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대표팀. 뒷줄 왼쪽 끝이 주전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 ⓒphoto AP
벨기에 대표팀. 뒷줄 왼쪽 끝이 주전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 ⓒphoto AP

베네룩스 3국은 서부 유럽의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를 칭하는 말이다. 인구 53만명의 소국(小國) 룩셈부르크를 빼고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비교하면 두 나라는 라이벌이 될 만하다. 네덜란드의 인구는 약 1680만명, 벨기에는 약 1110만명이다. 면적은 네덜란드가 4만1543㎢, 벨기에가 3만528㎢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포츠에서의 위상은 네덜란드가 월등히 높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네덜란드는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만 금 8, 은 7, 동 8개를 따내며 종합 순위 5위에 올랐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스포츠는 축구다. 비록 월드컵에선 준우승 3회(1974·1978·2010)로 정상의 감격을 맛보진 못했지만 네덜란드는 늘 세계 축구의 중심에 있었다.

이에 반해 벨기에는 세계 축구사에서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다. 벨기에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기록한 4위가 대회 최고 성적이다. ‘원조 붉은악마’로 통하는 벨기에는 당시 엔조 시포(48)라는 명미드필더의 지휘 아래 뛰어난 조직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벨기에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한동안 본선 무대에서 볼 수 없었다. 2006·2010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연거푸 탈락했다. 유럽축구선수권에서도 2004· 2008·2012년 세 대회 연속 본선에 오르지 못하는 망신을 당했다.

암흑기가 찾아온 벨기에 축구에 구름이 걷힌 것은 최근의 일이다. 유망주들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각 유럽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황금 세대’의 등장을 알렸다. 벨기에는 이번 브라질월드컵 유럽 예선 A조에서 8승2무란 압도적인 성적으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조 추첨에선 톱 시드를 받아 한국·알제리·러시아와 함께 H조에 속했다. 한국과 벨기에는 6월 27일 오전 5시 상파울루에서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을 벌인다.

요즘 같아선 벨기에가 이번 월드컵에서 그동안 이웃나라 네덜란드에 축구로 눌려왔던 설움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많은 전문가가 전통의 강호 네덜란드보다 벨기에의 전력이 더 낫다고 평가한다. 심지어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는 이들도 있다. 남한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작은 나라 벨기에는 어떻게 축구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벨기에 축구가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유로(유럽축구선수권) 2000 대회 이후였다. 네덜란드와 공동개최한 이 대회에서 개최국 벨기에는 조별리그 탈락의 충격을 맛봤다. 개최국이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대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86년 월드컵 대표팀 코치였던 미셸 사블롱이 개혁의 칼을 뽑아들었다.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차근차근 발전하기로 계획을 세운 벨기에 축구협회는 유소년 축구에 집중하기로 했다.

2002년 축구협회 기술감독(technical director)을 맡은 사블롱은 첫 2년간 1600시간에 달하는 유소년 경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어린 선수들이 11명씩 한 팀을 이루는 정식 경기를 통해선 기술·체력 등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키우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블롱은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국 모든 유소년 축구팀에서 7세 이하 어린이들은 2 대 2, 9세 이하는 5 대 5, 11세 이하는 8 대 8 경기만 치르도록 했다. 유소년 선수 개개인이 공을 다루는 시간과 횟수를 늘려서 축구에 대한 즐거움을 깨우치는 동시에 기술 향상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한 것이다.

지난 5월 27일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평가전이 열린 인구 6만의 작은 도시 헹크가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곳이다. 벨기에의 유소년 정책에 맞춰 2003년 센터를 세운 헹크는 ‘벨기에 축구의 요람’이 됐다.

