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소유 워싱턴타임스 미국 보수 대변
통일교 운영 대학엔 예상 밖 무슬림 학생 많아
막강한 자금력으로 문 목사 사후에도 사업 계속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지난 6월 18일 바라본 맨해튼 남쪽 풍경. 화살표가 가리키는 건물이 프리덤타워다. 2001년 9·11테러로 파괴된 월드트레이드센터 자리에 들어선 건물이다. 통일교의 고 문선명 총재는 9·11테러 발생 후 미국 내 반(反)이슬람 분위기를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초(超)종교 회의를 개최했다. ⓒphoto 최준석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지난 6월 18일 바라본 맨해튼 남쪽 풍경. 화살표가 가리키는 건물이 프리덤타워다. 2001년 9·11테러로 파괴된 월드트레이드센터 자리에 들어선 건물이다. 통일교의 고 문선명 총재는 9·11테러 발생 후 미국 내 반(反)이슬람 분위기를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초(超)종교 회의를 개최했다. ⓒphoto 최준석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의사당 내 레이번 빌딩 1층 2185호를 지난 6월 24일 오후 1시에 찾았다. 미 하원의 에드워드 로이스 외교위원장 사무실이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의회의 권력자다. 만나기 힘들다. 미국 의회 방문은 처음이다. 로이스 위원장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접객실이 먼저 나온다. 출입문 양쪽으로 데스크가 놓여 있어, 방문객을 맞는 구조다. 접객실을 가운데 두고 세 개의 방이 둘러싸고 있다. 양쪽의 큰 방 중 한쪽은 의원 개인 사무실, 다른 방은 보좌관들의 방이다. 가운데 방은 들어가 보지 않았는데, 집기 등을 놓아두는 살림 공간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에선 사라진 아날로그 TV가 한쪽에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다.

로이스 외교위원장의 한 남자 비서관은 오늘 만남은 비(非)보도를 전제로 한다고 했다. 보도할 수 없다니, 김이 빠졌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냥 들어보기로 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나를 포함한 한국 기자 몇 명을 만난 뒤 서울에서 온 조태용 외교차관과의 미팅이 예정되어 있다고 들었다. 로이스 위원장의 방 한쪽 벽에는 사진이 12장 걸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각각 찍은 사진이 보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찍은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11장의 사진 사이에 큰 사진 한 개가 걸려 있었다. 나는 무슨 사진인지 못 알아봤다.

방에 들어온 로이스 위원장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천안함 사진”이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보았고, 그제서야 두 동강이 난 모습의 낯익은 천안함인 줄 알아차렸다. 미국의 하원 외교위원장이 왜 2010년 3월 26일 폭침된 천안함 사진을 벽에 걸어 놓았을까 궁금했다. 바쁜 그에게 천안함 사진 얘기를 묻는 건 한가하게 보였다. 한·일 관계,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시각, 위안부 문제 등 궁금한 게 산적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지난 1월 31일 캘리포니아 도시 글렌데일에 있는 위안부소녀상을 찾은 일을 두고 “2차대전 때 아버지는 대서양에서, 삼촌은 태평양전쟁에서 싸웠다. 삼촌이 내게 말했다. 일본이 한국에 사과해야 하며, 미국은 그걸 일본에 요구해야 한다. 나는 일본이 역사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하원의 실력자 중 한 사람을 서울의 주간지 편집장이 만날 수 있었던 건 워싱턴타임스 덕분이었다. 이날 미팅은 워싱턴타임스가 주선했다. 워싱턴타임스 재단의 토머스 맥데빗 이사장과 통일교의 미국 내 사업 책임자 마이클 젠킨스씨가 동행했다. 나는 로이스 위원장과의 미팅 이후 역시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맷 새먼 의원(애리조나주 출신)을 만났다. 이들 말고 전직 의원 두 사람을 만났다. 이날 만난 사람이 전·현직 해서 의원 네 명이다. 워싱턴타임스 측은 다른 의원과의 인터뷰를 추가로 잡았다며 만나볼 것을 권했고 나를 포함해 같이 간 기자들은 이미 충분히 얘기를 들었다며 사양할 정도였다.

