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아베 총리. ⓒphoto 뉴시스
지난해 10월 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아베 총리. ⓒphoto 뉴시스

“과거사 문제로 먼저 벽을 쌓은 것은 일본이다. 일본이 ‘결자해지’해야 한·일 관계가 풀릴 수 있다.” 지난 2월 5일 만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014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떤 정책적 노력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은 일본의 ‘결자해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란 것이다.

공적 자리에서 “일본은 여전히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고 말하는 정부 당국자들이지만, 사석에서 만나면 보다 적나라한 발언을 들을 수 있다. 최근 만난 한 정부 관계자는 “어쩌면 일본 총리가 바뀌길 기다리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한·일 관계 개선 방안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물러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지닌 인물이 새로운 총리로 등장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다.

상대가 현재 대일(對日) 관계를 직접 담당하지 않고 있는 경우엔 보다 쉽게 속내가 드러난다. 한때 대표적 일본통으로 꼽혔던 정부 당국자는 작년 12월 26일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기습 참배한 후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아무리 어려워도 출구를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이렇게 가는 수밖에 없겠다.”

우리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사실은 지난 1월 28일 ‘일본 제국주의 침탈 만행사(蠻行史)’에 대해 중국 등과의 국제 공동연구를 추진, 관련 책자를 발간하기로 결정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일본이 역사 도발을 했다고 해서 중국과 지나치게 밀착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담스러워 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직후부터 중국 외교부가 우리 측에 공동 대응을 제안했지만, 우리 정부는 “한·중 공조의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며 개별적으로 일본에 대응하는 것이 낫겠다는 입장이었다. 한·중의 공동전선 형성이 지나치게 뚜렷해지면 일본이 자국 지도자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돌아보기는커녕 감정적으로 반발하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중국과도 언제 역사·영토 분쟁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한 배에 탈 수 없고, 한·미·일 3각 동맹의 필요성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일본을 너무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동영상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한 데 이어, 중·고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까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에도 일본의 역사 도발 수위가 줄곧 상승하고 있다고 판단한 정부는 그간 접어뒀던 ‘국제 공동대응’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제사회 공론의 장에 있어서도 일본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보다 강경해졌다. 오준 주유엔대사는 지난 1월 30일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세계 제1차대전 100주년을 기념해 안전보장이사회가 주최한 ‘전쟁의 교훈과 영구평화 모색’이란 토론회에 참석해 일본 지도자들을 공개적으로 강력 비판했다. 오 대사는 “최근 일본 지도자들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침략의 정의는 확립되지 않았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다”며 “최근엔 개정 교과서에 왜곡된 역사인식을 반영해 잘못된 역사를 후대에까지 가르치려는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만 언급하지 않았을 뿐 아베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런 발언은 대사 개인의 판단만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정부 내에서 ‘일본 지도부의 왜곡된 역사인식과 그 문제점을 세계에 널리 알려 비판적 국제사회 여론을 통해 일본을 압박해야 한다’는 정책 방향이 분명해진 결과라고 봐야 한다. 해외 각국에 ‘한국의 시각’을 전파하고 외국 전문가나 싱크탱크에 지한파(知韓派)·친한파(親韓派)를 육성하는 사업에도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실제 외교부 산하에서 공공외교를 책임지는 국제교류재단,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 등은 올해 이와 관련된 사업을 많이 준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워싱턴 정가에서 한·일 관계 경색의 책임을 한국에 묻는 분위기가 팽배하는 바람에 우리가 오히려 코너에 몰렸던 쓰라린 경험도 자리하고 있다. 작년 12월 중순까지 미국은 ‘아베 총리가 공약이었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하지 않고 한·일 정상회담을 원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경직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우리 외교·안보 라인에서는 “미국 의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전방위적 로비, 일본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연구 지원을 받는 전문가들의 은밀한 일본 편들기를 당해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직전까지는 한·일 정부 간에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협의를 해왔다는 사실도 이후 우리 정부 내 분위기를 더욱 강경하게 만들었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박 대통령이 ‘뒤통수 맞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 것 같다”며 “자연히 밑에서도 ‘일본 총리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자’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기 전 우리 정부는 지난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을 계기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을 성사해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작년 12월 3일 도쿄에서 아베 총리를 만난 조 바이든(Biden) 미국 부통령은 사흘 후 서울을 방문해서 박 대통령에게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아베를 만나라’는 압박이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 이 무렵 기자가 통화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일 관계 개선 전망을 상당히 희망적으로 말했다. 이 고위 당국자는 당시 “요즘 일본과 물밑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가 너무 커서 교섭이 어렵지만 한·일 관계의 물꼬를 터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불과 20일 후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다.

한·일 관계 개선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것은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에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른바 ‘확신범’이란 사실이다. 아베 총리의 과거 발언을 보면 이런 사실은 명료해진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간사장 대리였던 2004~2005년 수차례에 걸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지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총리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다음 총리, 그 다음 총리도 참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공개적으로 말했다. 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중국과 한국 교과서에 대해서 불평한 적은 없다”며 “(일본 교과서에 대한 한·중의 비판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했다. 위안부 문제에 관련해서는 “일본 언론이 만들어 낸 얘기가 밖으로 나간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외교가에서는 이런 생각을 지닌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이 무리하게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양국에 더 나쁜 결과만 초래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2011년 12월 한·일 정상회담을 기억해 보라”는 말을 자주 한다. 2011년 12월 일본 교토(京都)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가 오히려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에서 보기 드문 설전(舌戰)을 벌이며 정면 충돌했고 이후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2012년 8월 독도를 전격 방문했고,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런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아베 정권의 끝이 오기를 기다리는 쪽이 상책(上策)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진명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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