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제국 전성기를 다룬 터키의 역사 드라마 ‘위대한 세기’의 홍보 포스터.
오스만제국 전성기를 다룬 터키의 역사 드라마 ‘위대한 세기’의 홍보 포스터.

터키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한 역사드라마가 터키는 물론 이슬람 전역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제의 드라마는 터키 TV에서 지난해부터 방영 중인 ‘위대한 세기(Muhtesem Yuzyil·Magnificient Century)’. 오스만제국이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며 번영을 누리던 16세기에 46년간 통치자의 자리에 있었던 술탄 슐레이만 1세 시절 하렘 여인들의 암투를 그렸다. 지난해 1월 5일 1부가 터키 최대 방송인 Show TV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방송사를 바꿔 스타TV에서 3부가 방영 중이다.

이 드라마는 현재까지 중동과 이슬람 국가들은 물론 서구의 프랑스, 러시아, 체코, 등 전 세계 25개국에서 방영되며 1억5000만명이 시청했다. 이 드라마는 술탄의 업적이나 정복 활동보다는 술탄의 아내인 알렉산드라의 역할을 중심으로 후궁들의 암투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내용 중 이슬람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선정적인 내용들이 방영되면서 이슬람권 보수층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이슬람주의자의 항의는 방영 직후 시작됐고, 이는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 영국 신문 가디언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된 바 있다.

급기야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11월 25일 “사법당국이 이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나섰다.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해 9월에도 “이 드라마는 젊은 세대에게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여준다”고 비난한 바 있다. 총리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터키의 수사당국은 12월 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여론은 드라마 제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 여하튼 일개 드라마인 ‘위대한 세기’는 지난해 방영 이후 최근까지 이슬람권에서 ‘위대한 논쟁’을 만들어내고 있는 양상이다.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은 슐레이만 1세와 왕비인 알렉산드라. 슐레이만 1세는 오스만제국의 제10대 군주(재위 1520~1566년)로 오스만제국 역사상 최장 기간인 46년간 통치했다. 위대한 슐레이만이라는 칭호를 들은 영명한 군주다. 그는 오스만제국의 법령체제를 완성하여 제국 내부에서는 법을 수여한 위인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슐레이만은 중동지역과 북아프리카 대부분, 발칸반도와 헝가리를 점령했으며 빈을 포위 공격하는 등 기독교 유럽을 위협했던 정복자이자 군사전략가였다. 그의 함대는 지중해와 흑해, 홍해, 페르시아만을 제패하는 등 당시로서는 세계 최강의 제국을 건설하였다. 슐레이만 1세는 국내적으로도 교육·법률·형법 체계를 완성하였으며 농업기술도 발전시켰다. 시·문화·과학·언어에 뛰어났던 슐레이만 1세는 오스만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슐레이만 1세 시대의 하렘

오스만제국의 술탄(군주)은 많은 후궁을 거느렸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성노예들이다. 궁전에서 후궁들이 사는 곳이 바로 하렘이다. 이곳에는 술탄과 후궁들과 환관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하렘의 여인들 사이에도 엄격한 서열이 있었다. 서열 1위는 술탄의 어머니, 즉 대비이다. 술탄이 무능하거나 어리면 술탄의 어머니가 사실상 국정을 총괄했다. 서열 2위는 술탄의 후계자인 세자를 낳은 여성, 즉 사실상의 왕비이다. 정식 왕비는 결코 아니다. 다음 차례가 왕세자는 아니더라도 술탄의 아이를 가진 후궁들이다. 나중에 하렘에 들어간 젊은 여성들이 가장 낮은 서열이다. 하지만 술탄의 눈에 들기만 하면 얼마든지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아들을 낳고 술탄이 자신이 낳은 아들을 새로 왕세자로 지정하기만 하면 권력 서열 제2인자, 나아가서는 제1인자로 발돋움할 기회가 생긴다. 그러니 하렘 여성들 사이에서 술탄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경쟁은 매우 심했다.

