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튀니지와의 평가전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photo 뉴스1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튀니지와의 평가전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photo 뉴스1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하면 떠오르는 단어 몇 가지를 꼽아본다. ‘카리스마’ ‘무표정’ ‘과묵’….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 스페인과의 8강전 당시 마지막 승부차기를 꽂아넣고 환하게 웃던 선수 홍명보를 보고 많은 사람은 이렇게 느꼈다. 홍명보도 저렇게 크게 웃을 때가 있구나.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우리는 홍 감독의 환희에 찬 모습을 10년 만에 다시 볼 수 있었다.

기자는 홍명보(45) 감독에게 “선수 시절 왜 그렇게 무표정이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설득력이 있었다. “수비수가 TV 화면에 클로즈업될 때는 상대에 몰리는 위기 상황이 많잖아요. 그럴 때 웃을 수 있나요?”

과묵하다는 이미지에 대해서 홍 감독은 어떻게 항변할까. “아내랑 연애하던 시절엔 국제전화로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어요. 미국에 계신 장인어른이 나중엔 아내 방 전화코드를 뽑으며 그랬습니다. ‘이 국제전화 요금 들이려면 그냥 시집을 가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기자보다 열 살이 많은 홍명보 감독을 사석에서 만나면 ‘동네 큰형’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홍 감독은 꽤 수다쟁이다.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땐 대화가 멈추지 않는다. 홍명보 감독의 지인인 방송인 서경석씨는 “명보 형은 실없이 잘 웃는 사람”이라고 했다. 홍 감독은 양주나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는 맥주 몇 잔에 유쾌해지는 남자다. 홍 감독과 약속을 잡는 날엔 좋은 분위기에서 맛있게 맥주를 마실 수 있겠단 생각부터 든다.

홍명보 감독이 사랑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90년대’다. 자신이 20대를 보낸 시절이다. 좋아하는 가수는 1990년대의 청춘스타 김민종. 그 시절 한국을 강타했던 팝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광팬이기도 하다. 홍 감독은 2012년 휴스턴이 사망했을 때 미국에 가서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작년 10월부터 방영해 12월 말에 끝난 ‘응답하라 1994’란 드라마도 1990년대를 추억하는 작품이다. 홍 감독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작년 12월 브라질월드컵 조 추첨식을 취재하러 갔을 당시 홍 감독이 “‘응사(‘응답하라 1994’의 줄임말)’를 못 봐서 아쉽다”고 투덜대던 모습이 기억난다. 축구인에게선 보기 어려운 귀여운 투정이었다.

아들 얘기를 할 땐 그는 정말 보통 아빠의 모습이다. 홍 감독에겐 성민(16)과 정민(14), 두 아들이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축구에 소질은 없다고 했다. 홍 감독이 꼽는 굴욕의 순간을 들어보자. “첫째 아들이 초등학생 때 운동회에 간 적이 있어요. 주위에선 홍명보의 아들이라 엄청나게 운동을 잘할 줄 알았겠죠. 근데 얘가 달리기에서 꼴찌 비슷하게 했어요. 그땐 좀 부끄럽더라고요. 하하.”

그는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입으로 자신의 앞머리를 훅훅 부는 버릇이 있다. 선수 시절부터 헤어스타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왜냐고 물으면 “잘 어울리지 않느냐”며 씩 웃는다.

늘 한국 축구의 최정상에 있었지만 특권 의식을 찾아보긴 어렵다. 작년 상반기 홍 감독은 거스 히딩크가 감독으로 있는 러시아 안지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당시 히딩크가 식사할 때 같은 테이블에서 먹기를 권유했지만 그는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 늘 그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5개월간 연수를 마치고 가족들과 만난 날엔 가방을 여는데 러시아로 갈 때 가져갔던 개인 옷들이 땀내 나는 그대로 있었다. 속옷은 욕실에서 손빨래했지만 겉옷은 스태프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미안해 세탁을 부탁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 홍명보’는 이렇듯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고정관념에서 많이 비켜 서 있다. 소탈하고 은근히 재미있다. 그렇다면 ‘지도자 홍명보’는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지도자로서의 홍명보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도자 입문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장면이 언론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홍 감독의 리더십을 살펴보면 역시나 고정관념을 깨는 장면이 많다.

일단 홍명보 감독이 지도자로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홍 감독은 애초엔 축구 행정가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2005년 2월, 현역 은퇴 4개월 만에 대한축구협회 이사가 될 때만 해도 행정가로서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딘 것 같았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2006 독일월드컵에 코치로 합류시킨 것이다.

