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장 지대윤 교수와 연구원들.(왼쪽부터 차효진·조라프르·김진휘·쿠마르·박찬수 연구원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에는 산·학·연 300여명의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장 지대윤 교수와 연구원들.(왼쪽부터 차효진·조라프르·김진휘·쿠마르·박찬수 연구원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에는 산·학·연 300여명의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지난 5월 ‘국제 방사성의약품 학회(ISRS·International Symposium on Radiopharmaceutical Sciences)’가 제주도에서 개최됐다. 6일간 열린 이 행사에는 전 세계 700여명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몰려 들었다. 40년 전부터 2년마다 개최되는 이 학회는 한국 방사성의약품 분야의 발전사를 알 수 있는 자리였다. 이 대회를 국내에 유치했다는 것은 해당 분야의 과학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분명한 것은 수치로 드러났다. 학회 초창기만 해도 20위권 밖이던 대한민국은 올해 논문초록 기여도에서 3위에 올랐다. 1위 미국, 2위는 독일이었다. 4위는 중국이 차지했고, 일본은 7위였다.

지대윤 교수(58·서강대 화학과 교수 겸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장)는 이 학회의 제주 유치를 주도하고 학회의 의장을 맡았다. 지난 10월 8일 서울 마포구의 서강대 떼이야르관 9층에 있는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에서 지 교수를 만났다. 가을비가 내려 썰렁한 아침기온에도 반팔 셔츠를 입은 그는 “한국은 분자영상 분야에서 최고 수준이다. 영상 분야는 비교적 적은 투자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가 한동안 정보통신(ICT) 쪽으로 집중돼있던 투자를 기초과학 분야로 확대했다. 우리 팀이 이렇게 좋은 사무실을 쓸 수 있는 것도 그 결과”라며 웃었다.

지대윤 교수는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 본부장 겸 PET 방사성의약품 연구단 단장을 맡고 있다.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단은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현 미래창조과학부)가 ‘신기술융합형 성장동력사업’을 위해 선정한 14개 융합연구단 중 하나다. 신기술융합형 성장동력사업 목표는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융합형 원천기술 확보다. 연관성은 짙으나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연구 분야를 한데 묶어 융합연구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

PET 방사성의약품 연구단은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의 산하 연구단이다.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는 PET 방사성의약품 연구단을 포함해 고성능 의료영상 연구단(단장 나종범 KAIST 교수), 질량분석 의료기술 연구단(단장 유종신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을 총괄하고 있다. 이 연구단에는 서강대학교 외에도 서울대, 경북대, KAIST, 삼성전자, 삼성테크윈, 국립암센터, 진메트릭스 등 총 300여명의 산·학·연 연구단이 20여개의 연구과제를 진행 중이다.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는 매년 14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PET 연구단은 그중 40억원 정도를 받는다. PET 연구단만 5년간 200억원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받는 셈이다.

첨단의료기기사업본부와 PET 연구단은 떼이야르관 이외에도 외부에 별도의 실험실을 갖춰 총 560㎡(약 170평)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떼이야르관은 작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종합대학교 교내에 이렇게 방대한 규모의 사업단과 최첨단 실험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연구실에는 인도, 태국 연구원도 있었다. 방사성의약품이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는 방증이었다.

지대윤 교수는 정부의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에 힘입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알츠하이머병 조기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인 ‘FC119S’를 개발한 것. 현재 원자력의학원에서 임상 1상을 마친 단계이며 내년 초까지 임상 3상까지 완료할 것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식약처의 허가를 받을 경우 1년 이내에 의약품으로 시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FC119S라는 약품명은 119번째로 시도한 화학물이라는 뜻이다. 지 교수는 이 의약품의 시장성을 연간 3000억원 규모로 내다봤다. 의약품의 단가 60만원, 인구의 1%인 50만명을 알츠하이머병 진단 인구로 잡아 계산한 수치다.

