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중앙역 광장에 조성된 스케이트장. ⓒphoto 연합
헬싱키 중앙역 광장에 조성된 스케이트장. ⓒphoto 연합

요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핀란드보다 훨씬 남쪽 나라인 한국이 오히려 더 추운 것이다. 서울은 영하 16도라는데 핀란드 헬싱키는 오늘은 0도, 어제는 영상 3도까지 올라서 쌓여 있던 눈이 녹는 현상까지 보였다. 하지만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방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핀란드에서 겨울을 맞은 지 벌써 햇수로 15년째. 이곳 동장군이 얼마나 무섭고 지독하며 또한 무한대로 느껴질 정도로 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 겨울은 통상 10월 말 첫눈이 내릴 때 시작해 마지막 눈이 내리는 5월 초까지 계속된다. 가장 추운 달도 우리처럼 1월이 아닌 2~3월이다. 아직 진짜 추위가 오기에는 멀었다.

2~3월이 겨울 절정

필자가 거주하는 헬싱키 부근 수도권 지역은 핀란드에서 그래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따뜻한’ 곳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래도 겨울이 정점에 이르는 2월이 되면 영하 20도 이하의 나날들이 2주 이상 지속된다. 이런 때 이른 아침 집을 나서려 현관문을 열면 마치 거대한 냉동창고 문을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다. 핀란드 북단에 있어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진 우츠요키(Utsjoki)라는 곳은 몇 년 전 영하 49도까지 떨어졌다는 뉴스를 접하고 화들짝 놀랐던 적이 있는데 그런 곳에도 사람이 거주한다는 것이 사실 더 놀랍다.

처음에는 핀란드 사람이라면 누구나 춥고 어두운 겨울에 길들여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핀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편이 필자보다 추위를 더 타는 것을 보며 36.5도의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항온동물인 인간은 추위에 반응하는 촉각이 다 똑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만 해도 벌써 십수년을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어 이론적으로는 이곳 겨울에 이미 익숙해야겠지만 한 해 한 해 겨울을 맞을 때마다 한숨이 더 길고 짙어진다. 이곳 겨울의 혹독함은 인간의 접근이나 친근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비타민 D 영양제 필수

이런 녹록지 않은 자연환경에 맞서 살아가는 핀란드 사람의 겨우살이 모습은 우리의 눈에는 신기하고 낯선 것들이 많다.

가령 아무리 도로가 꽝꽝 얼고 눈보라가 쳐도 핀란드 자동차들은 신기하게도 큰 어려움 없이 씽씽 잘 달린다. 핀란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겨울에는 미끄러운 도로에 적합한 징이 박힌 타이어 등 겨울철 전용 타이어를 사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겨울철마다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국가적으로는 도로 파손도 크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겨울철 전용 타이어는 핀란드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필수 아이템 1호다. 또 영하 30~40도에도 자동차 시동이 무리 없이 잘 걸리는 것도 우리나라 주차장에서는 볼 수 없는 엔진을 예열시켜주는 전기 콘센트 덕분이다. 겨울철 핀란드 주차장에서는 자동차가 탯줄처럼 긴 전선으로 전기 콘센트와 연결돼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눈이 내리면 도로만 치우는 것이 아니라 지붕도 함께 치운다. 긴 겨울 동안 계속 쌓이는 눈의 하중을 지붕이 견뎌내지 못하고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부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눈을 치우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 한편이 ‘짠’해질 때가 있다. 안전 장비를 했다고 해도 미끄러운 지붕을 치우다가 떨어져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겨울이 견디기 어려운 건 추위보다 어둠 때문이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다. 낮이라고 해도 밤보다 조금 밝은 그런 정도의 조도이다. 햇빛을 장기간 받지 못하면 여러 증상이 생기는데 우울증, 피부병(핀란드 사람들의 풍토병 같은 것으로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기는데 햇볕을 쬐면 사라짐), 비타민 D 결핍으로 야기되는 각종 뼈 질환 등이다. 이런 이유로 핀란드 사람들은 겨울철에는 비타민 D 알약이나 비타민 D가 첨가된 우유를 마시고 태양광선과 비슷하다는 특수 램프를 쬐며 증상을 완화시키려고 한다.

이한치한 얼음수영대회

최근 핀란드의 한 벤처 스타트업 회사는 겨울철 우울증 ‘윈터블루스(winter blues)’를 해결해 준다는 획기적 신상품을 개발, 현재 히트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헤드폰처럼 생긴 이 상품은 눈이 아닌 귀에 광선이 투과되도록 설계돼 있다. 상품 설명에 따르면 눈보다 귀의 감각세포에 광선을 투과할 때 우울증 감소와 함께 집중력 향상 등 효과가 더 탁월하다는 것이다. 효과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제는 광선을 보는 것을 넘어 듣는다는 공감각적인 이 상품의 아이디어 자체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진다.

핀란드 사람들의 겨우살이 중 아마도 외부인에게 가장 쇼킹한 것은 꽁꽁 언 호수나 바닷가에서 얼음을 깨고 수영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민 초기에는 이런 핀란드 사람들이 독하고 이상하게만 보였는데 작년에 핀란드 전국얼음수영대회에 취재차 다녀오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얼음수영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척이나 건강해 보였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긍정적인 사람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한치한(以寒治寒)으로 겨울철을 이겨내는 핀란드 사람들을 보며 필자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에도 얼음수영을 추가하게 되었다. 역시 인생이건 겨울이건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이보영 주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