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용캉 전 정법위 서기 ⓒphoto AP·뉴시스
조우용캉 전 정법위 서기 ⓒphoto AP·뉴시스

지난 3월 2일 중국의 국회 격인 전인대(全人大·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자문기구인 정협(政協·정치협상회의)이 동시에 열리는 ‘양회(兩會)’ 개막을 하루 앞두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뤼신화(呂新華) 정협 대변인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회견 마지막에 홍콩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기자가 “세간에 조우용캉(周永康) 사건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데 이에 대해 알려줄 것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뤼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당신과 똑같다. 여러 매체로부터 소식을 얻고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우리는 고급 간부를 포함한 일부 당원의 위법 및 당기율 위반문제에 대해 엄정히 조사를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든, 직위가 얼마나 높든, 당 기율과 국법을 위반하면 모두 처벌을 받게 된다. 이는 결코 헛소리가 아니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당신이 알다시피(你憧的).”

그의 대답이 나오자 중국 인터넷에선 ‘니똥드(你憧的)’란 표현이 일약 검색어 1위로 떠올랐다. ‘니똥드’는 영어의 ‘as you know’에 해당한다. 뤼 대변인 말은 ‘중국 정치관행상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밖에 안 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사실은 조우용캉 조사가 진행 중이다’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며칠 뒤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정치위원인 류웬(劉源) 장군 역시 양회 기간 중 ‘조우 사건이 곧 발표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히 그렇겠지(應該吧)”라고 대답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기자들은 양회 폐막일인 3월 13일을 전후해 보시라이(薄熙來) 사건보다 더 큰 정치 스캔들인 조우용캉 사건의 수사결과 발표를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양회 폐막일인 3월 13일 리커창(李克强) 총리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조우 사건에 대한 질문 자체가 금지됐다. 그리고 양회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발표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반부패 투쟁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4월 초 서울에 온 한 중국 지인은 “우리 같은 일반인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조우용캉 수사결과 발표가 3월 중순 나오는 걸로 국민이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뭔가 곡절이 있다.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지도부 거주 및 근무지) 내부가 시끄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권력층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조우용캉은 후진타오 집권 시절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마지막 서열(9위)이었지만 권력은 누구보다 막강했다. 그는 당 정법위 서기로서 경찰, 검찰, 법원, 무장경찰을 모두 통솔했다.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상무위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에 국가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와 총리인 원자바오도 그의 눈치를 본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그는 또 중국 내 최대 정치세력인 상해방(上海幇)의 대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비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퇴임 후에도 건재한 듯했다.

그랬던 그에 대해 지난해 가을부터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의 옛 수하들이 차례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있으며 조우 자신도 부정축재 혐의로 톈진(天津) 혹은 내몽골 인민해방군 부대에 연금돼 엄중한 감시 속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중국 정부와 언론은 이런 소문에 대해 확인하거나 보도한 적이 없지만, 해외 언론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4월 1일자에서 미국에 사는 조우용캉의 사돈인 짠민리(詹敏利)를 인터뷰해 조우에 대한 당국의 조사 사실을 확인했다. 또 조우의 아들 조우빈(周濱) 부부가 작년 10월부터 연락이 두절됐으며, 조우 집안의 재산관리인인 우빙(吳兵)도 실종 상태라고 전했다.

외신들이 전하는 조우의 부정축재는 상상을 초월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조우는 연간 4800억원대의 이익을 내는 샨시(陝西)성 위린(楡林)유전을 단돈 160억원에 불하받은 것을 비롯해 3개 성(省)에 걸쳐 석유시설을 보유하고 10여개 회사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당국이 압류한 조우의 재산만 900억위안(15조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조우 사건에 연루돼 조사받는 인물도 300명을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조우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를 구하기 위해 쉬차이호우(徐才厚), 링지화(令計劃)와 함께 신사인방(新四人幇)을 형성해 2012년 3월 중순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정변을 기도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중국중앙방송(CCTV)의 젊은 아나운서와 결혼하기 위해 범죄조직을 시켜 본처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작년 말과 올 초 사이 이러한 범죄 의혹이 속속 불거지면서 3월 양회를 전후해 수사결과 발표도 임박한 것으로 관측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 3월 31일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가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FT는 중국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장쩌민 전 주석이 2월경 시진핑 주석을 만나 “반부패 캠페인의 족적(足跡)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고 보도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도 반부패 드라이브에 의구심을 나타내면서 지나치게 확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장쩌민은 조우용캉을 발탁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작년 가을 자신을 찾아온 시진핑으로부터 조우의 천문학적인 부패 규모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조우 수사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랬던 장이 조우 수사에 다시 제동을 건 이유에 대해 FT는 부패 단속이 확대될 경우 자신과 계파가 해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반부패 캠페인을 오래 끌면 공산당 지지기반이 약화되고 통치 안정성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봤다는 것이다. 장쩌민의 태도 변화와 관련, 홍콩 잡지 명경(明鏡)은 “조우용캉이 작년 11월 양조우(揚州)에 머물고 있는 장을 찾아가 자기를 구해달라고 읍소(泣訴)한 적이 있다”고 4월 8일 보도했다. 장은 처음에는 만나려 하지 않았으나 조우가 “만나 주지 않으면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끝내 면담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명경과 FT의 보도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태자당의 원로이자 보수파의 대표 격인 리펑(李鵬) 전 총리의 움직임도 포착된다. 리펑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李小琳)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이 하이난성(海南省)에 막대한 토지를 가지고 있는 등 재산이 천문학적 규모에 달한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퍼지자, 리 전 총리가 인맥을 동원해 진화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 원로들의 이같은 움직임과 관련, 일각에서는 막판에 몰린 조우용캉 세력이 이전에 수집했던 장-후의 약점을 카드로 내밀며 조우에 대한 처벌축소를 요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시진핑의 반부패 드라이브가 원로들에 의해 동력이 꺾이던 무렵, 중국 7대 군구와 제2포병(미사일)부대, 무장경찰대, 총정치부, 총참모부, 총후근부, 군사과학원, 국방대학을 이끄는 18명의 고위장성이 4월 2일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解放軍報)’에 시진핑에 대한 충성과 지지를 다짐하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군 지휘부는 기고문에서 한결같은 목소리로 “중국의 꿈과 강군의 꿈을 실현하고 시 주석의 지시를 철저히 관철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중국에서 군 지휘부가 이처럼 한꺼번에 특정 인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군부의 움직임이 권력투쟁과 연관이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성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중국 정치의 불안정을 보여주는 셈이다.

