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지난 12월 6일 오후 서울 정동 소재 음식점 달개비에서 단독회동을 마치고 나서 손을 잡고 있다. ⓒphoto 연합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지난 12월 6일 오후 서울 정동 소재 음식점 달개비에서 단독회동을 마치고 나서 손을 잡고 있다. ⓒphoto 연합

대선을 13일 남긴 12월 6일 오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캠프가 꾸려진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는 침묵이 가득했다. 전날 문 후보가 서울 용산에 있는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집에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온 직후라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오후 3시20분. 진성준 캠프 대변인이 단상에 올라섰다.

“오늘 오후 4시20분 달개비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회동한다. 오후 1시경에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두 분이 서로 통화를 했다.” 달개비는 덕수궁 옆이자 성공회 건물 바로 옆에 있는 식당. 캠프 관계자들 얼굴에 미소와 화색이 돌았다. 한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네며 “정말 피 말리는 하루였다”고 했다.

오로지 안철수

안철수씨가 성난 얼굴로 사퇴 기자회견을 했던 지난 11월 23일 이후 야권에는 ‘단일화 실패’라는 말이 공공연히 오르내렸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1월 27일 이후 공표된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판판이 깨지고 있던 터였다. 공식 선거운동 둘째 주인 12월 3일 격차가 오차범위 밖으로까지 번져나가자 캠프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수장학회 등 박 후보의 재산 문제부터 5촌 조카 살인사건의 박지만씨 청부살인 의혹 제기까지 네거티브 총공세가 시작됐다. 박 후보와 최태민씨의 의혹을 파헤친 ‘태자마마와 유신공주’ 같은 책을 교과서처럼 읽으며 선대위 대변인들이 브리핑 자료로 활용할 만큼 캠프는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캠프 해단식을 한 안철수씨는 “지금 대선은 거꾸로 가고 있다. 새 정치를 바라는 시대정신은 보이지 않고 과거에 집착해 싸우고 있다”며 민주당에 결정타를 날렸다.

민주당은 여전히 “12월 4일 TV토론이 끝나면 문 후보의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며 자신만만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막가파식’ 토론 변수를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토론 뒤 신경민 미디어단장은 “문 후보가 보이지 않았다. 득점 포인트가 없었다”고 했고, 아나운서 출신 시민캠프 유정아 대변인은 “(궁지에 몰린) 박 후보가 불쌍해 보여 오히려 덕을 보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대선을 2주 남긴 12월 5일. ‘안철수 카드’ 말고는 더 이상의 대책도 없어 보였다. 이날 선대본부장 회의에서 문 후보는 “정말 풀가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비상체제라고 생각하라”며 네거티브 자제령을 내렸다. 새 정치를 주창하는 안씨에게 다시 한번 공식 구애를 펼친 셈이다.

문 후보는 회의 뒤 수행원만 대동한 채 비밀리에 서울 용산구 안철수씨 자택을 찾아갔다. 같은 시각 참모들과 서울 모처에서 회의를 하던 안씨는 연락을 받고도 만남에 응하지 않았다. 문 캠프에서 “이러다가 5% 격차를 투표일까지 좁히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박(朴) 차고 문(文) 열자!

사정이 이렇다 보니 12월 6일 오후 안씨가 조건 없는 지원을 약속하자 문 캠프에서는 “죽다 살아났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날 안씨가 전격적인 회동에 나선 배경에는 문 후보가 오전 국민연대 출범식에서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새 정치 선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등판 타이밍’을 저울질한 안씨가 여론조사 격차가 점점 벌어지던 최적의 시점에 맞춰 ‘구원투수’ 격으로 나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안씨가 11월 23일 후보직을 사퇴한 지 13일 만에 한편으로는 대선을 13일 남긴 12월 6일 문 후보와 다시 회동하자 캠프에서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단일화가 있느냐”며 롤러코스터를 타듯 피 말렸던 일련의 과정을 오히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에 비견한 ‘극적 효과’로 칭송했다. 한쪽이 사퇴를 하며 양보를 하고, 깨질 듯한 단일화가 막판에 극적으로 성사되는 모습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단일화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은 안 해봤지만 문 후보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캠프 의견도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 사실”이라며 “결국 안 전 후보 스타일대로 막판까지 시점을 보다 최대의 단일화 효과를 거둔 것 아니냐”고 했다.

야권에서는 당장 ‘박 차고 문 열자’라는 구호가 트위터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두 후보 간 회동이 끝난 후 브리핑을 갖고 “승부는 이제부터 원점에서 시작”이라고 했다. 우 공보단장은 브리핑 뒤 기자와 만나 “사실 12월 9일 정도에나 회동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 정도만 돼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며 “2002년 당시 정몽준 후보는 대선 6일 전인 12월 13일 등장해 공동 유세도 딱 세 번 했다”고 말했다.

“유세를 많이 따라다닌다고 좋은 게 아니다. 확실하게 딱 한 번만 해줘도 효과는 충분하다. 우리로서는 두 명의 후보가 움직이는 효과다. 같이 다녀도 되고 지역을 나눠서 다녀도 된다. 이렇게 해도 도움이 되고 저렇게 해도 도움이 된다.”

당장 안씨는 12월 7일 문 후보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부산 유세에 공동으로 나섰다. 박광온 선대위 대변인도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의 부산 득표율은 40% 정도 됐다. 이번 대선에는 이보다는 높아야 한다”며 바람을 잡았다. ‘문안(文安) 드림(DREAM)’ 유세로 ‘마의 벽’으로 통했던 PK지역 40% 벽을 깰 수 있다는 것이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문·안 유세’ 뒤 주말 첫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박 후보를 오차범위 내로 따라가기만 해도 단일화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첫 여론조사에서 바로는 못 이긴다. 우선 2~3%포인트 차로 붙여놓고 다음 주부터 차별화된 구도와 전략으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원래 따라가는 게 유리하다. 야권 지지자들은 전통적으로 마지막에 결집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도 막판에 노 후보가 역전을 했다”며 “사실상 문 후보도 안 전 후보와의 단일화 정국에서 막판에 따라잡은 것 아니냐”고 했다.

문·안 회동이 끝난 12월 6일 밤 경기도 수원 유세부터 다음 날 제주·부산 유세까지 문 후보는 마이크만 잡으면 ‘안철수’를 언급했다. 문 후보는 제주 유세에서 “안철수 후보 만난 것 봤느냐”며 “대선 구도는 더욱 분명해졌다. 문재인·안철수·심상정이 함께하는 새 정치와 박근혜·이회창·이인제가 함께하는 낡은 정치의 대결 맞느냐”고 했다.

한 측근은 “후보의 연설 목소리가 한층 더 커진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장 현장 인파가 두 배로 몰리고 있다는 보고가 속속 올라왔고 서울 영등포 캠프 관계자들은 환호했다.

문 캠프에서는 이번 단일화 과정을 통해 ‘보수 대연합’ 대 ‘민주(文)·중도(安)·진보(沈) 연합’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보수 진영과 민주·진보 진영이 나뉘어 세 대결을 벌일 경우 사회구조상 보수 진영이 승리해 왔지만 중도세력인 안 전 후보가 결합함으로써 49 대 51의 싸움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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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희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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