은 43.5% 대 39.9%였다. 오차범위 내에서 박 후보가 앞섰다. 이전까지 안씨를 지지했던 지지층 중에서 문 후보 지지로 이동한 경우는 56.9%에 그쳤고, 박 후보 지지로 이동은 20.5%, 부동층으로 바뀐 경우는 21.3%였다. “안씨가 아니라면 누구도 찍지 않겠다”는 안씨의 핵심 지지층인 ‘신(新)부동층’은 전체 유권자 기준으로는 7% 정도로 측정됐는데, 이들이 문 후보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엔 박 후보의 우세가 굳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의 11월 25~27일 조사에서 ‘신부동층’의 다수인 64.0%가 ‘박 후보와 문 후보 모두 대통령감이 아니다’라고 답했고, 대통령감으로 ‘문 후보가 적합하다’는 17.7%, ‘박 후보가 적합하다’는 13.3%에 그쳤다. 박 후보와 문 후보 누구도 마음에 차지 않는 안씨의 핵심 지지층은 안씨가 적극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기 전에는 대선 정국을 그냥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였다. 11월 27일 공식 선거운동 시작 이후에도 각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의 유리한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가 12월 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박 후보 44.3%, 문 후보 38.8%로 두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10일 전 조사의 3.6%포인트에서 5.5%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하지만 문 후보 측은 안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해 부동층이 대거 흡수되면서 막판 역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안씨가 문 후보에 대한 전격 지원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지난 12월 5일 실시한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만약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의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할 경우 누구를 지지하겠는가’라며 가상 상황을 전제로 물어본 결과, 문 후보가 박 후보를 43.7% 대 42.9%로 오차범위 내에서 0.8%포인트 앞섰다. 안씨의 적극 지원이 없을 경우와 비교하면 문 후보는 4.9%포인트 상승, 박 후보는 1.4%포인트 하락하면서 판세가 급변할 것이란 예측이었다. 가상 상황을 전제로 측정한 것이지만 ‘안철수 변수’의 힘은 6%포인트가량인 것으로 분석됐다.

득표율보다 투표율 예측이 더 어려워

‘안철수 변수’의 영향이 가장 큰 곳은 수도권이었다. 안씨의 적극 지원이 없을 경우 수도권에서 박 후보와 문 후보는 41.6% 대 39.7%로 박 후보가 앞섰지만, 안씨가 지원에 나설 경우엔 40.3% 대 44.8%로 문 후보가 역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변수’가 올해 대선의 강력한 막판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수도권 표심(票心)이 대선 승부의 키를 쥐고 있다는 조사 결과였다. 세대 간 대결구도가 뚜렷한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로 주목을 받아온 40대도 안씨의 행동 개시로 인한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변수’가 없을 경우엔 40대에서 박 후보와 문 후보가 37.2% 대 41.6%로 접전 양상이었지만, 안씨가 문 후보를 적극 지원할 경우엔 35.9% 대 47.9%로 차이가 12%포인트로 벌어졌다. 안씨의 핵심 지지층인 전체 유권자의 7%가량인 ‘신(新)부동층’도 상당수가 문 후보 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조사됐다. 다수의 전문가들도 “안씨 지원 효과는 열세에 놓여 있던 문 후보가 박 후보와 경합할 정도로 맞붙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대선이 다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투표율’이 또다시 마지막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초접전의 승부를 겨루는 선거는 결국 세대별 투표율이 승부를 가를 공산이 크다. 투표율과 관련해선 여야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고 있다. 박 후보 측은 전체 유권자가 빠짐없이 투표를 한다는 전제로 얻어진 여론조사 수치가 박빙이라면, 전체 투표율이 2002년 대선과 비슷한 70%를 넘어도 승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지 기반인 고연령층이 20·30대보다 반드시 투표율이 높을 것이란 계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문 후보 측은 지난 4월 총선은 정당투표에서 새누리당 등 범보수 진영과 민주당 등 범진보 진영의 총 득표율이 각각 48%로 같았지만, 대선은 높은 투표율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투표율이 54%였던 지난 총선에 비해 대선 투표율이 70% 정도로 상승할 경우 지지기반인 20·30대의 투표율 상승 여력이 고연령층보다 더 클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후보별 득표율 예측보다 더 어려운 게 투표율 예측”이라며 “투표율에 따른 여야의 유·불리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미디어리서치 이양훈 부장은 “안 전 후보의 재등장으로 그를 지지하던 20·30대의 투표 동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위기를 느낀 고연령 보수층의 결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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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대선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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