시진핑의 반부패 드라이브, 전직 지도자들의 제동 움직임, 군 지휘부의 시진핑 충성 맹세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여러 세력이 각축하는 양상을 보이자, 미국에 본부를 둔 인터넷 뉴스매체 보쉰(博訊)은 “시진핑의 반부패 투쟁이 공산당 내부의 격렬한 권력투쟁을 야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화권 잡지인 ‘북경의 봄(北京之春)’ 편집인 후핑(胡平)도 “조우에 대한 처벌을 어느 정도로 할지, 어떤 방식으로 할지를 두고 최고지도부 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건을 끄집어내 공개하기에는 지도자들 모두 이렇게 저렇게 조우와 관계가 얽혀 있다. 이 때문에 조우를 내부적으로 처리(즉 비공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법부에 넘기면 중국 고위층의 부패문제가 중국 국민은 물론 국제여론의 초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조우에 대한 사법심판은 곧 공산당에 대한 사법심판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중국어 매체 둬웨이(多維)의 유명 정치블로거 뉴레이(牛漏)는 “장쩌민-후진타오가 조우용캉 수사에 대해 의견을 밝힌 것은 사실이지만 처벌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당내 이견은 있지만 권력투쟁은 아니라는 것이다. 뉴레이는 인민해방군 지도부의 집단 충성맹세에 대해서도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이는 중국군 부패의 ‘몸통’으로 일컬어지는 쉬차이호우와 궈보슝(郭伯雄) 등 전직 중군위원과 구쥔샨(谷俊山) 총후근부 부부장 세력에 대한 시진핑의 조치를 지지한다는 입장표명이자 군부의 단결을 과시하는 행동일 뿐”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즉 군부 내 부패척결 의지와 단결력 과시의 차원이지 그것이 곧 조우용캉 사건의 축소에 반대하는 군인들의 집단행동은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안팎의 보도와 견해를 종합해 보면, 지금 베이징에서는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과 과거 정권에서 엄청난 부를 쌓은 기득권 세력 간에 큰 힘 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 세력은 전직 최고지도자와 그 가족들이다. 이들은 개혁개방 30여년 사이 권력을 이용해 쌓은 막대한 부를 계속 누리기를 원한다. 반면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은 왜곡된 경제구조와 부의 편중현상을 혁파하기 위해 기득권 세력의 특권구조를 깨려 한다. 그것을 깨야만 중국의 경제 사회 구조가 한 단계 더 높이 발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세력의 대결구도는 기존의 권력투쟁 공식을 벗어난다. 즉 기존의 권력투쟁은 상해방과 태자당 연합 대(對) 공청단의 힘 겨루기로 벌어졌다. 장쩌민과 리펑은 상해방과 태자당의 중심인물로서 과거 10년 동안 공청단파의 거두인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행보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 구도로는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지금은 3대 파벌 모두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이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이들은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이 추진하는 반부패 투쟁에 같은 목소리로 저항하며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 따라서 지금의 파워게임 구도는 ‘개혁 세력’ 대 ‘기득권 세력’의 싸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시진핑은 “파리든 호랑이든 모두 때려잡겠다”며 강인한 반부패 투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도전이 성공하느냐 여부에 따라 자신의 정치생명은 물론 중국의 미래도 달라진다. ‘시진핑의 꿈’은 ‘기득권 세력의 꿈’과 공존할 수 있을까.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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