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중국 국경절 연휴 첫날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들이 청와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10월 1일 중국 국경절 연휴 첫날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들이 청와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10월 1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세종로 광화문빌딩. 빌딩 입구에 주차된 대형 관광버스에서 관광객들이 쏟아져나왔다. 버스 앞 유리창에 붙어 있는 여행사 이름을 보니 모두 ‘여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다. 이들이 회전문을 열고 일제히 들어간 곳은 건물 1층의 동화면세점. 중국인이 좋아하는 명품브랜드인 루이뷔통, 구찌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도 고급 화장품 브랜드로 알려진 한국의 설화수와 헤라 매장 직원들이 밀려드는 ‘큰손’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같은 시각 김·잡화품 등 선물가게가 밀집된 면세점 건물 맞은편 거리에서도 온통 중국어만 들려왔다.

이날 면세점에서 만난 천룽빈(陳龍彬·24)씨는 3일 전 일가족 18명과 함께 닷새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서 왔다는 그는 “공식적으로는 10월 1일부터지만 지난 9월 28일(토요일)부터 이미 떠날 사람은 (고향을) 다 떠났다”고 말했다. 옆에서 아이를 업고 쇼핑 중이던 천씨의 부인은 기자를 면세점 직원으로 오인했는지 “인롄(銀聯·중국 신용카드)카드로도 결제가 되나, 혜택은 있나”라고 물었다. 물건에 붙은 가격표를 보고 휴대폰에 내장된 계산기를 두드려 보더니 “쩐 피엔이(眞便宜·정말 싸네)!” 하고 외치기도 했다.

중국의 건국기념일인 국경절(國慶節) 황금연휴(10월 1~7일)를 맞아 이웃국가인 한국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증가한 15만명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의 유통·서비스 업계가 때아닌 호황을 맞게 됐다. 상대적으로 국내 소비가 가장 위축되는 시점인 3분기에 외국인들의 지갑이 열리게 된 것도 업체들이 함박웃음을 짓는 이유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의 1인 평균 소비액은 238만6000원(항공·숙박료 포함)으로, 이번 국경절 동안 한국이 얻게 될 경제이익은 약 36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몇 년간 이미 ‘여우커 효과’를 톡톡히 본 유통 업계는 발 빠르게 이들을 겨냥한 특별 이벤트를 준비했다. 지난해 같은 국경절 기간에 중국인 매출 220% 신장을 기록한 현대백화점은 올해는 10월 20일까지 외국 여권을 가진 고객들만 최대 30%를 할인해주는 이른바 ‘K세일(K-SALE)’에 돌입했다. 같은 기간 중국인 고객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엔 중국어 가능 인력을 2배로 늘렸다. 신세계백화점은 서울 본점과 강남점 등의 안내데스크를 중국식으로 꾸미고 층마다 중국인 통역·가이드를 배치했다. 특히 본점에는 한류 스타의 애장품을 전시하는 ‘K-POP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와 함께 스타 모형을 배치한 포토존을 마련하기도 했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구매한도(내국인은 3000달러)가 없는 면세점도 여우커의 대표적인 쇼핑 창구다. 롯데면세점과 워커힐면세점 등 한국의 주요 면세점 업체들이 평소 중국 현지에서 VIP를 겨냥한 홍보활동에 열을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김철호 마케팅팀장은 “국경절을 앞두고 다롄(大連), 창춘(長春) 등 중국 주요 도시에 거주하는 VIP를 대상으로 현지 홍보에 나섰다”며 “(국경절) 현재 매일 평소의 2배에 달하는 고객들이 호텔과 면세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면세점 베이징사무소 최규모 소장도 “평소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에 사무소를 두고 다각도로 중국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롯데면세점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쓰고 가는 돈은 1인 평균 92만원이라고 한다. 37만원 수준인 일본인보다 무려 2.5배나 많다. 최규모 소장은 “중국 고객의 경우 까르띠에·롤렉스 등 해외 명품은 물론이고, 아시아인과 피부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 현상이 뚜렷해 매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워커힐면세점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인 ‘8’을 활용해 8달러, 88달러, 888달러짜리 특가 상품을 선보였다. 이미 지난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의 중국인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92% 증가했다고 한다. 면세점과 연결된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내 모든 레스토랑의 메뉴에 중국어로 병기했고 조식 뷔페엔 중국식 아침인 ‘여우탸오(油条·밀가루 튀김)’와 죽, 딤섬 등을 제공하고 있다. “호텔의 경우 국경절 기간 중국인 숙박객이 전체의 45%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업체 관계자는 전했다.

여우커들의 한국 집중현상은 최근 위안화가 강세인 데다 올 들어 유독 도심을 뒤덮는 악성 스모그로 이들의 관심이 해외로 쏠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일본 여행 기피현상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은 반사이익을 누리게 됐다. 친구 2명과 함께 10월 2일 워커힐면세점을 방문한 지옌(季艳·25·항저우)씨는 “오늘 벌써 화장품으로만 6000위안(약 105만원)은 쓴 것 같다”며 “한국이 상대적으로 가깝고 물가가 싸서 쇼핑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여유국의 2013년 양국 인적 교류현황을 보면 중국으로 가는 한국인이 매달 줄어든 반면 한국을 찾는 중국인 수는 50%씩 꾸준히 늘었다. 지난 4월부터는 한국을 찾는 중국인 수(33만5100명)가 중국을 찾는 한국인 수(31만9900명)를 앞지르는 이례적인 현상도 벌어졌다.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는 해외로 나가는 자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새 여유법(旅遊法·관광법)을 제정,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새 법안은 값싼 관광상품을 판매하거나 단체쇼핑을 강요하는 등의 관행을 금지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런 법의 개정이 오히려 한국의 질적 관광을 부각시키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주영 한국방문위원회 과장은 “관광상품 가격이 인상되면 한시적으로 관광객 수가 줄어들 수 있지만, 그동안 지적돼 온 저질상품의 폐단이 해결돼 한국으로선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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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디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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