현재 벨기에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22·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미드필더 케빈 드 브루잉(23·볼프스부르크), 스티븐 데푸르(26·포르투)가 헹크 유소년팀 출신이다. 특히 쿠르투아는 올 시즌 아틀레티코의 스페인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세계 최고 수문장의 반열에 올랐다. 부상으로 월드컵 명단에는 빠졌지만 현재 벨기에 최고 공격수로 꼽히는 크리스티안 벤테케(24·애스톤 빌라) 역시 헹크 유소년팀과 프로팀을 거쳐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벨기에 축구협회는 또한 ‘수출 정책’도 병행했다. 벨기에 자국 리그가 너무 작아 많은 유망주들이 성장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축구협회는 유망주들이 일찍 해외 리그로 나가는 것을 권장했다. 벨기에 대표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 에덴 아자르(23·첼시)는 14세에 프랑스로 무대를 옮겼다. 릴 유소년팀에서 성장한 아자르는 2012년 첼시로 이적해 기량에 꽃을 피웠다. 아자르와 주전으로 호흡을 맞추는 케빈 미랄라스(27·에버턴)도 릴 유소년팀 출신이다.

토마스 페르말런(29·아스널), 얀 페르통언(27·토트넘), 토비 알데르베이럴트(25·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벨기에의 간판 수비수들은 모두 10대 초·중반에 일찌감치 네덜란드 아약스로 스카우트된 선수들이다. 아약스에서 착실히 성장한 선수들은 빅 리그로 진출하며 벨기에 축구의 든든한 자산이 됐다.

벨기에 정부의 열린 이민 정책도 최근 벨기에 축구가 강해진 비결로 꼽힌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알제리), 클로드 마켈렐레(콩고민주공화국), 파트리크 비에라(세네갈) 등 이민자 집안 출신 선수들을 주축으로 우승을 일궈낸 바 있다.

벨기에 정부는 1974년 8월 이후 공식적으로는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외국인이 노동허가증을 받아 장기 체류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망명자를 받아들이는 데도 비교적 관대해 외국인 거주자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 2007년 조사에서 벨기에의 외국인 비율은 8%에 달했다. 벨기에에서 태어나거나 부모 중 한 명이 벨기에인인 경우 등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한 편이다.

지난 5월 27일 룩셈부르크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벨기에 대표팀의 주공격수 로멜루 루카쿠(21·에버턴)는 아버지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이다. 아버지 로저는 콩고민주공화국 축구 대표팀으로 뛰었다. 벨기에의 주장이자 세계적인 수비수로 손꼽히는 뱅상 콩파니(28·맨체스터 시티) 역시 이민자 2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벨기에에 이민을 온 경우다. 콩파니는 올 시즌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며 주가가 더 올라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마루앙 펠라이니(27)는 모로코계다. 아버지는 모로코 리그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다. 무사 뎀벨레(27·토트넘)는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아버지를 뒀고, 악셀 비첼(25·제니트)은 아버지가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섬 마르티니크에서 왔다. 19세로 이번 월드컵에서 센세이션을 꿈꾸는 아드난 야누자이(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알바니아계 벨기에인으로 부모는 코소보 출신이다.

벨기에 축구가 다시 부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대회가 2008 베이징올림픽이었다. 당시 4위를 한 멤버인 콩파니·페르말런·펠라이니·페르통언 등은 6년이 지난 지금 벨기에 월드컵 대표팀의 주축이 됐다. 여기에 아자르·루카쿠·쿠르투아·야누자이 등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한꺼번에 쏟아진 유망주들이 성인 대표로 성장했다. 벨기에가 이번 월드컵의 우승 후보로 당당히 꼽히는 이유다.

관건은 조직력이다. 각 유럽 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개성 있는 스타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마르크 빌모츠(45) 감독이 해야 한다. 그는 벨기에 대표팀 선수로 A매치 70경기(28골)를 소화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1998 프랑스월드컵 한국전(1 대 1 무승부)에선 동갑내기인 홍명보 감독과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빌모츠는 지도자 경력이 그리 많지 않아 벨기에 대표팀의 유일한 약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벨기에는 팀 내에서도 프랑스어를 쓰는 선수와 네덜란드어를 쓰는 선수가 서로 나뉘기 때문에 그만큼 이를 통솔하는 감독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빌모츠는 “긴 말이 필요없다. 화끈한 축구를 펼쳐 보이겠다”고 말했다.

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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