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에 설치된 청소노동자 파업 농성용 천막.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에 설치된 청소노동자 파업 농성용 천막.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시작된 중앙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이 40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파업의 주체와 배경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업을 벌이는 일부 청소노동자들은 처우 및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학 측과 학내 구성원들의 주장은 조금 다르다. 표면적으로 볼 때 사회적 약자인 청소노동자와, 대기업 소유의 대학 사이에서 벌어진 노사 간 대립구도로 보이지만 정작 이번 사안의 중심에는 민주노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대는 현재 파업 중인 민주노총 소속 38명의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당사자가 아니다. 즉 중앙대는 청소노동자의 협상 대상자가 아니다. 청소노동자의 협상 대상인 사측은 중앙대 청소용역 업체로 선정된 T&S(대표 고희권)다. 그럼에도 중앙대는 마치 자신들이 노사협약의 당사자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 대학으로 비쳐져 비난 여론에 시달려 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중앙대는 매년 2월 공개입찰을 통해 청소용역 업체를 선정한다. 지난해에는 T&S라는 기업을 청소용역 업체로 선정하고 학내외 청소 등의 업무를 맡겼다. 현재 중앙대 교정에서 파업 중인 노동자는 T&S의 직원이다. T&S가 중앙대에 파견한 청소노동자는 총 165명 정도. 이 가운데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는 38명이다. 이들은 T&S라는 회사와의 단체협상이 결렬되자 업무 현장인 중앙대에서 농성시위를 시작했다. 이들을 돕는 세력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다.

이번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나머지 127명의 중앙대 청소노동자는 한국노총 소속이다. 한국노총 소속 청소노동자는 이미 T&S 측과 단체협상을 체결하고 정상 근무를 하고 있다.

청소노동자의 파업으로 인해 대학 측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지난해 12월 파업을 시작한 청소 노동자들이 12월 17일부터 30일까지 14일간 중앙대 총장실을 점거해 총장이 업무를 챙기는 데 애를 먹었다. 총장실을 장기간 점거하는 데 부담을 느낀 서경지부 측은 1월 2일부터 중앙대 영신관 옆 광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파업 현장을 찾는 노동단체와 일부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 때문에 교내가 어수선한 날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겨울 계절학기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소음피해를 감수하는 등 수업권도 방해받는 피해를 입었다고 대학 측은 주장했다. 또 학내에서 파업을 둘러싼 찬반 양론이 불거지며 재학생 및 졸업생 간 분열상도 발생했다. 학사행정 업무도 차질을 빚었다는 게 중앙대 홍보실 관계자의 주장이다.

결국 중앙대는 지난 12월 23일 파업 천막과 농성자를 퇴거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냈다.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파업을 철회해야 한다. 서경지부 측이 법원의 판결에 불응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간접강제 조항도 가처분 신청서에 포함시켰다. 간접강제 조항에는 “가처분이 받아들여진 이후에도 농성자가 학내에서 불법행위를 할 경우 1건당 100만원을 청구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노동단체와 일부 언론에서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내용”이라며 중앙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고 기사를 썼다. 이에 대한 중앙대 측의 해명이다.

“학내에서 파업이 계속됨에 따라 강의와 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다. 확성기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노래까지 틀어대는 통에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이 심하다. 파업을 하려면 학교 밖에 나가서 했으면 좋겠다. 강제로 시위대를 끌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런데 이걸 두고 일부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식의 비판적 기사를 냈다.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노동단체의 입장만을 부각시켜 보도한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파업을 지지하는 대자보 1개당 100만원의 벌금을 낸다는 식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학내에 대자보는 그대로 붙어 있다.”

중앙대는 그동안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노사 간 중재를 위해 나름 노력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20일에는 이용구 총장이 직접 나서 민주노총 구권서 서경지부장 등 노조 측 대표와 만나 중재 노력을 했고 지난 1월 6일에는 우원식 의원(민주당) 등을 만나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청소노동자가 요구한 학내 근로여건 개선 방안을 대부분 수용했다. 그럼에도 T&S와 서경지부 측은 쟁점사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이번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에는 민주노총 소속의 38명만이 참여하고 있다. 이 수치는 전체의 30% 수준이다. 중앙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의 근무환경 개선 요구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러나 학교가 마치 청소노동자를 고용한 회사로 오해를 받는 게 안타깝다. 학교 측은 T&S라는 용역업체 소속의 청소노동자일지라도 근무하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에 근무환경 개선 등을 위해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한국노총 소속의 청소노동자들은 고용승계, 정년보장, 임금인상, 휴게실 확보 등의 단체협상안을 받아들였다. 파업을 주도하는 민주노총 서경지부 측은 한국노총 소속 청소노동자들이 용역업체와 합의한 사안 이외에도 인사추천권, 징계위원 동수 구성, 조합활동 유급보장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이 부분은 결국 용역업체 경영진이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인사 추천권은 학교와는 무관하다. T&S의 경우 서경지부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회사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학도 이 선을 넘을 수는 없다. 그건 회사 경영권의 문제에 속한다. 서경지부의 요구대로 양측을 조율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통상 징계위원을 노사 동수로 구성하자는 서경지부의 요구사항을 수용할 경우 회사는 규정을 어긴 조합원에 대해 징계를 하는 게 쉽지 않다. 노조활동을 유급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도 문제가 있다는 게 경제계의 시각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 수시로 시위에 참가하면 업무 공백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 부분을 유급으로 처리해 달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는 지적이다. 특히 서경지부 소속의 노동자 임금은 학생 등록금에서 지출되는 구조다. 만약 서경지부 측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등록금으로 시위 참가자의 임금을 지불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무노동무임금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서경지부가 요구하고 있는 인사추천권은 회사의 고유권한을 나누자는 것으로 얘기된다. 이를 수용하면 회사가 노동자를 채용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동료를 채용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조 가입의사를 가진 직원 위주로 추천한다면 특정 노조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해질 여지가 있다.

