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3억 중국의 성장 스토리는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6000달러로 18년 만에 10배 성장했다. 중국의 성장으로 세계는 물가 안정 속에 저가 공산품을 대량으로 소비하게 되었다. 21세기 초반, 세계 경제 고성장은 중국 고성장의 혜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를 고비로 중국의 경착륙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다.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중심의 사회주의를, 경제는 자본주의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 슬로건은 자체 형용모순이다. 사회주의(계획경제)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많은 학자의 분석과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짝을 이뤘을 때 성공적이었다.

사회주의의 중국식 해석은 개발독재로 볼 수 있다. 강력한 독재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경우다. 과거 ‘아시아 4마리 용’이라 하던 한국·대만 등의 개발 전략이다. 그러나 개발독재는 경제 수준이 초보적 단계일 때만 성공했다.

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한 이후 정부의 시장 개입(사회주의적 정책)은 오히려 효율성을 낮추고 모럴해저드를 유발한다. 고용관계, 자원배분, R&D(연구개발) 투자를 정부가 주도했을 경우 성과가 날 수 있을까? 선진국 기업과의 경쟁이 가능할까? 한국 역시 지난 50년의 발전 과정에서 경제위기는 항상 정치적 위기와 맞물렸다. 또한 위기 이후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고 시장 자율과 민주주의가 신장되곤 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정책으로 통제하지 못할 만큼 경제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져서 이제 나라 전체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따라서 경착륙 논쟁의 핵심은 중국이 완전한 시장경제 시스템을 수용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시장경제는 민주주의를 동반해야만 성공한다. 공산당이 과연 1당 독재를 포기하고 서구형 시장경제를 도입할 수 있을까? 설사 도입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확인되듯이 엄청난 시간과 부작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문제의 당사자는 인구 13억명에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국이 두 자릿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세계적으로 투자가 매우 활발했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이 기간 중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졌다. 지난 10년간 중국 경제성장의 53%는 투자가 기반이 되었다.

국가의 발전 단계는 2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경제개발 초기에는 빈약한 사회 기반 확충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가 크게 늘어난다. 이후 대략 15~20년이 경과하면 투자가 줄면서 내수 중심의 성장으로 전환된다. 중국은 GDP의 40%에 육박하는 투자를 20년 이상 지속하고 있다. 특히 2008년의 경우 투자를 줄이고 내수를 부양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했지만, 글로벌위기 극복 차원에서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내수를 줄이는 정책을 폈다. 이 결과 중복 과잉 투자가 거의 모든 산업에서 발생했다.

지난해를 고비로 중국은 중복과잉투자 후폭풍 국면에 진입했다. 대량생산된 저가 제품 수출 시장에서 중국 기업끼리 경쟁하기 시작했다. 브랜드나 품질에 대한 투자를 늘리자니 기업이익이 줄어 여력이 없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자산 기준 중국 기업의 41%가 국영기업이다. 실적이 부진한데 종업원을 줄이지도 못하고 도산시키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중국이 최고의 고성장을 이룬 시기(2002 ~2008년)는 전 세계가 저금리를 기반으로 부채 경제 구조에 진입한 기간이기도 하다. 외자 도입, 경상수지 흑자, 정책자금 방출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은 투자와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중국의 총통화(M2)는 이미 미국을 추월해서 세계에서 가장 많다. 그러나 제조업의 공급과잉이 심해지고 저금리 정책이 장기화되자 과잉유동성은 주식·부동산 등 자산 시장으로 몰려 투기자금화됐다. 도시화 물결과 과잉 유동성이 결합하면서 심각한 부동산 투기로 중국 사회의 근간마저 흔들리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산관리상품은 정부의 감시 밖에 있는 신탁, 대부업체 등에서 고금리로 자금을 모아 부실기업이나 투기성 자금으로 대출하는 금융상품이다. 4~5년 전 한국의 저축은행, 대부업체와 유사한 구조로 보면 된다. 자산관리상품의 잔고는 무려 중국 GDP의 2배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금리가 오르고 기업 도산이 늘게 되자 대규모 환매가 불가피해졌다. 그렇다고 정부가 유동성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서 2차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르고 자금을 죄면 연쇄부도가 예상된다. 정책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5년 전 한국은 성장과 분배 논쟁에 빠졌었다. 지금 중국도 똑같은 논쟁에 빠져 있다. 통상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빈부격차는 심해진다. 장기간에 걸친 고성장으로 중국의 빈부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85%, 부동산의 90%를 소유하고 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지속되면 중산층의 몰락과 더불어 내수도 한계를 보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하층민의 정치적 저항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지금 중국의 신정부는 성장률을 낮추면서 적극적인 분배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률이 추가적으로 하락한다면 일자리가 줄어들어 청년 실업자가 양산될 수 있다. 성장률을 높이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낮추면 실업이 걱정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성장의 견인차였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가 이제는 사회시스템 전체를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다. 부정부패 만연, 범죄 증가, 빈부갈등 등이 민족문제와 결합할 때 정치적 위기 가능성도 잠복되어 있다. 지방정부의 부채문제도 심각하다. 또한 30여년 지속된 저출산정책으로 이제 10년 후가 되면 중국의 고령화문제는 중국을 넘어 세계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사회안전망이나 의료체계 유지도 어려울 수 있다. 지금 중국은 양적 고성장에 가려졌던 질적 후진성을 신속히 보완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미국은 소련 붕괴 후 지난 30여년간 중국을 방치했다. 그러나 중국의 빠른 성장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지정학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면서 보호무역, 위안화 강세 유도, 지적재산권 분쟁 등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저임금으로 무장한 동남아시아의 고성장을 미국과 일본이 지원하고 있다. 발 아래 경쟁자가 커가고 있다.

중국도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복합위기에 포위되어 있다. 이 복합위기는 피할 수 없는 ‘중진국의 함정’이고 ‘선진국 통과의례’다. 다만 위기가 일거에 분출되는 국면이 아직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 정부가 충분히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가계의 부채수준이 어느 국가보다 안정적이다. 통상 위기의 방아쇠(trigger) 역할을 하는 외자 비중도 낮다.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 앞서 살펴본 모든 문제는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한국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고성장을 이룬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고성장 덕분이었다. 중국의 성장률이 하락하고 복합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이 받을 타격은 거의 중국 내부와 유사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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