그의 역할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보좌해 선수들과 감독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일각에선 1급 지도자 자격증도 없는 그가 특혜를 받아 월드컵 코치가 됐다고 비판했다. 홍 감독은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 축구를 모른 척할 수 없다”며 “선수 생활을 하며 이룬 모든 것이 무너진다 해도 주어진 코치직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의 코치 경력은 결과로만 따지면 초라했다. 2006 독일월드컵(조별리그 탈락), 2007 아시안컵(3위), 2008 베이징올림픽(조별리그 탈락) 등 코치로 참여한 대회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과정은 홍명보가 감독으로 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

2009년 홍 감독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그해 열린 이집트 20세 이하 월드컵 감독에 선임된 것이다. 홍 감독이 이끈 20세 이하 대표팀은 8강을 달성했다. 그 대회 최고의 성과는 홍 감독이 “한국 축구의 황금세대를 만들어 보겠다”는 취임 일성을 지켰다는 것이다. 이집트 대회를 통해 한국 축구를 짊어지고 나갈 ‘홍명보의 아이들’이 탄생했다. 구자철·홍정호·김영권·윤석영·김보경·김승규·이범영 등은 5년이 지나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많은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월드컵 무대까지 서는 것은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은 홍 감독과 그의 ‘아이들’이 깊은 신뢰로 묶이는 계기가 됐다. 당시 아시안게임은 23세 이하가 출전할 수 있는 대회였지만 홍 감독은 2009 이집트 월드컵 8강 멤버인 20세 이하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꾸렸다. 2년 뒤 런던올림픽을 내다본 포석이었다. 와일드카드로 박주영이 합류했다.

한국은 UAE와의 4강전에서 일격을 당했다. 금메달이 유일한 목표였던 팀은 급격히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금·은·동메달리스트가 모두 병역특례 혜택을 받는 올림픽과는 달리 아시안게임은 금메달만 해당이 된다. 큰 목표가 사라진 선수들에게 이란과의 3~4위전은 큰 의미가 없는 경기일 수도 있었다.

후반 31분까지 1-3, 패색이 짙어지며 홍 감독도 벤치에 힘없이 몸을 기댔다. 하지만 그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했다. 후반 33분부터 44분까지 지동원(2골)과 박주영이 세 골을 터뜨리며 극적인 4 대 3 역전승을 일궈냈다. 홍명보 감독은 이때 이 선수들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선수들도 코칭스태프와 팀 동료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갖게 됐다.

홍명보 감독이 전지훈련장인 미국 마이애미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photo 뉴시스
홍명보 감독이 전지훈련장인 미국 마이애미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photo 뉴시스

그리고 2년 뒤 홍명보호는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일궈냈다. 대표팀의 주축은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이집트 20세 이하 월드컵과 광저우아시안게임 멤버였다. 올림픽 축구 첫 메달의 쾌거에 그동안 홍 감독이 보여줬던 리더십에 대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홍명보호(號)가 그동안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비결엔 하나된 팀으로 만들어낸 끈끈한 조직력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한두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기보다는 11명의 선수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절묘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선수들이 하나의 마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 대표팀의 슬로건이 괜히 ‘One team, One spirit, One goal(하나된 팀에서 하나의 정신과 목표를 갖고 뛰자는 뜻)’인 게 아니다.

홍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동기 부여를 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의 스타인 것을 감안하면 의외일 수도 있다. ‘좋은 선수가 좋은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스포츠계의 속설이 있듯 보통 현역 시절 주목을 받았던 스타 출신의 지도자들은 다양한 상황에 부닥친 선수들의 마음을 일일이 헤아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 감독은 “나도 어려운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경기 때마다 종료 휘슬이 울리면 꼭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다. 후보 선수들에 대한 배려는 체격이 작아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던 학창 시절의 서러웠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홍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세심한 배려는 그가 가진 리더십의 특징이다.

2012년 1월 홍명보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시간이 촉박했지만 굳이 설 연휴가 끝나고 대표팀 명단 발표를 했다. 대표팀에서 탈락한 선수들이 가족과 함께 설을 보내는 동안 우울해할 것을 걱정한 배려였다. 대표팀 소집 때 선수들의 생일을 미리 챙겨 파티를 열어주는 것도 홍 감독이 빼놓지 않는 일이다.

