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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1호] 201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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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본성이냐? 양육이냐?

쌍둥이 연구에서 밝혀진 유전자의 힘과 한계

심하늘  인턴기자·고려대 서어서문학과 4년 

▲ 26년 만에 재회하는 일란성 쌍둥이 서맨사 푸터먼(왼쪽)과 아나이스 보르디에. photo 킥스타터
프랑스의 패션디자이너 아나이스 보르디에(26)는 지난해 말 친구로부터 “너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LA의 여배우 서맨사 푸터먼(26)이었다. 그의 프로필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보르디에는 자신과 꼭 닮은 외모뿐만 아니라 생년월일마저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난 2월 푸터먼에게 SNS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취했고 이들은 채팅을 통해 자신들이 한국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형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특히 성격이나 기질이 무척이나 닮았다는 걸 확인하게 됐다. 유제품 소화장애, 늦잠 후 폭식 습성 등의 기질이 유사했고, 예술과 관련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도 같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킥스타터(기금 모금 사이트)’를 통해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예정이다. 8000㎞ 이상 떨어진 채 26년을 살아온 이들이 어떻게 흡사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을까?
   
   일란성 쌍둥이는 난자 하나와 정자 하나가 수정되어 형성된 ‘배반포’가 둘로 갈라지면서 탄생한다. 어떤 이유로 배반포가 둘로 갈라지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갈라진 각각의 배반포는 똑같은 염색체 쌍을 지닌 세포로 구성되고, 염색체 내 유전자 배열도 일치한다. 따라서 항상 같은 성(Gender)을 갖는다. 반면 이란성 쌍둥이는 난자 2개와 정자 2개가 각각 수정되어 탄생하기 때문에 일란성 쌍둥이와는 달리 염색체 내 유전자 배열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 성이 다를 수도 있다.
   
   따라서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를 비교 연구하면 유전자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결정하는지 알 수 있다. 유전자의 영향이 크다면 일란성 쌍둥이는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훨씬 비슷한 삶을 살 것이다. 반면 환경의 영향이 크다면 큰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쌍둥이 연구는 우생학 이후 100년 이상 과학계의 영원한 화두인 ‘유전과 환경’ 논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한국인 입양아 보르디에와 푸터먼의 경우를 보면 인간 삶의 많은 부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로 인해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79년 미국의 과학자 토머스 부처드가 연구한 쌍둥이 ‘짐 스프링거’와 ‘짐 루이스’의 사례를 보자. 이들은 생후 몇 주 만에 각기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했고 40세의 나이로 재회했다. 이들은 놀랄 정도로 비슷한 삶을 살았다. 고혈압, 치질, 사팔눈 등의 병력은 물론이고 체중이 증가한 시점부터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까지 같았다. 둘 다 목공소를 운영했으며, 목공소 앞에 꾸며놓은 정원의 형태도 비슷했고, 휴가 때 즐겨 찾는 곳도 플로리다로 똑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애완견 이름마저 ‘토이’로 같았고, 첫 아이의 이름도 ‘앨런’으로 같았으며, 둘 다 재혼한 상황이었는데 아내의 이름은 ‘베티’였고 전처의 이름은 ‘린다’로 같았다. 이들은 어디서부터 우연의 일치고 어디서부터가 필연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한 삶을 살았다.
   
   토머스 부처드의 연구는 과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19세기 말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이 창시한 ‘우생학’의 트라우마가 과학계에 적지 않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수한 유전자가 따로 존재한다고 주장한 골턴의 우생학은 이후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핑계가 되었다. 히틀러는 유대인과 집시가 열등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생각했고, 이들을 격리수용하면 인류가 더 우수한 유전자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토머스 부처드의 쌍둥이 연구는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점에서 우생학과 맥락을 같이했다. 실제 골턴은 우생학을 위해 최초로 쌍둥이를 연구했었고 단지 추론만으로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의 개념을 착안해낸 과학자였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자취를 감춘 ‘유전자 결정론’이 토머스 부처드에 의해 부활한 것이다.
   
   이후 다수의 행동유전학자들은 쌍둥이 연구를 통해 유전자의 영향력을 가늠하려 해왔다. 이들은 일란성 쌍둥이에게 나타나는 높은 유사성뿐만 아니라 떨어져 자란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 일란성 쌍둥이에 비해 서로 유사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많은 행동유전학자와 쌍둥이 연구가들은 “모든 것은 유전자에 쓰여 있다”고 주장했다.
   
