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승한 독일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로커룸에서 메르켈 총리, 가우크 대통령과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photo AP
지난 7월 1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승한 독일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로커룸에서 메르켈 총리, 가우크 대통령과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photo AP

2014년 브라질월드컵의 최종 승자는 독일 축구대표팀이었지만 또 한 명의 숨겨진 승자가 있다.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승리해 3번째 총리 임기에 들어선 독일 앙겔라 메르켈(61) 총리다. 그는 축구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그는 두 번이나 브라질을 찾았다. 외국 정상으로선 유일하다. “메르켈 총리가 경기장에 오면 항상 이겨요. 총리가 우리에게 큰 자극을 주고 있어요.” 독일 대표팀 선수 슈바인슈타이거를 포함해 많은 선수들은 메르켈의 방문을 크게 환영했다. 메르켈이 브라질을 방문한 월드컵 첫 경기에서 독일은 수퍼스타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에 4 대 0으로 대승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독일 대표팀은 엄마 같은 총리의 응원 속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가 대표팀 축구경기를 관전하면 거의 승리가 보장된다는 공식은 통계로도 유효하다. 그가 지켜본 대표팀 경기 12번 중 11번을 대표팀이 승리했다.

메르켈 총리는 왜 이렇게 축구에 열광할까. 스스로 축구를 즐기는 것도 있지만 축구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국내외에 가장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독일 대표팀이 월드컵 첫 경기를 마친 후 메르켈은 금녀(?)의 공간이라는 선수 로커룸을 찾았다. 그곳에서 샤워를 마친 선수들은 거의 알몸으로 메르켈 품에 안겨 사진을 찍었다. 선수들은 이 사진들을 소셜미디어에 열심히 올렸다. 폴란드에서 이주한 루카스 포돌스키는 마치 친엄마에게 하듯 메르켈 총리와 얼굴을 비비는 사진을 셀카로 찍어 올렸다. 인터넷 공간의 최대 화제가 됐음은 물론이다.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에도 대표팀 선수들은 서로 메르켈 총리 옆에 최대한 가까이 서려고 경쟁했다. 마치 엄마를 중심에 두고 22명의 아들들이 서 있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시상식에서 그는 어느 선수 하나 가리지 않고 포옹하는 모습을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전달했다.

‘무티(Mutti)’. 독일인들이 메르켈 총리에게 붙인 수식어다. ‘무티’는 표준어 어머니(Mutter)의 애칭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엄마’다. 독일 언론들은 메르켈의 리더십을 자상하고 다정한 ‘무티 리더십’으로 표현한다. 지난 총선에서 그는 ‘무티 리더십’을 내걸고 3선에 성공했다. 그가 이끄는 기민당·기사당(CSU) 연합은 지난 선거보다 무려 8%포인트를 더 획득했다. 자상하고 다정다감하게 민생을 챙기는 ‘엄마(Mutti) 리더십’으로 승리를 챙겼다. 2005년 첫 총리 임기를 시작한 그가 2017년 임기를 마치면 영국 대처 수상이 세운 최장수 여성 총리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국민들은 10년 가까운 메르켈의 통치 기간을 높이 평가했다. 무엇보다 독일 경제가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3% 안팎의 성장률, 4%대의 낮은 실업률, 무역흑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제2의 경제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독일 중도진보 성향의 쥐트도이체 차이퉁(Sueddeutsche Zeitung) 신문은 2013년 9월 24일 총선 다음 날 경제면 머리기사 제목을 ‘독일은 지금보다 더 부유한 적이 없었다’로 뽑았다. 독일의 제2공영방송 ZDF를 포함해 수많은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 80%가 ‘현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중산층과 서민의 지갑이 두툼해지며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 1인당 국민소득(GNI)은 4만1900유로, 물가상승률은 선진국에서 가장 낮은 1.3% 수준이다. 독일인들은 “역사상 이보다 자유스럽고, 평화롭고, 번영을 누린 적이 없다”고 노래한다.