스타 출신답게 권위를 앞세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골키퍼 김승규는 “홍 감독님은 선수들을 편하게 해 준다. 마치 외국인 감독 같다”고 말했다. 사실 홍 감독만큼 팀 구성원과 끊임없는 소통을 하는 지도자도 드물다. 대표팀 관계자는 “일대일 소통 과정을 통해 홍 감독의 생각을 경험한 구성원들이 팀 운영 시 그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을 보면서 무한한 신뢰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홍명보 감독이 대회가 끝날 때마다 고생했다고 가장 먼저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하는 사람들이 장비와 의료 등 대표팀 지원 스태프다. 대표팀의 한 스태프는 “이런 자리에서 홍 감독과 교감을 나누게 되면 내가 이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란 것을 실감하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홍명보호에 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이태웅 KBS PD는 “이상할 정도로 팀 구성원 모두가 홍 감독을 마음으로 따른다”고 말했다.

소통 과정은 코치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홍 감독은 지위를 내세워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법이 없다. 김태영·박건하·김봉수 코치와 마라톤 회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한다. 길게는 2009년 20세 이하 월드컵부터 함께한 이들은 그 어떤 코치진보다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홍명보 사단’의 주축으로 꼽히는 이케다 세이고(54·일본) 대표팀 피지컬 코치는 “홍 감독과의 의리 때문에 한국을 택했다. 그는 수백 년 전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쇼군(將軍)이 되었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2012년 4월 박건하 코치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홍 감독이 이틀 동안 묵묵히 빈소를 지킨 것도 유명한 얘기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은 스승인 거스 히딩크를 닮았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1년 앞두고 프랑스·체코에 5 대 0으로 패하며 ‘오대영’이란 별명을 얻었다.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비난 여론은 거셌다. 하지만 히딩크는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고, 결국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홍 감독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어린 선수들을 기용했다가 동메달에 그치며 비난 여론에 시달렸다. 그러나 2년 뒤 그때 멤버들을 중심으로 진용을 꾸려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다.

홍 감독은 필요할 땐 철저히 선수들의 보호막이 되어준다. 2012년 홍 감독은 카타르와의 올림픽 예선 원정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난 너희를 위해 마음속에 칼을 갖고 다닌다”고 말했다. 팀의 수장(首長)인 자신이 모든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인 동시에 선수들은 자신을 믿고 경기에만 집중하라는 메시지였다.

이번 브라질월드컵 엔트리를 놓고도 말이 많았다. 광저우아시안게임과 런던올림픽에서 활약한 ‘홍명보의 아이들’을 너무 중용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그동안 자신이 언급했던 “소속팀에서 부진한 선수는 뽑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박주영과 윤석영이 선발되자 비난 여론이 몰아쳤다.

홍명보 감독은 5월 12일 대표팀 첫 소집 날 “원칙은 내가 깼다”며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월드컵에서 뛸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다. 어떤 선발이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 선수들을 데리고 최고 성과를 내는 것으로 대신하겠다”고 말하며 논란을 정면 돌파했다.

그동안 리더십에선 좋은 평가를 받은 홍명보 감독은 축구 감독의 또 다른 자질인 전략가로서의 풍모는 그다지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홍 감독이 ‘한국의 히딩크’가 되기 위해선 좀 더 전술적인 면에서 돋보일 필요가 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이 그 시험 무대가 될 전망이다.

물론 홍 감독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거치며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선보였다. 올림픽 예선은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경기가 아니라 유럽파 선수들을 차출하기 어려웠고, A 대표팀과 중복되는 경우에도 양보해야 했다.

그는 원하는 선수를 뽑기 어려워지자 대학 선수 200여명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했다. 그때 발굴한 선수가 이번 월드컵 대표 황석호다. 실제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주전 수비수 홍정호가 크게 다치자 홍 감독은 황석호를 대체자원으로 투입해 동메달을 일궈낸 바 있다. 홍 감독은 “어느 대회든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준비해 놓고 경기에 임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기 도중 전술적인 변화를 주는 면에선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히딩크 감독은 2002 월드컵 당시에도 기묘한 교체 전략과 과감한 포메이션 변화로 찬사를 받았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김태영·홍명보·김남일 등 수비적인 선수를 빼고 황선홍·차두리·이천수 등 과감히 공격수를 집어넣어 역전승을 일궈낸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홍 감독에겐 경기를 보는 눈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이번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지도자에서 뛰어난 전략가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까. 브라질월드컵은 지도자 홍명보에게 또 한 번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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