   서양 국가들이 1980년대부터 쌍둥이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한 데 반해 한국은 조금 늦었다. 2005년부터 질병관리본부 지원으로 한국 쌍둥이 사례를 조사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성주헌(40) 교수나, 2002년부터 ‘한국쌍둥이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국립목포대학교 산학협력단의 허윤미(43) 전임연구교수가 쌍둥이 연구 권위자로 꼽힌다. 허 교수가 설립한 한국쌍둥이연구센터는 1만여건의 쌍둥이 사례를 연구해온 쌍둥이 전문 연구기관이다.
   
   과학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는 저서 ‘본성과 양육’에서 “쌍둥이 연구를 통해 유전자의 영향이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썼다. 특히 성격과 지능 형성에 있어 유전자는 양육보다 절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리들리에 따르면 성격은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친화성’ ‘정서안정성’의 다섯 개 척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따라 유형화할 수 있다. 이런 성격 유형을 결정하는 데 유전자는 결정적 영향을 행사한다. 1980년대 ‘떨어져 산 쌍둥이’ 연구가 밝힌 뚜렷한 결과 중 하나는 어떤 환경에서도 성격 차이는 대개 선천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쌍둥이연구센터 허윤미 교수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성격, 취미, 직업선택 등은 40%에서 60%까지 유전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환경도 영향을 받지만 부모 양육의 영향보다는 개인의 특이 경험이나 주변 환경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허 교수는 “함께 산 쌍둥이나 떨어져 산 쌍둥이 모두 성격의 상관계수(비슷한 정도를 수치화한 지표)는 큰 차이 없이 높게 나온다”고 말했다.
   
   지능도 마찬가지다. 쌍둥이 연구 이전까지만 해도 지능은 교육을 통해서 증진될 수 있다고 믿어져 왔지만 쌍둥이 연구가들은 이마저도 대부분 결정되어 있음을 입증했다. 허 교수는 “지능 역시 유전자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극단적으로 양육 환경이 열악한 경우를 제외하면 많게는 80%까지도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또 어린 시절에는 학교나 부모의 양육에 의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만 이후 독립하여 살아가면서부터는 유전적 소인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된다. 하버드대학의 심리·언어학자 스티븐 핑커가 쓴 ‘언어 본능’에 따르면 유아기에는 유전자가 20%만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이후에는 꾸준히 증가하여 중년 이후에는 80% 이상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 IQ가 높은 부모의 아이가 가난하고 지식 수준이 떨어지는 가정으로 입양됐을 경우, 학창시절에는 부진하다 나이가 들수록 학업에 뚜렷한 성취를 보이고 결국 교수와 같이 지적활동을 요구하는 직업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성장 환경과 무관하게 그는 이미 교수라는 직업을 갖게끔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윤미 교수는 “떨어져 살다가 18세에 재회한 한 쌍둥이의 경우 IQ 테스트 결과가 완전히 동일하게 나왔고 한 명은 피아노, 한 명은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었다”면서 “떨어져 산 쌍둥이라 할지라도 IQ나 재능 있는 분야, 그리고 직업이 비슷한 경우가 대다수다”고 말했다.
   
   유전자는 병력이나 신체구조 등에도 영향을 끼친다. 2005년부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성주헌 교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쌍둥이 코호트(cohort) 연구’에 따르면 쌍둥이 한쪽이 유방암이면 다른 쪽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20배 이상 높아진다. 대장암 역시 쌍둥이 간의 일치도가 높았다. 몸무게와 비만도, 허리둘레, 혈압, 혈당, 니코틴 중독 증상 역시 40~50%가 유전자의 영향이었다.
   