그는 “국내 연구비로 개발했으니 국내 환자들에게 혜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용은 60만원을, 수출용은 200만원 정도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 사업을 방사성의약품, 의약품을 만드는 재료인 전구체, 자동합성장치 등 단계별 품목을 상품화할 계획까지 세워뒀다.

알츠하이머병 정복을 위한 연구는 총성 없는 대규모 전쟁터다. 세계 굴지의 바이오 관련 회사 및 학계·의료계가 치매의 조기진단과 치료를 위해 천문학적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정복을 위해서는 질병의 조기진단이 필수다. 현 단계의 기술력으로는 알츠하이머병의 조기진단은 방사성의약품을 이용한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로만 가능하다. 또한 PET 촬영을 통해서는 혈관성 치매인지, 알츠하이머형 치매인지까지도 구별할 수 있고, 알츠하이머병 진행 여부를 단계별로 알 수 있다. 지대윤 교수는 “임상시험자들의 연구결과를 받으면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외관상으로는 멀쩡하고 자각증세도 거의 없는데 PET 촬영 결과를 보면 치매 초기 단계로 이미 접어든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PET는 최근 암 진단을 위주로 각종 질병 진단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PET는 CT나 MRI처럼 인체의 질병 여부나 구조와 기능 등을 촬영하는 방법 중 하나로,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의약품을 이용해 인체를 3차원으로 촬영하는 검사법을 말한다. CT나 MRI만으로는 진단할 수 없는 질병까지 알 수 있는 진단방법으로, PET 스캐너만 단독으로도 사용하지만 PET-CT나 PET-MRI와 같이 둘의 장점을 결합해 질병의 세부 진단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대윤 교수팀이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진단약 ‘FC119S’을 이용해 PET 스캐너로 찍은 환자의 뇌 영상.①은 정상인의 뇌이고 ②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③은 알츠하이머병 초기 환자의 뇌 영상이다.
지대윤 교수팀이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진단약 ‘FC119S’을 이용해 PET 스캐너로 찍은 환자의 뇌 영상.①은 정상인의 뇌이고 ②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③은 알츠하이머병 초기 환자의 뇌 영상이다.

지대윤 교수팀이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진단약 ‘FC119S’의 합성구조
지대윤 교수팀이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진단약 ‘FC119S’의 합성구조