메르켈의 리더십은 위기에 빛났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남부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 독일의 강한 진면목이 드러났다. 대다수 국가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가운데 독일만 플러스 성장과 경상수지 1등 국가로 독야청청했다. 1등 공신은 당연히 메르켈의 리더십이다. 그는 유로화 위기를 극복하고 유럽연합의 끈을 강화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리스·스페인 등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 재정건전성을 위해 허리끈을 졸라맬 것을 주문했다. 이들 유럽연합 국가들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메르켈의 리더십은 세계적으로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어떻게 동독 출신의 여성 정치인이 남성들이 우글거리는 보수정당 기민당의 총수가 되고,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당선되었을까. 또 유럽 최장수 국가지도자로 우뚝 설 정도로 국민의 높은 사랑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세계는 그의 리더십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독 목사의 딸인 메르켈은 동독 공산정권하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터득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물리학자였던 그를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동독의 ‘민주개혁’ 운동에 앞장서게 한 것이다. 통일 후 1991년 서독의 기민당에 입당해 연방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치에 입문했다. 그에게 행운이 다가왔다. 통일의 주역인 헬무트 콜 총리가 메르켈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 여성청소년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으로 연거푸 발탁했다. 이때부터 메르켈에게는 콜 총리의 ‘정치적 양녀’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하지만 1998년 총선에서 정치 거인 헬무트 콜 총리가 사민당의 젊은 정치인 슈뢰더에게 패배하면서 메르켈에게 기회가 왔다. 이듬해 정치자금 스캔들로 기민당이 최악의 위기에 처하자 메르켈은 ‘구원투수’로 나섰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대부(代父)였던 콜 총리와 연결된 탯줄을 끊어버리기 위해 마치 때를 기다린 것같이 단호하게 행동했다. 기민당 사무총장이던 메르켈은 1999년 12월 22일자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지 2면에 ‘콜이 기민당에 큰 피해를 주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그 파장은 컸다. 이에 앞서 1999년 11월 4일 콜 총리가 재임시절(1982~1998년)에 불법 정치자금을 모은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기민당 재무담당인 발터 키프를 탈세 혐의로 구속했다. 콜은 총리 시절 기부금 형식으로 돈을 받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고 비자금으로 사용했다. 불법이었다. 집권당인 사민당과 녹색당은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청문회를 열었다. 수사 과정에서 콜은 통일 업적을 내세우며 조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국민은 분노했고 기민당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았다. 콜과 가까운 정치인들은 스캔들을 덮기에 급급했다. 메르켈의 콜 비난 뒤 기민당의 일부 의원은 그를 ‘친부 살인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국민과 여론은 “국민 불신을 해결한 용기 있는 믿음의 지도자”라고 메르켈의 손을 들어줬다. 콜의 후계자이자 서독 출신의 수많은 정치인들은 당시 정치 일선에서 후퇴했다. 콜 역시 기민당 명예총재에서 물러났다. 이때 메르켈에게 붙은 별명이 ‘콜의 저격수’였다.

그의 단호함은 리더십으로 발휘됐다. 그의 정치적 파워는 풀뿌리 당원과 국민의 지지에 기반했다. 보스(boss) 몇 명의 흥정에 의존하는 과거 정치문화를 청산하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만들어 나갔다. 전당대회에서 당원 지지도는 90%를 넘었다. 2005년 11월 22일 메르켈은 사민당의 현직 총리 슈뢰더를 물리치고 최연소(51세), 최초 여성, 최초 동독 출신, 최초 과학자 출신이란 몇 개의 수식어를 달고 총리로 선출됐다. 메르켈은 성공이라는 단어 사용을 즐긴다. 2013년 독일 총선의 슬로건도 “독일을 위해 함께 성공하자”였다. 국가와 국민의 성공을 우선순위에 두는 정치를 펼치고 있다.

독일은 연정의 나라다. 독일 역대 중앙정부는 항상 다른 정당과의 연합정치를 해 왔다. 1957년엔 기민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확보하고도 자민당과의 연정을 구성했다. 지방정부의 연정은 더욱 보편화되고 있다. 심지어 기민당과 녹색당이 연정을 꾸린다. 한국과 비교하면 새누리당과 정의당이 지방 연합정부를 꾸리는 셈이다.

연합정치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크게 3가지다. 먼저 대연정을 통해 지지국민의 파이를 최대화해 정치안정을 꾀할 수 있다. 국민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의 지지율이 80%에 육박한다. 국민 80%의 지지 속에서 안정된 정치를 펼칠 수 있다.

둘째, 인력풀을 극대화할 수 있다. 모든 정당의 인력풀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립정부 내에서 다원주의와 경쟁이 이뤄지는 구조다. 한국같이 코드 일색의 인사를 상상할 수 없다. 독일 대연정에선 ‘친박, 친이, 친노’라는 코드인사가 자리 잡을 수 없다.

셋째, 연정은 권력과 자리를 나눈다.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가 아니다. 토론과 논의를 통해 타협과 중재를 실현한다. 결국 정치 실적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는 문화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좋은 실적과 업적을 낸 인물과 정당이 지지를 받는다. 이게 나라 발전의 최대 원동력이다.

