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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303호]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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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경남고 출신 기자가 본 부산의 경남고 전쟁

박영철  차장 

▲ 지난 4월 13일 부산의 번화가 남포동. 이들의 표심(票心)은 어디로 향할까?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박 차장! 부산에 한번 갔다오지.” 나는 목요일이던 지난 4월 10일 부산시장 선거 취재에 긴급 차출됐다. 마감하고 나서 오랜만에 부원들과 한잔하다가 부산시장 선거에 유력 후보들이 모두 경남고를 나왔다는 게 화제가 된 것이 발단이었다. 부산시장 후보 6명 중 지지율 1~3위가 모두 경남고 출신이다. 부원들이 재밌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경남고 출신 기자가 보는 경남고 전쟁’이라는 취지의 기사는 내가 맡기로 결정됐다. 나는 경남고 36회 졸업생이다. 1979년에 경남고에 입학해 1982년에 졸업했다.
   
   다음 날 오전 기획회의에서 이 안건이 정식 채택됐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취재 대상은 새누리당의 권철현(19회)·서병수(25회) 예비후보와 무소속 오거돈 후보(21회) 등 3명. 그러나 다수의 동문을 상대로 기사를 쓴다는 것은 잘해봤자 본전이다. 동문들에게서 잘 썼다고 칭찬을 받기는커녕 이 정도밖에 모르느냐고 핀잔받을 가능성이 크다.
   
   난감한 대목은 또 있었다. 나는 세 후보와 일면식도 없었다. 게다가 대학을 서울로 와서 1982년부터 32년간을 서울에서 살아왔고 부모님도 10여년 전부터 충남에서 살기 때문에 부산에 갈 일도 별로 없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재경 경남고 동창회에서도 부산시장 선거는 별로 화제가 안 됐다. 또 나는 세 후보와는 여건도 다르다. 이 선배들은 비평준화 세대다. 나는 이른바 평준화세대인 ‘뺑뺑이’ 기수로 6회다. 후보 중 나이가 가장 적은 서병수 선배와도 졸업연도가 11년 차가 나고 정서가 좀 멀었다.
   
   부산 출신이기는 하지만 남의 일처럼 넘겼던 부산시장 선거가 갑자기 지상(至上)과제가 돼 버렸다. 덕분에 주말을 망쳤다. 주말 내내 “이 건을 어떻게 다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짓눌렀다. 고민 끝에 나는 친한 동문들에게 부지런히 전화를 돌려 ‘여차여차해서 부산에 출장을 가려고 하니 선거판 흐름을 잘 아는 동문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1년 후배가 “발이 넓은 선배가 있다”며 사람을 소개해 줬다.
   
   시중은행 간부인 이 후배에게 물어봤다. 그는 수년 전 부산 해운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무소속 오거돈 후보가 될 것 같습니다. 오 후보가 부산시 부시장 출신이고 해수부 장관도 지냈고요. 나는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이 싫습니다. 부산은 야권 기질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금융영업을 하는 2년 후배에게도 물어봤다. “오거돈이 우세한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이 이기더라도 옛날처럼 쉽게 주워 먹지는 못할 겁니다. 경고(경남고)라고 찍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보수가 싫습니다.”
   
   4월 14일 월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오전 9시 서울역 출발 KTX를 타고 1박2일 일정의 부산 출장에 올랐다. 오전 11시50분 부산역 도착. 예정보다 9분 연착이다. 고맙게도 19회 선배가 몸소 마중을 나와주었다. 점심시간이어서 같이 택시를 타고 자갈치시장 입구의 식당으로 갔다. 아구탕을 먹으면서 선배가 물었다. “니 후보들 다 만나볼 꺼가?”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선박부품납품업을 하는 선배는 마당발이었다. 세 후보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통화한 후 나를 바꿔줬다. 제일 먼저 권철현 후보가 “내일 오전 9시 반에 사상 파라곤호텔 2층 커피숍에서 봅시다” 하고 취재에 응했다.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 경선일 D-8일 전에 시간을 내주는 건 거의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 때는 4월 16일의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기 전이어서 경선 예정일이 4월 22일이었다.) 다른 두 후보는 일정을 봐서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 권철현 새누리당 예비후보 photo 권철현 캠프
점심식사 후 한 은행의 지점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지점장에게 물어봤다. 50대인 그는 조심성이 많았다. “제가 뭐 아는 게 있나요? 손님들 얘기를 듣기만 하지예.” 그래도 집요하게 물어봤다. 그는 결국 털어놨다. “손님들이 그래도 아직은 부산이 새누리당 텃밭인데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 지점장은 경남고 출신은 아니다.
   