1974년 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에서 닉슨 당시 대통령을 만난 문선명 통일교 총재(오른쪽). ⓒphoto 통일교
1974년 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에서 닉슨 당시 대통령을 만난 문선명 통일교 총재(오른쪽). ⓒphoto 통일교

미국의 권부 중 하나인 의회 의원들은 워싱턴타임스를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보수 성향인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워싱턴타임스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워싱턴타임스는 통일교의 문선명씨가 1982년 창간했다. 그가 신문을 창간하고 이후 계속 운영하지 않았다면 한국 기자가 미국 하원들과 만난다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6선의 맷 새먼 의원은 “워싱턴타임스가 미국의 보수 목소리를 위해 매우 필요하며, 그 역할을 하는 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일정이 바쁘지만 워싱턴타임스에서 온 분들에겐 시간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타임스를 창간한 고 문선명 총재에 대해 “여러 번 만났다. 대단한 분”이라고 말했다. 새먼 의원은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무모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중국의 필리핀, 베트남과의 영유권 분쟁을 비난했다. 그는 “미국이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한다. 하지만 중국의 군사력 확장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큰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새먼 의원은 민주당 소속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시리아, 이라크 사태를 언급하며 “미국이 개입하지 않아 공백이 생기면 중국과 러시아가 빈틈을 타 밀고 들어온다”며 오바마 행정부의 무능력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얼마 전 존 케리 국무장관이 하원 관련 소위원회에서 미 외교의 최우선 문제는 기후변화라고 발언했다”면서 “미국의 외교가 무너지고 있는데, 외교를 책임진 정책담당자가 그런 한가한 말을 할 수 있느냐”며 흥분했다.

내가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찾은 건 통일재단 초청 때문이다. 통일교 측은 고 문선명 총재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미국에서의 행적을 홍보하고 싶어했다. 내가 기억하기에 통일교는 1970년대, 1980년대 미국에서 바람을 일으켰었다. 마약과 술에 절어 사는 미국 히피들의 변신이 미국 사회에서 화제였다.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거리에 나와 선교하는 데 놀랐던 것이다. 문선명씨는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 앞 넓은 잔디 광장에서 수십만 명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1976년 9월 18일)

뉴욕과 워싱턴 방문은 개인적으로 매우 오랜만이다. 15년 이상 됐다. 통일교 측에서 초청하는데, 이참 저참 가보는 게 좋다고 생각됐다. 나는 통일교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이번 출장을 통해 문선명씨가 미국에서, 그리고 미국을 무대로 남미와 중동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알게 됐다.

지난 6월 17일 뉴욕에 도착한 날 밤 12시가 넘어 숙소인 뉴요커호텔 623호에서 만난 양성식 천주평화연합(UPF) 세계의장은 “1971년 12월 17일 문 총재 가족이 워싱턴에 도착했다. 이후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나라에서 왔으니 그랬다. 하지만 히피들이 머리를 깎고 인생관을 새로 정립했다. 이런 사람이 수천, 수만 명이 나오면서 문 총재가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선명씨가 미국에 와서 한 얘기는 “미국은 병들어 있는 환자다. 나는 의사로서 왔다. 미국은 불난 집이다. 나는 소방수로 왔다”였다고 한다.

다음 날 만난 김기훈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FWPU·이하 가정연합) 총회장은 “문선명 총재가 8월이면 작고 2년이다. 문 총재는 50년 전인 1965년 처음으로 미국에 왔다. 1965년 2월 샌프란시스코로 입국, 폭스바겐 왜건을 타고 33일 동안 미국 전역을 돌았다. 50년 전 문 총재가 미국에 왔을 때 어떤 마음, 어떤 각오였는지 생각하는 행사를 이번 주말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 총재 사후 통일교는 부인 한학자 총재가 이끌고 있다.

에드워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 사무실 내 벽면에 걸려 있는 사진들. 가운데 큰 사진이 두 동강 난 천안함 사진. ⓒphoto 최준석
에드워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 사무실 내 벽면에 걸려 있는 사진들. 가운데 큰 사진이 두 동강 난 천안함 사진. ⓒphoto 최준석

앞에서 말했지만 특히 미 의원들을 여러 명 만나면서 워싱턴타임스의 상당한 영향력을 확인했다. 워싱턴의 워싱턴타임스 사옥은 미 의사당에서 서쪽으로 약 20분 정도 자동차를 타고 가는 거리에 있었다. 창고를 사서 사옥으로 고쳐 쓰고 있다. 토머스 맥데빗 워싱턴타임스 재단 이사장은 “회사가 이익과 영향력 면에서 최근 크게 좋아졌다. 올해는 흑자로 돌아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맥데빗 이사장은 “워싱턴타임스는 미국 보수세력의 대표적인 목소리(Flagship Voice)다.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 이름이 이순자이고, 전남 출신”이라고 한국과의 인연을 말했다.

