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문화와 관련된 물건을 전시해 놓은 이화동 대장간.
대장간 문화와 관련된 물건을 전시해 놓은 이화동 대장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뒤편. 화려한 간판 숲을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낙산공원이 나온다. 가쁜 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감탄사가 나온다. 멀리는 남산부터 동대문, 종로 일대가 발 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랫집 텃밭에선 싱싱한 야채가 쑥쑥 키를 높이고 있다. 꼬끼오~. 누구 집에서인지 우렁찬 수탉 울음이 들린다. 세상에, 서울 사대문 안에서 기름에 빠진 프라이드 치킨만 뜯을 줄 알았지 살아있는 닭 울음을 만날 줄이야. 마로니에 공원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해발 125m 높이의 동네에 올랐을 뿐인데 복잡한 세상에서 훌쩍 뒤로 물러선 느낌이다. 낙산공원을 조금 지나면 낙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서울성곽 안쪽 비탈길에 오밀조밀 작은 연립주택들이 붙어있는 달동네가 나온다. ‘이승기 천사날개’ ‘물고기 계단’ ‘꽃계단’ 등 ‘벽화마을’로 유명해진 이화동 마을이다. ‘옥탑방 왕세자’ 등 드라마,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중국, 일본 관광객까지 몰려들어 주말이면 좁은 골목길이 미어터진다.

지난 5월 23일 오후, 꼭대기에 있는 마을 공동공간인 텃밭이 떠들썩했다. 이날 특별한 마을 잔치가 열렸다. 아름드리 뽕나무 아래에 놓여 있는 평상 주변으로 마을주민, 초대 손님 100여명이 곳곳에 앉아 잔치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마로니에 공원 뒤편에 있는 자물쇠 전문 쇳대박물관(관장 최홍규)이 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한 이화동 마을박물관 전시(5월 23일~6월 22일) 오프닝 행사가 열린 것. 한 달간 열리는 마을박물관 전시에는 골목골목 11곳에 위치한 개인 소유의 박물관, 갤러리, 공방 등이 참여해 관람객에게 공간을 오픈한다. ‘수작’(봉제박물관), ‘개뿔’, ‘소석 갤러리’, ‘갤러리 그美’ 등 전시에 참여한 11곳은 모두 이화동 마을에 반해 들어온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공간이다. 이화동 마을박물관 전시는 최홍규(57) 관장이 10년 프로젝트로 계획하고 있는 사업이다. 올해가 두 번째 전시로 참가 규모가 지난해 7곳에서 올해는 4곳이 더 늘었다. 통합 입장권(2000원) 한 장으로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최 관장의 10년 후 목표는 매년 전시공간을 늘리고 마을협의회를 만들어 주민 전체가 주인이 되는 마을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먼저 박물관 몇 곳을 둘러보자. 올해 전시에 새롭게 선보인 대장간 박물관. 최홍규 관장의 개인 수집품 중 대장간과 관련된 도구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2층 건물의 외벽을 타고 오르는 장미넝쿨이며 지붕을 뚫고 나온 듯 담장 밖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살구나무 열매에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를 들이댄다.

작은 방들이 이어진 독특한 구조의 건물 안에는 철 조각 작품, 모루(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쓰는 받침대) 등 대장간과 관련된 도구들이 방마다 종류별로 전시가 돼 있다. 전시 작품도 볼 만하지만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건물의 원형을 보전하기 위해 수리를 최소화했다는 내벽은 시멘트가 벗겨진 채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벽지를 대신했는지 신문지 몇 장이 찢어지고 탈색된 채 붙어 있다. 그중에는 1979년 8월 16일자 한국일보 1면도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톱기사로 실려 있는데 ‘난국일수록 노사가 믿고 의지해야’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블론디’가 주인공인 네 컷 만화도 실려 있다.

01  이화동 전경<br></div>02  국내 최연소 소형 경주용차 챔피언 장기성씨가 자신의 메달, 경주 동영상을 전시하는 ‘기성이네’.<br>03  박물관 ‘개뿔’의 화장실. 건물에 붙어있는 성곽길의 돌담을 벽으로 활용했다.<br>04  대장간 박물관의 중정. 국민주택단지로 개발한 이화동 마을의 집들은 적산가옥 구조를 사용해 구조가 독특하다. 작은 방들 사이에 중정이 위치해 있다.
01 이화동 전경
02 국내 최연소 소형 경주용차 챔피언 장기성씨가 자신의 메달, 경주 동영상을 전시하는 ‘기성이네’.
03 박물관 ‘개뿔’의 화장실. 건물에 붙어있는 성곽길의 돌담을 벽으로 활용했다.
04 대장간 박물관의 중정. 국민주택단지로 개발한 이화동 마을의 집들은 적산가옥 구조를 사용해 구조가 독특하다. 작은 방들 사이에 중정이 위치해 있다.

05  최홍규 관장이 사서 만든 ‘이화동 마을박물관’. 주민들의 오래된 삶이 전시돼 있다.<br></div>06  2006년 공공미술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물고기 계단’. 덕분에 이화동 마을은 벽화마을로 유명해졌다.<br>07  이화마을 주민을 위한 공간인 ‘이화동 마을박물관’과 주민 텃밭. <br>08  이화동 마을 맨 위쪽에 위치한 박물관 ‘개뿔’. 건물의 원형을 복원해 놓아 1950년대 건축 당시 건물의 구조를 볼 수 있다.
05 최홍규 관장이 사서 만든 ‘이화동 마을박물관’. 주민들의 오래된 삶이 전시돼 있다.
06 2006년 공공미술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물고기 계단’. 덕분에 이화동 마을은 벽화마을로 유명해졌다.
07 이화마을 주민을 위한 공간인 ‘이화동 마을박물관’과 주민 텃밭.
08 이화동 마을 맨 위쪽에 위치한 박물관 ‘개뿔’. 건물의 원형을 복원해 놓아 1950년대 건축 당시 건물의 구조를 볼 수 있다.