PET 촬영을 위해서는 PET 스캐너와 해당 질병에 일정한 반응을 보이는 방사성의약품이 필요하다. PET 스캐너가 총이라면, 방사성의약품은 총알인 셈이다. PET 촬영은 혈관주사를 통해 방사성의약품을 환자의 혈관으로 투입해 전신으로 퍼지게 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PET 스캐너 촬영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퍼지는 정도는 방사성의약품의 친지방성, 대사, 특정부위와의 결합력, 신체 내 단백질과의 결합 등 화합물의 성질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당의 한 종류인 글루코즈를 사용해 만든 방사성의약품을 인체에 정맥주사하면 글루코즈를 필요로 하는 부위인 뇌, 심장 등에 많은 양이 분포되고, 이것이 PET 스캐너를 통해 확인되어 암의 유무는 물론 진행 정도까지 알 수 있다는 원리다. PET 스캐너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GE, 지멘스, 필립스 세 곳뿐이다. 지 교수는 “PET 스캐너 등 첨단 의료기기를 만드는 기술력은 아직 우리나라가 뒤처져 있지만, PET 촬영에 필요한 방사성의약품 등의 분자 영상 관련 기술은 우리나라가 앞서 있다. 분자 영상은 비교적 적은 투자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분야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 교수는 방사성의약품 개발을 ‘지구에서 석유 찾기’라는 표현을 썼다.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혈안이 돼 있는 연구자는 전 세계적으로 많지만 하나의 물질과 방사성동위원소를 안정적으로 결합시키는 것 자체도 어렵고, 결합된 원소가 일정 질병 여부를 판별하는 의약품으로 쓰이기까지는 더더욱 어렵다는 얘기다.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 그는 “원리도 알고 방법도 알지만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일반 의약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 2조원 정도가 든다는 통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방사성의약품이 119번의 시도 만에 성공했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로 거론된다. 수천, 수만 개의 화합물을 합성해도 성공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는 얘기다. 역으로 그의 내공을 입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FC119S에 대해 “학계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단계는 아니지만 경쟁 의약품에 비해 최고”라고 자부했다. 현재 개발이 완료됐거나 개발 중으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에는 미국 업체 아비드가 개발해 시판 중인 ‘플로베타피어’, 바이엘 헬스케어가 개발 중인 ‘플로베타벤’(임상 3상), GE가 개발 중인 ‘플루테메타몰’(임상 3상),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나브4694’ 등 4개 정도. 이 약품들에 비해 그가 개발한 의약품이 탁월하다는 근거는 이렇다. “FC119S는 일단 합성 수율이 매우 높다. 결합구조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일정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화합물(방사성의약품)의 양이 많다는 얘기다. 또한 혈액에 투여 후 전신에 퍼지는 속도가 빠르다. 타 의약품의 경우 1시간~1시간 반 정도가 지나야 촬영이 가능하지만 우리 것은 30~40분이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자체 개발한 자동합성장치가 있기 때문에 화합물 합성 성공률이 높다.” 그는 “자국의 기술력으로 개발한 의약품, 외국보다 우수한 성능의 의약품을 우리나라 국민에게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아비드사가 개발한 ‘플로베타피어’는 800만달러(약 9000억원)에 팔렸다. 현재 미국에서 시판 중인 이 약품의 가격은 1800달러(약 200만원). 지 교수는 “방사성의약품 원천기술의 가치가 이만큼 높다는 얘기다. 우리가 개발 중인 약품은 이보다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겠지만 외국에 팔지 않겠다. 우리 자본, 우리 기술력으로 만들었으니 우리 국민에게 혜택을 돌려주겠다”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방사성의약품을 제조하는 회사 ㈜퓨쳐켐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퓨쳐켐은 학교 연구실에서 개발해낸 방사성의약품을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회사다. 11명의 직원을 거느린 크지 않은 회사지만, 연구실에서 개발한 원천기술을 이용해 바로바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시설로는 부족함이 없다. 그는 학자로는 드물게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하다. 그의 말이다.

“우리 집안은 3대가 화학자다. 아버지(지응업 교수, 2010년 작고)도 화학자셨고, 아들도 화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아버지는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61년에 뉴저지주립대학에서 무기재료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귀국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으로 요업센터를 만들어 위생도기를 국내 최초로 만드셨다. 학자의 길로 들어선 후에는 인하대와 아주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는 현장에 계셨다. 아들은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나와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나는 32년째 플루오린-18(PET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방사성동위원소)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다.”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KAIST 화학과에서 석사를, 미국 일리노이대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리노이대학교 초빙연구원, 인하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서강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뼛속까지 화학자의 피가 흐르는 그가 생각하는 과학자로서의 자세는 분명하다. “실행이 중요하다”는 것. 그는 “토머스 에디슨의 ‘실행이 없는 비전은 허상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위한 연구여야 한다. 아무리 중요한 원천기술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람과 인류의 번영에 기여할 수 없으면 헛된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는 2008년 파킨슨병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인 ‘FP-CIT’를 개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서울아산병원 핵의학과 오승준 교수팀과 공동연구한 이 의약품은 정식 허가를 받아 서울의 주요병원과 수도권 지역 의료기관에서 파킨슨병 조기진단을 위한 의약품으로 PET 검사에 활발하게 사용 중이다. 이 원천기술은 2011년 미국 특허를 획득했다.

그의 다음 과제는 혈액검사를 통해 치매의 진행상태를 밝히는 진단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지 교수는 “이 연구가 종료되면 바로 착수할 것”이라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혈액 샘플 표본을 채취하는 단계다”라고 말했다.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치매 여부와 치매의 진행단계를 알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이 기다려진다.

김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