워싱턴타임스의 전성기는 냉전 붕괴를 전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1981~1989년 재임)다. 존 살로먼 워싱턴타임스 편집인은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 붕괴에 워싱턴타임스가 기여했다고 말했다”면서 “백악관에서 매일 새벽, 회사로 직접 찾아와 워싱턴타임스를 갖고 가 레이건 대통령의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고 했다. 당시 워싱턴타임스는 대통령이 보는 신문으로 명성을 날렸다”고 말했다.

맥데빗 재단이사장은 “레이건 이후 냉전 구도가 무너지면서 약 10년간 워싱턴타임스의 목소리가 약해진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이후 미국의 도덕적 위기가 부상했다. 이후 9·11 테러가 일어났다. 이런 게 워싱턴타임스가 문화쪽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했고, 초(超)종교 운동을 하기에 좋은 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타임스는 미국에서 수많은 언론에 의해 인용, 보도되고 있다. 백악관과 의회, 행정부가 구독하는 부수가 1만부이다.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타임스에 이어 미국 의회에 영향을 주는 미디어 순위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폭스TV가 보수 논조를 펴고 있으나, 정치 분야를 제외한 그밖의 문화 부문에선 진보라는 게 워싱턴타임스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예컨대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워싱턴타임스만 반대 목소리를 낼 뿐, 다른 신문 방송에선 일절 그런 걸 볼 수 없다는 것. 워싱턴타임스는 진보적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실수를 많이 파고들고 있는 듯했다. 래리 비즐리 워싱턴타임스 사장은 “발행부수는 4만4000부다. 오피니언 페이지를 미국 신문에서는 보기 드물게 4면을 매일 제작한다. 오피니언 페이지는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리 신문의 등뼈로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편집국 기자가 80명인데 논설위원이 10명이나 된다.

통일교의 전설은 미국과 한국에서 축적한 엄청난 부(富)가 그 한 축을 이룬다. 뉴욕의 뉴요커호텔은 통일교 자산이다. 맨해튼 34번가와 8번가가 만나는 곳에 있다. 뉴요커호텔은 90년 됐고 뉴욕 맨해튼에서 객실 수가 가장 많다고 했다. 4성급. 이곳의 3개 층은 통일교가 선교 시설로 사용한다. 미국 뉴욕에 도착해서 묵은 숙소인 맨해튼의 뉴요커호텔은 25년 전 구입 당시 500만달러였으나 현 시세는 4억달러에 달한다고 ‘가정연합’의 사업본부장인 마이클 젠킨스씨가 말했다. 이 호텔은 3000만달러을 투자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하고 있고 여성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여 경영의 효율성을 올리는 데 힘쓰고 있었다. 선교 우선에서 경영 효율 중시 쪽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앤 피터슨 사장은 “3성급이었으나, 개보수를 마치고 세계적 호텔 체인인 윈덤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지난 5월에 4성급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뉴욕의 5성급 호텔은 6개에 불과하다. 뉴요커호텔은 인근의 부두 지역에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자산가치가 올라갔다고 했다. 230억달러 규모의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가 진척되면 미디어 그룹인 타임워너가 입주한다고 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8번가와 36스트리트에 있는 통일교 소유의 뉴요커호텔(화살표 건물). 미국 선교본부도 이곳에 있다. ⓒphoto 최준석
미국 뉴욕 맨해튼 8번가와 36스트리트에 있는 통일교 소유의 뉴요커호텔(화살표 건물). 미국 선교본부도 이곳에 있다. ⓒphoto 최준석