   오후 2시 반경에 같이 다니던 선배와 작별했다. 택시를 타고 서구 동대신동에 있는 경남고로 갔다. 60세 전후로 보이는 택시기사에게 물어봤다. “손님들이 시장 선거 이야기 도통 안 하네예. 그러고 보면 부산 사람들 참 무던하지예.” 손님들이 부산시장 선거에 무관심하다는 말이었다. 경남고 30회로, 나의 6년 선배인 서강태 경남고 교장은 “누가 될 것 같다고 얘기를 많이 하던가요?” 하고 묻자 기자에게 “동문들이 누가 돼도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안 되겠냐고 합니다”고 대답했다. 차기 부산시장은 어찌됐든 경남고 동문에서 배출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까마득히 어린 후배 학생에게 선배 셋이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걸 알고 있냐고 물어봤다. 2학년 정재훈군은 “오거돈 후보가 3월에 야구 응원하러 와서 우리 선배라는 건 아는데 다른 두 사람이 선배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길거리 민심을 알아보러 젊음의 거리인 서면으로 갔다. 유동인구가 많은 쥬디스태화백화점 앞에서 무작위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오후 4시54분 사상구에 산다는 김모(여·20대 초반)씨는 “아직 누구 찍을지 못 정했다”고 말했다. 부산진구에 산다는 20대 초반의 남자 대학생은 “지지 후보 안 정했다”며 “부모님도 정치 이야기 안 한다”고 말했다. 이들 두 사람은 “투표는 할 거다”고 했다. 사상구에 거주하는 윤모(여·1986년생)씨는 “무소속 오거돈씨가 장관도 지냈고 인상도 좋아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서면에서 저녁 7시경에 경남고 3학년 10반 때 친구 4명하고 저녁을 같이 먹었다. 대학교수가 셋, 벤처기업 CFO(재무최고책임자)가 하나였다. 대학교수 중 한 명은 한겨레신문 창립주주다. 이 모임 참석자들은 모두 “서병수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민등록이 타지에 돼 있어 투표권이 없는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참석자들은 “서병수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병수 후보는 소위 친박(친박근혜)으로, 부산의 4선의원이다.
   
▲ 서병수 새누리당 예비후보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저녁을 먹다가 서병수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밤 9시 반까지 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상구 하단동의 선거캠프로 갔다. 서 후보가 회의 중이어서 밤 10시경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며 “부산을 조선기자재·해양플랜트·영화영상애니메이션에서 아시아·세계 최고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환(環)동해권론을 말했다. “북한 쪽과 소통된다면 나진·선봉, 극동시베리아 자원을 개발할 수 있고 중국도 동진정책을 쓰고 있다. 부산은 환동해권의 거점도시가 될 수 있다. 환황해권과도 연결하는 도시가 될 수 있고 유라시아철도 시발점도 될 수 있다.” 그는 새누리당 경선 후보 중 누가 가장 신경 쓰이느냐는 질문에 “권철현 후보”라고 답했다.
   
   부산 취재 이틀째인 4월 15일 오전 10시3분 파라곤호텔에서 권철현 선배를 만났다. 권 선배는 “통화 좀 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후 꽤 오래 통화를 했다. 권 후보는 “1월부터 4월까지 모든 여론조사에서 1등을 했다”며 “본선에서 오거돈 꺾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는데 당심도 천심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기업 100개를 부산에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이 중 50개 정도는 일본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나의 일본국비유학생,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주일대사 경력을 살리면 충분히 유치할 수 있다.” 권 선배는 “매주 1회씩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 형식으로 공약을 발표하는 후보는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도 “서병수 후보가 신경 쓰인다”고 했다.
   
   고3 때 같은 반 친구가 기획실장으로 있는 대학으로 가서 친구와 함께 식사했다. 기획실 직원 4명과 선거 이야기를 했다. 연령대가 1957년생부터 1960년생까지다. 이들은 대체로 오거돈 후보를 지지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허남식 시장이 12년 해서 식상한 것도 있고 무색무취해서 피로감을 느낀다’ ‘하도 변화가 없으니까 가덕도 신공항 유치할 수 있는 사람 뽑겠다’ 등. 새누리당 경선후보는 누가 되겠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일제히 “서병수”라고 대답했다. 이유는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20%로 너무 낮고 서병수씨가 얼마 전에 국회의원을 사퇴했지만 현역 프리미엄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부산에서 55세 이상은 무뇌아(無腦兒)”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비판했다.
   
   고등학교 후배인 한 지역신문 간부와 오후 2시40분경부터 티타임을 가졌다. 그는 “권 후보는 노쇠하고, 서 후보는 카리스마가 약하고, 박민식 후보는 차기를 노리고 나온 것 같아 전반적으로 오 후보가 나은 것 같다”며 “부동층(浮動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 박빙의 승부를 점쳐본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고 지인들이 ‘누가 되든 간에 경고(경남고)에서 시장이 나오겠네. 경고는 좋겠네’ 한다”고 말했다. 경남고 동창회는 요즘 부산시장 선거와 관련해 말을 아낀다. 혹시라도 특정 후보를 민다는 인상을 줄까 싶어서다. 산업자원부 차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허범도 경남고 동창회장은 후배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허 선배는 잘 아는 내 전화를 받고도 “에이 뭘, 내버려둬”라고 말했다.
   