슐레이만 1세에게는 세자를 출산한 여성이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장미의 샘’이란 의미의 마히데브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총애했다. 그런데 알렉산드라라는 성노예가 하렘에 들어가면서 파란이 일기 시작하였다. 알렉산드라는 당시 폴란드가 지배하던 우크라이나 지역 기독교 성직자의 딸이었다. 알렉산드라는 크림반도의 타타르 부족에게 붙잡혀 노예가 된 뒤 이스탄불의 하렘으로 팔려간다. 당시 흑해 북쪽 지방의 남녀는 노예로 지중해에서 많이 거래됐다. 하렘에서 알렉산드라는 슐레이만 1세의 눈에 든다. 그녀가 술탄의 눈에 든 계기가 무엇인지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술탄이 즐거움이라는 의미인 ‘휘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잘 웃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술탄이 휘렘을 총애하면서 왕세자의 어머니인 마히데브란과 휘렘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더구나 휘렘은 술탄과의 사이에 아들을 넷이나 낳았다. 오스만제국에서는 새로 술탄이 되면 술탄의 형제들은 모두 죽이는 관행이 있었다. 쿠데타나 역모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마히데브란이 낳은 세자가 술탄이 되면 휘렘이 낳은 아들 넷은 모두 그날로 목이 졸려 죽게 된다. 휘렘은 슐레이만 1세의 마음을 사로잡고, 음모를 꾸며 마히데브란이 낳은 왕세자를 죽게 하고 자신이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었다. 그 다음 왕세자의 어머니라는 하렘 정상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젊은 여인들이 술탄에게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아야만 했다. 휘렘은 이를 위해 살인을 포함한 무시무시한 음모를 꾸미고 실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휘렘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그리고 슐레이만 1세에게 이슬람교에서는 노예와의 성관계는 금지되어 있다며 자신을 정식 왕비로 만들어 달라고 설득하여 마침내 성공한다. 오스만제국 하렘에 팔려온 성노예가 처음으로 정식 왕비로 등극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슐레이만 1세가 사망하자 마침내 아들 셀림이 오스만제국의 군주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슐레이만 1세 시대의 하렘 역사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보는 느낌

슐레이만 1세의 초상화
슐레이만 1세의 초상화

드라마 ‘위대한 세기’는 하렘 궁중으로 팔려온 성노예 알렉산드라가 술탄이 총애하는 애첩 휘렘이 되고 왕비가 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터키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영상화된 적은 거의 없는 소재다. 이 이야기가 드라마화하면서 잘 짜여진 대본, 뛰어난 영상, 미모의 여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 등으로 터키는 물론 여러 나라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 드라마가 성공한 것은 하렘 내부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후궁과 환관들만 드나드는 하렘의 모습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지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여성 전용 공간에 대한 관심이나 언급을 금기시하는 이슬람권의 전통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렘에서 당시의 여성들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무슨 음악을 들었으며,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또 술탄은 데리고 잘 여인들을 어떻게 선발했는지, 술탄은 후궁들에게 어떤 관심을 쏟았는지 등 당시 역사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드라마는 당대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오스만제국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당시의 화려한 의상과 하렘을 섬세하게 복원했다.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가 된다. 이를 배경으로 드라마는 하렘에서의 술탄과 여인들의 사랑, 술탄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여인들의 기지와 음모, 갈등을 그려낸다. 드라마는 특히 등장인물에 현대적 감각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항상 영토정복에만 힘을 쏟았을 듯한 슐레이만 1세는 젊은 여인들과 정열적으로 거침없이 사랑을 나눈다. 무표정하고 굴종적이었을 하렘의 성노예들은 최강의 미모를 바탕으로 온갖 교태와 기지를 동원하여 술탄을 유혹하고, 서로 간에 목숨을 건 암투를 벌인다. 특히 슐레이만 1세와 후궁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는 드라마의 백미다.

# 알렉산드라가 하렘에서 발탁되는 장면.

알렉산드라는 비슷한 여인들과 함께 술탄 앞에서 춤을 춘다.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고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쓰다듬는 등 고혹적인 춤이다. 줄곧 요염하게 미소 지으며 근엄한 표정의 술탄을 유혹한다. 춤이 끝나자 술탄은 푸른 수건을 알렉산드라 앞에 집어던져 간택했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 알렉산드라가 슐레이만 1세의 수청을 드는 장면.

알렉산드라는 수청을 들러 가기 직전에 환관들로부터 술탄 앞에서는 눈을 들지 말고, 술탄의 이름을 말하지 말고, 옷자락에 키스하라는 등의 주의를 듣는다. 화려한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알렉산드라는 술탄의 방에 들어가 슐레이만 1세의 옷자락에 키스하고 눈을 들어 빤히 쳐다본 후 혼절한다. 슐레이만 1세가 재빠르게 허리를 감아 안는다. 그때 알렉산드라가 깨어나 미소 지으며 ‘슐레이만’ 하고 감히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술탄이 의사를 부르려 하자 알렉산드라는 이를 막으며 “당신을 너무 오래 기다리다가 지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슐레이만은 품에 안긴 알렉산드라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며 침대로 향한다. 잠시 후 거의 반라가 된 둘이 침대에서 서로의 육체를 애무하며 즐겁게 웃음 짓는 장면이 이어진다.