독일 대연정의 중심에는 메르켈 총리가 있다. 그는 2005년에 이어 2013년 2번째 대연정 정부를 꾸렸다. 2005년 메르켈은 사민당과의 대연정 협상에서 대통합 리더십을 보여 여러 현안을 원만하게 타결했다. 그는 자신의 당내 반대를 물리치고 복지와 원전 폐쇄 등 사민당의 가치를 받아들였다. 외교부·재무부·경제부 등 주요 부처의 장관 자리를 사민당에 넘겼다. 총리 취임사에서 전임자 슈뢰더 총리의 개혁정치를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계파나 당파보다는 국익과 국민의 성공이 우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통합의 통 큰 정치를 한 것이다. 2013년에도 사민당과의 대연정 협정문에 도장을 찍었다. 사민당이 주장한 최저임금제와 이중국적제도를 받아들였다. 최저임금제 제정을 받아들이면서 63세부터 연금수령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에 성공했다. 내년부터 시간당 8.5유로의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정했다. 한국의 2배로 약 1만2000원이다. 이를 두고 연방정부 노동복지부의 슈나이더 국장은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독일에서 약 400만명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혜택을 보게 된다”고 전망했다. 지난 사민당의 슈뢰더 정권 때 ‘어젠다 2010’ 및 ‘하르츠 4’라는 이름으로 사회 및 노동 분야의 개혁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미니잡 혹은 페니잡’ 등 수많은 저임금 일용직을 양산했다. 실업자 수는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최저임금 생활자들이 더 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민당의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슈미트 박사는 “지난 슈뢰더 정권의 일부 개혁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비판한다. 메르켈이 이끄는 대연정의 사회개혁에 독일 노조 단체들도 환영하고 나섰다. 독일의 최대 산별노조 중 하나인 통합서비스노조 베르디의 케르쉬바움 박사는 “최저임금제와 연금제도 개혁은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가 연정 후반전에 준비하고 있는 개혁카드는 ‘엄마연금’ 도입과 ‘간병보험’ 개혁이다. 엄마연금은 ‘여성이 육아를 위해 헌신한 햇수를 직장에서 일한 것과 동일하게 인정해서 연금을 주는 제도’다. 독일 대다수 여성들이 대환영이다. 또 1995년에 도입한 의무 간병보험제도는 신체적으로 장애노약자에게만 해당하는 보험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혁으로 치매 등 정신장애 노약자들도 동일하게 보험 혜택을 받게 한다. 메르켈 총리의 ‘엄마 리더십’과 이어지는 대목이다. 통 크게 정파와 이념을 넘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언제든지 받아들인다.

‘Angela Merkel isst Alles’. ‘메르켈 총리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는 뜻의 독일어다. 그는 모든 이슈와 정책의 용광로라고 평가받는다. 메르켈은 2011년 3월 55년 만에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는 군 개혁을 주도했다. 사민당이 제기한 정책을 받아들였다. 사회보장제도도 강화했다. 녹색당의 가장 중요한 이슈도 삼켜버렸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건 이후 독일에서 원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역시 전격 받아들여 2022년까지 세계 최초로 ‘탈핵’을 선언했다.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청문 과정을 거쳐 내린 결론이다.

베를린에서 연수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대통합의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익과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기에 국민의 지지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메르켈은 ‘라인강의 기적’의 설계자인 에르하르트 총리가 제시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어린이 보육 지원의 강화다. 나아가 진보정책까지 수렴해 지지세력을 넓혀간 것이다. 그는 사회복지, 기회균등, 금융규제, 공동체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보수 정치인이지만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정파나 이념보다는 국민과 국익이 우선순위에 두고 정치하기 때문이다.

물론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도 있다. 녹색당 창당의 주역으로 최고위원을 지냈고 현재 ‘독일 환경과 발전의 포럼’을 이끌고 있는 유겐 마이어는 “미국식 개인 정치인의 인기에만 의존하는 정당은 미래가 어둡다”며 “지난 총선에서 기민당은 무기력했고 메르켈만 내세운 선거였다”고 말했다. 정당정치가 허약해지면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메르켈의 리더십과 헬무트 콜 총리의 리더십을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헬무트 콜은 자신을 낮추고 기민당을 내세워 콜 자신은 별 인기가 없었지만 16년이라는 최장기 집권의 신화를 썼다. 반대로 메르켈은 본인을 내세워 인기몰이를 하지만 기민당의 지지도는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정당이 노쇠해지고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있다. 독일 선거 유세장을 방문하면 실제 그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기민당이나 사민당의 선거 유세장엔 나이 든 사람이 많았다. 독일 정당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결국 민주주의는 정당이 얼마나 활발하게 토론하며 비전과 프로그램을 제시하는가, 미래의 주역인 젊은층이 얼마나 활발하게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자신의 정치 경력 2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스캔들 또는 부패사건에 연루된 적이 없다. 그는 자식이 없다. 부모·형제를 포함해 누구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총리 관저가 아닌 사저에 살고 있다. 주말에는 보통 주부와 다름없이 시장에 가고 요리를 한다. 이웃 주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려 종종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는 거의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는 말수가 적다. 생각을 많이 하고 주위에 많은 자문을 한 다음 결정을 내리는 겸손함과 진정성을 갖추고 있다. 영국의 타임스나 미국의 경제 잡지인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메르켈을 선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정보국이 세계 지도자들을 도청했을 때 메르켈 총리만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도청금지’를 강력하게 항의했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략했을 때도 그는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침략의 부당성’을 항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할 수 있는 용기있는 리더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메르켈은 독일과 유럽 전체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리더다. ‘뚝심의 여장부’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3선의 정치를 성공한다면 아데나워·브란트·콜 같은 위대한 정치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김택환 경기대 교수·독일 본대학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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