   이러한 쌍둥이 연구의 결과들은 받아들이기에 껄끄럽고 때로는 염세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간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있다’는 인류의 오랜 신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후천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은 꾸준히 쌍둥이 연구가들의 연구를 공격해왔다. 토머스 부처드의 경우 그가 후원을 받았던 재단이 우생학을 지지하는 재단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960년대에 ‘떨어져 산 일란성 쌍둥이’를 연구해온 영국의 심리학자 시릴 버트는 IQ의 유전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는 영국의 교육 정책에도 반영되었지만, 후천론자들이 그의 연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결과 그의 데이터가 일부 조작되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들은 대부분 ‘약간의 흠집 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후천론자들의 결정타는 뜻하지 않은 데서 터졌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게놈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유전자 수가 최소 10만개는 되리라고 추정해 왔다. 10만개의 유전자 수는 인류의 다양성과 종의 우수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여지는 최소한의 수였다. 하지만 연구를 진행해본 결과 유전자 수는 이보다 7만개 이상이 부족한 3만개 미만에 불과했다. 이는 초파리의 유전자 수(1만4000개)의 두 배에 불과한 숫자였다. 선천론과 후천론 간의 논쟁사를 다룬 매트 리들리의 책 ‘본성과 양육’은 2001년 당시 과학계의 당혹감을 책 서두에 기록해 두고 있다. 가장 먼저 영국의 일요신문 ‘옵저버’에서 2001년 2월 11일자 신문에 “인간 행동의 열쇠는 유전자가 아닌 환경이다”는 기사를 실어 유전자 결정론의 종식을 알렸다. 유전자 결정론이 옳다고 보기에는 유전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전자보다는 환경이 인류의 다양성을 결정한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옵저버’의 보도 이후 ‘뉴욕타임스’ 등 많은 언론들은 “선천론보다는 후천론이 설득력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에 게놈프로젝트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존 설스턴 박사가 “동전 하나를 33번 던지면 100억개 이상의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3만개의 유전자 수는 결코 적지 않다”며 유전자 결정론이 당장 폐기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천론자와 후천론자의 논쟁은 다시금 더욱 가열차게 불붙었다. 쌍둥이 연구에 의해 움츠렸던 후천론자들은 유전자 결정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쌍둥이 연구로 돌아가보자. 많은 쌍둥이 연구들은 유전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입증했지만 의문도 남겼다. ‘플린 효과’가 대표적이다. 이는 평균 IQ가 10년마다 최소 5점씩 꾸준히 상승한다는 이론이다. 교육이 발전하고 지적 성취에 대한 보상이 증대되어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회 환경에 IQ가 영향을 받은 것이다. IQ가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본다면, 플린 효과는 설명하기 어렵다. 플린 효과는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양육과 성장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에 리들리는 자신의 책 원제목과 같은, ‘양육을 통한 본성(Nature via Nurture)’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유전자의 영향이 지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환경도 분명히 영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유전과 환경이 이분법적 개념이 아니라 서로 간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라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리들리는 ‘환경 결정론’과 ‘유전 결정론’이 양쪽 다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선천론과 후천론은 우생학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끝없이 극단적 대립각을 세워왔다. 선천론의 극단이 나치즘의 우생학으로 나타났다면, 후천론의 극단은 공산주의로 나타났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선천적 이기심을 후천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경제 체제였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나치즘과 마찬가지로 실패로 끝났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극단적 후천론과 극단적 선천론이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성주헌 교수의 ‘쌍둥이 코호트 연구’에서는 유방암과 대장암 등은 쌍둥이가 대부분 같이 걸렸지만 파킨슨병 등은 쌍둥이가 함께 걸리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또 이 연구에서는 기존 서구의 쌍둥이 연구의 결론과는 달리 쌍둥이들 간의 성격이나 기질이 상당히 다른 사례가 제법 많았다. 허 교수는 “모든 성격이 유전에 의해 절대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청소년 비행의 경우 유전보다는 가정 환경의 영향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전과 환경을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리들리는 환경의 영향력을 ‘비타민C’에 비유한다. 비타민C는 없으면 병이 들지만 그렇다고 많이 먹는다고 건강해지는 것 또한 아니다. 마찬가지로 떨어져 산 쌍둥이들이 양육 환경과 무관하게 성격이 흡사하게 나타난다고 해서 아이를 아예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성격 발달을 위해서 행복하고 안정적인 가정환경은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양육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유전자가 정한 성격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육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 체중이 유사할 확률은 80%에 달하는 반면 입양아와 부모의 경우는 4%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유전자가 식습관보다 훨씬 주요한 체중 결정 요소임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체중은 정해져 있으므로 모든 다이어트는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전자 결정론은 단지 한 가족 내에서 체중의 유사성이 왜 발현되는지를 보여줄 뿐, 각 개인의 체중을 100%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허윤미 교수는 “지금까지는 유전적 요인이 절대적이라는 과학 의견이 염세적 세계관, 결정론적 세계관으로만 이해되어 왔다”면서 “하지만 최근의 후성유전학(유전자가 환경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보는 학문)이나 분자유전학의 발전으로 이러한 관점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지금까지의 쌍둥이 연구에서 보듯 유전자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환경적 요인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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