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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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우리 사회의 반영입니다. 군에서 문제가 터진다고 자꾸 군의 문제로만 돌리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 8월 25일 서울 중구 퇴계로 고려대연각빌딩에 있는 사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난 홍두승(64)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른바 ‘윤일병 사건’ 등 군내 가혹행위에 대한 근절책을 묻자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부터 가질 것을 주문했다. 홍 교수는 “한국 군대를 40년 가까이 학문적 분석 대상으로 삼아왔지만 병영문화 개선은 사회를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단적 처방 같은 특효약이 없다”며 “점진적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사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 교수는 군대를 학문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아온 원로 사회학자. 지난 40년 가까이 ‘군대 사회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해 왔다. 1999년 국방부의 의뢰로 육·해·공, 해병대 일선 군부대를 현장 조사해 두툼한 병영문화 개선 보고서를 펴낸 것을 비롯해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각종 실무작업에 참가해 왔고,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국방담당 정권 인수위원을 맡아 군 정책에도 관여해 왔다.

홍 교수는 요즘 벌어지는 군내 가혹행위가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부터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에 들어온 아이들은 별종이 아닙니다. 20년 가까이 군 밖에서 가정생활, 학교생활을 하던 아이들입니다. 군에 들어와 21개월 동안 얼마나 바뀌겠습니까. 군이라는 상황 속에서 일이 벌어지니까 군대에 책임이 돌아가지만 군에서 그런 문제사병들을 기른 것은 아닙니다.”

홍 교수는 요즘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의 통제를 벗어난 문제아, 일탈 청소년들이 군대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의 배경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에는 교사의 지도가 먹히지 않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을 째려보고 멱살 잡고 심지어 폭행하는 아이들도 왕왕 나타납니다. 인권을 강조하면서 아이들을 통제할 이렇다 할 수단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통제에서 벗어나 반사회적 성향을 띤 아이들이 자라서 군대에 갑니다. 이들이 후임병 때는 문제가 없지만 선임병이 되고 나면 사회에서 길러진 반사회적 행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요즘 군에서는 일과 후 가급적 지휘관들이 사병들을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도록 합니다. 어떤 권위도 없는 상태에서 문제아가 뒤섞인 젊은 집단이 사실상 방치돼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대한민국 군대는 병장이 바뀌지 않으면 안 바뀐다’고 제가 아는 군 지휘관들이 평소 강조하듯이 사병들이 자신들끼리 규율을 만들어 원만하게 집단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은 겁니다. 8사단에서 일과 후 동기들끼리만 생활하게 하는 실험도 해봤지만 학교생활을 하는 같은 또래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것도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습니다.”

홍 교수는 “윤 일병 사건이 벌어진 28사단의 경우 본대와는 떨어져 있는 포병대대 의무대에 문제사병이 끼어 생활하다 사고가 발생했다”며 “그동안 일선 부대를 방문해 설문조사를 해본 경험으로 보면 일과 때 훈련을 세게 받고 다수가 뭉쳐서 생활하는 부대보다는 동떨어져 상대적으로 한가하게 지내는 부대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군대에 오면 오히려 통제되는 측면이 있다”며 “군대와 군대 밖 같은 또래 연령층의 자살률을 비교하면 군대 내 자살률이 오히려 낮다”는 지적도 했다. 실제 국방부 통계를 보면 2012년의 경우 인구 10만명당 20대 남성 자살자 수(23.5명)는 동일 조건의 군내 자살자 수(11.1명)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홍 교수는 “얼마 전 터진 휴가 사병 동반자살 사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군내 사망자에서 차지하는 자살자 수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손쉽게 자살에 빠지는 사회적 풍조가 반영된 탓이 크다고 본다”고 했다.

홍 교수는 ‘병장 문제’가 군내 가혹행위의 핵심이긴 하지만 과거와는 달라진 초급 지휘관들의 자질 문제도 사고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요즘 일선부대 중대장 등 지휘관들이 과거보다 사명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중대장 중 상당 비율이 단기 복무자인데, 이 친구들의 최대 관심사는 제대 후 취직입니다. 군대에서도 대부분 취직 공부를 합니다. 여기다가 연간 4000명씩 배출되는 ROTC 양성 대학들이 우리 때만 해도(홍 교수도 ROTC 출신) 30개 정도였지만 지금은 100개가 넘습니다. 사병들보다 자질이 떨어지는 장교들이 섞여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요즘 어떤 소대장들은 회식을 하면 사병들과 N분의 1로 비용을 나눠 내면서 ‘제대할 때 3000만원 모으는 게 목표’라고 자랑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자기 월급을 털어서 소대원들 먹이는 소대장은 이제 옛날 얘기입니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항상 자기 입대와 제대 기준으로 군대를 바라보지만 요즘 군대는 사병들도 장교들도 완전히 달라진 딴 세상입니다.”

