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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서 주 3회(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인천~콜롬보 구간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8시간10분 정도 소요된다.
폴론나루와에 있는 거대한 열반상.
폴론나루와에 있는 거대한 열반상.

스리랑카는 인도에서 남쪽으로 30㎞쯤 떨어져 있는 작은 섬나라다. 인도양에 외롭게 떠 있는 이 섬나라, 생각보다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싱할라 왕조가 시작된 기원전 483년부터 따지더라도 그 역사가 대략 2500년이나 된다. ‘찬란하게 빛나는 섬’ 또는 ‘크게 꿈을 성취하라’라는 뜻을 지닌 스리랑카. 한때 아랍인들에 의해 ‘실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스리랑카는 세계적인 홍차 명산지로 널리 알려진 곳. 홍차 다음으로는 불교 유적이 유명하다. 일찍이 기원전 247년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찬란한 불교 문화의 꽃을 피웠다. 23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누라다푸라를 비롯해 폴론나루와, 시기리야가 스리랑카에서 훌륭한 불교 유적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아누라다푸라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 건설된 이 고대 도시는 남인도의 촐라 왕조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까지 1400여년 동안 싱할라 왕조의 수도로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아누라다푸라 최대의 전성기는 두투가마니 왕이 통치하던 기원전 167년부터 137년까지 30년. 현재 아누라다푸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불교 유적들 대부분은 바로 이 시기에 조성되었다.

불교 문화를 바탕으로 태평성대를 누리던 아누라다푸라는 10세기 이후로 수백 년 동안 밀림 속에 파묻혀 있었다. 잦은 외침을 견디다 못해 수도를 근처의 폴론나루와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 후 1800년대 초에 이르러 영국의 한 젊은 관리에 의해 우연히 재발견되면서 아누라다푸라는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된 것은 이로부터 100여년 후인 1912년. 2000여년 전의 옛 도시가 제 모습을 찾게 되면서 아누라다푸라는 다시 불교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스리랑카 최고의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아누라다푸라에는 옛 왕궁을 비롯해 사원, 불탑 등 수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일명 ‘스리 마하 보디 트리’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다. 수령이 약 2200년으로 추정되는 이 거목은 인도 아쇼카 왕의 딸이었던 상가미타 공주가 기원전 3세기 무렵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에서 꺾어온 나뭇가지를 심은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보리수 옆에는 로하파사다 승원(僧院)터가 있다. 이곳은 기원전 161년에 두투가마니 왕이 창건한 것으로 지붕이 구리로 덮여 있어서 일명 ‘놋쇠 궁전’이라고도 불린다. 불교의 전성기였던 당시에는 9층 건물에 1000여개의 승방이 있었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창건된 지 14년 만에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밖에도 아누라다푸라에는 높이 55m의 거대한 흰색 불탑인 루반벨리세야를 비롯해 발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제타바나 라마야, 아누라다푸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탑인 투파라마 대탑, 옛 스리랑카 사람들의 높은 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의 수도였던 폴론나루와는 아누라다푸라에서 100㎞쯤 떨어져 있다. 폴론나루와는 인도의 잦은 침략에 견디다 못한 싱할라 왕조가 1293년에 수도를 포기한 이후로 500년 동안이나 밀림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 후 1900년 무렵에 이르러서야 유적 발굴이 시작되면서 중세의 불교 성지로 빛을 보게 되었다. 옛 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파라크라마 바푸 1세’의 왕궁터는 폴론나루와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명소다. 지금은 비록 앙상한 기둥과 벽만 드러내고 있지만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위엄이 건물 곳곳에 서려 있다.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폴론나루와의 옛 시가지에는 왕궁터 외에도 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투파라마 불당’을 비롯해 폴론나루와에서 가장 예술적인 건물로 평가받고 있는 ‘바타다게 불당’, 그리고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비석인 ‘갈포타’ 등과 같은 불교 유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또한 폴론나루와 최고의 관광 명소라 할 수 있는 ‘갈 비할라’에는 커다란 바위를 깎아서 3체의 불상을 만들어 놓은 불교사원 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불상 가운데서도 특히 맨 오른쪽에 누워 있는 열반상은 그 길이가 무려 13.4m에 이른다.

시기리야는 195m 높이의 거대한 바위산과 그 바위벽에 그려진 이른바 ‘시기리야 레이디’라 불리는 벽화로 유명한 곳이다. 바위산이 있는 곳은 사방이 드넓은 밀림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 세계 각국에서 먼 길을 달려온 여행자들은 마치 미로처럼 바위틈 사이로 난 돌계단과 철계단을 이용해 바위산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밀림 한가운데 솟아 있는 바위산은 473년에 부왕(父王)인 다세나를 죽인 아들 카샤파가 왕세자이자 이복동생인 모갈란의 복수가 두려워 세운 임시 왕궁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곳이다. 또한 이 바위산에는 무력으로 왕이 된 카샤파가 아버지 다세나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당대의 예술가들로 하여금 그리게 했다는 벽화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바위산의 가장 높은 지점에는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향해 커다란 돌을 깎아서 만든 왕좌가 놓여 있다. 아마도 카샤파는 바위산에서 11년을 사는 동안 이 왕좌에 앉아 불안한 상태로 연회를 감상하거나 깊은 사색에 빠지곤 했을 것이다. 왕좌 아래로는 야외 목욕탕을 연상케 하는 대형 수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훗날 동생 모갈란의 공격을 받고 생을 마감한 그의 운명처럼 7년 공사의 결실인 왕궁 건물의 흔적도 모두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송일봉

여행작가

송일봉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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