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팀의 에이스 소피아뉴 페굴리 ⓒphoto AP
알제리팀의 에이스 소피아뉴 페굴리 ⓒphoto AP

축구 팬이라면 지네딘 지단(42)을 모를 리 없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조국 프랑스를 정상에 올려놓은 축구 영웅이다. 지단은 거친 몸싸움이 난무하는 그라운드에서 유려하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예술가’란 별명을 얻었다. 지단은 2006 독일월드컵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뒤 유니폼을 벗었다. 지단은 세계 최고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FIFA(국제축구연맹) 올해의 선수상을 세 차례(1998·2000·2003년)나 수상한 프랑스 ‘아트 사커’의 자존심이었다.

이런 지단을 프랑스인만큼이나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사람들이다. 알제리인은 지단의 현역 시절 TV 중계를 보며 열광적으로 지단을 응원했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지단이 알제리 이민 2세였기 때문이었다. 지단의 부모는 1953년 파리에 이민을 오며 프랑스에 정착했다.

지단 외에도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체스터시티의 우승을 이끈 사미르 나스리(27), 레알 마드리드의 최전방 스트라이커 카림 벤제마(27)도 알제리 혈통이다. 벤제마는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이번 브라질월드컵에 나선다.

지단의 얘기를 꺼낸 것은 알제리 축구가 프랑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알제리는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19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알제리는 축구만큼은 프랑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과 맞붙는 알제리 대표팀의 주축이 대부분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 출신이기 때문이다. H조 조별리그 2차전인 한국-알제리전은 한국 시각으로 6월 23일 오전 4시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펼쳐진다.

바히드 할릴호지치(62·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감독이 이끄는 알제리 대표팀은 5월 21일 브라질월드컵에 나설 예비 엔트리를 25명으로 압축했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최종 엔트리가 23명인 것을 감안하면 ‘옥석 가리기’는 끝이 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내 팬의 눈엔 생소한 선수가 많아 알제리의 전력을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선수들 면면을 보면 꽤 화려하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알제리 대표팀엔 유럽 무대에서 인정을 받는 선수가 수두룩하다”며 “특히 개인기술이 뛰어난 선수가 많아 한국 수비가 경계를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알제리의 에이스는 소피아뉴 페굴리(25)다. 스페인의 명문 클럽 발렌시아에서 주전으로 뛰는 페굴리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민 2세다. 프랑스 U-18(18세 이하), U-21(21세 이하) 대표팀을 두루 거친 페굴리는 알제리축구협회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고 알제리 A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FIFA는 대표팀을 바꿔 뛰는 것에 대해 자유로운 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알제리 이중국적자인 페굴리의 경우 프랑스 A대표로 월드컵 예선·본선 등 FIFA 주관 대회에 뛰지 않았기 때문에 알제리 대표로 A매치를 소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올 시즌 절정의 기량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를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이끈 스트라이커 디에구 코스타(26)는 브라질 유니폼을 입고 친선경기에 나선 적이 있지만 이번 월드컵에는 스페인 대표로 출전한다.

2011년 알제리 대표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페굴리는 대표팀에선 주로 오른쪽 공격을 맡는다. 그동안 대표팀 경기에 17번 나서 5골을 넣었다. 왕년의 지단을 연상시킬 만큼 드리블과 패스 능력이 뛰어나다. 야신 브라히미(24·그라나다)는 알제리 대표팀의 신성(新星)이다. 역시 ‘프랑스파’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브라히미는 16·17·18·19·20·21세 등 프랑스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다. 향후 프랑스 성인 대표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한 실력이지만 할릴호지치 감독의 설득에 알제리를 택했다.

파리 생제르맹과 스타드 렌 등 빅클럽에서 축구를 익힌 브라히미는 지난해 스페인 그라나다로 이적했다. ‘그라나다의 가린샤’라고 불릴 만큼 탁월한 드리블 능력을 자랑한다. 가린샤(1933~1983)는 펠레와 함께 브라질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로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로 꼽히는 선수다.

알제리 대표팀 ⓒphoto AP
알제리 대표팀 ⓒphoto AP

축구 전문 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에 따르면 브라히미는 2013~2014 시즌 스페인 리그에서 경기당 평균 4.8회의 드리블 돌파를 성공하며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드리블의 신’으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4.7회)를 제친 것이다. 네이마르(바르셀로나·3회)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2.2회) 등의 스타들을 월등히 앞섰다. 브라히미는 지난 4월 메시가 보는 앞에서 바르셀로나를 침몰시키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세계 축구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파우지 굴람(23·나폴리)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유벤투스 등 명문 클럽의 러브콜을 받는 정상급 측면 수비수다. 알제리에선 왼쪽 풀백을 맡고 있다. 프랑스 21세 대표팀으로 뛴 굴람은 부모의 설득으로 알제리 대표팀을 택했다. 이탈리아 명문 인터밀란에서 뛰는 사피르 타이데르는 22세로 손흥민과 동갑내기다. 튀니지 출신 아버지와 알제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 역시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라 프랑스 18·19·20세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작년부터 알제리 대표팀으로 뛰는 그는 중원에서 공수 조율을 담당한다.

이 밖에도 프랑스 오세르 유소년 팀에서 성장한 미드필더 하산 예브다(30·우디네세), 프랑스 파리 태생의 메흐디 라센(30·헤타페) 등 알제리 대표팀을 얘기할 때 프랑스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알제리에서 나고 자란 ‘국내파’도 있다. 크로아티아 디나모 자그레브 소속의 엘 아라비 수다니(27)는 알제리 태생으로 자국 리그에서 성장한 선수다. A매치 20경기에서 10골을 넣을 만큼 골 결정력이 뛰어나다. 알제리 부동의 센터포워드 이슬람 슬리마니(26·스포르팅 리스본)도 수도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이번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 7경기에서 5골을 몰아넣었다.

프랑스 출신 선수들과 알제리 태생의 선수들을 잘 융화시켜 조직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할릴호지치 감독의 몫이다. 유고슬라비아 대표로 1982년 월드컵에서 뛰었던 할릴호지치는 프랑스·모로코·터키·사우디아라비아 리그 등을 돌며 지도자 생활을 했다. 그는 올해 초 알제리축구협회와 갈등을 겪었다. 축구협회는 재계약을 원했지만, 할릴호지치 감독은 이번 월드컵이 끝나고 다른 팀 지휘봉을 잡길 원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코트디부아르를 맡았던 할릴호지치는 당시에도 협회와 불화를 일으켰다. 이런 부분이 한국엔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 남아공월드컵 당시에도 팀 내 불화로 말이 많았던 나이지리아와 2 대 2로 비기며 16강행 티켓을 따냈다.

‘아프리카의 프랑스’로 불리는 알제리의 이번 월드컵 성패는 얼마나 조직력을 가다듬고 나오느냐에 달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프랑스 연령별 대표를 두루 거친 선수들이 즐비한 팀답게 개인기는 세계 어떤 팀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제리의 FIFA 랭킹은 25위로 한국(55위)보다 훨씬 높다. 알제리는 오는 5월 31일 아르메니아와의 평가전으로 전력 점검에 나선다. 6월 4일엔 루마니아를 상대로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른 뒤 7일 브라질에 입성할 계획이다.

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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