T&S 측은 민주노총이 내건 이 같은 3대 쟁점 요구사항에 대해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T&S는 중앙대와 청소용역 계약이 2월에 종료된다. T&S 측이 중앙대 청소용역에 재입찰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T&S는 얼마 전까지 한국전력의 청소용역을 맡았다. 당시 민주노총 서경지부의 단체협상안을 그대로 수용했다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고 한다. 무리한 단체협상의 피해를 경험한 터라 이번 단체협상에서는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T&S 고희권 대표는 “서경지부의 요구를 수용하면 회사 운영이 불가하다”고 했다.

학교 측은 “민주노총과 가까운 용역업체가 2월 공개입찰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게 되면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은 재입찰이 진행될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 새학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서경지부의 천막 농성이 그때까지 이어질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당시 현장 모습.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당시 현장 모습.

중앙대 측은 특히 이번 파업에 노동계 상급단체가 개입함으로써 합리적인 단체협상이 오히려 방해를 받은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대 한 관계자는 “한국노총 소속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만족할 만한 단체협상안이라며 단체협약을 체결한 반면 민주노총은 인사권, 징계권 등 사측의 권한을 공유하자는 무리한 주장을 내놓고 있어 T&S와 합의가 안 되고 있다. 처우 및 근로환경 개선과 민주노총 서경지부의 요구사항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앙대 내 농성천막에는 민주노총 서경지부 소속 인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에 동참하던 중앙대 청소노동자들 중 ‘무노동무임금 원칙’ 때문에 업무에 복귀한 사람들도 생겼다. 청소노동자 중 중앙대 분회장 등 일부만이 농성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T&S와의 노사 협상도 청소노동자가 아닌 서경지부가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부 청소노동자는 서경지부가 고수하고 있는 인사추천권, 징계위 동수 구성안 등 쟁점사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른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중앙대 측은 “우리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라면 우리에게 협상을 요구하고 노동 3권을 교내에서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파업 중인 노동자는 모두 T&S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T&S와 협상이 되지 않으니까, 대학 측이 나서 T&S와 협상 타결을 지원하라는 것이다. 대학과 학생을 볼모로 노동계 상급단체가 벌이는 현 파업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앙대는 민주노총 서경지부가 청소노동자를 회원으로 끌어들이면서 회원 수 증가와 조직 확대를 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청소노동자 등 간접고용계약자는 전국에 40만명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노총은 이들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회원을 늘려온 측면이 없지 않다. 중앙대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1인당 조합비는 월급여 120만원 중 1% 수준이다. 중앙대의 경우 165명의 노동자가 모두 가입한다면 연간 2370만원 정도의 조합비가 생긴다. 그러나 서경지부의 의도와 달리 조합원은 불과 38명에 그쳤다. 한 달간 파업으로 노동자에게 미지급된 1950만원을 민주노총에서 지원하기 쉽지 않다.”

중앙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협상은 답보상태에 있지만 민주노총 서경지부 산하 청소노동자 분회가 있는 다른 대학에서는 단체협약이 체결된 사례가 있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경기대, 광운대, 홍익대, 동덕여대, 인덕대, 서울예술종합학교 등에서는 민주노총 서경지부가 요구한 단체협약을 용역업체가 수용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서경지부 관계자들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의 대학에 진입해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총장실 점거와 피켓시위 등이 재연됐다. 서울여대와 서울시립대 등은 중앙대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총 서경지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대학으로 분류된다.

민주노총 주도의 파업에 대해 학교 측뿐만 아니라 학생회, 동문회 등 학내 구성원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앙대 총학생회(회장 강동한)가 주축이 된 서울캠퍼스 중앙운영위원회 측은 지난 1월 15일 “민주노총은 중앙대에서 철수하라”는 공식입장을 서경지부 측에 전달했다. 중앙운영위원회가 낸 성명서의 내용이다. “민주노총은 무리한 파업을 강행하고 있다. 미화(청소)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문제가 아닌,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신규직원 추천권 등의 조항은 학생 입장에서도 수용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미화노동자를 만나 보니 ‘파업까지 가는 것은 옳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말고사 기간에 시작된 파업으로 학생들이 직접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도 했다. 이런 노동쟁의는 지지할 수 없다.”

중앙대 동창회(회장 박진서)도 1월 22일 성명서를 냈다.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단체협약 요구사항은 통상의 사회통념을 넘어서는 요구로 정당성이 없다. 그동안 모교는 근로환경 및 처우개선에 대한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그럼에도 불법 농성행위가 계속되는 것은 민주노총에서 모교의 협력사인 용역회사(T&S)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모교에서 해결해 달라는 무리한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파업 세력은) 즉시 학교에서 퇴거함이 마땅하다.”

반면 중앙대 내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소속의 교수 40여명은 “청소노동자 파업에 대해 총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라”고 요구하며 민주노총 서경지부의 입장을 두둔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소외받아온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근무를 했다. 평균 60대 이상인 청소노동자들이 무리인 줄 알면서도 인사추천권이나 징계위원 동수 구성 등을 요구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 유수의 대학이 동일한 단체협상안을 수용한 바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대 측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민주노총 서경지부 구권서 지부장과 전화연결을 시도했으나 구 지부장은 “회의 중”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중앙대 윤화자 분회장도 “회의 중이라 통화가 어렵다”고 했다. 주간조선이 추가로 전화연결을 했으나 두 사람 모두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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