# 이란 출신의 젊은 후궁이 술탄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

거의 누드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비키니 차림에 전라의 몸을 망사로 겨우 가린 여인은 두 손을 관능적으로 휘저으며 엉덩이를 흔들면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잠시 후 후궁은 술탄의 품에 안긴다. 둘은 격렬한 키스를 나눈다.

‘위대한 세기’의 여주인공인 왕비 알렉산드라.
‘위대한 세기’의 여주인공인 왕비 알렉산드라.

이스탄불 관광객 몰려들어

이처럼 드라마 ‘위대한 세기’는 사라진 인물들에게 현대적이고 한편으로는 서구적인 생명력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며 터키는 물론 각국에서도 시청률 초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 직후부터 무대의 배경이 된 이스탄불의 ‘톱카피궁전’으로 관광객이 쇄도했다. 터키 정부는 지난 6월 이들을 위해 톱카피궁전의 하렘을 추가 개방했다. 터키 지역 도처에 관광객을 위한 오스만제국 시대의 의상 및 식기 박물관들이 문을 열기도 했다.

최근 터키 관광당국은 ‘위대한 세기’ 방영으로 관광객이 50%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모든 아랍국가들에서 이 드라마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아랍정상회담이 열리는 중에도 정상들의 화제 상당 부분은 이 드라마였다. 프랑스에서 이 드라마는 시청률 18%를 기록했다. 이 같은 선풍적 인기를 바탕으로 지난 8월 프랑스 제2TV가 제작하여 방영한 슐레이만 1세에 대한 역사다큐멘터리는 35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상 터키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나라인 그리스에서도 이 드라마는 ‘위대한 슐레이만’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드라마 방영 이후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경제난으로 이스탄불을 가보지 못하는 대신 터키어 학습 열풍이 일고 있다고 터키의 아나톨리아통신은 최근 보도했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4월부터 방영한 이 드라마가 13회까지만 하고 잠시 중단되자 시청자들의 격렬한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러시아 언론이 이를 금단증상이라 표현했을 정도다. 오스만제국과 적대적 역사를 가진 세르비아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과격민족주의단체가 “드라마가 오스만제국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며 지난 3월에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현재까지 25개국에서 방영되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터키 국내에서의 인기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최고의 시청률은 당연하다. 드라마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화장품, 향수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심지어는 드라마에서 구리로 만든 식기가 사용되자 젊은이들 사이에 구리로 만든 식기의 판매가 크게 늘어날 정도다.

이슬람 성직자들 드라마 안 보기 운동

하지만 터키 일부에선 부정적 반응이 나타났다.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다. 이들이 남녀 간의 애정사를 매우 불경스럽게 여기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특별히 이 드라마에 분노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슐레이만 1세 시절 오스만제국의 군주는 술탄인 동시에 칼리프였다. 술탄은 세속적인 제왕이고, 칼리프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부르는 호칭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가톨릭의 교황과 같은 격. 현재의 칼리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이다. 그런 성스러운 칼리프인 술탄 슐레이만 1세가 애첩들과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도 불경스러운데, 술을 마시고, 애첩들을 품에 안고, 키스를 하고, 반라의 차림으로 침대에서 뒹구는 장면을 보고도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가만히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고위 성직자는 신도들에게 이 드라마는 “이슬람을 모욕하고 있다”며 보지 말라고 설교했다.

터키 내의 이슬람주의자나 보수적인 민족주의자들도 못마땅해 하고 있다. 특히 슐레이만 1세의 주된 관심사는 외정이었는데 드라마만 보면 오히려 하렘의 여성들 문제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는 비판도 나온다. 심지어는 드라마가 슐레이만 1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는 ‘이상한’ 항의도 나왔다. 에르도안 총리가 11월 27일 드라마가 젊은 세대에게 역사를 잘못 가르칠 우려가 있다고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터키 국영TV는 이러한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과 항의를 달래려 위대한 술탄 슐레이만 1세의 정복과 치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했다. 하렘 여인들 이야기를 쏙 빼고 만든 이 역사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은 거의 0% 수준이었다.

11월 초 터키에서는 이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학자들이 회의를 열었다. 참석한 학자들 대부분은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드라마 ‘위대한 세기’의 고증작업을 도운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드라마에는 사실도 있고 허구도 있다. 허구를 구성하는 일이 훨씬 힘들다. 허구는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건은 기록에만 의지하면 된다. 하지만 술탄이 아내에게 어떻게 접근했는지, 하루 일상이 어땠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허구를 만들어내야 한다. 내가 슐레이만 1세가 정복을 떠나는 장면을 만들자고 해서 시리즈에 넣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시청률이 형편없었다.”

정시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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