마을 텃밭과 붙어 있는 파란색 외벽의 ‘이화동 마을박물관’은 이화마을 원주민들의 기증품으로 꾸며졌다. 주걱, 주전자, 바구니, 야구방망이, 낡은 운동화 등 소소한 생활용품부터 3대째 이화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이 내놓은 가족사진들이 시계를 거꾸로 돌려 수십 년 전 추억 속으로 안내한다. 특히 3대의 가족사진은 우리나라의 역사다. 1950년대 풍경을 비롯해 3대가 태어나서 어른이 되는 과정들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쪽 방에는 장애우들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1000원을 내고 원하는 엽서에 손편지를 써서 마을박물관에 설치된 우체통에 넣으면 원하는 주소로 배달된다.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한 영상도 상영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주민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 이곳에 들어와 40~50년 이상 살면서 이화마을과 함께 나이 들어간 70~80대의 어르신들이다. 유기석(80)씨는 “20살에 이곳으로 시집와서 60년째 살고 있다. 시골로는 절대 시집 안 가겠다고 고집 부려 서울로 왔는데 시골보다 못한 산꼭대기더라. 살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박복순(71)씨는 네 아이 키우면서 이화동 마을에서만 11번 이사를 했단다. 공동 수돗물을 사용하고 숱하게 연탄가스를 마시면서 힘든 시절을 보낸 주민들은 경로당에 모여 놀면서 함께 늙어 가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마을박물관을 나와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 맨 꼭대기에 칠보공예가 김미연씨의 ‘갤러리 그美’와 와인오프너를 전시해놓은 ‘개뿔’이 벽을 맞대고 있다. ‘개뿔’은 이화마을에서 유일하게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경기대 안창모 교수를 비롯해 정춘환, 남용협, 김선욱 등 7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해 1950년대 이화마을 건축 당시 마을의 지적도, 건물 설계도를 찾아내 증·개축된 부분을 없애고 원형을 복원해냈다. ‘개뿔’ 박물관에서 특히 빼놓지 않고 봐야 할 공간은 화장실이다. 성곽길을 만들면서 쌓은 돌담을 끼고 지은 탓에 개뿔 박물관 건물의 한쪽 면은 돌담에 접해 있다.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마주치는 이끼 낀 돌담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쪽 벽을 대신하는 돌담이 이 집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돌담 위에 회벽이 칠해져 있던 것을 복원 작업을 하면서 일일이 깨냈다고 한다.

박물관 외벽에는 참여 건축가들이 찾아낸 당시의 건물 도면, 일대 지적도 등과 함께 이화동 마을의 형성 과정과 건축 배경 등을 설명한 안내판이 붙어 있다. 설명에 따르면 현재 모습의 이화동 마을이 조성된 것은 1958년. 정부에서 주택난 해결을 위해 무허가 건물들을 철거하고 연립주택 57동 140가구로 이뤄진 국민주택단지를 조성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80세 생일을 전후해 이 전 대통령 사저인 이화장 뒤편의 재정비가 필요했던 것도 조성 배경 중 하나이다. 국민주택단지 조성 이전 언제부터 이곳에 집들이 들어섰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1930년대 지적도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때는 번지수도 없던 곳이다.

봉제박물관 ‘수작’의 전시공간.
봉제박물관 ‘수작’의 전시공간.

국민주택단지의 설계는 국민주택영단(현 LH공사)이, 시공은 중앙산업이 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건축학적으로도 대단히 의미 있는 곳이다. 140가구는 단독 2층 주택에 4가구 이내가 입주한 연립 형태로 대지면적은 다르지만 주택 내부는 모두 15평 규모로 건축됐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타운하우스의 시초인 셈이다. 건축양식은 일본식 적산가옥을 따르고 있지만 당시 일반적으로 쓰던 흙벽돌 대신 신소재인 콘크리트 벽돌을 사용했다.

이화동 마을은 현재 재개발구역으로 묶여 있다. 당초 11층짜리 아파트가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2008년 서울시에서 ‘이화 제1주택재개발 정비구역 지정안’을 통해 최고층수를 5층으로 제한하면서 재개발에 제동이 걸렸다. 사업성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건설회사도 한 발을 뺐다. 원주민들도 79㎡(24평)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2억여원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박원순 시장 들어 뉴타운, 재개발 출구전략이 발표되면서 이화동 재개발은 유보된 상태이다. 주민들도 재개발을 놓고 찬반으로 나뉘어 갈등을 겪고 있다.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소외·낙후 지역 생활환경개선 사업으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재개발 몸살 속에서 지쳐가던 마을에 예술가들의 벽화가 골목골목 채워지기 시작했다. ‘벽화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관광객이 몰리고 있지만 원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소음과 쓰레기이다. KBS TV ‘1박2일’에서 ‘이승기 천사날개’ 벽화가 소개된 후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밤낮 없이 난리가 났다. 소음에 지친 주민들의 항의가 쏟아지면서 한때 천사날개를 지우기도 했다. 재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불만의 시선을 던지고 있지만 결론 없는 재개발에 발목 잡힌 이화동 마을의 미래에 마을박물관 프로젝트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키워드

#현장
황은순 차장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