뉴욕에서 선교와 사업 부문을 총괄하는 김기훈 가정연합 총회장은 미국 내 사업 매출 규모에 대해 “내부에서도 공개하지 않는다”면서 그 규모에 대해 “숫자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고만 말했다. 김 이사장은 “워싱턴타임스도 올 연말에 적자에서 탈출하고 내년에는 흑자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회장과 동석한 마이클 젠킨스 사업본부장은 통일재단의 베링해 수산업 비즈니스(Ocean Peace Inc.)와 앨라배마에 있는 선박 수리회사(마스터 마린·Master Marine)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총회장은 베링해에서는 원양어선 세 척을 운영 중인데 “이곳의 수익이 뉴요커호텔 수익보다 더 많다”고 했다. 미국 정부는 이 해역에서 모두 20척에 대해 조업 허가를 내줬는데 이 중 세 척이 통일교 소속이라는 것. 참치 등을 잡으면 잡는 대로 현지에서 일본으로 바로 수출한다고 했다. 본사가 있는 시애틀까지 갖고 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김기훈 이사장은 “이 세 척 말고 보유하고 있는 중형 선박은 수백 척”이라고 말했다. 일본 식당도 다수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비즈니스는 문 총재의 세계 선교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통일교가 보유한 막대한 자산을 둘러싸고 문선명씨 사후 아들들 간에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선명씨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1971년 기반을 옮긴 것은 한국에서 활동을 제약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고, 이단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뉴욕주 어빙턴에 자택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더 넓은 시야를 갖고 활동을 벌였다는 것. 김기훈 이사장의 지휘를 받는, 미국 내 통일교 선교 책임자는 마이클 발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미국협회장. 그는 “미국이 신의 챔피언이 되게 하는 게 문 목사의 목표였다”면서 문 목사는 △가치관이 붕괴되는 당시 미국 사회의 재건 △세계 종교 간의 화해 △물질주의적 사고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양창식 UPF 세계의장은 문선명 총재가 “처음에는 미국에서 환영받는 입장이 아니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선명씨는 미국에서 7000달러 규모의 탈세혐의로 64세 때 1년1일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통일교의 초종교 활동은 흥미로웠다. 기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기독교에서 출발해 이단이라는 비난을 주류 교회로부터 받는 통일교가 왜 초종교 활동을 할까 하는 게 궁금했다. 맨해튼에서 좀 떨어진 뉴욕주의 태리타운에 있는 UPF 사무실을 찾았을 때 이 부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UPF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에 등록된 비정부기구(NGO)이다. UPF의 타겔딘 하마드 사무총장은 9·11 테러 발생 직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개최한 행사 이야기를 들려줬다.

“9·11 테러 직후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이 미국에서 솟구쳤다. 문 총재는 이슬람이 나쁘지 않다, 참된 이슬람의 모습을 알려야 한다며 종교 간 회의를 개최했다. 돈은 내가 내겠다. 회의는 무슬림의 이름으로 열도록 하자. 나는 인도네시아의 전직 대통령 압둘 라흐만 와디드와 접촉했다. 결국 9·11 테러 발생 두 달 뒤 자카르타에서 회의가 열었다”고 말했다. 그가 보여주는 자료를 보니 당시 회의 이름은 ‘이슬람과 세계 평화의 미래’였고, 회의는 2001년 12월 20~23일에 자카르타에서 열렸다. 대부분의 기독교가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지갑을 열다니 보기 드문 일이다.

6월 20일 브리지포트대학 방문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브리지포트는 코네티컷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문선명씨가 1992년에 인수했다고 했다. 뉴욕시에서 1시간30분 이상 차를 타고 가는 거리에 있다. 닐 알버트 살로넨 총장은 코넬대 화공과 출신이라고 했다. 살로넨 총장은 “우리 대학은 모든 종교의 활동을 환영한다. 특종 종교를 내세우는 건 미국에선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이다”라면서 “무슬림 재학생이 많다”고 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유학생이 유학생 그룹 중 중국(재학생 수 약 5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고 했다. 살로넨 총장은 힌두교도도 200명 남짓 된다고 했다. 힌두는 물론 인도인이다. 재학생 수는 5000명. 신도 중 통일교 신도 비율은 40~50%라고 했다. 한국인 학생 수는 10~20명이다.

통일교는 미국 외에 남미 진출이 유명하다. 남미 진출 이유에 대해 한 관계자는 “미국은 개신교 국가이고 남미는 가톨릭 지역이다. 신구교 통합이라는 그림이 있어 남미에 가서 활동을 한 것”이라고 했다. 중동에서 NGO 활동을 하는 이유도 초종교 활동의 연장선상이었다. 기독교와 함께,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생각하는 세 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과의 화합에 나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통일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공존을 위해 활동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이곳에도 상당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수년 전 KBS 기자가 가자지구에서 취재 중 억류됐다가 풀려났는데 그 과정에 통일교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내란 상황에 시리아에 관심을 갖고 NGO 활동을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했다.