▲ 오거돈 무소속 후보 photo 오거돈 캠프

   무소속 오거돈 후보를 가장 늦게 만났다. 그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노무현 정부 때 일했다. 오 선배에게 4월 14일 오전 있었던 새누리당 예비후보 TV토론을 본 소감을 묻자 “같은 당끼리라서 건성건성으로 토론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부산을 동북아 해양경제수도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21세기는 해양의 시대다. 조선·해운·수산과 같은 전통 산업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해양에너지·바이오·플랜트·관광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가 골고루 발전해야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만들 수 있다.” 오 선배는 하루 7시간가량 걸어다니며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는 ‘민생대장정’을 3월 31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선거는 갈수록 과열기미를 보이고 있다. 서병수 선배는 오거돈 선배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권철현 선배는 “다른 동문 후보들이 거칠게 공격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과 후보들을 만나고 말을 들어볼수록 더 헷갈려졌다. 선거전문가로 명성을 날렸던 경남고 동문에게 물어봤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당원 확보 싸움이기 때문에 서병수 후보가 새누리당 경선에서 한끝 차이로 이길 것”이라며 “오거돈 후보와 서병수 후보가 붙으면 서병수 후보가 이기겠지만 지난 대선 때 박근혜(51.6%), 문재인(48.0%) 지지율 차이밖에 안 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을 이틀 다녀왔지만 감이 안 온다. 홍준표 후보로 확정된 경남 새누리당 경선처럼 지지율에서 앞서 나간 후보가 당심까지 확보하면 권철현 선배가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되고, 본선에서 오거돈 선배와 붙어도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권 선배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1 대 1로 오거돈 선배와 겨루면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새누리당 경선에서 예전처럼 ‘박심(朴心)=당심(黨心)’ 공식이 먹히면 서병수 선배가 단연 유리하다. 서 선배도 본선에 진출하면 오 후보와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거돈 선배는 새누리당 경선을 통과한 후보와 1 대 1로 붙어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셋 중 누구도 승자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경남고의 전쟁’은 새누리당 후보 경선이 열리는 4월 29일에 제1라운드가, 그리고 1라운드 승자가 오거돈 무소속 후보와 붙을 6월 4일 지방선거일에 제2라운드가 진행된다. 어떤 선배가 돼도 상관없는 나는 그 게임을 담담하게 보려 한다.


   
무소속 돌풍 언제까지
   
   야당도 싫고 경제난 주범 여당도 싫고…
   
   이번 6·4 지방선거 중 부산시장 선거를 흥미롭게 만든 요소가 무소속 돌풍이다. 오거돈 후보가 당사자다. 부산은 오랫동안 여당의 텃밭이었다. 역대 민선시장이 모두 여당 소속이었던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보통 사람 눈에도 당락이 일찌감치 보였기 때문에 관심지역으로 분류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부산시장 선거에 삼수째인 오거돈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와 초기부터 계속 지지율 1위를 달려왔기 때문이다. 광역단체장이 전국에 17명인데 무소속이 두각을 드러내는 곳은 부산이 유일하다. ‘오거돈 현상’이라고도 부를 만한 이 현상의 원인과 전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큰 요인으로는 부산의 총체적 위기가 지적된다. 부산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확고한 ‘제2의 도시’였으나 2000년대 들어 서해안 시대가 열리면서 인천이 급성장한 데 비해 부산은 오히려 인구가 줄어들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이대로라면 오는 2020년에 인천과 인구가 역전될 공산이 크다.
   
   경제가 어려운데 위정자에 대해서 고운 감정이 생길 리가 없다. 경남고 졸업생 이모(51)씨는 “부산을 퇴보시킨 새누리당은 절대 안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지역적 요소다. 오 후보는 지난 선거에서 두 번 다 야당 후보로 나와서 떨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경남고 출신 40대 언론인은 “오거돈 후보의 공약과 이미지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지금까지는 당 때문에 안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이 주축이 된 여당과 정부에 대해 부산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더라도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야당 후보에게 표를 주는 건 아직까지는 생각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오 후보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무소속으로 완주할 것이며 당선 후에도 무소속 시장으로 시정을 펴나가겠다”며 ‘통 큰 연대’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오 후보가 극복해야 할 난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남고 25회 졸업생은 “오거돈 후보가 두 번이나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며 “선거 막판으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과 전혀 무관하게 가지는 않을 것이며 이번까지는 부산 시민이 밉더라도 박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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