홍 교수는 지난 40년간 지켜본 결과 우리 군이 일종의 ‘악순환’에 갇혀 있다고 강조했다. 군대에서 가혹행위 등이 발생하면 습관적으로 ‘군 기강 해이’를 질타하면서 군을 다시 옥죄고, 이것이 과거와는 달라진 사병 장교들을 옥죄면서 조직에서 일탈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고만 터지면 ‘정치적 책임’을 묻는 분위기 때문에 군 지휘부를 줄줄이 옷벗게 만드는 관행은 사태 해결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게 홍 교수의 주장이다. “왜 사단장은 물론이고 군단장, 심지어 육군참모총장까지 윤 일병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실제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일선 지휘관은 중대장까지입니다. 대대장만 해도 책임을 물리기 힘들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심지어 작전 단위인 군단장까지 책임을 지라는 건 진짜 군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의 얘기일 뿐입니다.”

홍 교수는 윤 일병 사건의 경우 진짜 ‘정치적 책임’을 원했으면 사건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관진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만 옷을 벗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김관진 장관이 옷을 벗으면서 ‘나 이외의 지휘관들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고, 실제 책임이 있는 일선 지휘관까지만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선을 그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지휘관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 관행도 악순환을 불러오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우리 군의 악습처럼 돼버린 은폐와 축소의 행태가 여기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경계 철책이 뚫리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가정하죠. 미군이라면 일단 구멍 뚫린 철책에 지휘관들이 초병을 세웠는지를 따집니다. 지휘관이 초병을 세웠는데도 초병이 졸다가 경계가 뚫렸다면 미군은 지휘관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초병을 문책합니다. 하지만 우리 군은 다릅니다. ‘왜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았느냐’며 지휘관부터 문책합니다. 이러니까 사고만 터지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자꾸 사건을 덮는 겁니다.”

다양하고 뿌리 깊은 원인을 배경으로 하는 군내 가혹행위를 그래도 줄여나가려면 결국 해결책은 뭘까. 이에 대해 홍 교수는 “우리 군이 그동안 나름대로 발전해 왔고 병영문화도 옳은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 군이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안 해본 실험이 없고 병영문화도 많이 개선된 게 사실입니다. 일과 후 사병들 자유롭게 해주기, 일과 후 자기 계발 시간 갖기 등 지금 쏟아져 나오는 처방들도 제가 1999년 펴낸 병영문화 보고서에 거의 다 담겨 있는 것들입니다. ‘동기끼리 생활하기’ 실험도 해봤고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찬반양론도 취합돼 있을 정도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했던 군 사법제도개혁에 제가 반대했지만, 군은 군다워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군 지휘체계 안에 군 검찰과 법원이 속해 있는 현재의 군 사법제도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군이 우리를 대표하고 유사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느냐가 핵심인데, 군내 가혹행위 같은 사고가 발생한다고 이런 핵심을 훼손하면서 군을 군답지 않게 만드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 군도 장기적으로는 미군처럼 일과 때는 훈련을 세게 받고 일과 후에는 자율적으로 자유롭게 생활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병영문화 개선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군 구석구석에서 빚어지는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관점에서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홍 교수의 주문이다. 우선 관심사병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금 상비 사단에 150~300명의 관심사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관리하는 사병이 또 필요하고, 지휘관들도 이들을 관리하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정작 훈련과 교육은 뒷전입니다. 싸울 준비를 하는 군이 이처럼 소모적일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입대 전부터 관심사병을 더욱 철저히 걸러내 아예 입대를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이러한 자원들은 산림청 등 공공기관으로 보내 대체복무를 시켜야 합니다. 입대 사병들의 복무 기간인 21개월보다 훨씬 긴 36개월 정도의 대체복무를 시키면 균형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심사병이 될 자원을 대폭 걸러내면 병력 유지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홍 교수는 “어차피 지금도 병력은 부족하고 우리 군은 소수정예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최일선을 지키는 휴전선 GOP 부대만 정원 대비 90%대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고 후방 부대들은 대부분 정원을 못 채우는 ‘간편 정원’으로 운영하는 실정입니다. 병력을 못 채우는 부대가 많기 때문에 부대 통폐합도 계속 추진되고 있습니다. 2022년까지 52만5000명으로 병력을 줄이기로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지금 추세로는 2025년이 되면 병력을 줄여도 필요병력에서 5만명이 부족하다는 계산입니다. 요즘 모병제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군 자질을 떨어뜨리고 ‘사회에서 제대로 된 노동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원이 총알받이로 군대 간다’는 식의 위화감을 키울 수 있는 모병제는 답이 아니라고 봅니다. 징병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예비군 동원체제를 강화하는 게 답이라고 봅니다. 돈을 받으며 제대로 근무를 하는 예비군을 대체 병력으로 키워야 합니다. 구체적인 예비군 강화 방안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번번이 예산에서 밀려 중단된 실정입니다.”

홍 교수는 관심사병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과 함께 사병과 장교에 대한 교육도 계속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된 병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교육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군에서 계급을 붙여주는 건 군이라는 조직 운영상 필요한 것일 뿐 그것이 덩달아 인격을 보장하고 남을 괴롭힐 권리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점을 사병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이와 함께 어떤 경우든 손찌검 등 위해행위는 범죄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합니다. 또 초급장교의 리더십과 자질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도 강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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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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