통일교는 베링해에서 참치를 잡는다. 시애틀에 있는 ㈜오션피스의 선박들이 올리는 어획고 수입이 뉴요커호텔 수익보다 많다고 했다. ⓒphoto 통일재단
통일교는 베링해에서 참치를 잡는다. 시애틀에 있는 ㈜오션피스의 선박들이 올리는 어획고 수입이 뉴요커호텔 수익보다 많다고 했다. ⓒphoto 통일재단

초청자 측이 만남을 주선해 뉴욕과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목회를 하는 두 목사를 워싱턴에서 만났다. 루온 에이브러햄 라우스 목사는 백인 교회의 첫 흑인 목사란 기록을 갖고 있고, 마크 애버내티 목사(54)는 흑백인 공용 교회에서 일한다. 미국인은 흑백인이 피부 색깔에 따라 서로 다른 교회에 다닌다. 같이 예배를 드리는 곳은 거의 없다. 애버내티 목사는 1997년 백인 우월주의자 단체인 KKK가 우리 교회에서 당시 담임목사이던 아버지를 폭행하고 옷을 찢고, 불타는 십자가를 교회 마당에서 들고 의식을 치른 바 있다면서 사진을 보여줬다. 미국의 남부는 아직도 인종차별 의식이 뿌리 깊다고 했다. 명문 조지아공대 출신인 애버내티 목사는 KKK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인종 화합적인 활동으로 2006년 미국의 유색인종단체인 NACCP로부터 올해의 설교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문선명 목사를 1986년 서울에서 만났으며 문 총재와 미국 50개주 순례를 같이한 바 있다면서 ‘장벽을 부숴라’라는 나의 메시지와 문 목사의 메시지가 일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단이라는 얘기를 듣는 문선명씨와 같이 행동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종교 지도자는 오해를 받기 마련이다. 그의 비전이 우리 같은 미친 사람들이 나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통일교와 관련해 대중적으로 유명한 건 국제결혼이다. 많은 쌍이 합동으로 국제결혼을 하는 건 외부인에 이상하게 보인다. 왜 그들은 국제결혼을, 그것도 흑백 간, 한국인과 일본인 간에 하도록 주선할까? 미국 내 선교 책임자인 발콤 회장은 “1982년 6000쌍 합동 결혼식 때 나도 결혼했다. 일본인이 아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2년 경기도 가평에서 열린 합동 결혼식 때 미국의 ABC와 영국의 채널4가 취재했다. 인종 간, 민족 간 결혼이 작동하느냐는 게 취재 방향이었다. 나는 합동 결혼한 많은 사람이 일반 결혼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토머스 월시 국제 UPF 대표는 “세계를 바꾸는 건 종교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문선명 총재는 ‘간 결혼(inter-marriage)’이 중요하다고 보고 국경 간, 종교 간 결혼을 격려했다”고 말했다. 하마드 UPF 사무총장은 “문 목사는 ‘적’과 결혼하라고 권유했다. 종교 간, 문화 간 분열과 장벽이 극복되어야 하는데, 회의로는 이룰 수 없고 여자와 남자가 결혼해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수단 출신이다. 내 집사람은 잉글랜드 출신이다. 잉글랜드는 수단의 식민종주국이었다”고 말했다.

문선명 총재가 세상을 뜬 게 2년 전이다. 그가 시작한 통일교는 어떻게 될까. 미국 내 선교를 책임지고 있는 마이클 발콤 가정연합 미국협회장은 “사람들은 창립자가 죽었으니 조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말한다. 기독교를 봐라, 지도자가 죽은 뒤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몰몬 교회는 교단으로 인정받는 데 120년이 걸렸다. 지난 50년간 교세가 확산 번성했고, 지난 10년에는 대통령 후보(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낼 정도로 성장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미국에서 새로운 종교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은 몰몬교 선교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몰몬서(Book of Mormon)’였다. 뉴요커호텔 1층에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티켓을 예매하는 상인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몰몬교 신자가 미국 대통령 후보로 바람몰이를 한 줄은 알고 있지만 뮤지컬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줄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서울에서 본 경영서에 몰몬교 그룹에 요즘 미국 기업의 CEO와 임원 그룹에서 가장 부상하고 있다는 내용이 기억났다. 몰몬교는 서울에서도 요즘 활발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에 본 대로 미국의 백인 선교사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상대로 선교한다. 통일교는 어떨까. 미국에서 확인한 문선명 총재의 활동은 대단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그 이상 족적을 만든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판단은 사람마다 물론 다른 것이다.

키워드

#현지 취재
최준석 편집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